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어에서의 구개음화
구개음화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인 근대 국어에서 가장 현저한 음운 변화의 하나는 구개음화이다. 구개음화는 현재 끝소리가 ‘ㄷ, ㅌ’인 형태소가 모음 ‘ㅣ’나 반모음 ‘[j]’* [각주:1]로 시작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나 ‘ㄷ, ㅌ’이 ‘ㅈ, ㅊ’이 되는 현상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원래 구개음화란 구개음이 아닌 자음이 어떤 음운의 영향을 받아 구개음이 되는 현상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따라서 국어사에서 구개음화는 모음 ‘ㅣ’나 반모음 ‘[j]’ 앞에서 ‘ㄷ, ㅌ, ㄸ’이나 ‘ㄱ, ㅋ, ㄲ’이 구개음인 ‘ㅈ, ㅊ, ㅉ’이 되고, 그 밖의 몇몇 자음이 같은 조건에서 구개음이 되는 현상을 모두 포괄한다.
구개음화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에 남부에서부터 시작하여 북상한 것으로 추정된다. 1824년에 나온 유희의 『언문지』에는 당시 사람들이 ‘댜뎌’나 ‘탸텨’를 ‘쟈져’나 ‘챠쳐’와 동일하게 발음하고 관서 지방 사람들만이 ‘텬(天)’과 ‘쳔(千)’, ‘디(地)’와 ‘지(至)’를 구분하여 발음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 평안 방언을 제외한 여러 방언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구개음화가 상당히 진척되면서 ‘디, 댜, 뎌, 됴, 듀’와 ‘티, 탸, 텨, 툐, 튜’ 등과 같은 결합이 나타나지 않게 된다. 구개음화가 진척된 이후에 ‘듸, 틔’가 ‘디, 티’로 변하면서 이 형태가 다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듸, 틔’가 구개음화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 국어에서 나타난 ‘ㄷ, ㅌ’의 구개음화는 ‘ㅈ, ㅊ’이 구개음으로 변한 것을 전제로 한다. 중세 국어에서 ‘ㅈ, ㅊ’은 원래 치음이었는데, 이것이 모음 ‘ㅣ’나 반모음 ‘[j]’ 앞에서 구개음으로 변한 뒤에야 ‘ㄷ, ㅌ’ 등의 구개음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ㅈ, ㅊ’이 모음 ‘ㅣ’나 반모음 ‘[j]’ 앞에서만 구개음으로 변하다가 ‘ㅈ, ㅊ’을 모두 구개음으로 발음하게 되면서 이제까지 존재해 왔던 ‘자, 저, 조, 주’와 ‘쟈, 져, 죠, 쥬’의 변별적 차이가 사라진다. 이 때문에 19세기 문헌에서는 ‘자’와 ‘쟈’, ‘저’와 ‘져’ 등이 구분되지 않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게 된다.
구개음화는 이 밖에 ‘ㅣ’나 반모음 ‘[j]’ 앞에 오는 ‘ㅅ’이나 ‘ㄴ’ 등에서도 나타났다. 어두에서 모음 ‘ㅣ’나 반모음 ‘[j]’에 선행한 ‘ㄴ’의 탈락은 구개음화된 ‘ㄴ’을 어두에서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ㄴ’의 탈락 현상이 나타난 시기는 대략 18세기 후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의 문헌을 보면 ‘님금’이 ‘임금’으로 ‘니르다’가 ‘이르다’로 표기된 예가 나타나기 시작하며, 19세기에 오면 이러한 어두에서의 ‘ㄴ’ 탈락이 일반화된다.
근대 국어에서 구개음화는 ‘굳’과 ‘이’가 합쳐진 ‘굳-이’에서와 같이 형태소 경계에서 일어나기도 했지만, 하나의 형태소 내부에서도 일반적으로 일어났던 현상이었으며, 이로 인해 ‘티다’가 ‘치다’로 변한 것과 같이 그 형태가 바뀌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단일 형태소 내부에서의 구개음화는 공시적으로 파악되기가 어렵다. 따라서 현재 구개음화는 주로 형태소 경계에서만 일어나는 음운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반모음 ‘[j]’: ‘ㅏ, ㅓ, ㅗ, ㅜ’와 결합하여 이중 모음 ‘ㅑ, ㅕ, ㅛ, ㅠ’를 만드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