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우의 초나라 군을 대파한 유방은 장수들을 위하여 승전축하 술자리를 마련합니다. 얼큰해진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에게, "내가 직접 군사를 지휘한다면 몇명 정도나 할 수 있겠소?" 한신이 "10만 쯤 가능하십니다." 이에 유방이 "장군이라면 얼마나 가능하겠오." 한신이 "저야 다다익선(多多益善)이지요." 즉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고 건방을 떱니다. 빈정이 상한 유방이 "그럼 장군은 왜 내 밑에 있오" 아차싶어서 "대왕께선 장수 위의 장수(將上之將)시지요. 임금은 하늘이 내는 거라지 않습니까." 하고 위기를 모면합니다. 그러나 결국 유방은 '교활한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兎死狗烹)' 는 말대로 한신을 역모로 엮어 제거하지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해하(垓下)전투에서 열세에 몰린 항우의 병졸들은 야심한 밤 사위에서 들려오는 고향의 노래(四面楚歌)에 눈물지으며 야반도주합니다. 이에 크게 상심한 항우는 그의 연인 우희에게 자기 보검을 주어 자살하게 하지요. 이렇게 초패왕이 우희(虞姬))와 이별하며(覇王別姬)며 불렀다는 노래(垓下歌),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었건만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부서) 시운이 불리하니 오추마(烏騅馬)*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오추마가 나가지 않으니 어찌 할거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희야! 우희야! 어찌하면 좋단 말이냐
*오추마는 항우의 애마
그날밤 군영을 빠져나온 항우는 오강(烏江)에 당도합니다. 이 강만 건너면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강동(江東)인데, 수많은 고향의 자제들을 전장으로 몰아 죽여 놓고 혼자 살아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는데, 그때 그의 나이 31세. 그로 부터 천여년 후,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은 이렇게 아쉬워 하지요.
勝敗兵家不可期(승패병가불가기) 이기고 지는 것은 병법의 전문가도 기약할 수 없는 일
包羞忍恥是男兒(포수인치시남아) 수치를 삭히고 참는 것도 男兒이어늘
江東子弟多豪傑(강동자제다호걸) 강동의 자제들 가운데 호걸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미가지) 흙먼지 일으키며 다시 올수 있었을지 어찌 알리오
여기에서 권토중래(倦土重來)란 말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나 저나 나는 삼십 초반에 뭘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