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4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164
다시, ‘고도’를 기다리며
“에스트라공: 멋진 경치로군 (블라디미르를 돌아보며) 자, 가자. 블라디미르: 갈 순 없어. 에스트라공: 왜?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라는 부조리극(不條理劇, 현대 인간의 존재와 삶의 문제들이 무질서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을 소재로 삼은 연극 사조)의 한 장면이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오지 않는 ‘고도(Godot)’를 끝없이 기다린다.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보편적인 욕망을 지닌 인간이기에 ‘고도를 기다린다’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고도가 각자가 갈망하는 ‘어떤 희망’의 은유임을 직감하기 때문이다.
2024년 한여름인 7월 26일, 필자는 우리 사회의 광기(狂氣)를 바라보며 <막장 블랙 코미디: “민주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름 끼친다.”는 방통위원장 후보자>(2024. 7. 26)라는 한 편의 칼럼을 썼다. 그 칼럼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이 땅에서 저 희곡과는 다른 저급한 ‘막장 블랙 코미디’가 펼쳐진다. 검찰은 외부에서 휴대폰과 신분증을 뺏기며 김건희를 조사하였단다. 국방부 장관은 북한의 오물 풍선을 띄우는 곳을 폭격하겠단다. 채상병 특별법은 최종 부결되었다. 6표 차이로. “민주라는 단어만 들어도 소름 끼친다.”는 저 이는 국민이 보건 말건 오늘도 청문회에서 인간실격 작태를 보인다. ‘다람쥐 살림에도 규모가 있고 두꺼비 눈 깜짝에도 요량이 있다.’ 어찌 한 나라를 책임지는 이 윤석열 정부가 그리는 고도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읽는 국민의 고도가 이렇게 다른가.”
그 시절, 저 칼럼을 쓴 이유는 이 정권이 사라지고 세월이 흐르면 우리가 갈망하던 상식의 복원과 역사적 진보라는 ‘고도’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7월 9일, 정권은 교체되었지만 우리가 도달해야 할 우리가 꿈꾸던 민주주의와 상식의 ‘고도’는 여전히 짙은 안개 속에 머물러 있다. 오히려 무대 위의 앙상한 나무는 더욱 황량해졌고, 광장에는 이성(理性)의 대화 대신 극단과 혐오의 비명만이 가득하다.
최근 한 고등학교 야구부에서 벌어진 역사 인식 논란은 우리를 깊은 환멸과 위기감으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것을 단지 철없는 학생들의 일시적 해프닝이나, 특정 학교만의 특수한 문제로 치부하는 것은 본질을 회피하는 비겁한 변명이다. 아이들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쏟아낸 왜곡된 배타성과 역사의식의 부재는, 사실 우리 기성세대가 구축해 놓은 병든 사회의 거울이자 일그러진 교육의 자화상일 뿐이다.
주입식 교육의 틀 속에서 역사는 그저 점수를 얻기 위해 외워야 하는 ‘죽은 사실들의 나열’로 전락했다. “왜 그런 역사적 비극이 일어났는가?” “우리가 과거의 과오로부터 배워야 할 인간다움의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은 교실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 ‘비판적 성찰’이 들어설 틈은 없다. 가치관의 진공상태가 된 아이들의 정신세계 속으로 유튜브와 SNS의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서사, 혹은 타자에 대한 혐오가 여과 없이 침투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 기억의 퇴행과 가치관의 양극화는 비단 대한민국만의 국지적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가 거대한 부조리극의 무대로 변해가고 있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적 대재앙을 겪으며 처절하게 반성했던 독일에서는, 이제 이민자를 배척하고 자국 우선주의를 선동하는 극우 정당 ‘대안당(AfD)’이 대중의 불안을 자양분 삼아 다시 무서운 기세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바탕을 만들고 보루를 자처하던 미국은 또 어떠한가. 도널드 트럼프를 필두로 한 극단적 포퓰리즘 세력은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가진 반대파를 서슴없이 ‘공산주의자’나 ‘국가 파괴 세력’으로 낙인찍는다. 최근 미국에서는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애국전선’이 복면을 하고 인종차별 상징인 남부연합 깃발을 흔들며 워싱턴가를 행진한다.
독일의 히틀러 추종 세력의 부활과 미국의 매카시즘적 광풍,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의 부조리한 역사 인식은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줄기다. 그것은 바로 ‘역사적 기억의 거세’와 ‘공동체적 연대의 붕괴’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
“에스트라공: 만일 안 온다면? 블라디미르: 내일 다시 와야지. 에스트라공: 그리고 또 모레도. 블라디미르: 그래야겠지. 에스트라공: 그 뒤에도 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