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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1) † 물질적인(혹은 정치적인) 바벨론(묵시18,1-3)
성경에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노선, 곧 바벨의 노선과 예루살렘의 노선을 본다. 바벨의 노선은 예루살렘 노선의 위조품이다. 하나님이 예루살렘 노선을 시작하시기 전에 사탄이 그의 위조품을 먼저 만들었다. 이와 같이 두 도시 곧 바벨론과 예루살렘은 서로 적대된다. 이 두 노선은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참 교회는 오늘날의 예루살렘이요, 혼합된 로마 천주교회와 변질된 대부분의 개신교는 오늘날의 바벨, 곧 바벨론이다. 더 나아가 큰 음녀의 딸들, 곧 여전히 바벨론의 전통 가운데 일부를 실행하는 많은 교파들과 기독교 단체들 역시 바벨론의 범주에 속한다. 순수하고 참된 교회들이 오늘날 존재하는가?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사라지고, 예루살렘의 노선 안에 있는 교회로 발견하기가 참으로 드물다.
17-22장까지는 전체 성경의 궁극적인 결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한 번 두 도시, 곧 바벨론과 예루살렘을 본다. 바벨론은 철저하게 분쇄될 것이고, 예루살렘은 완전하게 건축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최종 완성이요, 바벨의 노선과 예루살렘 노선의 궁극적인 결말이다. G. H. Pember의 책들과 Hislop의 ‘두 바벨론’은 모든 이방 종교가 하나도 예외 없이 바벨론주의(교)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한다.
창세기 11장은 바벨탑과 성을 말하고 있다. 히브리어인 바벨과 헬라어인 바벨론은 둘 다 혼돈을 뜻한다. Nimrod(니므롯)의 아버지 구스에 의하여 세워졌다. 니므롯은 이교적인 우상 숭배에 대한 경배 체계를 고안해 냈다. 수세기 후에 바벨론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확정되었고 구약에 알려진 바벨론이 되었다. 바벨론은 악한 마귀의 장소가 되었다.
왜냐하면 느부갓네살 치하의 바벨론이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그릇들을 탈취해 갔고(단1:1-2; 왕상25:8-9; 14-15), 더욱이 느부갓네살은 이 성물들을 바벨론으로 가져가서 그의 우상의 전에 두었기 때문이다(단1:1-2). 후에 에스라는 이 성물들을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져와서 재건된 성전 안에 두었다(스1:7-11, 5,14, 6,5).
그러나 니므롯이 고안해 낸 종교가 온 세계에 심지어 인도와 중국에까지 퍼졌다. 모든 종교가 악마적인 한 근원, 곧 고대 도시 바벨론에서 비롯되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유대교에 속한 많은 것을 영속시키고, 이교 신앙에서 나온 많은 것을 동화시킨, 로마 천주교회가 곧 바벨론임을 17장에서 설명한 바 있다.
바벨론의 또 다른 방면은 물질적인(혹은 정치적인) 바벨론인 로마 시(市)이다. 묵시록 17-18장에는 바벨론의 두 방면, 곧 종교적 방면과 물질적 방면이 함께 섞여 있다. 17장의 여성은 한편으로 변절한 교회인 음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시를 상징하는 여자이다. 곧 1절은 음녀에 대해 말하고 18절은 여자에 대해 말한다.
그러므로 이 장에 있는 여성은 음녀 곧 변절한 교회의 방면과 여자 곧 물질적인 로마 시의 방면을 가지고 있다.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주님께서 왜 이렇게 어렵게 뒤섞어 놓으셨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분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바벨론의 여러 방면들을 아는 것은 마치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에 관한 예언들을 아는 것과 비슷하다.
구약의 여러 곳에 그리스도의 두 번 오심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멀리서 볼 때 하나로 보이는 겹쳐진 두 산(山)과 비슷하다. 그러나 막상 당신이 그것에 접근해 보면 그들 사이에 큰 간격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스도의 오심에 관한 예언들을 읽을 때, 반드시 우리는 어느 것이 그분의 처음 오심을 언급하고, 어느 것이 그분의 두 번째 오심을 가리키는지 알 필요가 있다.
바벨론에 관한 구절들도 마찬가지다. 곧 어느 것이 고대의 바벨론을 말하고 어느 것이 종교적인 바벨론을 말하며 또 어느 것이 물질적인 바벨론을 말하는지 반드시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러 해 전 만해도 나는 많은 저명한 성경해석집을 두루 섭렵한 후에도 계시록17-18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고대의 바벨론, 종교적 바벨론, 물질적 바벨론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서는 신구약의 이와 관련되는 말씀을 찾고 거듭거듭 기도하고 영 안에 있어야 한다.
계18:1절은 “이 일들이 있은 후에 내가 보니, 큰 권위를 가진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땅이 그분의 영광으로 밝아졌습니다.”(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내가 본 거의 대부분의 주석집들은 “큰 권위를 가진 다른 천사”를 ‘그리스도’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나는 이 천사는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현현한 여호와의 사자(천사 중에서 가장 직위와 권위가 높은 천사)일 것이라고 믿어 왔다.
그 이유는 먼저 현재 ‘요한복음 연구’에서 연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을 참조하면, 당신의 이해가 쉬워질 것이다. 나의 경우 이 부분을 이해한 후부터 성경의 큰 맥들이 해석되는 계기가 되었다.
구약은 천사들을 통하여, 신약은 그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통치하셨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벨론에 내린 심판은 구약 성경에 있는 많은 구절에 의지하며, 구약은 여호와의 사자, 곧 천사의 통치 시대였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성경을 연구하고 사모하고 간절히 기도하다 보면, 선진들의 전진된 해석(계시)을 기초로 그 위에 새로운 계시를 주실 때가 많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해석은 계시 위에 계시로 전진한다.
그러나 로마 가톨릭교회와 같이 성경을 유대교나 이방 종교의 것들과 혼합하여 그것을 불변의 교리로 묶어버리면,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와 계시 위의 계시에 의하여 전진되어 해석될 수가 없게 되므로, 마침내 진리에서 멀어지고 형식이나 혼합주의나 이단성에 빠져들게 된다.
2절은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것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라고 말한다.
17장의 종교적 바벨론은 대환난 시작 때에 멸망하는 한편, 여기서의 “무너졌도다”는 대환난이 끝날 때에 물질적인(혹은 정치적인)바벨론인 로마 성이 무너지는 것을 가리킨다. 짐승의 열 뿔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로마의 종교적인 부분을 멸하셨다(17:16).
이제 하나님은 로마시를 멸하시려 함으로 이와 같이 크게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 일은 구약에 예언된 적이 있다(사13:21절에서 그 중 ‘들짐승’은 칠십인역 본에서 ‘마귀’로 번역되었으며, 다른 사34:13-15절에서 기록된 광경은 비록 에돔을 말하고 있지만 계시록18:2절과 아주 비슷하다).
17장의 여자(음녀)는 열왕과 짐승에 의해 멸망되었지만, 18장의 여자(로마)는 지진 때문에 멸망한다(16:9-21). 음녀의 멸망은 땅에서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지만, 18장 로마(바벨론)의 멸망은 이 지상의 정치, 경제적 권세자들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줄 것이다. 참고로 성경은 다음과 같은 세 방면의 바벨론을 계시하고 있다.
첫째는 문자적으로 고대 바벨 혹은 바벨론(창11:9), 곧 오늘날의 중동의 이락을 가리킨다. 둘째는 종교적으로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말하는 로마의 천주교를 가리키고, 셋째는 물질적 혹은 정치적으로 이곳 18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로마 성을 가리킨다.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은 마13:32절과 연관된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이 부분의 해석은 대부분 잘못되어 있다. 여기의 나무는 이 세상의 능력과 특히 정치적 면에서 권세를 차지한 로마 가톨릭이나 영국 국교회 등을 말한다. 새들은 사탄으로부터 온 죄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 안에 있는 죄들은 사실상 온 세상의 죄들을 포함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 죄가 무엇인가?
오늘날의 교회는 완전한 혼돈, 바로 바벨론이 되어 버렸다. 교회는 왕국의 체현으로서 음식을 제공하는 푸성귀(나물)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 본성과 기능이 바뀌어서 결과적으로 나무, 곧 새들이 깃들이는 거처가 되었다. 이 비유는 요한계시록 2-3장에 있는 일곱 교회 중 세 번째 교회인 버가모 교회와 일치한다(계2:12-17).
겨자는 일년생 푸성귀이지만, 나무는 다년생 식물이다. 교회는 하늘의 영적 본성에 따라 땅에 잠시 머무는 겨자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그 본성이 바뀌어 땅에 있는 큰 나무처럼 깊이 뿌리 내리고 정착하게 되어 사업이 그 가지처럼 번창했고, 그 안에 많은 악한 사람과 악한 일이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천국의 영역이 아니라 천국의 외형인 바깥 조직을 형성하게 되었다. 여기서 새들은 악한 자 사탄을 상징하므로(마13:4, 19), 여기 하늘의 새들은 악한 사람들과 악한 일들을 선동하는 사탄의 악한 영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큰 나무의 가지, 곧 오늘날 기독교계의 수없이 많은 각종 사업들, 대형 교회들, 대다수의 신학대학들과 그들이 설립한 대학들 안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3절은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녀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세 가지 일을 말하고 있는데, 바벨론의 멸망이 통고된다.
(1) 열국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계17,2). 이것은 특별히 로마의 종교적인 일부분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2) 땅의 왕(그녀와 더불어 음해하였고, 계17:2; 계18:9), 이것은 종교적인 로마와 도시에 모두 해당된다.
(3) 땅의 商賈(바벨론에 의하여 치부한, 계18:15), 이것은 특별히 로마의 상업에 참예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기 때문에 그 도시는 철저하게 파괴되어 다만 끔찍한 폐허의 자리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 음행은 우상숭배를 말하며 심판의 이유이다. 진노의 포도주라는 표현에는 두 가지 상징이 섞여 있다. 곧 불경건으로 미혹하는 혼미케 하는 음료(계17:2; 렘51:7)와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주(계11,10; 렘25:15)가 혼합된 것이다.
할렐루야! 아멘!
(제18장 2) † 정치적 바벨론의 멸망(계18장)
바벨론의 멸망에 대한 또 하나의 계시가 하늘에서 내려온 다른 천사에 의해서 선포되었다. 17:1절의 “일곱 천사 중 하나”와 대조를 이루며, 여기의 천사도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질 정도로 권세가 있었다(18:1). 이 천사의 메시지를 요약하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이다.
17장과 18장을 비교해 보면, 이 둘은 같은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17장의 여자는 정치 권력과 관련을 맺고 있긴 했어도 정치 권력 그 자체는 아니었으며, 또 그녀가 멸망했다고 해도 땅에서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18장의 바벨론의 멸망은 이 지상의 정치 경제적 권세들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17장에서의 멸망은 열 왕에 의한 것이었고, 18장에서의 멸망은 지진에 의한 것이었다(16:19-21). 18장의 도시는 정치와 경제생활의 중심지인 번영한 큰 도시이다. 하나님의 심판 때문에 그곳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다. 이는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 거짓 종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치게 만드는 독약과도 같다. 상고(상인)들을 부요하게 해 주었지만 이제는 멸망 받을 운명에 놓이게 되었다.
첫째로 재앙을 면하기 위하여 믿는 자들에게 도망하라고 권고한다(계18:4-8). 왜냐하면 큰 바벨론은 두 방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여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종교적인 바벨론과 정치적 바벨론 모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두 방면의 바벨론에서 나와야 한다.
그다음에 심판으로 망한 그 도시에 대한 애곡이 잇따른다(계18:9-19). 끝으로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상징 행위가 수행된다. 이것을 통해서 바벨론의 운명이 궁극적으로 끝장이 났음을 보증한다(계18:21-24).
계18:4절은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말한다.
성은 로마시를 가리키며 또한 종교적인 로마를 가리킨다. 큰 바벨론은 이중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일곱 대접을 쏟으시면 뇌성과 지진 등이 뒤따른다(16:17-18). 이어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기억하시자마자 큰 우박이 내린다(16:9-21). 17장은 우리에게 바벨론이 바로 그 큰 기녀라고 말해 준다.
이는 그녀의 이마에 쓰인 이름이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의 이전의 역사와 장래의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그녀의 종말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18장에서는 우리에게 큰 바벨론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한다.
“거기서 나와,” 이 명령은 비록 이때에 내려졌지만 그 대상은 계17:5절의 큰 바벨론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한 것인데, 이는 종교적인 로마에도 역시 참으로 주님께 속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큰 바벨론은 두 방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여자에게서 나오는 것은 종교적인 바벨론과 물질적인 바벨론 모두에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두 방면의 바벨론에서 나와야만 한다. 천사의 선포에 이어서 하늘로부터 또 하나의 소리가 들리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곳에 임할 심판을 피해서 “거기서 나와” 그 성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이것은 바벨론, 곧 ‘로마 가톨릭이라는 종교적인 체계’에서 나오라는 부름이다. 특히 오늘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라는 종교적인 체계에서 구출되어야 한다. 우리는 담대하게 오늘날 부패한 기독교 체계에서 나와 그리스도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5절은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앞의 16:19절과 긴밀히 연결되며 모두 하나님이 바벨론을 기억하신다는 것을 말한다. 17장은 전적으로 종교적인 그 부분이 소멸될 것임을 말하며, 18장은 온 바벨론이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 할 것임을 말한다. 하나님은 어떤 죄가 기억나실 때마다 즉시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은 기억해야 할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시고 잊어야 할 것에 대해서는 깨끗이 잊어버리신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심각하게 여기시는 죄악을 너무도 소홀히 여기는데 있다. 온 교회와 사역자 모두가 죄악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신앙 양심의 마비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는 기존의 기독교 종교 체계를 쇄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성경은 가톨릭과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라는 종교 체계가 부패하고 그 기능이 왜곡되어 있으므로,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그곳에서 뛰쳐나오라고 말한다. 모든 신학, 신학교, 교파, 계급, 의식, 기관으로부터 해방을 요구 받고 있다. 새로운 종교 개혁이 절실한 한계점에 와 있는 것이다.
<바벨론의 오만과 멸망>
6절은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고 말한다.
이것은 로마서 2:6절과 9절의 말씀을 성취한 것이다. “그의 섞은 잔,” 장래 하나님이 로마시를 심판하시는 것도 로마의 종교적 방면의 죄악으로 인함일 것이다. 두 배로 되돌려 주는 것은 레위인의 율법에 기인한다. 여기에서는 두 배를 두 배로 되돌려 준다(레4:17-21; 출22:1; 눅19:8).
7절은 “그 여자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말한다.
교회는 자신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한다. 그러나 로마 천주교는 그것을 반대로 적용하여 행했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의식과 계급을 강조하고 사치했다. 놀랍게도 오늘날 개신교의 대형 교회들도 이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8절은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말한다.
“하루 동안에”라는 표현은 24시간의 하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졸지에’ 라는 뜻이다. 교만하여 자기의 항구한 영화를 다짐하던 그에게 예기치 못한 순간에 치명적인 재난이 임할 것을 예고한 것이다. 고통이 있기 때문에 애통이 있다. 하나님이 그녀에게 고통을 주신 이유는 그녀로 하여금 애통하게 하기 위함이다.
“주 하나님”은 구약의 이름이며 하나님께서 구약의 위치로 돌아가셨음을 표시한다. 이는 앞의 1절의 천사가 여호와의 사자임을 증명한다. “불에 살라지리니,” 종교적인 바벨론은 17:16절에서 완전히 타 버렸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물질적인 바벨론이 완전히 타 버린다. 17장의 여자(음녀)는 열 왕과 짐승에 의해 멸망되지만, 18장의 여자(정치적인 로마)는 지진 때문이다(16:19-21). 음녀의 멸망은 땅에서 아무도 슬퍼하지 않았지만, 18장의 로마의 멸망은 이 지상의 정치 경제적 권세자들에게 큰 슬픔을 가져다 주었다.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자들>
9절은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라고 말한다.
땅의 왕들은 로마 제국의 부패에 동조하여 그 사치와 음란과 방탕을 함께 나누며 즐거워하던 이방 족속의 지도자들이다(이 만가(輓歌)의 형식에 대해서는 겔26:16-18절의 두로에 대한 만가를 참조).
그러나 땅의 왕들은 여자를 도와 줄 아무런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므로 그들에게는 아무런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17:16절에서는 음녀가 불태워지고, 18:9절은 이 성이 불살라진다. 이들은 음녀인 바벨론과 더불어 음행하고 그 유혹에 빠져 사치를 즐기던 이 세상의 권력자들이다.
10-11절은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땅의 상고(商賈)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고 말한다.
그 도시와 연루되어 있던 왕들이 그 멸망을 보고 슬퍼하며 부르짖는다. 화있도다, 화있도다 큰 성, 견고한 바벨론이여! 이 부유한 도시로부터 큰 이득을 취했던 국제 상인(상업인)들이 그 도시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음을 보고서 눈물을 흘리며 애통할 것이다.
겔27:28-36절에 있는 두로의 함락에 대한 만가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18:9-19절에서 로마의 몰락이 확실하게 선언되자 그 대제국의 멸망을 조장하는 만가(輓歌)가 불리어진다. 왕들의 만가(9-10절), 상업인들의 만가(11-17절), 뱃사람의 만가(17절하반절-19절)가 연이어 기록되었다.
12-13절은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혼)들이라” 고 말한다.
12-13절에 열거된 상품들이 여러 가지 물질적인 것들이라는 것은 이곳 18장이 있는 큰 바빌론이 물질적인 바빌론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상품은 다음과 같이 일곱 부류로 나눌 수 있다.
(1) 금으로부터 진주까지의 장신구, (2) 세마포부터 진홍색 옷감까지는 직물, (3) 각종 향나무부터 대리석으로 만든 온갖 기구로 만든 살림살이와 장식품, (4) 계피부터 유향까지는 향신료, (5) 포도주부터 양까지는 식료품, (6) 말과 수레는 교통수단, (7) 노예들과 사람들의 “혼”은 고용 문제일 것이다.
사람들의 혼도 여기 상품처럼 사고 팔 수 있다. 그렇다면 인신매매를 의미하는가? 왜 사람의 혼이 상품화되어 팔리는가? 그것은 사탄 곧 적그리스도에게 필요한 것이 사람의 “혼”으로, 이 시대 마지막 적그리스도 활동의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탄의 목적은 바로 사람의 혼의 능력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의 육체의 바깥 껍질을 깨뜨려서 그의 영이 아니라 혼으로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게 하여 ‘혼의 잠재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영을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 스스로의 지식과 능력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다.
바벨론에서 팔리는 상품 중의 첫 번째 항목은 금이고, 마지막은 사람들의 혼이다. “사람들의 혼”은 고용되기 위해 자신을 파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장차 올 바벨론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세상을 묘사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직업에 자신의 혼과 자신의 생명, 곧 자기 자신을 팔고 있으며, 자기들의 영원한 운명과 하나님을 소홀히 여기고 있다. 여기서 영혼은 혼을 말한다.
할렐루야! 아멘!
(제18장 3) † 물질적인(혹은 정치적인) 바벨론(계18:14-24)
계18:14절은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다. 11-17절까지는 겔27:28-36절을 보면, 바벨론에 기대어 치부하며 극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던 상인들, 곧 상인들의 만가(輓歌)가 나온다.
몇 세대를 두고 욕심을 내던 그 열매가 익어 이제 입에 저절로 굴러들어 갈 것 같더니, 그만 꿈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상인들이 부른 만가 가사의 일절이다. 상인들은 더 이상 교역을 할 수가 없게 된 그 도시의 멸망을 애석해 한다. 이로 보건데 이 장에서의 바벨론은 분명 종교적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인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15-16절은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라고 말한다. 상인들의 슬픔도 왕들과 마찬가지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그런데 “땅의 상고(상인)들”은 큰 성 바벨론의 사치와 타락과 부를 누리던 자들이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의 부의 근원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고객을 잃은 상고들의 슬픔은 결코 죄악을 회개하는 참회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상적인 이권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 분노와 아쉬움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17절은 “그러한 부가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라고 말한다. “일 시간에 망하였다”는 것은 앞의 구절에 이어지는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세 번째 자들은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다.
18-19절은 “그 불붙은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는 한 시간 내에, 곧 즉시에 그리스도께 멸망될 것이고(계17:12-14; 19:19-21), 물질적인 큰 바벨론 역시 한 시간 내에 주님께 멸망될 것이다. 아마 그 둘 모두가 주님께서 빛나는 영광 가운데 땅으로 오시는 시간과 동일한 시간에 그분께 멸망될 것이다(계18:1; 살후2:8).
<하늘에서 즐거워함>
20절은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이는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녀에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세 그룹 곧 왕들, 상고들, 선인들이 모두 바벨론의 멸망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 시간에(10, 17, 19) 세상은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들에게 하셨기 때문에 즐거워할 것이다.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선언함>
겔27:28-36절에 있는 두로의 함락에 대한 만가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계18:9-19절에서 로마의 몰락이 확실하게 선언되자 그 대제국의 멸망을 조장하는 만가(輓歌)가 불리어진다. 왕들의 만가(9-10절), 상업인들의 만가(11-17절), 뱃사람의 만가(17절하반절-19절)가 연이어 기록되었다.
21절은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멧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벨론을 멸하실지 모르지만 16:9절에서 하나님이 큰 바벨론을 기억하시는 것은 바로 큰 지진이 있은 후이다.
그러므로 아마 지진으로 멸하실 것이다. 지진이 있으면 반드시 불이 있으므로 땅 위의 왕과 상고 등은 멀리서 불타는 연기를 볼 것이지만 가까이 와서 도와주지는 못한다(19:9). 로마제국을 상징한 큰 멧돌과 같은 돌이 바다에 감겨 떠오르지 못함같이 로마가 영원히 멸망한다(계16:18-20).
22-24절은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멧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고 말한다.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 이것은 환락과 음란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음악을 의미한다. “더 이상”은 여섯 번 사용되었으며 23절 후반부에서 24절까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바벨론에 이르게 한 세 가지 원인, 곧 죄를 말한다.
(1) 땅 위의 상고들은 다 땅 위의 존귀한 사람들이 된 것이며,
(2) 만국이 그녀의 복술에 미혹되었으며,
(3) 모든 죽임당한 사람들의 피가 다 이 성중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상업의 잘못은 부의 균형 대신에 사람을 속이고 복술을 도입하고 정치를 타락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중대한 죄가 되었다. 복술은 귀신을 부르는 일인데 장래 귀신을 부르는 일은 아마 로마가 중심이 될 것이다. 사람의 피, 특히 선지자와 성도의 피를 흘리는 것도 로마가 가장 극심하였다.
할렐루야! 아멘!
(제18장 4) † 물질적인(혹은 정치적인) 바벨론(계18:14-24)
계18:14절은 “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라고 말한다. 11-17절까지는 겔27:28-36절을 보면, 바벨론에 기대어 치부하며 극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던 상인들, 곧 상인들의 만가(輓歌)가 나온다.
몇 세대를 두고 욕심을 내던 그 열매가 익어 이제 입에 저절로 굴러들어 갈 것 같더니, 그만 꿈같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상인들이 부른 만가 가사의 일절이다. 상인들은 더 이상 교역을 할 수가 없게 된 그 도시의 멸망을 애석해 한다. 이로 보건데 이 장에서의 바벨론은 분명 종교적이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인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15-16절은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라고 말한다. 상인들의 슬픔도 왕들과 마찬가지다.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그런데 “땅의 상고(상인)들”은 큰 성 바벨론의 사치와 타락과 부를 누리던 자들이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의 부의 근원을 빼앗기는 것과 같다. 따라서 고객을 잃은 상고들의 슬픔은 결코 죄악을 회개하는 참회의 눈물이 아니라, 자신들의 세상적인 이권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된 분노와 아쉬움의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17절은 “그러한 부가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라고 말한다. “일 시간에 망하였다”는 것은 앞의 구절에 이어지는 것이다.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는 세 번째 자들은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다.
18-19절은 “그 불붙은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 시간에 망하였도다.” 라고 말한다.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는 한 시간 내에, 곧 즉시에 그리스도께 멸망될 것이고(계17:12-14; 19:19-21), 물질적인 큰 바벨론 역시 한 시간 내에 주님께 멸망될 것이다. 아마 그 둘 모두가 주님께서 빛나는 영광 가운데 땅으로 오시는 시간과 동일한 시간에 그분께 멸망될 것이다(계18:1; 살후2:8).
<하늘에서 즐거워함>
20절은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이는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녀에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세 그룹 곧 왕들, 상고들, 선인들이 모두 바벨론의 멸망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고 한다. 일 시간에(10, 17, 19) 세상은 바벨론의 멸망을 슬퍼하지만 성도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들에게 하셨기 때문에 즐거워할 것이다.
<바벨론의 완전한 멸망을 선언함>
겔27:28-36절에 있는 두로의 함락에 대한 만가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 계18:9-19절에서 로마의 몰락이 확실하게 선언되자 그 대제국의 멸망을 조장하는 만가(輓歌)가 불리어진다. 왕들의 만가(9-10절), 상업인들의 만가(11-17절), 뱃사람의 만가(17절하반절-19절)가 연이어 기록되었다.
21절은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멧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바벨론을 멸하실지 모르지만 16:9절에서 하나님이 큰 바벨론을 기억하시는 것은 바로 큰 지진이 있은 후이다.
그러므로 아마 지진으로 멸하실 것이다. 지진이 있으면 반드시 불이 있으므로 땅 위의 왕과 상고 등은 멀리서 불타는 연기를 볼 것이지만 가까이 와서 도와주지는 못한다(19:9). 로마제국을 상징한 큰 멧돌과 같은 돌이 바다에 감겨 떠오르지 못함같이 로마가 영원히 멸망한다(계16:18-20).
22-24절은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멧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고 말한다.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 이것은 환락과 음란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음악을 의미한다. “더 이상”은 여섯 번 사용되었으며 23절 후반부에서 24절까지는 하느님의 심판이 바벨론에 이르게 한 세 가지 원인, 곧 죄를 말한다.
(1) 땅 위의 상고들은 다 땅 위의 존귀한 사람들이 된 것이며,
(2) 만국이 그녀의 복술에 미혹되었으며,
(3) 모든 죽임당한 사람들의 피가 다 이 성중에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상업의 잘못은 부의 균형 대신에 사람을 속이고 복술을 도입하고 정치를 타락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중대한 죄가 되었다. 복술은 귀신을 부르는 일인데 장래 귀신을 부르는 일은 아마 로마가 중심이 될 것이다. 사람의 피, 특히 선지자와 성도의 피를 흘리는 것도 로마가 가장 극심하였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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