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내 시점에서 좋은 날은 여행 의지를 한껏 북돋는 날씨 화창한 날인데, 보통 날씨 좋을 날을 잘 택해 산행에 나서므로 요즘은 매일 같이 산에 오르고 싶다. 이번 주는 별다른 취재 일정이 없으므로 날씨가 지금처럼 잘 따라준다면 등산코스 1~2개 정도를 소화해볼 생각인데, 하나는 내일을 통해 무조건 가능하지만 다른 하나는 가능할 수 있도록 약간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한편 블로그 공백이 일주일이나 의도치 않게 생겼는데 그중 나흘은 강원도 평창, 양구 여행에 연달아 임하며 비롯되었다. 두 지역 모두 정말 모처럼 마주하게 되어 이 좋은 날을 실컷 누렸는데, 그중 양구는 꼭 5년 만에 향하게 되었으니 설렘의 정도가 과연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함께한 이들과의 연이 마지막 대학생 대외활동을 통해 맺어져 지금에 이르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였다. 내가 먼저 함께 떠나자며 바람잡이 역할을 했으니 동선 역시 내가 책임졌는데,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대표적인 양구 가볼만한곳 두타연, 펀치볼은 접근조차 못했지만 수준 높은 농촌체험마을에서 하룻밤 보내며 북녘으로부터 짙어지는 가을 느낌을 실컷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리가 택한 농촌체험마을이 수준 높은 이유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어촌공사에서 인증받은 으뜸촌이기 때문인데, 전국 수많은 농촌체험마을 중 경관, 서비스, 체험, 숙박, 음식 분야의 등급평가를 거쳐 으뜸촌으로 선정된 곳은 51개 마을뿐이다.
중부, 영동,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춘천TG로 진출 후 46번 국도를 통해 3시간 조금 넘게 걸린 양구 오미마을로의 여정은 그야말로 대장정이었다. 중간에 읍내의 양구 가볼만한곳 한반도섬과 비봉전망타워를 거친 덕에 지루함은 조금 덜었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동선은 아니다. 옛 오미분교를 농촌체험마을의 숙박동으로 활용 중인 양구 오미마을에 들어서며 우릴 가장 먼저 맞이한 건 세월 때 잔뜩 묻어나는 세 인물의 녹슨 동상이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반공소년 이승복, 세종대왕 순으로 눈에 들어왔는데 추수 시즌에 빠르게 접어들고 있는 농촌 풍경과 합쳐진 충무공 이순신 동상이 확실히 돋보였다.
양구 오미마을은 2018년에 으뜸촌으로 선정된 강원도 농촌체험마을로 옛 오미분교를 산들바람체험학교로 운영하고 있다. 농촌체험 프로그램은 모내기 및 추수, 곰취, 짚공예, 손두부 or 쌀겨 비누 만들기 체험을 운영하지만 30인 이상 단체만 참여 가능하다. 하지만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상황이 진행 중이므로 사실상 가능한 건 마을 펜션인 <오미메아리>를 통한 숙박뿐이다. 한편 오미마을이 화천 평화의댐과 양구 두타연 사이에 위치한 걸 도로 안내판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마을과 비교적 가까운 가볼만한곳을 곁들여 방문한다면 굉장히 가성비 좋은 코스로 여겨진다.
크기에 따라 두 가지로 구성된 객실 중 6~8명 전용 버들치 객실을 통해 하룻밤 머물게 되었다. 원룸형이라 옹기종기 모여서 머물기 좋았는데 남자 셋을 수용하기엔 규모 있는 객실이라 머리맡에 전기 콘센트를 하나씩 차지했다. 우선 양구 읍내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마련한 먹거리를 냉장고에 채워 넣고 펜션 숙박의 꽃인 바비큐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편 냉장고에 치킨 배달 스티커가 있길래 혹시나 하고 전화해보니 한 마리도 가능해서 꽤 놀라웠다. 주변 풍경만 봐선 적어도 세 마리는 시켜야 겨우 가능할 것 같았거든.
오미분교 시절엔 축구 골대가 위치했을 법한 공간에 바비큐장이 마련되어 미리 챙겨온 숯으로 불을 붙이고, 그 위에 석쇠를 올려 목살과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는 것으로 주력 매체가 각기 다른 여행자 셋의 파티가 시작되었다. 만약 직접 불 피우는 게 번거로울 것 같으면 예약 시 바비큐를 이용하겠다고 밝히면 단돈 만 원에 그 문제를 가뿐히 해결할 수 있으니 참고하면 좋을 듯싶다. 한편 이날은 밤하늘 상태가 예사롭지 않아 별구경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잔구름이 몰려들기까지 20분 이내로 아주 잠깐이었지만 밤하늘 빼곡하게 수놓은 별들의 반짝임을 맨눈으로도 실감할 수 있었다. 준비성 좋은 여행사진가 동생(insta @hyeonpic)이 삼각대 펴고 별 사진을 담아 건네주었는데, 그저 놀라움 넘어 황홀했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졌다.
노곤하게 데워진 방바닥에 누워 스르르 잠들다 일어나니 안개가 걷히며 완벽한 맑음이 찾아들고 있었다. 아침 산책 즐기기에 더없이 좋은 상태로 여겨져 씻지도 않고 카메라만 챙겨 나와 양구 오미마을을 한 바퀴 거니는데,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어느 정도 다 익어 금빛 감돌기 시작하는 벼의 모습이 신기하게 와닿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지나면 밥을 하면 구수한 향이 진해 누룽지쌀이란 별명 지닌 오미마을의 향미로 그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참고로 향미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무농약 농산물 인증을 받은 친환경 작물로써 청와대 밥상에 오른 경력도 있을 정도로 그 명성은 대단하다.
꼭 5년 만에 강원도 양구를 <한반도섬전망대-비봉전망타워-한반도섬-오미마을-소양강 꼬부랑길 전망대-사명산> 순으로 1박2일 동안 대했다. 비록 양구 가볼만한곳의 대표주자인 두타연과 펀치볼은 만날 수 없었지만, 처음 경험해본 다른 명소들 덕분에 양구의 기억이 보다 다채로워진 것 같다. 특히 흐드러지게 펼쳐진 능수버들이 인상적이던 한반도섬의 노을, 파로호와 소양호를 모두 살필 수 있는 사명산 정상부 풍경이 내겐 유난히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양구의 별미인 시래기 정식을 이번 여행에선 미처 챙기지 못해 아쉽다. 첫날 점심을 춘천 닭갈비가 아닌 양구 시래기로 꾸몄다면 한반도의 배꼽 양구 여행에 대한 몰입도가 한층 더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춘천 닭갈비 맛있게 잘 먹은 걸 굳이 후회하고 싶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