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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전도서 7:28
28.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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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2:1~8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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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목사
오늘은 우리 총회가 정한 남선교회 주일입니다. 남선교회가 활성화되고 남선교회에 모든 남성들이 다 가입하셔서 함께 교제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해 전입니다. 여전도회 회관을 건축하고 나니 남선교회가 기가 죽어서 회관 건립에 대한 회의를 했다고 합니다. 전국연합회가 임원회를 하면서 회관 건립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먼저 임원들이 헌금을 하자고 했는데 임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사람씩 밖으로 나가더랍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휴대전화가 드물 때인데 나간 임원들이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서 집에 전화하여 “여보, 나 얼마 하면 돼?” 하고 섰더랍니다. 그래서 아직도 회관 건립을 못하고 있습니다. 회관은 없어도 괜찮은데 기가 죽으면 안 됩니다. 기죽지 말고 열심을 냅시다.
사도바울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여성을 비하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에는 그럴만한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울은 그 당시 인물로서 상당히 남녀평등 사상을 그 시대에 이미 가진 인물입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에도 먼저 8절에 남성에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9절에서 15절까지는 여성에게 권면합니다. 디도서 2:2에도 “늙은 남자로는”이라고 남성에게 먼저 권하고 있고 2:3에는 “늙은 여자로는”이라고 하여 여성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남성이 어떤 남성입니까?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는 남성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기도하는 남성이 가장 지혜로운 남성입니다. 이 말씀은 디모데전서 2:1의 말씀과 연계되는 말씀입니다.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보다 앞서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7절까지 말한 후에 8절에는 남자들에 대한 권면이 있습니다.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기도하는 남성은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할 때는 이런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첫째, 분노를 잘 다스리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은 먼저 분노를 다스려야 합니다. 화가 잔뜩 나는데 기도가 됩니까? 화가 나면 기도가 막힙니다. 소노다소(少怒多笑)라는 말이 있습니다. 건강의 비결을 말합니다. 적게 노하고, 많이 웃으라는 말입니다. 화를 내지 말라고 하지 않고 적게 화를 내라고 합니다. 화가 안날 수는 없지요. 그러나 화를 많이 내면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화를 내면 목소리가 달라지고, 얼굴 표정이 일그러지고, 손이 떨리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지고, 눈의 빛이 달라집니다. 분노는 건강의 가장 큰 적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카논박사는 분노하면 보통 때보다 피가 빨리 응고하고 혈압이 상승하며 심장마비의 위험이 훨씬 높아진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주 노하면 몸이 산성화하여 노화하고 성인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합니다. 이런 얘기는 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몰라서 화를 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화는 내 봤을테니까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분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분노도 영적이고 성경적인 분노의 의미를 알고 영성적 분노의 단계에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26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라는 말의 원문의 뜻은 “분을 내어라. 그러나 죄를 짓지 말라”는 뜻입니다. 분을 내고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죄를 짓지 않는 분을 내어라는 말은 의분을 내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한 분을 내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흔히 의분(義憤)이라고 합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의분을 내지만 미숙한 사람은 분을 냅니다. 의분이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분이란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분노라는 단어가 450번 나옵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350번 나옵니다. 분노라는 단어 가운데 375회가 하나님의 분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화를 많이 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화는 사람의 의와 사랑을 위한 의로운 화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분히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조롱하는 형 엘리압에게는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자신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 때문에 화가 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분노이며 성숙한 사람의 분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숙정하실 때에 돈 바꾸는 자들과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문제로 분노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로 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더럽히기 때문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분노하지 않아도 미숙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분노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인 분노입니다.
그렇지 않은 잘못된 분노는 마귀에게 틈을 줍니다. 성경은 분을 내어도 마귀로 틈타지 못하게 하라고 합니다. 분을 계속하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일입니다. 마귀는 틈을 좋아합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고 기도가 됩니까? 마귀가 틈타면 기도가 끊어져요. 마귀는 틈을 만들고, 틈을 벌리고, 틈을 이용하여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사람이 기도하지 못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웃시야는 좋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호교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강성해져서 교만하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향단 분향을 스스로 하였습니다. 제사장 80명이 따라가며 말렸을 때에 웃시야가 노를 발했습니다. 그 때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일로 죽을 때까지 별궁에 홀로 있었습니다(대하 26:19-21). 우리가 화를 내고도 한센 병에 안 걸린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창세기 4:1-7에는 인류의 첫 살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가인이 살인하게 되었습니까? 분노 때문입니다. 분노는 자신도 모르게 이성을 잃게 만들고 살인하게 만듭니다. 욥기 5:2에는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하느니라”고 합니다. 분노는 사람을 죽이게 만드는 독약과 같습니다.
야고보서 1:19-20에는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라고 합니다. 분노의 성격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잠언 16:32에 말한 대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다”고 합니다.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종래 승리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이 오래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을 내는데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지 마세요. 에너지는 쓸데없는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만듭니다. 기도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세요.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하는 비효율적 삶이 아니라 생산적인 삶을 사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다툼을 없이 하십시오.
기도하기 위해서는 다툼을 없이해야 합니다. 이 말은 마태복음 5:23-24의 말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는 말의 적용입니다. 야고보서 3:16에는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고 합니다. 다툼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요란과 악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
다툼이 어디에서 납니까? 야고보서 4:1에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다툼은 싸우는 정욕 때문에 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은 참 슬픈 주간입니다. 온 국민이 당혹하고 온 나라가 뒤숭숭한 주간입니다. 쿠테타 라고도 합니다. 폭거라고도 합니다. 횡포라고도 합니다. 대통령 탄핵소추란 말은 법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시대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인간관계 갈등이란 언제나 윈 윈(win-win) 작전으로 풀어야 하는데 윈 루즈(win-lose)로 풀려다 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승리하는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나도 죽습니다. 자기도 자유롭지 못하면 남에게도 관용해야 합니다.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나도 절대로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통령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잘못 했으면 사과해야 합니다. 어쨌든 민주적 투표방식으로 당선되었으면 대통령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면 이 전의 정적이고 라이벌이라도 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모두가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와중에 가장 큰 피해는 국민입니다. 국회의원들이야 국회에 안 나가도 세비를 받습니다. 그렇게 싸워도 월급을 줍니다. 그러니 없으면 좋은 국회의원 수를 자꾸 늘이자는 겁니다. 그런데 싸우는 동안 경제인들은 혼납니다.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되어 울상입니다. 마치 부부 싸움할 때에 아이들은 말도 못하고 눈치만 보듯 답답한 건 국민들입니다. 이러는 동안 국익에 막대한 손해를 끼치고 있습니다. 월드컵 때 벌어놓은 것을 다 까먹었습니다. 정욕에서 나는 다툼을 종식하고 서로 이기는 대타협과 대화의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한 단계 성숙으로 나아가는 아픔이기를 기대합니다.
다툼은 이기심에서 발동합니다. 바울은 이기심 혹은 자기 이익(selfishness)이란 말을 썼습니다. 이 말의 어원은 싸움(strife) 혹은 다투기를 좋아하는(contentious)이란 단어의 어원과 같습니다. 자기 이익만을 구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편을 가르는 교만입니다. 실제로 1세기의 사람들은 불법으로 조종해서 관직을 얻은 정치가나 손님을 유혹해서 품위를 떨어뜨리는 매춘부를 가리킬 때 이 말을 썼습니다. 정치가와 매춘부에 이 말을 썼다는 것은 1세기가 아니라 21세기도 실감 나는 말입니다.
빌립보서 2:3에는 말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남을 낫게 여기면 다툼이 없을 텐데 다툼이 마음에 생기면 기도가 끊어집니다. 어떤 선장과 무뚝뚝한 기관장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가운데 항해를 할 때에 누구의 전문적이 기술이 더 필요한지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루 동안 임무를 서로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기관장은 갑판에서 일하고, 선장은 기관실에서 일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몇 시간 안 되어 기름으로 얼룩진 채 땀을 흘리며 선장이 올라왔습니다. “기관장, 기관실로 좀 내려와, 배가 안가” 내려가 본 기관장은 말했습니다. “배가 좌초됐어요”. 다툼은 교회가 좌초됩니다. 다툼은 우리의 영성을 좌초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툼은 우리의 기도를 막아버립니다.
“아침 형 인간”을 쓴 사이쇼 히로시가 말했습니다. “건강 장수 노인들은 우선 심리적으로 거의 다툼이 없고 낙천적으로 희로애락의 감정의 기복이 적다. 늘 평상심을 유지하고 사는 것이다. 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고 욕심 적다”. 다투지 않는 것은 건강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셋째,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십시오.
유대인의 기도 자세는 서서 손을 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1의 바리새인의 기도 자세가 바로 전통적인 자세입니다. 또 기도할 때 손을 드는 것은 간절한 자세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손을 드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28:2에는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라고 합니다.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아말렉과 첫 번째 전쟁을 할 때 보세요. 모세의 손이 올라가면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모세의 손이 내려오면 이스라엘이 졌습니다. 모세가 힘이 없어져 아론과 훌이 손을 들어줬지만 모세의 손이 올라가 있는 동안 그들은 이겼습니다. 모세의 손이 올라갔다는 것은 모세가 기도한 것을 의미합니다. 기도하는 손이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은 절대 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거룩한 손을 들어”라고 합니다. 손을 들되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합니다. 거룩하지 못한 손은 들수록 손해입니다. 들수록 집니다. 우리의 손이 거룩한 손이 되어야 합니다. 신화에 나오는 마이더스의 손은 만지는 것마다 금이 되었답니다. 우리의 손은 들기만 하면 승리하는 마이더스의 손이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야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신다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는 것은 우리의 손이 거룩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우리의 손이 함께 만나야 놀라운 기적이 나타납니다.
미켈란젤로의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손을 뻗어 아담을 세상으로 보내주시는 모습입니다. 몇 센티미터 안 되는 약간 떨어져 있는 하나님과 아담의 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적절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매우 가깝지만 또한 떨어진 손과 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우리의 손이 창조됩니다. 하나님의 손과 우리의 손이 맞닿을 때에 기도는 이루어지고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거룩한 손은 은혜의 도구입니다. 이런 손은 하나님의 손에 놓여진 도구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하나님의 손이 됩니다. 하나님께 내어 드릴 때 우리의 열 손가락은 그야말로 천국의 손이 됩니다. 여러분의 손이 이런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기도하는 손이 이루어지는 손, 천국의 손이 되기를 바랍니다. 손은 마음의 대행자입니다. 마음의 소원이 손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일하면서도 예수님을 잡은 내 손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기도해 주세요”. 남선교회원들의 일이 많습니다. 봉사하고, 선교하고, 공부하고, 교제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손이 내려오면 안 됩니다. 기도하는 손이 느슨해지면 안 됩니다.
로널드 롤하이저가 ‘영성을 찾아서’란 책에서 말합니다. “만일 기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결국에는 절망하든지 아니면 우쭐해지든지 할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당신은 습관적으로 절망을 하든지 아니면 당신 자신의 자아에 집착하든지 하게 될 것이다”. 기도는 우리 자신을 위해라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결론
한국 경영컨설턴트협회에서 남편 기 살리기 8계명을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작아지는 남편 기를 살려 줍시다’라고 하면서 발표한 기 살리기 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남편 기 살리기 8계명
1. 하루에 한번 이상 남편을 웃긴다.
2. 매일 한번씩 남편을 칭찬한다.
3. 남편을 다른 남자와 비교하지 않는다.
4. 남편만의 시간과 공간을 주자, 남편에게 쉬는 날, 낮잠을 자게 하자.
5. 감정대로 말하지 말고 말투를 상냥하게 바꾼다.
6. 남편의 일에 대한 지나친 간섭도 좋지 않지만 무관심도 문제다.
7. 부부만의 시간을 많이 만들어 남편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 준다.
8. 남편의 인맥을 소중히 여긴다.
이젠 남자들만 힘든 게 아니라 부인들도 힘듭니다. 하루에 한번씩 남편 웃기려고 해 보세요. 부인들 스트레스 받게 생겼습니다. 매일 남편 한번씩 칭찬하려고 해 보세요. 부인들 기죽게 생겼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적 가정의 원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13에는 말합니다.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아버지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가정이 산다고 합니다.
기죽지 말고 남자답게 강건한 남선교회원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분 한분이 가정의 제사장이 되고 교회의 큰 기둥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