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을까?
차는 차나무의 새순과 새잎으로 만드니, 우리 차나무의 시작부터 알아 보자.
'신라의 중국차 도입설'은 정사인 삼국사기에 실려 있고, 예전부터 차에 대한 역사와 시문에서 자주 거론되어 왔다. 9세기 초, 신라 흥덕왕 때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이 차씨를 가지고 와서 지리산에 심었고, 차는 선덕왕 때도 있었으나 이때부터 성행하였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인도차 전래설'은 조선말부터 일제까지 살았던 이능화의 견해이다. 1세기 초,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인 인도의 공주 허황옥이 차씨를 가져와 김해에 심었다는 것이다.
'우리차 자생설'은 지리산이 고생대의 산이고 온대 기후에 속하여 해저로의 침강이나 빙하의 침식이 없었으므로 신생대 이전부터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는 일제 말에 태어난 하상연의 주장이다.
최근에 대두된 '백제 도입설'은 중국 육조와 교류가 빈번하였던 백제가 신라보다 이르게 중국차를 도입했을 것이라는 설인데...
'중국차 도입설'은 '우리차 시배지설'로 왜곡되어 통용되고 있으니 '중국 도입차 파종지설'로 바로 잡아야 한다. 다른 설들은 역사적 근거와 이론적 토대가 박약하다.
원조가 누구인지, 도입종인지 토종인지, 순종인지 잡종인지는, 편을 갈라 니전투구로 갑론을박해서는 안되고, 유전자 분석 등의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밝혀내어야 한다.
차농사꾼 입장에서는 그런 것들은 안물안궁이고, 육종과 재배법의 연구를 통하여 좋은 차나무를 공급받고 차밭의 조성과 차나무 재배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과 지원을 애타게 바랄 뿐이다.
아래의 사진은 쌍계사 인근에 조성된 '우리차 시배지'의 풍경이다. 줄줄이 서 있는 비석들은 '신라유당사 김대렴공차시배추원비'와 '해동신라국다성원조 진감국사차시배추앙비'와 '차시배지비'와 '다도중흥삼사 초의만허고산추념비' 들인데, 왜곡과 조작의 기념비로 길이길이 보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