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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 서씨(徐氏)의 무교회(無敎會) 공격(攻擊)을 읽고
신태양지 10월호에서 카톨릭 서씨의 무교희 비평을 읽었다. 전체 심한 욕설과 중상으로 차 있는 공격이었는데, 하여간 욕은 제쳐놓고 씨의 공격에 대하여 여기 몇 가지 답하겠다.
첫째 씨는 무교회를 루터의 적자(摘子)도 못되는 얼간망둥 같은 무엇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무교회는 과연 씨의 말대로 오늘날 카톨릭은 물론 김빠진 맥주 같은 루터의 적자 신교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서자로 만족한다. 그런데 씨는 더욱 카톨릭을 기독교의 적자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러나 나는 카톨릭이야말로 예수의 종교와는, 성서의 복음과는, 복음서의 예수와는 아무 관계 없는-씨의 얼간망둥식으로 말한다면-개혁자 루터의 지적대로 예수의 복음을 망치기 위한 악마의 계책에서 나온, 고대의 모든 종교와 철학과 정치와 야합한 일대(一大) 싱크레티즘적인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는 빌라도 앞에서 내 나라는 세상 나라가 아니라고 한 예수가, 영과 진리의 예배 를 요구하여 예루살렘도 게리짐도 아니라고 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헐라고까지 한 예수가, ‘바리새인과 율법학자들과 제사계급은 화 있을진저! 독사의 종류들’ 한 예수가, 그들의 의식과 형식과 전통과 위선, 금욕, 율법주의를 사갈시(蛇蝎視)한 예수가, 발가락 자리만큼도 못한 로마의 바티칸 궁전에 3중 관을 쓰고 차천자(車天子) 모양으로 군림하여 교황·제사(祭司)·사교(司敎) 등 무수한 직제(職制)를 거느리고, 마리아 예배와 성인 숭배 등 무수한 소위 의식과 제전(祭典)을 꾸미고, 잉여공덕(剩餘功德)·면죄부·교황 무오류(無誤謬)·이중도덕(二重道德)·시체 및 유물 전시 등 사람의 영혼을 얽어매는 무수한 교리와 신학설을 안출하고, 소위 이시돌 문서 같은 거짓 칙서(勅書)를 발할 리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암흑 중세의 천년 속권(俗權) 다툼도, 이교 정복도, 이단 정벌도, 종교재판·면죄부 판매도, 바돌로매 축제일의 10만 신교도 학살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제수이트식 개혁도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 무오류설만 하여도, 루터는 차치하고 단데도 ‘신곡(神曲)’ 중에서 그의 재세시(在世時) 교황 9명 중 일곱을 지옥에 넣고 있다. 카톨릭이란 이렇게 철저히 나사렛 예수의 영적 종교를 브로커식으로 인간화, 세속화한 것이다.
다음 씨는 무교회를 무정부주의라고 하였다. 이는 아마 무교회에 회당·직제·조직 등 씨의 육안에 보이는 것이 없으니 하는 말인 듯한데, 이야말로 종교의 본질을 모르는 철부지 소리다. 도대체 카톨릭은 예수의 종교와 복음이 정치가 아닌 것을 철저히 알아야 한다. 종교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의식주와 현실 생활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고, 저의 인격과 마음과 양심과 영혼과 영원한 내세의 생명과 관계하는 것이다.
이 점 또한 기독교는 모든 종교 중 최고로 영적인, 도덕적인 종교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교회 신앙은 신앙생활을 각자, 위로 하나님과의 순수한 영적 교제와 아래로 현실 생활에서는 오직 건전한 양심 생활, 도덕 생활로써 발현시키려고 한다. 예수는 돈이 없어 회당을 갖지 못한 것이 아니다. 카톨릭이 마태 16장을 예수의 카톨릭 조직의 선언으로 보는 것은 실로 울다가 웃을 그들의 영적 무지와 성서의 곡해를 표시하는 것이다. 면죄부를 팔아 베드로 성당을 건조할 필요가 도시 없었다. 사실 그들은 이로써 스스로 묘혈(墓穴)을 팠다.
무교회는 초대교회와 같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빌딩의 일실(一室)에서, 혹은 대우주 대자연 속에서, 나아가 내 양심의 성좌(聖座)에서 자유스럽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무교회는 예수의 복음의 인간화와 타락을 방지하고, 신앙을 영적으로, 생명적으로, 도덕적으로 살리기 위하여 종교에서의 정치적인 모든 조직과 외적인 의식과 형식들을 부정한다. 그 외는 성령의 지도와 각자 신앙 양심에 맡긴다. 이 점 오늘날 카톨릭은 과연 인위적으로 하나님의 자유스러운 영의 역사와 사람의 영적 도덕적 성장을 질식, 봉쇄시키는 것이다. 오늘날 정치적인 통제에도 자유가 없는 것이 논란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구나 한번 세계지도를 펴 놓고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지구상 분포를 주의해 보라. 도대체 어느 편에 그 생명과 문명과 정치, 도덕이 살아 있는가?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남미 등 카톨릭 국가와 영국·독일·미국·북구(北歐) 신교제국(新敎諸國), 대번에 알 것이다. 구교냐 신교냐의 문제는 비단 신앙 문제, 종파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그것은 실로 인류 문명의 질(質)과, 따라서 사활(死活)을 결정하는 중대문제인 것이다.
다음 씨는 무교회자의 교회 비판과 현실 비판이란 빈대 나는 집에 불지르는 식으로, 한낱 파괴적인 것이라고 하였다. 이 점 과연 씨의 관찰이 사실로, 우리의 종교 와 정치가 진정 도덕적인 토대 위에서 영원히 번영하는 것이라면 우리 무교회는 진실로 선량한, 도덕적인 국민 앞에 무고한 비판의 책임을 지고 치욕과 저주와 박해 가운데서 기꺼이 눈 을 감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 도덕적인 상태란 과연 씨의 말대로 안심할 수 있는 것이냐?
그래, 종교가가 미사나 올리고, 목탁이나 치고, 성당 내에서 향냄새에 취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단 말이냐? 씨여, 매일 경향신문 지면이라도 좀 들여다보라. 나의 신앙 양심으로는 민족의 부도덕으로 말미암아 국가의 앞날이 대단히 위태롭게 생각되는 바이다. 씨여, 없는 평안을 있다 있다 하여 결국 유대 남북 왕국에 패망을 가져온 하난냐·스마야 등의 거짓 예언자를 생각하라. 아니, 서씨 자신이 이렇게 된 것 아니냐?
다음 한 가지만 더. 씨는 과거에 자신이 독자였다는 성서지연구지(聖書之硏究誌)의 발행자 우치무라(內村) 에 대하여 그가 일본 제국주의의 원흉인 듯, 한국의 무교회자들이 일제시 식민 정치와 야합하기라도 한 듯, 그렇게 하는 것이 비역사적인 그 리고 비양심적인 카톨릭 신앙 상투인지는 몰라도, 중상적인 언사를 썼다. 그러나 길게 말할 것도 없이 우치무라 씨가 노일전쟁은 물론 생애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고, 더욱이 소위 태평양전쟁 중에도 일본 무교회자들이 전쟁 반대로 심한 탄압 속에 있었던 것은 연전 시내 모 일간신문 사설에까지 게재된 바다. 태평양전쟁에 대한 심한 비판으로 당시 동경제국대학(東京帝國大學) 식민 강좌 교수직에서 추방된 야나이 하라( 矢內原)씨가 일제 말기 심한 경계 가운데 서울을 방문하였던 것이나, ‘성서조선’ 사건으로 김교신·함석헌 그 외 많은 무교회 신앙자들이 투옥 되었던 사실은 씨도 잘 알 것 아니냐. 그런데 무슨 잠꼬대를 하고 있느냐? 카톨릭의 그 중 세적인 몽롱한 신앙취기(信仰醉氣), 아니 그 무서운 미신에서, 독기(毒氣)에서 죽기 전에 하루속히 깨어나기 바라는 바이다.
(1958년 10월 제78호)

첫댓글 "가톨릭 서씨"가 누군지 AI에게 문의했더니 이렇게 답하네요.
<서창제(徐昌濟)를 가리킨다. 그는 원래 장로교 목사였으나 가톨릭으로 개종한 인물로, 1958년 10월 월간지 '신태양'에 '무교회주의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하며 무교회주의를 강하게 비판하였다. 노평구의 글은 이 비판에 대한 응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