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7(금)_사19.16-20.6_복이 되리니
시작기도.
사랑의 주님, 주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갑니다. 나에게 필요한 단 한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주의 발치에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님, 나의 더러워진 영혼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주의 양식을 주셔서 나로 살아있게 하옵소서(히4:12, 벧1:23).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해묵상.
19장 후반부에 이르러 ‘그 날’이라는 표현이 여섯 번 연속해서 반복됩니다. ‘그 날’은 단순한 시각이나 날짜의 개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길이 본격적으로 개입하는 때이며,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주를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구원이 교차하는 은혜의 때를 뜻합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애굽은 포악한 왕의 통치와 나일강이 마르는 경제적 파탄 속에서 떨고 있었습니다. 애굽이 떠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 때문입니다. 객관적인 전력으로 상대조차 되지 않던 유다를 보고 애굽이 떨었던 이유 역시, 유다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때문이었습니다.
앞에서 애굽의 파국을 선포했는데,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18절은 애굽 땅에 여호와께 맹세한 다섯 성읍이 있는데, 개역개정은 그 중 하나가 멸망의 성읍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신학자들은 태양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케레스(הַחֶרֶס)가 멸망을 뜻하는 하헤레스(הַהֶרֶס)로 잘못 기록되었을 것이라 보고 있습니다. *15개의 히브리어 사본들과 심마쿠스역(Symmachus), 탈굼역(Targum), 불가타역(Vulgate)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인, 태양신을 섬기던 바로 그 우상의 성읍조차 하나님께 돌아와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 드리게 될 것이다’(Oswalt). ‘여호와의 날’이 되면 가장 완고하고 절망적인 우상의 땅조차 예배의 장소, 구원의 장소로 바뀔 것을 선포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감사함으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창 12:8),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에 응답하며 기둥을 세웠듯이(창 28:22), 장차 애굽 역시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예배와 헌신의 증표로 제단과 기둥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온전한 구원자를 보내어 그들을 건지실 것이라 선포합니다. 앗수르로부터의 구원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출애굽 구원 사건처럼 애굽을 구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주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는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단지 지식적 이해를 넘어, 여호와께 돌아와 그분을 경배하고 참되게 예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애굽조차 하나님의 소중한 자녀, 구원받은 백성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심판과 구원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여호와의 ‘치심’은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한 폭력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려는 사랑의 징계입니다. 비록 상처를 내실 때가 있지만, 주께 돌아오는 자마다 마침내 온전히 고치시고 회복을 경험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2026년 현재 이집트 인구의 90% 이상은 예수를 단지 '한 사람의 선지자'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이집트를 비롯한 중동 대다수 지역이 여전히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그 날'에는 이 모든 흐름이 완전히 뒤바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자신을 명확히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고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한 때 그들은 죄악에 빠져 있었지만, 하나님은 징계의 채찍을 드신 후, 다시 그들을 치유하십니다(호 6:1, 히 11장).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 애굽이든 이스라엘이든 앗수르든 차별이 없습니다. 모두 주님의 구원 계획 안에 동일하게 포함되는 것입니다.
과거 유다를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에서 끊임없이 대립하고 싸우던 이방 나라들이, 마침내 모든 적대 관계를 청산하고 함께 왕래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유다는 두 나라를 화해로 잇는 거룩한 평화의 다리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 땅과 하늘을 잇는 생명의 사닥다리가 되어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 역시 이웃과 이웃, 세상을 하나님과 잇는 연결 통로로 부름받았습니다. 우리가 그 평화의 대로를 만들어갈 때, 온 세상이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는 위대한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하나 되게 하신 것처럼, 먼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우리를 분열되고 갈라진 모든 관계를 다듬는 ‘화목하게 하는 자’로 부르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마 5:9, 엡 2:14-18).
한때 진노의 막대기에 불과했던 애굽과 앗수르조차 이제는 ‘나의 백성, 나의 기업’이라 칭함을 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거룩한 도구가 되었습니다(사 10:24, 렘 11:4, 호 1:10, 2:23). 오늘 하루도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크신 구원을 전하고 흘려보내는 복된 은혜의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나의묵상.
주께서 창세전 약속하신 대로 아들(한 구원자)을 보내셔서 애굽을 건지신다. 애굽을 건지시듯 주께서 이 아침 물에 빠진 건지신다. 나를 주의 보혈로 다시 용서하시며 다시 구원하시는 것이다. 20절이 말씀하는 것처럼 그는 우리의 보호자(רִיב)이다. 70인역 성경은 이 보호하심(κρίνω)은 나를 선택하시고, 심판하는 것이라 설명한다.(LXX, BDAG) 우리 주님은 이 땅에 살 때 주께 회개하는 나의 죄를 심판하신다. 이미 심판 받았으므로 마지막날 그의 심판은 없다.(pass judgment upon the lives and actions of other people)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 주님은 아무 힘이 없는 나를 대신해 싸우시는 분이다(strive, quarrel, conduct a legal suit)(NIDOTTE).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죄 짓는 것 외에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난 내 힘으로 승리할 수 없다. 그러니 오늘도 주의 발치에 앉아 주의 말씀을 듣기 원한다. 주의 제자가 되어 그의 말씀을 듣길 원한다.
묵상기도.
사랑의 주님, 주의 크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주께서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구원하신 사람들과 교회를 이루어 함께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이 마음이 변치 않도록 우릴 지켜 주옵소서. 오직 주의 말씀 앞에 나아가는 나와 우리 더함교회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