안 종 문
정월 대보름 날 아침이자 휴일이다.
우리 부부는 여느 때와 같이 일곱 시에 식사를 하고나서 파크 운동을 하러 경주 서천구장에 나갔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바람이 없어서 춥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8시 정각에 도착했음에도 벌써 열댓 명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한산한 구장 사정에 만족스러웠고, 마음껏 운동할 수 있는 일요일이라 내 마음은 날아갈 듯 했다.
내자는 나와 함께 30년 이상을 테니스 운동하며 지냈다. 2020년 가을부터 어깨가 아프다면서, 운동 부하가 크지 않은 파크골프 운동에 먼저 입문하였고, 그 운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나를 몹시 안타까워했다. 6개월쯤 지났을까? 일흔 넘은 나이에나 하는 운동인 줄 알고 있던 나에게 잔디 사정이 좋은 알천구장에서 같이 한 번 해보자며 간곡히 권했지만 웃고 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아들에게 전화를 했다. 네 아빠의 생일 선물로 한 달 먼저 파크골프 채를 사서 주고 싶다는 자신의 바램이었다. 아들은 군말 없이 엄마의 선 주문에 동참했다. 홀컵이 설치되어서 공식 개장 전에 누구나 운동을 할 수 있게 하던 7월 어느 날, 택배로 새 골프채가 도착했고, 나는 파크골프채를 잡고 파크골프 운동하는 연을 맺었다. 파란 잔디 위에서 테니스볼 만큼 크기의 제법 딱딱한 공을 원하는 곳으로 날려 보내면서 팔로 느껴지는 짜릿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머리 얹는 첫날에 홀인원의 기쁨을 맛보고는 점차 묘한 재미에 빠졌다. 같이 운동을 한지 삼 개월쯤 지났을까? 여름이 지난 가을부터는 나는 아예 테니스 운동을 완전히 접었다. 아내의 기량에는 훨씬 못 미쳤지만 명색이 체육교사 출신이지 않은가? 내심 하루빨리 잘 치고 싶었다.
파크골프에 대한 나의 열정은 쉽게 식을 줄 모르는 일종의 늦바람이었나 보다. 숱한 세월 발자국을 남기며 살고 있다. 경주의 두 곳 파크골프장을 비롯해서 시골 집 들어가는 길에서의 영해(병곡) 파크골프장, 평해 남울진 파크골프장에 이어, 딸아이가 결혼해서 살고 있는 제주에 갔을 때도 비행기에 파크골프채를 챙겨 갔을 정도였다. 제주의 여러 파크골프장 섭렵은 물론 화랑의 언덕 ok목장 유로 파크골프장에도 대구에서 함께 테니스를 쳤던 동호인들과 해후하여서 하하 호호 유쾌한 추억을 만들었다. 어디 그 뿐이던가? 서울 볼일 보러 가는 길에서도 새벽 4시에 잠을 깨서 출발, 아홉 시부터 12시 반까지의 양평 파크골프장, 볼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는 별내 형님댁에서 일부러 1박하고 함께 가평 파크골프장에서 즐겼다. 돌이켜 보면 선명한 세월 발자국에 고맙기만 하다.
드디어 입문 일 년 조금 지난 작년 가을에는 경주시장배 파크골프대회에 처음 참가해보면서 매 홀에서의 박진감 넘치는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 길게 칠까? 짧게 칠까? 순간 순간 선택의 두근거리는 마음과 씨름해보면서 파크골프 경기의 참맛을 알았다. 이글과 앨버트로스의 희열은 오랜만에 누려보는 감격의 천지였다. 그 후 한 달 뒤 포항에서의 경북 시도 대항전 생활체육스포츠대회 경주 대표선수로 참가했고, 보름 후에는 경북 전체 무슨 대회에도 참가해서 입상을 아쉽게 놓친 경험도 해보았다.
하면 할수록 재미있다. 어제도 그럴 것이 네 명이 두 명씩 팀을 나누어서 홀 매치 포썸 경기를 하였는데, B코스 6번 홀에서 9번 홀까지 이글을 세 번, 버디를 한 번의 플레이를 하였다. 마지막 네 홀에서 무려 - 7타라는 놀라운 경기력을 보이자 함께 운동하였던 경기자들이 그만 아무 말도 못한 체 입을 다물어버렸다. 설마 넣겠는가? 의문을 가질 만큼 10m 거리 내외의 롱 퍼터였기에 내 스스로도 놀라 무슨 일인가? 싶었고, 아내는 “그 날이 왔네~”라는 말로 다른 두 동반 경기자의 칭찬을 대신했다.
입문 2년도 안된 그 사이에 파크골프운동에 대한 수필도 썼고, 여러 유 튜브 영상들을 조회해서 널리 나누고 싶은 것들을 집안 카페에 올렸다. 동호인 클럽 경기이사도 맡으면서 구글 스프레드시트에 의한 정확한 성적 산출을 실현했다. 점점 파크골프운동 전도사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 주말 휴일 이용해서 한 달에 한 번 시골집 찾는 시간도 아까울 만큼 파크골프 운동을 즐기고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오전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단골집 식당에 들렀더니 단체 손님들로 들끓었다. 축구 조기회 동호인들이 친선 경기를 마치고 저마다 상기돤 표정으로 보름 밥의 점심을 먹고 있었다. 친절한 아주머니는 잔치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오는 우리부부에게 나물과 보름 밥을 별도로 포장해서 주었다. 농사 지은 수확물들을 나누어 먹으면서 정을 주고 받았던 내자의 공덕인가 보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황성동 5일 장에 가서 제주도에 사는 딸에게 보낼 밑반찬 재료들과 사과 한 상자를 샀다. 헨리에 이어서 곧 둘째 아이의 딸을 출산할 예정이다. 장 본 물건들을 집에 갔다 놓고는 다시 혼자서 오후 운동을 하러 서천 구장으로 향했다.
아침과 다르게 복잡하였다. 어떤 홀(파 5)에는 대기 공이 6~7개, 스무 명에서 서른 명이나 기다리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 말의 뜻은 무엇일까? 한 홀에서 20 분을 기다리면서도 재미가 있다는 생생한 증표가 아닐까? 18홀 라운딩을 오전에 다섯 번, 오후 세 번 반, 합계 여덟 라운드 반 했으니, 153홀 경기를 하루에 즐겼던 휴일이었다.
내가 파크골프에 빠져 살줄은 2년 전만해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행히 심심한 삶은 없을 것 같고, 걷기가 문제되지 않을 나이까지 많이 행복할 것 같다. 부부가 함께 건강한 삶을 누리기에는 이만한 운동이 어디 있으랴.
(2023년 입춘 하루를 지난 세월의 노래 - 어제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