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를 밝히라(明 倫理하라) –임사실천 십개조의 첫 번째
(풀이)
우리 모두는 선조부모님의 공덕에 한울님이 뜻을 내시어 세상에 태어난 정말 귀하고 귀한 한울 사람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 몸속에 한울님이 기거하시면서, 우리 자신이 정성을 다하는 모든 것을 차차차차 이루어주십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내실 때, 뜻하신 바 있어 좋은 거울 한 조각을 지참시켜서 내시며 세상을 조화롭게 만들며 행복하게 형체있는 한울사람이 되라고 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풀이 하는 내용을 함께 공부하는 분들 각자가 헤아려 보시며 스승님의 위대한 가르침을 이 세상에 널리 펴서 세상을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세상을 조화롭게 천도가 잘 운용되도록 하는 기본중의 기본이 윤리를 밝혀나가라는 것입니다.
한울님과 나는 촌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한울님이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한울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은 아직 이러한 천도의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람과 세상이 서로 관계하며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한울길을 잘 운용되게 하는 바퀴를 소위 윤리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나누어 이야기 합니다.
저와 함께 다시 살펴보시며 무더운 여름 마음을 시원하게 도체 잘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아랫 글은 네이버에서 퍼 온 글입니다.
천륜은 부모와 자식 간에 하늘의 인연으로 정하여져 있는 사회적 관계나 혈연적 관계입니다.
'인륜'은 사회규범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 헤겔이 교육과정에 있을 때는 '인륜=윤리공동체=국가'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박석우 ( 우석대 석좌교수. 다산학자)님의 글을 읽어보시며 비정상적 세상을 조화로운 한울세상으로 만들어가는 길을 만들어 가도록 스승님의 가르침을 다시 깨달아보고 일을 함에 있어 반드시 지켜 행하여 막힌 윤리를 밝히고 뚫어 나가며 천도의 기운이 바르게 운용되도록 하는 마중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산은 제 집안 큰 어른이신 목민심서등을 지으신 정약용 님임을 참고로 밝힙니다.
“세상이 참으로 시끄럽고 위태롭습니다. 묻지 마 살인범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부자・형제・부부 등 천륜의 인간관계에서도 무서운 범죄가 속출하고 있으니 세상일에야 크게 마음을 기울이지 말자고 하면서도, 저절로 걱정되고 근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이런 대목에서 피할 수 없이 다산의 지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선시대, 천륜에 죄를 짓는 범죄자들이 그때라고 없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처럼은 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시대에 다산은 아들에게 내려주는 교훈을 통해서 인간이라면 반드시 실천해야 할 두 가지를 특별하게 강조했습니다. 첫째는 효제(孝弟)요 둘째는 독서였습니다.
요즘처럼 막된 세상, 있을 수 없는 인륜의 범죄들이 나오는 때를 당해, 효도하고 우애하여 화목한 가정을 이룩해야 한다는 주장이 너무도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책을 읽지 않는 세상,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 미래가 있을까요. 그렇게 강조하여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다산의 주장이 이렇게 절실하게 느껴질 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케케묵은 고리타분한 이야기라고 고개를 돌릴 분들도 많겠지만, 이런 때를 당해서 오륜(五倫)을 되살려야만 인간다운 인간이 되고 나라다운 나라도 될 수 있다는 다산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붕당의 화란이 그치지 않아 반대파 정치인을 몰아넣은 옥사(獄事:수사와 재판)가 잦으니 군신유의(君臣有義)는 이미 무너졌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 입후(立後)의 의리가 밝혀지지 않아 부자유친(父子有親)은 없어졌으며, 목민관들이 기생에 빠져 있으니 부부유별(夫婦有別)도 이제 문란해졌다. 귀족자제들이 교만을 피우니 장유유서(長幼有序)도 파괴되었다. 과거제도로 경쟁만을 부추기고 도의를 강론하지 않으니 붕우유신(朋友有信)도 어긋나버렸다.”(두 아들에게 보임:示兩兒)
200년 전의 이야기이니, 그때의 용어나 사실이 지금의 문제에 적중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융통성 있게 옛날의 용어를 오늘의 뜻으로 해석해 보고, 오늘 현실을 옛날과 비교해보면 참으로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내기 어렵지 않습니다.
붕당의 화란은 바로 오늘의 당파싸움입니다. 반대당 사람은 무조건 적으로 보고 어떻게 해서라도 감옥에 넣어 파멸시키려고만 하고 있으니 나라를 이끌 정치윤리가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조선시대, 아버지의 대를 잇는 일이 효자의 기본 임무여서 입후라도 해서 가통을 잇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고 여겼었는데, 그게 무너져 우리 사회가 자식을 낳을 수 있는 조건, 시집 장가를 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지 않아도 아무렇지 않으니,가족과 가통의 문제가 해결되겠는가요. 미투에서 보이듯 비열한 성폭력이 다반사이니 정상적인 가정생활이 가능하겠는가요. 높은 사람, 가진 사람들의 갑질이 보편화되어 있고, 귀족들의 교만이 도를 넘었으니 장유유서가 가능하겠는가요.고시제도,입학시험,채용시험 등 경쟁시험으로만 인재를 고르니 붕우유신이 가능하겠는가요. 친구를 몰락시키고 자기가 승리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는데,어떻게 붕우유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요.
200년 전의 다산의 이야기에서 오늘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가 있지 않습니까. 다시 오륜으로 돌아가는 일, 오륜을 변통하고 융통성 있게 적용하면 오늘 이 세상의 혼란과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요. 삼강오륜! 참으로 답답하고 뒤쳐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그런 옛날의 윤리에서 오늘의 해결책을 찾겠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의 정신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아무리 생각해도 다산이 강조한 효제와 독서만이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부자유친,군신유의,부부유별,장유유서,붕우유신의 오륜을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보면 어떨까요.” 이상 박석우님의 글입니다. 저의 생각과 같아 옮겨 왔습니다.
8월의 첫날입니다. 폭염이 계속되니 충분한 수분 섭취와 적당한 휴식과 뜨거운 시간대는 피하여 일용행사 하시며 한울님 스승님 조상님이 기거하시는 도체 잘 보중하시기 바랍니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포덕167년 8월1일 부암 심고 010.2664.2530
丁若鏞님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저서에 대하여는 좀 더 깊게 알아보시기 위대한 대학자께서 세상을 살리시기 위한 정성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丁若鏞
자는 미용(美鏞, 1762~1836) 호는 다산(茶山)사암(俟菴)여유당(與猶堂)채산(菜山). 근기(近畿) 남인 가문 출신이다.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했던 정재원(丁載遠)과 해남 윤 씨 사이에서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실학자로서 정조(正祖) 연간에 문신으로 사환(仕宦)했으나, 청년기에 접했던 서학(西學)으로 인해 장기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18년간 전남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는데 이 유배 기간 동안 그는자신의 학문을 더욱 연마해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연구를 비롯해 방대한양의 전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일표이서(一表二書: 『經世遺表』『牧民心書』『欽欽新書』) 등 모두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 저술들을 통해서 조선후기 실학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로 평가된다. 유배기에 아암혜장(兒庵惠藏)을 비롯한 인근사찰의 학승들과 교유하면서 학문을 가르쳤고, 『대둔사지(大芚寺志)』와 『만덕사지萬德寺志)』 편찬 때는 고증을 통해 논증하여기록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조선의 지식인들은 당쟁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정치 참여로부터 소외되었던 근기(近畿) 지방의 남인들을중심으로 하여 기존의 통치 방식에 회의를 가졌는데,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노론들이 존중하는 성리설과는 달리 선진 유학에 기초한 새로운 개혁의 이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정약용은 바로 이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태어났고, 일찍부터 이러한 분위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가 태어난 양근(楊根: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일대는 훗날의 연구자들로부터 실학자로 불리게 된 일군의 학자들이 새로운 학풍을 형성해 가던 곳이었다. 그는 이익(李瀷)의 학통을이어받아 발전시켰으며, 각종 사회 개혁 사상을 제시하여 새로운 나라를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역사 현상의 전반에 걸쳐 전개된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의 기존 질서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일종의 혁명론이기보다는 파탄에 이른 당시의 사회를 개조하여 조선왕조의 질서를 새롭게 강화시키려는 의도를가지고 있었다. 조선에 왕조적 질서를 확립하고 유교적 사회에서 중시해 오던 왕도정치(王道政治)의 이념을 구현하여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이상적 상황을 도출해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