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 4: 11 질문 - 슥 4: 12 다시 그에게 물어 (1)
3. 두 감람나무 ( 4: 11 – 14 )
1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12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13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4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순금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나 두 가지는 같은 역활을 상징한다고 본다.
두 감람나무의 두 가지에서 금 기름이 두 금관을 통하여 흘러 등대의 일곱 등잔에 공급되고 그 등잔은 빛을 내었다.
두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을 금 기름이라 부른 것은 그것의 고귀한 가치를 표현한 것일 것이다. 그 기름은 분명히 성령을 상징했다.
천사는 그 두 감람나무를 온 세상의 주, 곧 하나님 앞에 모셔 섰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라고 설명했다. 구약시대에 기름 발린 사람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었다. 여기에서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가리켰다고 본다.
그러나 단지 그들 자신을 가리켰다기보다 그들의 직분과 사역이 예표 하는 자를 가리켰다고 본다. 그들은 메시아를 예표한 자들이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예표의 사람들이다(슥 3: 8).
메시아께서는 제사장과 왕으로 오실 것이다. 그는 일곱 눈을 가진 돌로 오셔서 친히 고난을 받으시고 죄악을 하루에 제하실 것이다(슥 3: 9).
회복된 이스라엘 곧 신약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충만한 공급 하심을 받아 세상에 빛을 발할 것이다.
슥 4: 11 질문 -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
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나이까? 하고
(1) 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같은 내용의 질문을 두 가지 형식으로 묻는다.
그의 질문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다. 그는 계시의 뜻을 모른 체 무관심하게 지나가지 않는다.
(2)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들의 영적 의미
① 무화과나무 : 열매 -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
② 포도나무 : 포도주
③ 감람나무 : 부귀영화 - 30년이 되어야 완전한 열매를 맺음. 성령의 상징.
슥 4: 12 다시 그에게 물어 -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
1]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이해하지 못하였으면 다시 질문해야 한다.
어물쩡 넘어가는 것은 잘못이다.
2]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1) 금 기름
기름은 성령을 상징한다.
* 출 27: 20 -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감람으로 짠 순수한 기름을 등불을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않게 등불을 켜되
* 시 89: 20 -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 왕하 20: 13 - 히스기야가 사자들의 말을 듣고 자기 보물고의 금은과 향품과 보배로운 기름과 그의 군기고와 창고의 모든 것을 다 사자들에게 보였는데, 왕궁과 그의 나라 안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히스기야가 그에게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더라.
금 기름 : 보배(귀중)성. 예수 그리스도가 보내신 성령을 상징한다.
* 요일 2: 20 -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 감람나무
감람나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대략적인 것을 말씀드리면 두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생산 되어 두 금관을 통해 등잔 꼭대기에 있는 기름 주발에 공급된다. 그리고 그 기름 주발에서 일곱 관을 통해 아래 일곱 등잔에 기름이 공급되는 구조다.
살아 있는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공급되는 신비한 등불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기름이요, 기름공급이다.
아무리 등잔이 갖추어졌어도 기름이 공급되지 않으면 불을 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름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바로 성령을 상징한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성전도 우리의 신앙도 우리의 그 어떤 문제도 결코 이룰 수 없다.
따라서 성령님이 그렇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성령님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는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낙제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시대의 감람나무 성령 기름의 공급자는 누구일까?
이상한 사람들은 이 사람이 특정 개인을 가리킨다고 현혹하는데 다 헛된 말이다. 이 시대의 감람나무는 당시 총독과 제사장처럼 이 두 가지 직분을 겸직하신 완전하신 분이셔야 한다.
그분은 바로 만왕의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이 바로 성령의 은혜 공급자이시다. 이것이 틀림없는 성경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행 2: 33에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하셨고, 요 1: 16에서는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증언했으며 롬 8: 1에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수 없이 받은 세상의 영이라면 다 악령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성령을 주신다. 그러므로 일차는 예수를 믿어야 성령을 받는다. 중요한 것은 예수를 잘 믿고 하나님을 잘 공경해야 한다.
즉 우리가 예수 안에서 영광스러운 구원을 받은 자임을 확신할 뿐 아니라 항상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규모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 말다가 아니라 교회의 정규적인 예배뿐만 아니라 다니엘처럼 하루에 세 번이라든지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엎드리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3] 두 가지는 무슨 뜻이나이까? 하니
(1) 두 가지
이 두 감람나무 가지가 당시의 기름 부음을 받은 두 지도자를 가리켰듯이 좁은 의미에서 이들은 오늘날 성령 받은 주의 종들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주의 종들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을 가르치시고 축복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주의 종뿐 아니라 성도들이 주의 종들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주의 종들이 말씀과 성령에 충만할 때 성도들이 은혜를 받지 못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엡 4: 11-12에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들을 두 증인이라고 부른다.
* 계 11: 3-6 -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5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11장은 두 증인에 관한 장이다. 1-2절은 겔 40-48장을 반영한다.
그러면 두 증인은 누구를 말할까? 두 증인의 정체를 '모세와 엘리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죽었던 모세와 엘리야가 다시 살아서 온다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는 하늘을 향하여 비 오지 못하게 한 것은 엘리야이며,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 것은 모세이므로 두 사람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두 번째로 교회를 상징한다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세 번째 견해는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종말의 종으로 본다. 필자는 이 해석을 따른다. 즉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마지막 대 환란 때 일할 하나님의 종으로 본다.
그러면 왜 모세와 엘리야의 정신을 계승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아야 할까? 그 이유는 말라기 4장 5절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말라기서의 특징은 회개가 없다. 회개하라는 말이 없다는 것은 최대의 저주다. 성경을 통해서 회개가 없는 것은 말라기뿐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으나 안타깝게도 다시 타락해버렸다. 그래서 크고 두려운 날에 이를 심판할 터인데 그 전에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보내겠다고 하신 것이다.
그러면 크고 두려운 날은 언제일까? 모든 주석가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 날로 본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초림과 재림으로 두 번 오신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큰 무리들을 다 떠나보내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었다고 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 자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이 하나님인 것을 믿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이다. 초림 때 예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했다. 과연 크고 두려운 날이었다.
그리고 또 한 번 크고 두려운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이스라엘 뿐 만 아니라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때 모세와 엘리야 같은 종을 다시 보내겠다고 하셨다.
두 증인이 '모세와 엘리야'인가? '마지막 때 추수의 종'이냐가 여기서 밝혀진다.
예수님 당시는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일컬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마태복음 11장 14절은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가복음 9장 13절에도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바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하나님의 종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엘리야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도 엘리야가 직접 오는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오는 세례 요한과 같은 하나님의 종, 바로 '두 증인'들이다. 그래서 모세와 엘리야가 살아서 온다는 것은 성경적, 신앙적으로 맞지 않는 얘기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떤 역할을 했나? 그는 예수님이 오시기 6개월 전에 미리 등장해서 오실 예수님을 예비했다. 황폐한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바리새인들 향하여 부르짖으며 예수님을 예비했다.
그는 예수님이 오시도록 길을 닦아 놓았으며 예수님을 널리 알렸다. 이렇게 엘리야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 세례 요한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때 두 증인도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예비하는 종들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재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도록 미리 예비하는 역할을 한다.
왕이 행차하는데 왕이 먼저 가서 '나 왕이요!'라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종들을 보내서 준비시킨다.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데 갑자기 오시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미리 준비시키신다.
마태복음 25장에 열 처녀 비유가 나온다. 이 비유에서는 신랑이 올 때 신랑의 친구가 먼저 가 있었다. 신랑의 친구가 신부에게 가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도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재림하실 예수, 성도의 영원한 신랑 되실 예수님을 맞이할 재림을 준비시킨다. 이것이 마태복음 24장 45절에 언급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종'이다.
우리가 마지막 때 두 증인과 같은 사명을 감당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