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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이론 - 상호작용적 관점
hanjy9713
2023.09.28. 19:39조회 0
상호작용적 관점
가족 체계는 천장에 매달린 모빌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독립되면서도 종속된 기구한 운명 공동체다. 상호작용적 관점은 서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변화에 대해서는 매우 저항적인 가족 구성원의 문제의 원인과 결과 모두를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접근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족 구성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은 메타커뮤니케이션이며, 이를 위해서는 외부 도움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1. 모빌과 가족
가족 구성원과 맺고 있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강조한 폴 바츨라빅(Paul Watzlawick, 1921~2007)
ⓒ 커뮤니케이션북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가장 친밀한 대인 관계가 상존하는 시공간은 바로 가족이다. 그렇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여되는 역할과 규범만을 강조할 뿐 구성원 상호 관계를 도모하고 관리하는 일에는 거의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실 부부, 부모와 자녀, 자녀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은 이러한 사실을 잘 방증해 준다. 어느 가정에나 문제를 일으키는 구성원이 하나쯤은 존재하며, 바로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행복해질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의 핵심은 가족 구성원이 불행한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겹쳐서 나타나게 된 결과이므로 그런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과에 대한 원인 진단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해, 우리 가족 혹은 특정 가족 구성원이 왜 그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 고민을 하지 않으면 현재 가족 구성원이 겪고 있는 불행은 극복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족이 긴밀하게 묶여져 있는 하나의 체계, 즉 모빌의 형식과 내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폴 바츨라빅(Paul Watzlawick)은 체계로서 가족의 특수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족을 천장에 매달린 모빌에 비유한다. 그는 모빌을 가족에, 각 구조물을 가족 구성원에, 그리고 그 구조물들을 이어주는 실을 커뮤니케이션 규칙에 빗대어 설명했다. 모빌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구조물들은 각기 적당한 공간에서 다른 구조물들과 실로 잘 연결되어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조물들 가운데 어느 일부에 압력이나 힘을 가하면 금방이라도 모빌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나아가 모빌의 구조물을 잇고 있는 어느 하나의 실이라도 잘릴 것 같으면, 모빌의 형세가 일그러져 균형을 잃고, 정상 기능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가족이라는 체계 내에서 작용하는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모든 가족 구성원이 구사하는 커뮤니케이션 양식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특히, 바츨라빅은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이 다른 구성원과 맺고 있는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강조한다.
가족 관계를 이러한 체계로 접근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특정한 행동을 취하는 방식을 단순하게 설명해 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의 행동 방식은 복잡한 과정을 거쳐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떤 말을 건넬 때, 아들이 뒷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듣는 행위는 아버지의 말이 그다지 달갑지 않거나 불만이 있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다. 이때 아버지는 자신의 메시지를 아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던 나머지 아들이 이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고려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버지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될 리 만무하다. 만약 이런 경우라면,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 좀 더 근본적인 대화와 소통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이는 대인 관계라는 것이 일차 방정식처럼 쉽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라는 식의 단순한 진술문만으로 표현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래서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문제는 매우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며, 커뮤니케이터들의 태도와 감정, 그리고 상황과 맥락을 충분히 감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가족 간 커뮤니케이션 공리
가족 구성원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변화하기 힘든 성질을 가진다. 그것은 가족이라는 집단이 도덕과 윤리에 기반한 것이기보다는 삶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는 당연히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당연히 공경하며, 자녀들끼리는 의당 우애를 가져야 하는 고착화된 관계 경향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족 구성원이 종종 혹은 자주 드러내는 불만과 불평의 목소리는 좀처럼 대화의 기회를 찾지 못하고 사랑과 공경, 그리고 우애라는 추상적이고 모호한 가치에 휘둘리게 되고 만다. 이렇게 되면,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던 가족이 어느 작은 계기로 심각한 내홍을 겪거나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의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와 소통의 공리를 잘 파악할 수 있을 때라야 우리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가족의 본모습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새겨 가족 구성원 간에 교환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주의 깊게 관찰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족 구성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소통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가족 구성원이 어떤 국면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단서는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들어 왔을 때 엄마가 '오늘 어땠니?' 하며 말을 건네는 상황이나 공부를 해야 하는데 형제나 자매가 대화를 원하는 상황은 일상적으로 겪는 일들이다. 이때 만약 아들이 데이트와 상관이 없는 말을 쏟아 내거나 단순히 '좋았어요'라고 말하거나 피곤하다거나 목이 아프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 데이트가 좋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아들에게서 뭔가를 더 알아내려 한다면,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일어난다면, 아마도 아들은 여자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더 이상 엄마와 긴밀한 대화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징후전략(symptom strategy)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아들은 '난 엄마와 오늘 데이트에 대해 말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이유로 지금 그 문제를 얘기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내용과 관계를 포함하는데, 여기서 커뮤니케이션 내용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이는 가족 구성원끼리 나누는 대화 속에는 단순한 메시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어떠한 관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딸이 아빠에게 남자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상의한다고 했을 때, 이 가족은 아버지와 딸, 나아가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경험을 솔직하게 대화하는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더불어, 대화에서 사용되는 목소리의 높낮이, 특정한 단어의 강조, 얼굴 표정 등의 비언어적 단서는 대화의 내용과 관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준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내가 나를 보는 방식, 내가 당신을 보는 방식, 그리고 당신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를 다시 내가 보는 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림 1〉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성
출처 :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이론』(김동윤·오소현 역, 2012)
셋째, 가족 구성원 관계의 본질은 커뮤니케이션의 연속성을 얼마나 잘 준수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의 낙담과 불행은 다른 구성원의 좌절과 포기를 초래한다. 또 어느 구성원이 겪는 부정적인 감정을 문제 삼는 것은 갈등을 부추길 뿐 가족 구성원이 안정과 행복을 되찾는 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 아들에게 엄마와 아빠가 불연속적인 대화로 일관한다고 가정해 보라. 이를테면, 음주를 하는 중학생 아들을 걱정스럽게 여겨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엄마와 이를 사춘기의 정상적인 성장통으로 간주하는 아빠가 있다면, 그 사이에서 대화하는 아들은 갈팡질팡하게 될 것이다.
넷째,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대칭적이거나 보완적 상호교환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대칭적 상호교환은 동등한 권력 관계를 의미하고, 보완적 상호교환은 차등적 권력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는 좋은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구성원의 권력 관계가 대칭적이어야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들의 비행을 늘 감싸기만 하는 엄마는 주로 아들과 보완적 상호교환을 하게 된다.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낸 경우에도 변호사를 고용해서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하는데, 이것이 보완적 상호교환의 극단적인 사례다. 가족 구성원의 애착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보완적 상호교환이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이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런 아들의 비행을 아빠에게는 비밀로 하는 경우다. 건전한 관계에는 이 두 가지의 교환을 두루 포함하고 있어야 하기에, 이 두 가지 상호작용 중 어느 것은 좋고, 다른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림 2〉 상호작용적 관점을 활용한 대화
"'별로(sucks)'라는 좋지 않은 말 대신에 '나한테는 맞지 않아요'라고 말해야 한단다."
출처 : 『첫눈에 반한 커뮤니케이션이론』(김동윤·오소현 역, 2012)
3. 상호작용적 관점 : 용례와 함의
고질적인 문제에 봉착한 가족이 새로이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가족이 어떻게 하면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건전한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바츨라빅은 불화를 겪고 있는 대부분의 가족이 불행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멸의 위기에 도달했음을 인지해야 한다고 한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치유의 과정인 이른바 재구성(reframing)을 시도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재구성이란 단순히 가족 구성원의 규범과 역할 행동의 변화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다. 재구성은 가족 구성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해 온 경험과 환경, 그리고 감정이나 관점의 총체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바츨라빅은 이러한 전면적인 변화를 악몽, 즉 꿈에서 어떤 행위자가 마구 달리고, 숨고, 싸우고, 비명을 지르며,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몸부림을 쳐도 실제로 변화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실제 상황에 비유했다. 이렇듯 재구성은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어떤 사물을 바라보았을 때, 갑자기 '아하!' 하고 외치는 과정과도 같다.
재구성의 과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느 일부만 변화한다고 해서 변화가 촉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가족 구성원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이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문제만을 치유하고자 한다면 그러한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구성원이 그러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과정에 이미 다른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그릇된 혹은 정상적이지 못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이 재구성의 과정에서 반드시 유념해야 하는 것은 그릇된 행동을 하는 특정 구성원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보다는 그러한 문제가 촉발된 원인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공동으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전의 것을 부정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가족 구성원 중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구성원이 있다면, 그 가족 내에서 그 문제를 치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도 가족이 그러한 문제를 외부 세계와 소통하려 하지 않거나 비극적인 결말이 두려워 계속해서 숨기려 할 경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경험하는 가족 문제를 다루는 솔루션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집단이 해당 가족의 문제를 진단하고,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며, 그에 따라 적절한 처방을 강구하는 것도 가족이 봉착하고 있는 문제가 구성원끼리 해결하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