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原形)의 보존(保存)
원형 보존이란 문화유산과 관련하여 역사적 건축물 등을 원래 상태로 유지하여 미래 세대에게 전승하거나 그 가치를 지키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역사가 오래되었다고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치란 예술적 가치를 말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국가에서도 국가유산 관련 법령을 제정하여 보존, 관리를 하고 있다. 이 법령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원형 유지”라 할 수 있다. 원형 보존은 물리적 형태와 진정성, 고유성, 역사성, 예술성 등을 고려해서 제정한다.
John Ruskin은 그의 저서 <The seven Lamps of Architecture>에서 유산의 본래 모습을 강조했다.
Eugene Viollet-le-Duc도 낡은 문화재의 복원 주의를 지지했다.
1964년 베니스 헌장은 세계문화유산에 대한 국제적 원칙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94년 일본 나라(NARA)에서 28개국에서 45명의 전문가가 모여 <진정성에 관한 나라 회의>를 하고 문서로 채택하였다.
이 회의에서 진정성(Authenticity)에 관한 평가를 서구의 잣대로만 하지 말고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과 맥락에 따라 물리적 형태뿐 아니라 전통이나, 관습, 기능과 같은 비물질적 요소와 자연환경까지도 포함해야 한다는 인식을 반영시켰다. 여기서 말하는 비물질적 요소는 무형 문화유산을 말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원형의 기준 시점을 언제로 잡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형 문화유산 역시 이 기준을 세우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글자가 나오기 이전이라도 그런 행위는 구전을 통하여 전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식은 어떤가?
대부분의 연구가나 학자들은 서구문화가 들어오기 이전의 문화를 <원형보존>해야 할 기준으로 삼는다. 고유성과 역사성, 예술성을 살펴야 함은 물론이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시조>라는 원형을 보존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시대의 변천에 따라 편리성과 현대성만을 고려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시조>라는 고유한 형식은 역사성, 예술성, 독창성(고유성) 등이 뚜렷하게 들어가 있는 민족의 시 형식이라는 점이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시는 있다.
노래도 있다. 춤도 있다. 놀이문화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시조는 서구의 시나 중국의 한시와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른 형태이다.
우리 현실만 살펴보면 음악, 춤, 놀이문화, 등은 여러 가지 전통예술이 이미 국가 문화재나 지방문화재로 선정되었다. 다른 전통예술은 그 분야의 전문가들 몫이니 예외로 하고 시조라는 장르 하나만 살펴보기로 한다.
정부에서도 우리 협회의 노력으로 별도의 문학 장르로 인정하여 법령에 포함되었으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왜 이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론 시조의 특징(고유한 정체성)을 이어받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원형은 체계화된 고유성, 독창성,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개화기로 접어들면서 맥이 끊기기 시작하더니 현대에 이르러 그 원형이 깨지고 편리성과 현대적 감각만을 추구해 온 탓이 아닐까 한다.
편리성만 강조하며, 시대적 요구만 반영한다면 이는 이미 우리 스스로 정체성을 포기한 것으로, 출생이 분명치 않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얼치기 문학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정해진 틀(정체성) 안에서 언어를 엮어 예술성을 살려내야 함에도 지상에 발표되는 시조 작품은 시도 아니고 시조도 아닌 이상한 장르로 발전하였다. 사명감 있는 학자들이 연구하고, 후대가 이를 따르도록 계승 발전시켰으면 오늘날 같은 어중간한 작품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시조 짓기가 너무 어려우면 저변확대가 안 된다. 그러니 정체성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적당히 넘어가자. 예술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필자가 알기에 다른 분야, 즉 전통음악, 전통무용, 전통놀이 등등 ‘전통’이란 말이 붙은 예술은 어느 단체를 불문하고 저변확대를 위해 적당히 하자고 말하는 것을 듣거나 본 적이 없다.
득음하기 위해 목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엄격히 배운다. 손마디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칼질과 망치질을 하기도 하며, 붙 끝이 다 낡을 때까지 스승의 필체나 화법(畫法)을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과연 시조 인들도 전통 시조의 예술성을 살리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적당히 하고 있는가,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첫댓글
김고문님!열강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