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한문학, 한결같이 침묵하다 「일묵당기(一黙堂記)」 침묵의 가치>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 소개하는 기문(記文) 「일묵당기(一黙堂記)」는 조선후기 거제문인(巨濟文人) 곡구(谷口) 정종한(鄭宗翰 1764~1845)의 작품이다. 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는다는 ‘묵계(默契)’의 의미를 「일묵당기(一黙堂記)」에 담아, '침묵(默)'의 가치와 신중한 언행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드러내었다.
또한 이 산문의 주제는 자신의 수양에 힘쓰며 때와 장소에 맞게 침묵할 줄 아는 선비의 겸손한 자세를 찬양하고 있다. 말과 글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말해야 할 때는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해라(當言則言 當黙則黙)’는 공자의 말씀이 무엇보다 한결 가슴에 와 닿는다. 그래서 군자(君子)란?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잘 분간 할 줄 아는 신중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고로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소통의 핵심이자, 자신의 품격을 지키고 지혜로운 대화를 통해 더 나은 상호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필수 요소인 것이다. 보통 이런 행위는 용감한 사람과 양식 있는 사람들이 행한다. 반면 가장 잘못된 행위이자 지성(知性)의 수치(羞恥)로는,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이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나약(노예 근성) 또는 비겁하거나 생각이 모자라기 때문이고, 침묵해야 할 때 말하는 것은 꿍꿍이속이 있거나 경솔하고도 무례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천재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경고했다. “침묵으로 위엄을 세워라. 말을 아껴라. 입을 열수록 당신의 바닥이 드러나고 침묵할수록 상대는 당신을 두려워한다. 또 재물을 자랑하지 마라. 당신의 성공은 누군가에겐 박탈감이고 질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의 칼날이 되어 돌아온다. 돈 자랑은 적을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또한 소인배와 거리를 두라. 시시비비를 가리지 마라.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 그들과 싸우면 같은 소인배가 될 뿐이다.” 고로 친절하되 만만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말해야 할 때는 말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침묵해라(當言則言 當黙則黙)’를 실천하는 것이다.
산문 《곡구집(谷口集)》은 고극명(高克明 1769~1855)의 《삼야정유고(三野亭遺稿)》 부록에 실려 있는 문집으로, 『곡구집(谷口集)』 4권(卷之四) 기(記)에 수록되어 있다. 《곡구집(谷口集)》은 4卷 2冊으로, 총 300여 쪽이고 문집의 정확한 필사 연기는 19세기 중기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필사본(稿本)이 있다. 《곡구집(谷口集)》 한글 번역본은 총300여 쪽으로, 2016년 거제시청 문화예술과의 지원으로 출간되었다.
◉ [한문 문체 기(記)] 사실을 그대로 적는 한문 수필문체를 기(記) 또는 기문(記文)이라고 부른다. 사물을 객관적인 관찰과 동시에 기록하여 영구히 잊지 않고 기념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 글이다. 옛사람이 기(記)라고 이름을 한 문장은 너무나 광범하여 일체의 기사문(記事文)과 기물문(記物文)을 포괄하고 있다. 기(記)의 문체는 부(賦)와 같으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논(論)과 같으면서도 단정을 짓지 않고 서(序)와 같으면서도 드날리지 않고 비(碑)와 비슷하면서도 칭송을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 [곡구집(谷口集) 저자 정종한(鄭宗翰)]
곡구(谷口) 정종한(鄭宗翰 1764~1845)이라는 강호시인(江湖詩人)이자, 위항시인은 본관은 초계이며, 자가 중녕(仲寧), 호가 곡구(谷口)이다. 거제도(巨濟島) 거제면 명진리에서 갑신년 1764년에 출생하여 그의 나이 38세 때인 신유(辛酉 1801)년에 증광시(增廣試) 생원진사시 3등(三等)으로 합격한 인물이었다. 이후 서울 성균관에서 잠시 수학하였으나, 조선말기 세도정치와 함께 지역적인 차별을 극복하지 못하고 평생을 유랑자 생활을 한 여항시인(閭巷詩人)으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중년 이후에 서울시와 충청도 경기도 일대에서 90여 명의 시인묵객들과 더불어, 시회(詩會)를 만들어 시편을 읊고 교류하며, 끝없이 학문에 정진하였다. 동시대에 거제도에서 살았던 동록(東麓) 정혼성(鄭渾性 1779~1843) 선생이 그의 재종질(再從姪)이다.
선생은 조선후기 ‘위항시인’이면서, 고향 거제도를 뒤로한 채, 우리나라 중원을 떠돌며, 시대의 전면에서 퇴장한 후, 사회모순을 지양하며 빛바랜 존재로서 새로운 위상을 찾아간 강호시인(江湖詩人)이었다. 초기 위항시인들이 사망한, 19세기 중반까지 생존하여 당시 ‘위항 문학’ 중심에 있었던 박윤묵·조수삼 등과 더불어 수많은 분들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고독한 지식인의 어른으로써 자리매김한 자랑스러운 거제출신이며, 경상도 출신으로는 최고의 위항시인이었다. 한때 생원진사시에 급제한 후, 성균관에 잠시 머물렀으나 세도정치가 시작되고, 먼 경남지방 출신이 관직에 등용되기가 어렵게 되자, 스스로 성균관에서 나와 시우들과 교류하고 오만하게 우리나라 중원을 유람하며 일생을 마친 분이다.
● 「일묵당기(一黙堂記)」 한결같이 침묵하다 / 정종한(鄭宗翰 1764~1845)
다음 산문 「일묵당기(一黙堂記)」는 '침묵(默)'의 가치와 신중한 언행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조선의 문인 정종한(鄭宗翰)이 친구인 진회(陳晦)의 요청으로 지어준 「일묵당기(一黙堂記)」의 주요 대목이다.
*내용인즉, 옛날 중국 상고시대 후직의 사당에 입을 세 번 꿰맨(三緘) '금인(금으로 만든 사람)'이 있었는데, 이는 옛사람들이 말을 삼갔음을 상징한다. 순박했던 옛 시절에도 말을 아꼈는데, 하물며 풍속이 각박해진 지금은 오죽하겠느냐는 탄식으로 시작한다. 진회가 자신의 방 이름을 '일묵(一嘿, 한결같이 침묵함)'이라 짓고 기문을 부탁하자, 저자는 "말은 몸의 무늬(수식)인데 왜 침묵만 하려 하느냐"고 묻는다. 진회는 답한다. "천하에는 침묵해서는 안 될 때도 있지만, 반드시 침묵해야 할 때도 있다. 높은 자리에 있어 내 한마디가 천하의 무게를 갖는다면 좋겠지만, 초야에 묻혀 명성도 없는 처지에 수많은 말을 늘어놓은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끄럽게 떠드느니 차라리 흔적 없이 침묵하는 편이 낫다." 이에 저자는 그 말에 감탄하며, 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다는 ‘묵계(默契)’의 의미를 「일묵당기(一黙堂記)」에 담아, 그의 침묵이 자식(후대)을 포용할 만하고 마을의 본보기가 될 만하다고 칭찬한다.
*결국 이 글의 요지는 '책임지지 못할 공허한 말을 쏟아내기보다, 스스로를 성찰하며 말을 아끼는 실천이 훨씬 고귀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때를 알고 신중함을 기하는 선비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다.
○ 이 글은 크게 세 단락으로 나누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 고전 산문의 전형적인 구성인 '도입(배경) - 전개(문답) - 결론(찬사)'의 구조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①첫째 단락은 고사의 인용과 시대적 배경을 설명한다. 옛 성현의 사당에 있던 '입을 세 번 꿰맨 금인(金人)'의 고사를 인용한다. 순박했던 옛날에도 말을 아꼈는데, 풍속이 각박해진 오늘날에는 더욱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며 글을 시작한다. ②둘째 단락은 방의 이름에 대한 문답과 침묵의 이유를 언급한다. 이 글의 핵심인 '일묵(一嘿)'의 의미가 풀이되는 부분이다. 저자(정종한)가 "왜 침묵만 하려 하느냐"고 묻자, 친구 진회가 "내 위치에서 책임지지 못할 말을 쏟아내느니, 차라리 침묵하며 자신을 지키겠다"고 답하는 대화가 중심을 이룬다. ③셋째 단락은 침묵의 가치 긍정과 교훈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진회의 답변에 대해 저자가 감탄하며 동의하는 부분이다. 진회의 '일묵(一嘿)'이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깊은 덕을 쌓는 하나의 '도(道)'임을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이 방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 '금인'과 같은 경계가 되기를 바라며 마무리한다.
**「일묵당기(一黙堂記)」** 原文
후직(后稷)의 사당에 있는 금인(金人)의 등에는 "입을 세 번 꿰맸으니, 옛날의 말을 삼갔던 사람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대개 순박하고 두터웠던 상고 시대에도 말을 삼가는 것을 이토록 귀하게 여겼는데, 하물며 풍속이 박해진 말세(末世)에 있어서랴!
나의 벗 진회(陳晦)가 칠현산(七賢山) 아래에 집을 짓고 그 거처하는 방의 이름을 '일묵(一嘿, 오직 침묵함)'이라 붙인 뒤,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말이란 몸의 무늬(수식)이며, 군사가 천지를 움직이는 수단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한결같이 침묵하려고만 하는가?" 하였다.
진회가 답하기를, "그렇다네. 천하에는 진실로 침묵해서는 안 될 때가 있고, 또한 침묵하지 않아서는 안 될 때가 있네. 만약 태평성대에 재상의 지위에 있거나 문단의 종사(宗師)라는 책임을 맡아, 나의 말 한마디가 천하의 무게를 갖게 된다면 그 또한 좋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금처럼 초야에 묻혀 살며 마을에서조차 충신(忠信)하다는 명성도 없고, 앞서간 성현들의 경전(經典)에 대해서는 부끄러움만 느끼는 처지라면, 비록 날마다 천 마디 말을 쏟아낸들 남과 나에게 무슨 무게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시끄럽게 떠드느니 차라리 흔적 없이 침묵하는 편이 낫겠기에 내 방의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라네." 하였다.
내(정종한)가 말하였다. " 훌륭하도다! 침묵하는 것 또한 하나의 도(道)가 된다네. 옛글에 '그 침묵함이 넉넉히 자손을 포용할 만하다' 하였으니, 그대야말로 말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통하는 '묵계(默契)'를 얻은 자가 아니겠는가? 이는 가히 온 마을의 모범이 될 만하니, 오늘날 말을 삼가고자 하는 이들이 '일묵당(一默堂)'을 바라보는 것이 마치 저 입을 세 번 꿰맨 '금인(金人)'을 보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后稷之廟有金人三緘曰古慎言人也 夫以淳厖之世猶且貴慎言如是而況叔季之時澆漓之俗哉. 故人陳晦之築室於七賢之山扁其堂曰一嘿要余記之余笑曰言者身之文君子所以動天地者也 今子之欲一於黙何也 曰然天下固有不可黙者亦有不可不黙者若使處盛際宰輔之位任斯文宗師之責一言而爲天下重則不亦善乎 窮在草野之中行州閭而無忠信之譽憎前經而有襟裾之恥者雖日累千言何足輕重於人與已哉 然則與其唛唛(咳咳)不如泯泯此吾所以名吾堂也 余曰善哉 言乎 是亦爲一道也 傳曰其黙足以容子其有黙契者歟 是足爲鄕里之法凢今之欲慎於言者將視一默之堂如三緘之金人乎否]
[주1] 후직(后稷) : 중국 주나라(周)의 시조. 성은 희(姬). 이름은 기(棄). 어머니가 거인(巨人)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여 낳아서 불길하다 하여 세 차례나 버려졌으므로 기(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순임금을 섬겨 사람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그 공으로 후직(后稷)이라는 벼슬에 올랐다.
[주2] 금인(金人) : 쇠로 만든 사람의 상(像). 부처의 몸이 금빛(金-)인 데서, 부처 또는 불상(佛像)을 이르는 말.
[주3] 칠현산(七賢山) : 경기도 안성시(安城市) 이죽면(二竹面)에 있으며, 이 산에 칠장사(七長寺)가 있다.
[주4] 삼함(三緘) : 입을 세 번 꿰맨다는 뜻으로, 극도의 신중한 언행을 상징한다.
[주5] 일묵(一嘿) : 단순히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 걸맞지 않은 가벼운 말을 경계하겠다는 의지다.
[주6] 묵계(默契) : 말 없는 가운데 뜻이 서로 맞다. 또는 그렇게 하여 성립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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