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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귀신속(兵貴神速)
군사를 지휘함에는 귀신같이 빠름을 귀히 여긴다는 뜻으로, 군사 행동은 언제나 신속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목숨이나 이익을 다투는 일은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兵 : 병사 병(八/5)
貴 : 귀할 귀(貝/5)
神 : 귀신 신(礻/5)
速 : 빠를 속(辶/7)
출전 : 삼국지(三國志) 卷14 위서(魏書) 곽가전(郭嘉傳)
이 성어는 삼국지(三國志) 卷14 위서(魏書)곽가전(郭嘉傳)에 나오는 말이다.
조조(曹操)는 원소(元紹)를 관도에서 패퇴시켰으며, 이에 원소는 울화병으로 죽었다. 원소가 죽고 막내아들 원상(袁尙)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기주(冀州)의 장관이 되자, 장남 원담(袁譚)과 원상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되었다.
조조는 이틈을 타 원씨 형제들을 공격했지만, 이들이 단결하여 대항하자 곽가(郭嘉)의 계책에 따라 군사를 철수시켰다.
조조가 물러가자 이들 형제 사이에 다시 싸움이 붙어 결국 장남 원담이 기주를 차지했다. 원상은 둘째 형 원희(袁熙)에게 피신했다. 조조는 형제로부터 고립된 원담을 먼저 쳐서 멸망시켰다.
그런데 원희의 세력 내에서도 초촉(焦觸)과 장남(張南)이 반란을 일으키자 원희와 원상은 북쪽에서 강대한 세력을 쥐고 있던 오환(烏丸)의 답돈선우(蹋頓單于)에게 의지하여 재기를 도모하려고 했다.
조조의 세력이 날로 확장되자 선우는 군대를 일으켜 자주 조조를 괴롭혔다. 이때 이야기다.
太祖將征袁尚及三郡烏丸, 諸下多懼劉表使劉備襲許以討太祖.
태조(조조)가 장차 원상(袁尙) 및 답돈선우(蹋頓單于; 三郡烏丸)을 치려 하니, 수하들 다수는 유표(劉表)가 유비(劉備)를 시켜 허(許)를 습격하며 태조를 공격할까봐 우려하였다.
嘉曰: 公雖威震天下, 胡恃其遠, 必不設備.
곽가가 말했다, “공이 비록 위엄으로 천하를 진동시키고 있으나 호(胡; 북방민족의 통칭, 여기선 오환)는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믿고 있으니 필시 방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因其無備, 卒然擊之, 可破滅也.
그들에게 방비가 없음을 틈타 갑작스럽게 공격한다면 격파하여 멸할 수 있습니다.
且袁紹有恩於民夷, 而尚兄弟生存.
게다가 원소(袁紹)가 민이(民夷; 중국의 일반백성과 오랑캐)에게 은혜를 베풀어 원상 형제가 생존해 있습니다.
今四州之民, 徒以威附, 德施未加, 舍而南征, 尚因烏丸之資, 招其死主之臣, 胡人一動, 民夷俱應, 以生蹋頓之心, 成覬覦之計, 恐青 冀非己之有也.
4주(四州; 기주, 청주, 병주, 유주)의 백성들은 단지 위엄으로써 강제로 우리에게 귀부한 것이며 은덕과 시혜가 아직 더해지지 못했는데 이를 내버려 두고 유표를 치며 남정(南征)한다면, 원상은 오환(烏丸)이라는 자산을 기반으로 그의 사주지신(死主之臣;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런 신하)들을 불러 모을 것이고 이와 더불어 호인(胡人)이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민이(民夷)가 함께 호응할 것이니, 이는 답돈(蹋頓; 요서오환 출신으로 당시 삼군오환의 수장)에게 다른 마음이 생기게 하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의 계책을 이루게 하는 것이라, 청주, 기주가 우리의 소유가 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表, 坐談客耳, 自知才不足以御備, 重任之則恐不能制, 輕任之則備不為用, 雖虛國遠征, 公無憂矣.
유표는 좌담객(坐談客; 앉아서 담소하기나 좋아하는 인물)일 뿐이라 자신의 재능이 유비를 부리기에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유비에게 중임을 맡기면 그를 제어할 수 없을까 두려워하고 가벼운 임무를 주면 유비가 별 쓸모가 없을 것이니 우리가 비록 나라를 비워두고 원정(遠征)하더라도 공이 염려하실 게 없습니다.”
太祖遂行. 至易, 嘉言曰: 兵貴神速.
이에 태조(조조)가 실행에 옮겼다. 역(易; 기주 하간국 역현)에 도착하니 곽가가 말했다, “병(兵)에서는 신속(神速)을 귀하게 여깁니다.
今千里襲人, 輜重多, 難以趣利.
且彼聞之, 必為備.
이제 천리 길을 가며 적을 습격하려는데 치중(輜重; 짐수레)이 많으면 이득을 취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치중으로 인해 진군이 늦어져 저들이 우리가 온다는 것을 듣게 되면 필시 방비를 할 것입니다.
不如留輜重, 輕兵兼道以出, 掩其不意.
치중은 남겨두고 경병(輕兵; 가볍고 날랜 차림의 군대)으로 겸도(兼道; 이틀 길을 하루에 달려감)하여 출군함으로써 엄기불의(掩其不意; 적이 뜻하지 못할 때에 엄습함)하느니만 못합니다.”
太祖乃密出盧龍塞, 直指單于庭.
虜卒聞太祖至, 惶怖合戰.
이에 태조가 은밀히 노룡새(盧龍塞)를 나가 선우(單于) 진지로 곧바로 향했다. 노(虜; 오환)가 태조가 갑자기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는 당황하고 두려워하여 어울려 싸웠다.
大破之, 斬蹋頓及名王已下.
尚及兄熙走遼東.
태조가 이를 대파하고 답돈(蹋頓) 및 명왕(名王; 오환의 직책 명) 이하 여러 명을 베었다. 원상 및 원상의 형 원희(袁熙)는 요동(遼東)으로 달아났다.
또, 오대십국시기(五代十國時期)에 후당(後唐)이 침략해온 후량(後梁)의 군대를 격파하고 장군 왕언장(王彦章)을 포로로 잡았다. 전투가 끝나고 후당(後唐)의 황제(皇帝) 이존훈(李存勛)이 대신들을 소집해 다음 행동에 대해 상의를 했다.
승기를 잡은 김에 후량(後梁)의 성도인 개봉(開封)을 공격하자는 의견과, 후량(後梁)의 주장(主將)인 은응(殷凝)의 군대가 아직 황하(黃河) 이북에 있기 때문에 가벼이 군대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대립했다.
이때 대장(大將) 이사원(李嗣源)이 용병(用兵)에 있어 행동의 신속함이 가장 중요하기에(兵貴神速) 만일 신속하게 개봉(開封)을 공격한다면 은응(殷凝)의 군대가 황하를 건너 구원하러 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당(後唐)의 황제(皇帝) 이존훈(李存勛)이 그의 의견을 받아들여 신속하게 개봉(開封)을 공격해 후량(後梁) 조정 관원을 포로로 잡자 은응(殷凝)도 군대를 이끌고 투항했다. 후당(後唐)이 단지 닷새 만에 일거에 후량(後梁)을 멸망시켰다.
위 두 예는 정책이 결정되면 이를 과감하고 철저하게 진행시켰을 때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다.
이는 어쩌면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기해 진행이 더디면 항상 정책에 반대하는 집단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모든 일은 지지부진하게 되어 실패로 돌아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무턱대고 빨리 빨리 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곽가(郭嘉)가 좋은 계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 문제에 대해 이미 깊은 사고를 통한 철저한 계산이 서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안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분석은 성공의 관건이다. 따라서 사안에 따라 적절히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의 시금석(試金石)이 될 것이다.
병귀신속(兵貴神速)
전쟁에 나섰다 하면 승리해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패하고 나면 끝이다. 적이 강을 건너 와 진용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의로 생각한 襄公(양공)은 참패를 당해 宋襄之仁(송양지인)이란 웃음거리로 남았다.
이와는 달리 속임수를 쓰는 것도 부끄러워하거나 싫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란 말이 있다.
또 孫子兵法(손자병법)에도 전쟁은 오래 끌어서는 안 되고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야 한다며 방법이 졸렬하더라도 빨리 매듭을 짓도록 兵聞拙速(병문졸속)하라고 가르쳤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군사를 지휘할 때 가장 귀히 여겨야 할 것(兵貴)이 귀신같은 빠름(神速)이다. 말할 것도 없이 목숨이 달려 있는데 용병에는 잠시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최상이다.
三國志(삼국지)’의 魏書(위서)에서 曹操(조조)가 가장 아끼던 참모 郭嘉(곽가)가 한 말로 나온다.
그는 병법에 밝고 과단성이 있어 정벌에 나설 때마다 뛰어난 계책으로 신망을 받았다. 조조로부터 '오직 곽가만이 나의 뜻을 잘 안다(唯奉孝爲能知孤意)'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奉孝(봉효)는 그의 자다.
後漢(후한) 말기의 혼란 속에서 조조는 명문가 출신 袁紹(원소)를 격파하고 세력을 크게 키웠다. 원소가 분에 못 이겨 분사하자 그의 세 아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당시 북쪽에는 소수민족의 두목 單于(선우)가 강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권력을 잃은 원소의 두 아들이 도주하여 선우에 의지해 오자 변경 침략이 잦았다. 조조는 고민 끝에 선우를 소탕하기로 하고 책사 곽가에게 방책을 물었다.
그는 ‘용병은 신속해야 합니다. 천 리 먼 곳을 공격하는데 짐 실은 수레가 많으면 이롭지 못합니다(兵貴神速 今千里襲人 輜重多 難以趣利)’라며 경기병을 보내 적의 허를 찔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조는 계책을 받아들여 선우를 물리쳤다.
싸움터가 아니라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 말이 있듯이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처리해야 한다.
전번 새 정부가 출범했을 때 전광석화처럼 적폐를 도려내 국민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시기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는 졸속이 끼면 안 되니 계획이 치밀해야 함은 물론이다.
병귀신속(兵貴神速)
후한(後漢) 말기 황실과 조정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각처에서 군웅이 할거할 무렵, 명문 출신인 원소(袁昭)는 기주(冀州), 청주(靑州), 유주(幽州), 병주(幷州) 등 하북(河北) 지역 4개 주를 손아귀에 넣고 호령함으로써 제후들 가운데 세력이 가장 막강했다.
그런 원소의 최대 경쟁자가 조조(曹操)였다. 한때는 동지요 친구 사이였으나, 이제는 어느 쪽이든 한 사람은 살고 한 사람은 죽어야 할 적이 된 것이다. 마침내 원소와 조조는 관도(官渡)에서 격돌했다. 이때가 서기 200년이다.
병력이나 동원 물량에서는 원소가 월등했지만, 용병술의 천재인 조조가 기회를 포착해 적의 치중 부대를 습격해 식량을 불태워 버림으로써 상대방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 없게 만들었다. 그 여세를 몰아 맹공격을 가하자, 원소는 참패하여 달아나다가 죽고 말았다.
원소한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그 형제들끼리 후계 다툼을 벌였다. 막내 원상(袁尙)이 생전 아버지의 총애에 힘입어 기주 목(牧)이 되었으니, 장남인 원담(袁譚)이 가만 있을 턱이 없었다.
“나쁜 놈! 찬물을 마실 때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형인 나를 젖히고 아버님의 자리를 차지하다니.”
분노하여 이성을 잃은 원담은 조조를 겨누어야 할 창끝을 돌려 아우를 쳤고, 원상은 견디지 못해 둘째 형 원희(袁熙)에게 달아났다. 그 기회를 틈타 조조가 맹공격을 가했고, 원담은 스스로 군의 앞장에 서서 돌격하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남은 두 원씨 형제는 영토를 고스란히 조조에게 빼앗기고 북쪽으로 달아났는데, 그곳에는 오환(烏丸)이라는 용감한 오랑캐 부족들이 살고 있었다. 그 오환은 전성기 때의 원소가 적극 회유하여 배후 세력으로 삼았기 때문에 원씨 형제에게 호의적이었다.
이때 원씨 형제를 따뜻하게 맞아들인 것은 오환 중에서도 요서(遼西) 지역 오환의 선우(單于)였다. “이곳은 중원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풍토가 나빠서 조조인들 별 수 없을 것이니, 안심하고 힘을 길러 아버님 원수를 갚도록 하시오.”
선우는 원씨 형제를 이렇게 위로하고, 한편으로 조조의 신경을 건드려 인내심을 시험하려는 듯이 날랜 기병을 보내어 변경 여러 요새를 치고 빠지기를 계속했다. “이거 안 되겠군. 오랑캐를 토벌하여 북변의 고민거리를 완전히 해소해야겠어.”
마침내 참을 수 없게 된 조조는 주위의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군대를 동원했다. 그렇지만 그 군사 작전은 순조롭지 못했다. 기병과 보군이 혼성되어 있는 데에다 장거리로 식량을 수송해야 하기 때문에 행군 속도가 무척 느렸다.
더군다나 겨울인 데다가 척박한 땅과 불순한 기후가 예상 외의 장해가 되었다. 그러니 인마가 지칠 수밖에 없었고, 병사들의 사기도 자연히 떨어졌다.
조조가 내심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책사인 곽가(郭嘉)가 말했다. “군사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귀신과도 같은 신속함(兵貴神速)’입니다. 그러니 먼저 기병을 앞세워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그대의 말이 옳다.”
조조는 심기일전하여 스스로 수천의 기병을 이끌고 질풍같이 달려갔다. 5백여 리의 산길을 쉬지 않고 북상한 조조의 기병은 마침내 오환의 군대를 만나 돌진했다.
병력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만 상대방의 의표를 찌른 데다가 거기서 잘못되는 경우 돌아갈 수도 없게 되고, 또한 조조군 주장(主將)의 탁월한 용병술에 잘 부응하여 결사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조조군의 대승으로 끝났고, 오환군은 재기불능의 비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원희와 원상은 요동(遼東)으로 달아나 그곳 태수 공손강(公孫康)에게 몸을 의탁했는데, 조조는 내친 김에 끝장을 보자는 주위의 권고도 물리치고 이렇게 말했다. “놔두어도 공손강이 원씨 형제의 목을 바칠 것이니라.”
조조는 후환이 두려워진 공손강이 보신책으로 두 도망자를 죽일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병귀신속(兵貴神速)
군사를 움직이는 데는 신속이 중요하다.
전쟁에 나섰다 하면 승리해야 한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패하고 나면 끝이다. 적이 강을 건너 와 진용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의로 생각한 襄公(양공)은 참패를 당해 宋襄之仁(송양지인)이란 웃음거리로 남았다. 이와는 달리 속임수를 쓰는 것도 부끄러워하거나 싫증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兵不厭詐(병불염사)란 말이 있다.
또 孫子兵法(손자병법)에도 전쟁은 오래 끌어서는 안 되고 속전속결로 승부를 내야 한다며 방법이 졸렬하더라도 빨리 매듭을 짓도록 兵聞拙速(병문졸속)하라고 가르쳤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군사를 지휘할 때 가장 귀히 여겨야 할 것(兵貴)이 귀신같은 빠름(神速)이다. 말할 것도 없이 목숨이 달려 있는데 용병에는 잠시라도 머뭇거리지 말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것이 최상이다.
三國志(삼국지)의 魏書(위서)에서 曹操(조조)가 가장 아끼던 참모 郭嘉(곽가, 170~207)가 한 말로 나온다. 그는 병법에 밝고 과단성이 있어 정벌에 나설 때마다 뛰어난 계책으로 신망을 받았다. 조조로부터 '오직 곽가만이 나의 뜻을 잘 안다(唯奉孝爲能知孤意/ 유봉효위능지고의)'란 말을 들을 정도였다.
奉孝(봉효)는 그의 자다. 後漢(후한) 말기의 혼란 속에서 조조는 명문가 출신 袁紹(원소)를 격파하고 세력을 크게 키웠다. 원소가 분에 못 이겨 분사하자 그의 세 아들 사이에 권력 다툼이 일어났다. 당시 북쪽에는 소수민족의 두목 單于(선우)가 강대한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권력을 잃은 원소의 두 아들이 도주하여 선우에 의지해 오자 변경 침략이 잦았다. 조조는 고민 끝에 선우를 소탕하기로 하고 책사 곽가에게 방책을 물었다. 그는 ‘용병은 신속해야 합니다. 천 리 먼 곳을 공격하는데 짐 실은 수레가 많으면 이롭지 못합니다(兵貴神速 今千里襲人 輜重多 難以趣利/ 병귀신속 금천리습인 치중다 난이취리)’라며 경기병을 보내 적의 허를 찔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조는 계책을 받아들여 선우를 물리쳤다. 싸움터가 아니라도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는 말이 있듯이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처리해야 한다. 과거 새 정부가 출범했을 때 전광석화처럼 적폐를 도려내 국민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시기를 잘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여기서는 졸속이 끼면 안 되니 계획이 치밀해야 함은 물론이다.
▶️ 兵(병사 병)은 ❶회의문자로 斤(근; 무기)와 양손의 합자(合字)이다. 무기를 두 손으로 쥐고 있음의 뜻으로, 나중에 무기를 갖는 무사(武士)나 전쟁의 뜻에도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兵자는 ‘병사’나 ‘무기’, ‘싸움’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兵자는 斤(도끼 근)자와 廾(받들 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갑골문에 나온 兵자를 보면 도끼나 창을 양손으로 받들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兵자는 이렇게 양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무기’나 ‘병기’라는 뜻을 갖게 되었고 후에 ‘병사’나 ‘싸움’이라는 뜻이 파생되었다. 그래서 兵(병)은 ①병사(兵士), 병졸(兵卒), 군사(軍士), 군인(軍人) ②무기(武器), 병기(兵器) ③싸움, 전쟁(戰爭) ④재앙(災殃), 원수(怨讐), ⑤상하다, 다치다 ⑥치다, 무기로써 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마칠 졸(卒), 병장기 융(戎), 군사 군(軍),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장수 장(將)이다. 용례로는 전쟁에 쓰는 제구를 병구(兵具), 전쟁으로 나라가 어지러워짐을 병란(兵亂), 군대의 힘이나 군대의 인원수를 병력(兵力), 전쟁에 쓰는 모든 기구를 병기(兵器), 병사에 관한 사무를 병무(兵務), 하사관 아래의 군인을 병졸(兵卒) 또는 병사(兵士), 병법에 관하여 쓴 책을 병서(兵書), 백성이 의무로 군적에 편입되어 군무에 종사하는 일을 병역(兵役), 전쟁을 하는 방법을 병법(兵法), 사병의 가장 높은 계급을 병장(兵長), 전쟁할 때 쓰는 수레를 병거(兵車), 군대를 파출하는 일을 파병(派兵), 장교와 사병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장병(將兵), 지위가 낮은 병사를 졸병(卒兵), 장교가 아닌 모든 졸병을 사병(士兵), 갑작스레 적을 내리치려고 요긴한 목에 숨어 있는 군사를 복병(伏兵), 법에 의거하여 해당자를 군대에 복무시키기 위하여 모음을 징병(徵兵), 굳세고 강한 군사를 강병(剛兵), 초소를 지키는 병사를 초병(哨兵), 병가에는 항상 있는 일이라는 병가상사(兵家常事), 병거를 거느리고 무력(武力)으로 하는 회맹을 병거지회(兵車之會), 용병에 있어서는 적을 속이는 것도 싫어하지 않는다는 병불염사(兵不厭詐), 병사가 칼에 피를 묻히지 아니하였다는 병불혈인(兵不血刃)전쟁에서 사람은 죽는다는 병사지야(兵死地也) 등에 쓰인다.
▶️ 貴(귀할 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조개 패(貝; 돈, 재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궤, 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궤)는 흙을 담는 그릇,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로, 나중에 흙이 아니고 물건을 넣어두는 것에도 쓰였다. 貝(패; 재산, 화물), 많이 있는 보배, 귀하다, 귀하게 여기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貴자는 ‘귀하다’나 ‘(신분이)높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貴자는 臼(절구 구)자와 土(흙 토)자,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貴자를 보면 양손으로 흙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농경을 중시하던 시대에 흙은 만물을 창조하는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이렇게 양손으로 흙을 감싸는 모습을 그려져 ‘귀하다’나 ‘귀중하다’라는 뜻을 표현했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여기에 貝자가 더해지면서 귀중함의 존재가 흙에서 재물로 옮겨져 오게 되었다. 그래서 貴(귀)는 (1)한자로 된 명사(名詞) 앞에 쓰이어 상대편을 높이어 예의(禮儀)를 나타내는 말 (2)희귀(稀貴)하거나 존귀(尊貴)하다는 뜻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귀하다 ②신분이 높다 ③중요하다, 귀중하다 ④귀하게 여기다, 숭상하다 ⑤공경하다, 존중하다 ⑥비싸다, 값이 높다 ⑦바라다 ⑧귀(貴)한 사람 ⑨높은 지위(地位)나 권세(權勢) ⑩높임말 ⑪존칭(尊重)의 접두어(接頭語)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높을 항(亢), 높을 탁(卓), 높을 교(喬), 높을 준(埈), 높을 존(尊), 높을 아(峨), 높을 준(峻), 높을 숭(崇), 높을 외(嵬), 높을 요(嶢), 높을 륭(隆), 밝을 앙(昻), 드물 한(罕), 높을 고(高),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천할 천(賤)이다. 용례로는 편지나 물품을 받는 단체의 이름 밑에 쓰는 말을 귀중(貴中),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말을 귀하(貴下), 귀하고 소중함을 귀중(貴重), 신분이 높고 가문이 좋은 사람을 귀족(貴族), 비싼 값을 귀가(貴價), 귀한 손님을 귀빈(貴賓), 존귀하고 이름이 높음을 귀현(貴顯), 부귀와 빈천을 귀천(貴賤), 신분이 높은 사람을 귀인(貴人), 상대방의 나라를 높여 부르는 말을 귀국(貴國), 특별히 귀염을 받는 아이를 귀동(貴童), 존귀한 자태를 귀태(貴態), 귀하게 될 모습 또는 체격을 귀격(貴格), 지체가 높고 귀함을 영귀(榮貴),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김을 자귀(自貴), 드물어 매우 귀함을 희귀(稀貴), 인품이나 지위가 높고 귀함을 고귀(高貴), 재산이 넉넉하고 지위가 높음을 부귀(富貴), 보배롭고 귀중함을 진귀(珍貴), 물건값이 뛰어 오름을 등귀(騰貴), 물건이 귀함을 품귀(品貴), 높고 귀함을 존귀(尊貴), 곡식이 달리어 값이 비쌈을 곡귀(穀貴),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긴다는 귀이천목(貴耳賤目), 고니를 귀히 여기고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먼 데 것을 귀하게 여기고 가까운 데 것을 천하게 여기는 것이 인지상정이라는 귀곡천계(貴鵠賤鷄), 신분이나 지위의 귀함함과 천함과 높음과 낮음을 귀천상하(貴賤上下) 등에 쓰인다.
▶️ 神(귀신 신)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보일 시(示=礻; 보이다, 신)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申(신)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申(신)과 만물을 주재하는 신(示)의 뜻을 합(合)하여 정신을 뜻한다. 申(신)은 번갯불의 모양이고, 示(시)변은 신이나 제사에 관계가 있음을 나타낸다. 神(신)은 천체(天體)의 여러 가지 변화를 부리는 신, 아주 옛날 사람은 천체의 변화를 큰 신비한 힘을 가진 신의 행위라 생각하고 그것을 번갯불로 대표시켜 神(신)자로 삼았다. ❷회의문자로 神자는 ‘귀신’이나 ‘신령’, ‘정신’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神자는 示(보일 시)자와 申(펼 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申자는 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옛사람들은 번개는 신과 관련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하늘에서 번개가 내리치는 모습을 그린 申자는 ‘하늘의 신’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후에 申자가 ‘펴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여기에 示자를 더한 神자가 ‘신’이나 ‘신령’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神(신)은 (1)인간의 종교심(宗敎心)의 대상이 되는, 초인간적 위력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한다고 하는 존재. 명명(冥冥)한 중에 존재하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능력을 가지고 인류에게 화복(禍福)을 내린다고 믿어지는 신령(神靈). 곧 종교 상 귀의(歸依)하고 또 두려움을 받는 대상 (2)하느님 (3)귀신(鬼神) (4)신명(神明) (5)삼신(三神) (6)영묘 불가사의(靈妙不可思議)하여 인지(人智)로써는 헤아릴 수 없는 것 (7)거룩하여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것. 신성(神聖) 등의 뜻으로 ①귀신(鬼神) ②신령(神靈) ③정신(精神), 혼(魂) ④마음 ⑤덕이 높은 사람 ⑥해박한 사람 ⑦초상(肖像) ⑧표정(表情) ⑨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 ⑩신품(神品) ⑪신운(神韻: 고상하고 신비스러운 운치) ⑫영묘(靈妙)하다, 신기하다 ⑬화하다 ⑭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⑮소중히 여기다 ⑯영험이 있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신령 령/영(靈), 귀신 귀(鬼), 넋 혼(魂), 넋 백(魄)이다. 용례로는 선도를 닦아서 도에 통한 사람을 신선(神仙), 신과 사람 또는 신과 같은 만능의 사람을 신인(神人), 죽은 사람 위(位)를 베푸는 나무 패를 신주(神主), 신의 종복이란 뜻으로 기독교 신도가 스스로 낮추는 말을 신복(神僕), 신령의 자리로서 설치된 것이나 장소를 신위(神位), 영성의 생명 또는 신의 명령을 신명(神命), 신묘하고 기이함을 신기(神奇), 신령을 모신 집을 신당(神堂), 신기하고 영묘함을 신묘(神妙), 신의 공덕을 신덕(神德), 귀신이 몸에 접함을 신접(神接), 마음이나 생각을 정신(精神), 사람의 죽은 넋으로 어떤 일을 유난히 잘하는 사람을 귀신(鬼神), 본 정신을 잃음을 실신(失神), 땅을 맡은 신령을 지신(地神), 신을 받들어 공경함을 경신(敬神), 비밀에 속하는 일을 누설함을 신기누설(神機漏泄), 신이 행하는 뛰어난 계략을 신기묘산(神機妙算), 큰 일을 당해도 냉정하여 안색이 평소와 다름없이 변하지 않음을 신색자약(神色自若), 예술작품 따위에서 신비한 기운이 어렴풋이 피어 오름을 신운표묘(神韻縹渺), 신과 사람이 함께 노한다는 신인공노(神人共怒), 헤아릴 수 없는 변화의 재주를 가진 힘을 신통지력(神通之力), 귀신처럼 자유자재로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는 신출귀몰(神出鬼沒) 등에 쓰인다.
▶️ 速(빠를 속)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나무를 다발로 묶음의 뜻을 나타내는 束(속)이 합(合)하여 '빠르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速자는 ‘빠르다’나 ‘빨리 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速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束(묶을 속)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束자는 나뭇단을 묶어 놓은 모습을 그린 것으로 ‘묶다’라는 뜻이 있다. 갈 길을 재촉할 때는 채비를 단단히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速자는 나뭇단을 단단히 묶어 놓은 모습을 그린 束자를 응용해 발목의 고름을 단단히 조였음을 표현하고 있다. 速자는 ‘빠르다’라는 뜻이 있지만, 이외에도 ‘도래하다’나 ‘자주’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速(속)은 ①빠르다 ②빨리 하다 ③이루다 ④되다, 도래(到來)하다 ⑤부르다 ⑥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⑦에워싸다 ⑧빨리 ⑨자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빠를 첩(捷), 빠를 숙(潚), 빠를 신(迅), 빠를 괄(适), 이를 조(早), 민첩할 민(敏),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더딜 지(遲)이다. 용례로는 움직이는 사물의 빠르기나 빠른 정도를 속도(速度), 글을 빨리 읽는 것을 속독(速讀), 빨리 알리는 것 또는 그 보도를 속보(速報), 빠른 힘이나 빠르기를 속력(速力), 빨리 이루어지거나 이룸을 속성(速成), 지레 짐작으로 그릇 판단하거나 빨리 결정함을 속단(速斷), 빨리 배움을 속수(速修), 빨리 적음으로 속기술로 적음을 속기(速記), 뛰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걷는 걸음을 속보(速步), 우편물 등을 속히 배달함을 속달(速達), 날쌔고 빠름을 신속(迅速), 서투르지만 빠르다는 뜻으로 지나치게 서둘러 함으로써 그 결과나 성과가 바람직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졸속(拙速), 매우 이르고도 빠름을 조속(早速), 급하고 빠름을 급속(急速), 아주 빠른 속도를 고속(高速), 지나친 속도를 과속(過速), 잽싸고 빠름을 민속(敏速), 속도를 더함을 가속(加速), 신기할 만큼 썩 빠름을 신속(神速), 한 시간을 단위로 하여 측정한 속도를 시속(時速), 속도가 줄어짐을 감속(減速), 실제의 속도를 실속(實速), 흐르는 물의 속도를 유속(流速), 속도가 매우 빠름을 쾌속(快速), 소리의 속도를 음속(音速), 싸움을 오래 끌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재빨리 싸워 전시 상황을 결정한다는 말을 속전속결(速戰速決), 싸움을 질질 끌지 않고 빨리 쳐들어가서 이기고 짐을 빨리 결정한다는 말을 속진속결(速進速決), 아무렇게나 급하게 이루어진 것은 역시 곧 결단이 난다는 말을 속성속패(速成速敗), 빨리 하고자 하면 도달하지 못함 또는 어떤 일을 급하게 하면 도리어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욕속부달(欲速不達), 일을 함에는 신속함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말을 사귀신속(事貴神速), 속히 됨을 바라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욕속지심(欲速之心), 교지는 졸속만 못하다는 뜻으로 뛰어나지만 늦는 사람보다 미흡해도 빠른 사람이 더 낫다는 말을 교지졸속(巧遲拙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