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다닌 지 꽤 오래 되었지만 유달리 인연이 닿지 않아 가보지 못했던 곳이 바로 오대산이다.
설악을 갈 때나 대간 진행 시 멀리서 구경만 하고 지나친 적은 여러 번이었지만 막상 오대산은 구경으로만 끝나고 말았으니...
안내산악회를 따라 가려니 코스가 너무 짧고, 혼자서 가려니 제법 먼고로 그것도 마음대로 안되고...
이번에 100대 명산 정복을 세 번째 다시 시작한 친구를 따라 찾아간다.
상원탐방센터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현지에 도착하니 월정사 입구에서부터 차가 밀려 완전 거북이 걸음이다. 갔다 섰다 반복하는 가운데 3km 이상 남겨둔 연화교에서 내려 올라가기로 한다.
도로 옆 계곡으로 난 숲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점점 짙어가는 단풍이 가을의 향기를 물씬 느끼게 해 주고...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우산을 머리에 이고 거울같이 맑은 옥빛 계곡물에 취한 탐방객들의 마음은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해맑기만 하다.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으려 저마다 경쟁하는 듯...
약 40분 뒤 상원탐방센터주차장에 도착한다.
좁은 주차장에는 차량들과 탐방객등이 뒤섞여 정신없는 가운데 상원사를 찾아간다.
입구에 있는 관대걸이.
관대걸이는 조선 초 세조가 피부병 치료를 목적으로 상원사로 오던 중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의관을 걸어둔 곳을 기념해서 후대에 만든 표지석으로 다음과 같은 문수동자와 세조의 전설이 전해진다.
세조가 상원사 앞 계곡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동자승을 만나 등을 밀게 하고는 "어디 가서 임금의 옥체를 보았다고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니 동자승은 "임금께서도 문수보살이 등을 밀어 줬다는 얘기를 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이후 세조는 피부병이 완치되었고 그때 만난 동자승을 나무에 조각하게 하였으며 이 목각상이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이다.
막 물들기 시작한 단풍이 가을의 운치를 더해주는데,
우측 상원사부터 둘러보고 가기로 한다.
'번뇌가 사라지는 길'이라고 하네.
울긋불긋한 단풍이 문자 그대로 모든 근심을 덜어주는 듯 하고...
뒤돌아보아도 멋있다!
상원사에 도착.
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 월정사와는 이웃하고 있다. 원래의 절은 724년(신라 성덕왕 23)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었고 통도사(通度寺) 등을 창건한 자장(慈藏)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종각만 남고 건물은 8·15광복 후에 재건한 것이다.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동종(국보 36)이 있다.
문수전 계단 옆에 자리한 고양이 석상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지만 지금은 마모가 심해 그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다.
상원사에 들른 세조가 법당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고양이들이 세조의 곤룡포자락을 물며 법당으로 못 가게 막아섰다. 의심이 많은 세조가 이상하게 여겨 법당 안을 뒤져 보니 그 안에 자객이 숨어 있는 걸 발견하여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 이리하여 이 고양이들은 전용 밭을 하사 받고 석상까지 만들어져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한 석상은 목이 좀 긴데, 얼굴이 닳아 없어진 것이고 위에는 관(冠)을 쓰고 있던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고양이상이 아닌 사자상이다. 우측이 암사자고 좌측이 수사자인데, 자세히 보면 수사자상의 목에 갈기가 있다. 실제 사자를 보지 못하고 불경에 묘사된 내용만 접하다보니 결과물이 좀 이상해진 것이다. 따라서 세조와 관련된 설화는 사찰에서 사자상이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이 모양의 유사성만 보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다.
목조문수동자좌상과 목조문수보살좌상.
조선 세조 12년(1466)에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뒤 몸의 종기를 부처님의 힘으로 고치려 상원사로 가던 도중에 만난 동자의 모습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을 형상화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 동자상에서는 2개의 발원문과 23점의 복장유물(보물 793)이 발견되었다.
문수전.
상원사는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대웅전이나, 비로자나불을 본존불로 봉안한 적광전 같은 사찰과 달리 문수보살을 본전불로 모시고 있이서 본전 이름을 '문수전'이라고 한다.
절을 지나 우측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중대사자암으로 향하는 계단.
곳곳에 같은 모양의 돌 조형물이 궁금했는데 나중에 보니 안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어 염불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대사자암.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시는 적멸보궁 수호암자이다.
중대사자암을 둘러보고 적멸보궁으로 향한다.
올라갈수록 단풍색깔은 옅어지고 마치 늦여름을 연상케하는 숲길이 이어진다.
용안수도 한 잔 하고,
비로봉 갈림길에 도착.
좌측 계단을 올라 적멸보궁을 들러보고 다시 돌아와 비로봉으로 올라갈 것이다.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런 궁전이란 뜻이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의 법당을 일컫는다. 태백산 정암사와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오대산 월정사의 적멸보궁 등 강원도 네 곳과 경남 양산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월정사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오면서 석가의 진신사리를 가져와 오대산에 봉안하고 이 보궁을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낮은 한 단의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단층인 팔작지붕의 겹처마집이다. 건물 전면의 중앙에만 두 짝의 판문을 달고, 좌우측에는 중방을 설치하고 협칸 아래는 판벽을 하고, 그 위에 띠살창을 한 점이 특이하다. 이 건물은 그간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어 왔으나, 최근 배흘림기둥 등의 특징이 조사되어 조선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적멸보궁은 보통의 법당과 달리 곁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의 형태라는 사실이 보고되어 있다.
능선에 오르니 공원지킴터가 서 있고 정상은 우측방향이다.
계속 이어지는 숲길에 계곡물도 맑고 시원하니 여름 산행으로도 좋을 듯한 느낌이 든다.
요녀석이 사람을 보아도 도망가지를 않고 왔다 갔다 하며 모이를 쪼고 있길래 담아보았다.
쉼터.
심장 돌연사 예방 및 안전을 위한 곳이라나...
산에 다니면서 최근에 이런 곳을 가끔 볼 수 있었다.
점차 경사는 심해지지만 아주 급하지는 않아 쉬엄쉬엄 오르면 금방 정상에 도달할 듯한 느낌이 들 정도.
저 위가 정상.
비로봉(1,563m)에 올라섰다.
오대산의 유래는 비로봉을 주봉으로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 등 다섯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하여 오대산이라 불리기도 하며, 신라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율사가 왕명을 받아 당나라에서 유학하였는데, 이 산이 중국의 상서성 청량산 별칭인 오대산과 매우 유사하다하여 오대산이라 명명하였다고도 한다.
정상에 오르니 일망무제.
사방이 확 트여 맑은 시야를 보이는 가운데 푸른 하늘, 그리고 점점이 떠있는 구름과 어울려 멋진 조망을 선사해 준다.
멀리 중간 약간 우측 설악 대청봉을 비롯하여 좌측으로 중청과 끝청, 귀떼기청봉, 그리고 가리봉과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장쾌하고 그 앞으로 점봉산도 조그맣게 보인다.
앞으로는 황병산과 노인봉, 그리고 동대산이,
우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발왕산(중간 약간 좌측)도 보인다.
발왕산에는 용평스키장이 위치하고 있다.
다시 좌측으로 눈을 돌리면 상왕봉 너머 방태산이 우뚝하다.
헬기장을 지나가는데 이곳 역시 조망이 좋다.
상왕봉 너머 두로봉.
하늘 색깔이 너무 푸르러 가을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봉우리와 그리고 흰구름이 멋진 조화를 이루니 이야말로 선경에 든 기분이 아니랴!
다시 설악 서북능선을 조망하고...
좌측 너머 멀리 주문진도 아련하다.
방태산도 시야를 떠나지 않는다.
살짝 당겨본 황병산과 노인봉, 그리고 동대산.
대간 진행시의 기억이 새록 새록 떠오른다.
두로봉.
능선길을 이어가다 살짝 가파르게 내려서면 주목군락지가 나온다.
주목은 주목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한국, 중국, 일본에 자생하는 자생식물이다. 적백송, 자삼, 수송, 적목, 경복, 화솔나무 등 여러 명칭이 있으나, 줄기의 색갈이 붉어서 붉은 나무라는 의미의 주목(朱木)이다. 주목은 강인한 생명력과 죽어서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특징이 있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평양에서 발굴된 2,000년 전 낙랑고분 관의 재질은 주목이었으며,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1,500년 전 나무베개의 재질도 주목이었다.
국내 공인된 최고령나무는 강원도 정선군 두위봉에서 자라는 주목으로 천년기념물 제433호로 지정된 이 주목은 나이가 1,400살이다.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고,
등로 옆으로 멋진 괴목들이 수시로 나타난다.
상왕봉(1,491m).
오대산에서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정상부는 편평하며 조망이 양호하다. 태백산맥의 줄기인 해안산맥에 속하는 산으로 북동쪽에 두로봉(1,422m), 서쪽에 소대산(1,270m), 남서쪽에 오대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563m), 동남쪽에 동대산(1,434m) 등이 솟아 있다.
이곳 역시 조망이 좋아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구름에 둘러싸인 두로봉도 감상한 후 발길을 이어간다.
두로령 갈림길.
좌측은 두로령을 거쳐 두로봉으로 가는 길.
우측 임도 방향으로 간다.
고지대의 늦은 단풍은 가는 가을의 발길을 잡으려 하고...
임도에 내려섰다.
주차장까지 임도를 따라 내려간다. 5km가 넘는 길이다.
내려가면서 올려다 본 북대미륵암.
구름에 덮인 두로봉.
1시간 채 못 걸려 주차장에 도착하며 산행을 마감한다.
도상 거리 16.8km, 5시간 정도 걸렸다.
누구는 여러 번 와도 맑은 날씨를 보기가 힘들었다는데 처음 찾은 나는 맑고 푸른 가을하늘 아래 펼쳐진 멋진 조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큰복을 받은 것 아닌가!
더불어 비록 절정은 아니나 익어가는 가을 단풍의 즐거움도 맛보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