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70.no.9. 표지제목: The Secret Life of Mother Teresa
이신칭의교리조차도그참된의미가왜곡될정도로선행을강조하고있는이시대에, 어쩌면테레사수녀에대한이비판은수많은돌맹이던짐을받게될지모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돌맹이를던지더라도, 댓글로붙인기사에나오는테레사수녀의어둔면을고려해보시기바랍니다. 이어둔면과밝은면을함께고려하여그를평가해야하겠습니다. 그비밀스런편지들중에하나에서그녀는“(사람들에게보여주는자신의) 미소는마스크이며모든것을감추는위장복입니다”고합니다. 이렇게도말합니다: “I spoke as if my very heart was in love with God –tender, personal love. If you were [there], you would have said, ‘What a hypocrisy’”(저는저는바로제가슴이하나님과부드럽고개인적인사랑으로교제하는것처럼[사람들에게]말했습니다. (하지만) 만일당신이[바로그곳에함께] 있었다면, 당신은이렇게말했을거예요. ‘이런위선자가있나!’“ 고해성사의편지에서이렇게솔직하게고백한것이그를성자되게하는것일까요?
평생 빈자를 돌본 '어머니'…"고통받는 환자들, 치료 소홀했다" 주변 증언도
일생을 빈자를 돌보는데 투신한 테레사 수녀는 2003년 복자 추대에 이어 지난 4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시성식을 통해 성자로 추대됐다.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 세상이 너의 비석이 될 거야-”
- 아틸라 요제프의 시 ‘일곱 번째 사람’ 중에서
‘빈자의 성녀’라 불리며 일생 극빈자를 돌본 공로로 ‘복자’에 오른 테레사 수녀가 현지시각 어제(4일) 바티칸에서 ‘성인’에 추대됐다. 가톨릭 성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할 까다로운 절차와 증명은 인구에 회자되어 온 테레사 수녀의 대중적 지지와 교황의 배려, 그리고 기적으로 인정받은 사건 등을 통해 신속히 진행, 이례적으로 선종 19년 만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갈등관계 속에 세상을 껴안았던 어머니의 이름을 세계 각국에서 반기고 있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가 되기 전, 학창시절의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Anjeze Gonxhe Bojaxhiu)는 성가대 활동과 봉사에 열심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정치인의 딸에서 신의 종으로
구유고슬라비아 정치인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난 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아녜즈 곤제 보야지우’로 1928년 19세의 나이로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수녀회에 입회, 1937년 수녀로서 종신서원을 하면서 구도자의 길에 들어섰다. 약자를 보살피라는 소명을 받고 인도에 정착한 것은 1952년. 한 신도가 제공한 집을 ‘임종자의 집’이라 이름 붙이고 그에 앞서 그녀가 수녀회에서 가르치던 제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사랑의 선교회’를 통해 죽음을 앞둔 빈자들과 고아가 된 그들의 자식을 돌보기 시작하며 본격적인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그녀는 일생을 신께 서원하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것’을 자신의 봉사 방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으로 고아가 된 자녀들 또한 돌보기 시작하면서 빈자의 어머니로서 낮은 곳에서 절망에 신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자선을 베풀었다.
1979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수상 후 소감을 밝히는 테레사 수녀 / 사진 = NovelPrize.org 영상 캡쳐
사회가 외면하는 사람들 품다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그 선행이 알려진 테레사 수녀는 수상 소감에서 “배고프고 벌거벗고 집이 없고 신체에 장애가 있으며 눈이 멀고 질병에 걸려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며 사랑도 받지 못하고 사회에 짐이 되고 모든 이가 외면하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상을 기쁘게 받겠다”고 밝히며 자신이 돌봐온 빈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수상을 계기로 세계 각국에서 구호와 성금이 밀려오자 테레사 수녀의 사랑의 선교회 또한 활동영역이 확대되었다. 한센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을 설립하고 극빈자와 고아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와 상담소, 그리고 학교를 세워 깊은 사랑을 실천한 테레사 수녀의 활동아래 손쉽게 죽음에 이르렀을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어 안식과 위안을 얻고 새로운 삶을 찾아갔다.
캘커타 마더 테레사 하우스 (임종자의 집) 내부 풍경. 사진 = motherteresa.org 제공
선행의 빛과 그림자
역사적 기록이 아닌 동시대를 함께 숨 쉬고, 생활했던 성인의 등장은 그 이전 단계인 복자 추대 때부터 다양한 논란을 불러왔다. 아름답고 헌신적인 모습뿐만 아니라, 인간이기에 간과하고 행한 실수와 과오를 모두 지켜본 사람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테레사 수녀의 모습 이면의 진실에 대해 끈질기게 밝혀오고 있다. 바티칸 내부 또한 성인 추대 과정에서 후보자의 과오를 조목조목 조사하고 밝히는 악마의 대변자(Advocatus Diaboli)가 그녀의 행적과 품성에 있어 회의적 의견을 다각도로 제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운영했던 ‘임종자의 집(칼리가트)’은 수많은 환자와 걸인들이 치료와 안식을 얻은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이 시설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이들의 증언은 그와 다른 풍경을 증언한다. 먼저 테레사 수녀가 이곳 시설을 개선하는 데에 의지가 전혀 없었고, 열악한 운영을 고집했다는 것. 한 자원봉사자의 증언에 따르면 주삿바늘을 찬물에 씻어 재활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중환자와 가벼운 증상의 환자 구분은 물론 남녀 구분이 따로 없이 일괄 수용하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는 사람들이 그저 몇 달, 몇 년간 누워만 있다가 죽어갔다고 고백했다.
이는 테레사 수녀의 확고한 신념에서 기인한 일들인데, 그녀는 “가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이라 믿었으며 이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이어지는 후원과 구호물품을 통해 시설을 개축하고 현대화된 의료장비를 갖추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테레사 수녀의 구호활동 이면의 의혹을 가감없이 밝혀낸 대표적 무신론자이다. 그는 테레사 수녀의 성인 추대에 앞서 교황청에서 해당 인물을 검증하기 위해 선정하는 '악마의 대변인' 측으로부터 초빙, 그녀의 과오에 대해 낱낱이 지적한 바 있다.
자비와 논란
사실 테레사 수녀는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고, 의학 공부는 수녀회를 떠나던 해 기초 간호학을 속성으로 수료한 1년이 전부였다. 전문 의료인이 나서 시설을 운영해도 의료적 혜택을 환자에게 고루 줄 수가 없는 상황에서 그녀는 의학상식에 앞서 종교적 믿음과 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동정심을 앞세워 구호활동에 매진했고 이 같은 활동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져 가는 그녀의 명성에 반해 방치되다시피 한 환경에서 죽어가는 환자들로 극단적 대비를 이뤘다. 이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책 ‘자비를 팔다’를 통해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평화를 부르짖는 그녀의 호소에 긴장 일로의 미국과 이라크 간 갈등이 두 정상의 화해 제스처로 종전에 이른 것은 당시 그녀가 가졌던 영향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녀는 엄격한 가톨릭 교리를 이유로 강간피해 여성의 출산을 권장한 일과 독재정권하에 고통 받는 아프리카 대륙의 사람들에게 무조건적 인내를 권한 일 등을 통해 당대 흑인 인권운동가 맬컴 엑스를 통해 “종교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착취와 차별로 얼룩진 아프리카 원주민을 순한 양처럼 반항하지 못하게 만든 점”이라고 우회적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일 열린 시성식 준비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테레사 수녀의 성화를 운반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인간에서 성자로
실수가 없는 인간의 삶은 바꿔 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일 것이다. 병자를 돌보느라 허리를 굽혀 생활한 탓에 말년에는 허리가 완전히 굽어 버렸고, 2차 심장발작 이후에도 병자를 돌보려다 말라리아에 감염돼 고통의 순간을 보냈던 그녀의 삶 전체가 무지와 독선에서 비롯된 과오로 인해 아예 없던 것이 될 순 없을 것이다.
그녀에 대해 비난의 날을 세웠던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교황청으로부터 성자 추대에 앞서 테레사의 과오를 살피는 악마의 대변인 역할로 초빙받아 바티칸에서 그녀의 실수와 잘못을 낱낱이 지적한 사실을 밝힌 바 있다. 자비와 긍휼을 모두 외면하는 시대, 한 시대를 품은 ‘어머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여전히 빛과 그림자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2013년 3월, 인도의 대표 조간신문인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서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다. 20세기 최고의 성인聖人으로 추앙 받는 마더 테레사(1910~1997)가 실은 "성자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보도였다. 마더 테레사가 누구인가. 투철한 인류애로 무장하여 언제나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곁을 지키며 사랑과 봉사로 점철된 삶을 살아낸 성자가 아니던가. 마더 테레사는 '생각처럼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뉘앙스의 보도는 분명 충격적이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주장이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신의 저서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에서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우상파괴자란 별명을 지닌 그는 2005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지식인 5위에 선정된 바 있는 지식인이다. 그런 그가 마더 테레사를 비판하는 책을 집필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과연 그가 밝혀낸 마더 테레사의 비밀은 무엇일까.
정치인과 기업가의 PR맨을 자처하다
세계가 필요로 한 것은 고뇌하면서도 기꺼이 복종하는 자세로 콜카타 빈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정치는 그녀의 전문이 아니었다. (중략) 미소 짓는 두 여인의 사진을 다시 보자. 마더 테레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으로 볼 때 이것은 '맞지' 않는다. 요즘 쓰는 표현으로 하자면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를 찬양하는 선전지 <공격>. 이 선전지 1981년 1월호에는 독재자의 아내인 미셸 뒤발리에와 마더 테레사가 다정하게 양손을 맞잡고 미소 짓는 사진이 실려있다. 장-클로드 뒤발리에와 미셸 뒤발리에는 아이티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온갖 잔학 행위를 저지른 철권통치자다. 그럼에도 마더 테레사가 그들과 친분을 맺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후원금 때문이다. 마더 테레사는 저항하는 대중들에게 가난은 하나님의 축복이니 현재에 감사하고 복종하며 살 것을 종용한다. 후원금에 대한 반대급부로 독재자의 이미지 세탁은 물론 대중선동에도 앞장선 것이다.
히친스는 존 로저의 사례도 소개한다. 존 로저는 MSIA라는 이름을 지닌 광신집단의 지도자로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우월한 존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닌 인물이다. 마더 테레사는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존 로저의 후원금을 받기 그와 교류를 맺었다. 덕분인지 존 로저가 주최한 행사에서 '성실상'과 함께 1만 달러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테레사는 이외에도 메리언 베리(1979~1991년 워싱턴 D.C 시장 역임)와 힐러리 로뎀 클린턴(전 미국 국무부 장관) 등 전세계 유명 정치인 및 기업가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아갔고 동시에 후원금도 쌓여갔다.
혹자는 이렇게 변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빈자들을 구호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법인데 선의의 기부금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명성에 금이 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정치인과 기업가들의 이미지 메이커가 된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히친스의 반론을 들어보자.
비뚤어진 신념으로 고통을 선물하다
진단 소홀과 함께, 제대로 된 통증 관리가 없다는 점이 마더 테레사의 선교회와 호스피스 운동을 뚜렷하게 구분 짓는다. (중략) 재해 발생 지역의 빈약한 아마추어 진료소에서조차 볼 수 없는 것이다.
세계 유수의 의학 전문지 <랜싯>의 편집장을 지낸 폭스 박사는 1994년 콜카타에 위치한 마더 테레사의 시설 '죽어가는 이들을 위한 집'을 방문한 후 경악을 금치 못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구호단체로 손꼽히는 테레사의 시설이 터무니 없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간단한 구호물자나 비상약도 찾아볼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르핀조차 없이 고통 속에 죽어갔다.
테레사가 본격적인 구호활동을 시작한 이래 약 50년 동안(특히 1970년 이후 30여 년간) 받은 후원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러 정치인과 기업가에게서 얻어낸 후원금도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그럼에도 그의 시설에 간단한 구호물품조차 없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히친스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마더 테레사의) 목적은 고통을 성실하게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고통, 그리고 굴종에 기반한 일종의 신흥종파를 선전하는 것이다. 마더 테레사(그녀 자신은 심장 질환 및 노환과 싸울 때 서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값비싼 병원들에서 치료 받았다는 사실에 유의하자)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속내를 드러낸 적이 한 번 있었다. 그녀는 말기암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던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처럼 고통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께서 당신에게 입 맞추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히친스가 수녀와 자원봉사자들에게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마더 테레사는 자신의 시설에 구호물품이 제대로 갖춰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가난과 고통은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자신의 비뚤어진 신념을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강요한 것이다. 그 기형적인 신념 때문에 간단한 약 처방만으로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어갔다. 그런데 정작 마더 테레사 자신은 병에 걸리자 뛰어난 시설의 병원에서 값비싼 장비들로 치료를 받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가 받은 엄청난 액수의 후원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마더 테레사가 정부 혹은 준정부 기구들로부터 받은 금액의 총액이 얼마인지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기금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또한 아무도 물은 적이 없었다. 마더 테레사가 살아 생전 빈민 구호보다는 선교 사업에 더 열성적이었다는 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힌트다.
속이는 자가 아닌 속는 자들에게 던지는 경고
이 책의 논의의 상대는 속이는 자가 아니라 속는 자들이다. 마더 테레사가 어리숙하고 비판 능력 없는 숱한 관찰자들이 숭배하는 대상이라 한들 그게 그녀만의 탓은 아니다. (중략) 라틴어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속기를 바라니, 속여 먹으라
<자비를 팔다>는 마더 테레사 비판에 그치지 않고 진실을 보려고 노력하지 않는 우리의 안일함을 경고하며 끝을 맺는다. 권위에 속아 거짓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여론에 휩쓸려 쉽게 중심을 잃어버리는 우리의 행태에 경종을 울린다.
마더 테레사의 사례처럼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힘 있는 이해 집단에 의해 재단된 '거짓'인 경우가 적지 않다. 관점에 따라 척도가 달라지고 척도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고 말하는 히친스. 히친스를 읽어보자.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당신의 '관점'을 조준선 정렬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