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대 인문대에서' 미국의 민주주의, 대통령 리더십' 이라는 인문학 특강을 했다. 김봉중 교수는 미국사를 전공했는데 미국에서 교수를 하다 모교로 돌아와 재직하고 있다. 앞서 소개했던 책과 함께 구입해서 읽었다. 사실 미국의 역사는 짧다. 우리 세대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 미국을 아는 것 같지만 미국 역사의 줄거리를 알 뿐 제대로된 미국역사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미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의 신천지이자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역사는 짧지만, 유구한 역사를 지닌 어느 국가보다도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며, 전 세계 모든 부분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이 전 세계를 주도하는 국가로 우뚝 서게 된 까닭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해석이 시도되었는데, 이 책의 저자 김봉중 교수는 그 까닭을 미국인들을 관통하는 특별 의식과 그들만의 뚜렷한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미국은 과연 특별한 나라인가"(2001)의 개정판인 이 책은 지금의 미국을 만든 특별 의식,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미국의 정체성을 네 가지 역사적 코드를 통해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고 있다. 즉 서부 불모지를 개척한 '프런티어', 자유와 평등을 주창한 '민주주의', 진보와 보수의 갈등 원인이 된 '지역 정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하나로 수용한 '다문화주의' 등 미국 초기 역사에서 형성된 네 가지 특별 의식과 이를 계승하려는 전통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하나씩 들여다보면서 가장 객관적인 잣대로 미국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2001년 9ㆍ11테러 이후 미국의 비관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여론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한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정권은 결국 무너졌고, 버락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 현대사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할 뻔했던 위기 상황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지금의 미국은 9ㆍ11 테러 이전의 미국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여전히 전 세계 정세를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자본주의 제국으로서 재도약하기 위한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기존의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도성장에 따라 가속화된 정보화ㆍ세계화와 무관한, 특별한 전통을 이어왔기 때문이다.
1600년대부터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했던 영국의 민간인들은 광활한 서부에 터전을 잡았다. 정부의 간섭이나 적극적인 후원 없이 독자적으로 이주한 그들은 점차 지역을 확장해나가면서 베이컨의 난, 프랑스와 인디언과의 전쟁, 독립운동, 팩스턴 보이들의 난동과 같은 무장 투쟁을 겪기도 했지만, 1787년 북서부영지법의 제정, 1803년 루이지애나 주 매입 등을 통해 무질서와 혼란으로 뒤섞인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한편 19세기 캘리포니아 금광 발견과 아메리칸 드림은 일확천금을 노린 여러 인종의 이민자들, 카우보이에게 프런티어 정신을 더욱 강하게 심어주었고, 20세기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이민자들의 천국이었다. 광활한 대지를 개척하며 새로운 문명을 이뤄온 이민자들의 노력은 미국인들의 문화와 정신으로 이어졌다. 미국인들에게 '공통적인 과거이자 미래'인 프런티어는 새로운 개념으로 재창조되면서 미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원동력이다.
한편 미국을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민주주의다. 이 책에서는 알렉시스 드 토크빌이 쓴 "미국의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미국 역사에서 어떻게 민주주의가 발전했는지, 어떤 특별함이 있는지 분석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1789)을 거쳐 7월 혁명(1830)에 이르기까지 당시 프랑스는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새로운 정치제도의 도래를 염원했지만,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의 상황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 토크빌이 선택한 곳은 미국이었다.
저자는 토크빌이 미국을 바라본 시각에 주목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즉, 토크빌이 말한 대로 자연환경에 따른 거친 생활 방식과 습관, 누구나 평등하고 계급 없는 자유, 보편화된 실용주의로 인한 지적 평등, 민주주의를 더욱 성숙하게 만든 종교와 정치의 분리, 대중의 참여 민주주의 발달 등 미국인들의 본성은 인간의 보편적 특질에 가까우며, 특화된 개인주의가 미국 민주주의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데 동의한다.
미국 역사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사건은 남북전쟁이다. 저자는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서 노예제도, 정치적 갈등, 경제 구조의 차이, 헌법 해석상의 이견 등 제도상의 문제들을 그 예로 들고 있다. 또한 남북 사이의 문제들은 어떻게 지역 정서로 굳어졌으며, 돌이킬 수 없는 대립의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는지, 대립의 여파는 현재 미국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1787년 제헌의회 후 헌법을 만들면서 미국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연방과 주의 우선권을 둘러싼 연방파와 공화파의 대립은 지역 간의 선을 분명히 긋게 된 원인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예제의 폐지와 옹호론으로 과열된 갈등은 결국 남북전쟁을 불러왔다. 이 전쟁에서 남부가 패배했지만 남부인들은 여전히 그들이 미국 역사와 문화의 중추적인 위치에 있음을 자부하고 있다.
이민문제와 더불어 파생된 다문화주의는 이미 16~17세기 정착 과정부터 시작되었다. 특히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 등 정치제도와 종교적 성향이 본토와 다른 사람들이 주로 이주했고, 스웨덴ㆍ핀란드ㆍ독일 등 가톨릭계 유럽인, 18세기 이후 이주한 멕시코인 등 다양한 인종이 서서히 몰려들었다. 하지만 누가 순수한 미국인인가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면서 19세기 이후 미국보호협회(APA)의 반가톨릭운동, 큐 클럭스 클랜(KKK)의 반이민운동 등 정치적ㆍ인종적 배척운동 또한 횡행했다.
저자는 다문화사회가 겪을 수밖에 없는 혼란을 완만하게 넘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래 정착하지 않는 유동성과 '도가니 문화'로 표출된 이민자 수용 및 동화 정책에 따른 결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1920년대까지 흑인차별은 가속화되었고, 적색 공포가 횡행하면서 인종 폭동에 불만을 가진 노동자들과 급진주의자들의 과격한 소요가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1940년대 이후부터 흑인 노예제 폐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등 인종문제를 적극 해결하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여전히 히스패닉계 이민자와 흑인의 빈부격차 및 차별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숙제로 남아 있다고 전망한다.
세계화 흐름에서 제국의 면모를 띠고 있는 미국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혹은 부정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하기 전에 우리는 미국을 좀더 객관화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제시하는 네 가지 주제는 미국의 정체성과 특별함을 찾고자 하는 우리에게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