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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가야산(伽倻山496m).증산(387m).시루봉(404m).작은가야산(436m).구봉화산(구봉산472m)/전남 광양
산행일자;2022년2월12일(토). 날씨;맑음. 산행거리;약8.5km. 산행시간;약2시간 35분.
교통편;안내산악회 엠티
비용;38,800원
산행코스;장동마을표지석-장동2구회관-불광사-군재삼거리(군장치)-증산(387m)왕복-군재3거리(군장치)-시루봉(404m)-큰골재-가야산(496m)- 작은가야산(436m)-육교-마로정(국궁장) 주차장-차량이동-구봉산 전망대 주차장-광양 구봉화산(구봉산437m)-구봉산 전망대주차장
(13;40)산행 종료 후 식당에서 새옷 갈아입고 식사후 (13;45~14;15/30분>서둘러 (14;25)마로정 주차장에 복귀합니다. 약 5분후
(14;30)마로마 주차장에서 산악회버스를 타고 구봉화산(구봉산) 전망대 주차장으로 이동(14;30~14;50/20분)
전망대 주차장에서 조망이 좋은 "광양 구봉화산(구봉산437m) 정상"을 왕복 (14;50~15;35)/1.0km/ 약45분) 하고
(15;35) 구봉화산(구봉산) 전망대 주차장 출발 상경
■가야산(伽倻山496m)은 전라남도 광양시 성황동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서, 광양의 주산(主山)이다.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사방으로 뻗어 있으며, 광양시 북쪽에서 시가지를 감싸며 광양만(灣)을 바라보고 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조망은 무척 우수하여 북쪽으로 광양의 백운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섬진강하구와 하동의 금오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광양시내와 함께 광양시와 여수시 묘도(猫島)를 잇는 이순신대교가 푸른 남해바다와 어울려 아름답게 바라다 보이는 등 요산요수(樂山樂水)를 즐길 수 있는 보석과도 같은 산이다. 가야산(伽倻山496m)은 구봉산(472m)과 함께 광양을 감싸고 있다. 1,902km 호남정맥이 끝나는 백운산(1,222m)과 망덕산(197m) 중간에서 살짝 비껴 아래쪽에 있다. 가야산이라는 지명은 합천 가야산(1,430m), 예산 가야산(678m), 나주 가야산(190.5m)이 있으며 한자 표기도 똑같다.
광양 가야산이라는 이름은 "절 가(伽), 땅이름 야(倻)"자인데, 고대 가야인(伽倻人)들이 신라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이곳으로 이주해 살았다고 해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 이 곳에서 지역 주민들이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 가족을 그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하여 "가요산"으로 불리다가 가야산으로 변경되었다고도 한다. 적벽 일대는 가야산 최고 조망터 광양 가야산은 산림청 선정 200대 명산에 지정되어 있다. 산세가 크지는 않지만 바다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멀리서 보면 부드러운 육산처럼 보여도 막상 산속에 들어서면 너덜지대가 매우 많다. 과거 격렬하게 화산활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골이 깊고 숲도 울창해 화강암 뼈대와 골산(骨山)을 감추고 있는 듯하다. 가야산을 바위산으로 지칭한 골약역(骨若驛)이라는 간이역도 근처에 있다. 가야산에 얽힌 특별한 문화유적은 없지만 호남권에서 몇 안 되는 자연암장이 여럿 있다. 1990년대 자유등반 붐이 일면서 적벽, 가야암장, 부엉이바위 등 등반루트가 개척되었다. 특히 15m 높이의 적벽(赤壁)은 90도 수직암벽이다. 홀드가 작은 반면 간격은 넓어 난이도가 높다. 적벽 일대는 광양 시내를 한눈에 바라봄과 동시에 여수바다와 남해바다의 섬이 보이는 최고의 조망 포인트이기도 하다. 가야산은 시내에 인접해 있어 이른 아침부터 찾는 등산객이 많다. 길이 많고 미로처럼 얽혀 있다. 안내판의 표기도 중구난방이어서 외지인은 길을 잃기 십상이다. 주능선만 탈 경우에는 대체로 거리가 짧지만 가야산을 순환하는 4.8km의 둘레길을 같이 걸으면 산행거리와 볼거리를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가야산둘레길만 완주해도 운동효과가 대단하다. 둘레길은 5~6부 능선에 위치해 있고 오르내림은 크지 않다. 구간마다 특색 있는 포토존이 많다. 만약 둘레길의 일부만 답사하기 원한다면 적벽에서 북쪽 구간을 추천한다. 바다 조망이 있고 입맞춤바위와 웅장한 돌탑이 압권인 가람쉼터 등을 경유한다.
■쌍효정려비는 전남광양시 장동리에 있는 비각이다.고종29년(1892년)에 효자·효부 두 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비각이다.
■광양제철소는 포항에 이어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세워진 종합제철소다. 매년 2,100여 만 톤의 철강제품을 생산하며 세계 최고수준의 기술력과 최첨단장비를 갖추고 있다. 단체견학을 할 수 있는데, 최소 10명 이상을 대상으로 평일에만 무료 운영한다. 10인 이하나 개인견학은 일요일에만 할 수 있다. 견학 신청은 포스코 홈페이지(www.posco.co.kr)에서 하면 된다.
■구봉산(구봉화산 473m)은 전남 동광양시 성황동에 소재한 산이다. 해발 473m의 구봉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순천, 여수, 하동, 남해까지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정상에는 9.4m의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어 일출, 일몰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정상부 하단 주차장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 데이트 코스로도 인가가 높아 해마다 찾는 인파가 늘어나고 있다. 구봉산 전망대에는 광양만권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야간에는 광양만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코스이다.
POSCO 광양제철소, 이순신대교, 광양항, 여수 국가산업 단지의 조명이 제각각 불야성을 이루며 이루어진 광양만 야경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봉수대와 전망대 사이에는 광장을 조성하여 신년 해맞이 행사와 야외공연, 산상 음악회, 결혼식 등 다양한 이벤트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이밖에 정상부의 지형이 한국의 지형과 유사한 점을 이용하여 한반도 해안선 형태로 산책로를 조성하고 주변에 자생하는 진달래와 철쭉을 군락으로 식재하여 기존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복원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옛날 봉수대가 있었던 구봉산 정상(해발 473m)에 들어선 현대식 봉수대이다. 매화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쇠로 이미지한 메탈 아트 작품이다. 봉수대 높이 9.4m는 희양(晞陽)에서 광양(光陽)이란 지명을 최초로 칭하게 된 940년(고려 태조 23년)이란 역사성을 상징한다.
특히, 봉수대는 광양을 상징하는 빛, 철, 꽃, 항만 등을 소재로 활용하여 매화꽃으로 개화하는 꽃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봉화(烽火)의 이미지를 담았다.또한, 꽃잎은 12지간과 12개 읍면동을 표현, 빛의 도시·철의 도시라는 광양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특수강과 LED 조명을 이용하여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구봉산 정상에에 설치한 전망대는 순천,여수,하동,남해까지 한눈에 볼수 있으며, 정상에는 9.4m의 봉수대가 자리하고 있어 일출,일몰,명소로 각광받고 있다. 정상부 하단 주차장까지 차량 진입이 가능하며,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아 해마다 찾는 인파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구봉산 전망대는 광양권을 한눈에볼 수 있도록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며, 야간에는 광양만의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는 관광명소로 빼놓을수 없는 코스이다.
옛날 봉수대가 있었던 구봉산 정상(해발 473m)에 들어선 현대식 봉수대이다.
매화꽃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쇠로 이미지한 메탈 아트 작품이다. 봉수대 높이는 940㎝는 희양(晞陽)에서 광양(光陽)이란 지명을 최초로 칭하게 된 940년 (고려 태조 23년)이란 역사성을 상징한다.
특히,봉수대는 광양을 상징하는 빛,철,꽃,항만 등을 소재로 활용하여 매화꽃으로 개화하는 꽃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봉화(烽火)의 이미지를 담았다.
또한, 꽃잎은 12지간과 12개 읍면동을 표현,빛의 도시, 철으 도시라는 광양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특수강과 LED 조명을 이용하여 지역적 특성을 최대한 살렸다.
■광양시(光陽市)는 전라남도 동남단에 위치한 시다. 동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남도 하동군, 서쪽은 순천시, 남쪽은 광양만, 북쪽은 구례군과 접하고 있다. 면적은 462.25㎢이고, 인구는 15만 3587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6개 면, 5개 행정동(10개 법정동), 203개 행정리(59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전라남도 광양시 중동에 있다.
소백산맥의 남단에 해당하는 백운산(白雲山, 1,218m)이 군의 북부에 솟아 있고 서쪽의 솔봉(1,123m)·형제봉(861m)·동주리봉(862m) 등과 동쪽의 매봉(865m)이 동서로 늘어서 있고, 북부는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옥룡면에 있는 백계산(白鷄山, 506m)은 동백림으로 유명하다. 백운산의 남쪽으로 4개의 지맥이 뻗어 있는데, 이는 천연적으로 순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하천으로는 섬진강을 비롯해 진상면 어치(於峙, 1,216m)에서 발원한 수어천(水魚川), 백운산과 도솔봉에서 발원한 서천·동천이 있는데 모두 북쪽에서 남쪽으로 지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를 지으며 흐르는 섬진강은 하구인 진월면에 이르러 넓고 긴 하구가 되어 태인도에 이른다. 과거에는 수량이 꽤 많았으나 현재는 상류부의 댐 건설로 인하여 수량이 크게 줄고, 그리고 퇴적물이 쌓여 강바닥이 높아져 2∼3톤짜리 나룻배가 드나들 때도 불편하다.
광양만은 1980년대 중반까지 13개의 유인도와 21개의 무인도가 있어 다도해를 이루었으나, 개펄이 넓고 간척지 개발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어 간척사업공사가 계속됨에 따라 현재는 6개의 무인도만 남아 있다.
기후는 해안선을 끼고 있어 난류와 해양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온화한 해양성 기후의 특색이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13.9℃이고, 1월 평균기온 0.7℃, 8월 평균기온 26.4℃이다. 겨울은 대륙성 기후의 영향으로 3한 4온의 기온이 뚜렷하다. 연강수량은 1,920㎜로 다우지역이며, 농작물 재배에 좋은 조건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섬진강 하류는 우리나라 최다우지의 하나이다.
구석기시대 유적·유물은 봉강면 석사리, 옥곡면 대죽리, 옥룡면 용곡리·죽천리, 진상면 지원리 등 6개소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신석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진월면 오사리·진정리에서 빗살무늬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적·유물로는 광양읍 덕례동과 봉강면·진상면·옥곡면 등지에 고인돌군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으며 아울러 돌칼·돌도끼·돌끌·조개무지 등도 발견되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국 중 하나인 만로국(萬盧國)이 광양지역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옥룡면 죽천리 내천마을이나 진상면 비촌마을에 변한의 성지(城址)라고 전해 내려오는 유적이 있어 변한의 영역에 속했을 가능성도 있다.
백제에 편입된 뒤로는 마로현(馬老縣)이라 했으며, 신라의 통일 이후에는 희양현(曦陽縣)으로 개칭하고 순천군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말엽 풍수지리설의 창시자로 알려진 도선(道詵)이 백운산 옥룡사에서 독자적인 선문를 개설하였다.
940년(태조 23)에 광양현으로 개칭되어 여전히 승평군의 속현으로 있다가 충정왕 이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주현으로 독립하였다. 이 무렵에 광양김씨가 벌족(閥族: 나라에 공이 많고 벼슬 경력이 많은 집안)으로 대두해 당대 최고의 외척인 인주이씨나 해주최씨 등과 혼인관계를 가지면서 정치무대에서 활약하였다. 고려 말에 이르러 왜구의 노략질로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413년(태종 13)에 현감이 파견되었다.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 왜장 고니시[小西行長]의 침공을 받았는데, 광양성에서 치열한 전투 끝에 왜군을 왜성대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전투의 결과로 광양현이 폐허화됨에 1598년순천에 편입되었다가 얼마 뒤 다시 분리, 복구되었으나 피폐한 읍세는 쉽게 회복하지 못하였다. 조선 말기 사회모순이 격화되었을 때 두 차례(1869, 1889)에 걸쳐 민란이 발생한 것도 이 같은 지역적 여건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때 패퇴한 농민군이 광양과 섬진강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이 때 섬진강에 빠져 죽은 자가 3,000∼4,000명이나 될 정도로 큰 손실을 입었다. 1895년의 관제개혁 때 남원부 소속의 군이 되었으나 이듬해 13도 체제로 다시 개편했을 때 전라남도에 속한 광양군이 되었으며, 돌산군이 새로이 만들어질 때 여러 섬들을 돌산에 이속시켰다.
1906년 백낙구(白樂九)·황순모(黃珣模) 등을 주축으로 한 의병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으며, 이는 전라도 의병봉기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14년 일제가 지방행정체제를 개편할 때 칠성면·우장면·사곡면 등이 광양면으로, 진하면과 월포면이 진월면으로 통합되고 돌산에 이속시켰던 여러 섬들이 재편입되는 등의 변화를 겪었다. 1915년 섬진강 연안의 다압면 섬진리가 경상남도 하동군으로 이속되었다.
1923년 농민 500여 명이 단합해 소작쟁의를 일으켰으며, 이듬해 1월에는 골약면에서 소작쟁의가 일어났고, 1932년 1월에는 금광 광부 800여 명이 동맹파업을 하는 등 일제의 경제적 수탈에 항거하는 운동이 어느 지역보다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1934년에는 광양청년회 회원 100여 명이 독서회 사건으로 체포되기도 하였다.
1948년여수·순천 사건의 잔당들이 백운산에 은거하면서 광양을 약탈 대상으로 삼아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1949년광양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1966년골약면에 태인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73년에는 골약면 송장리가 여천군 율촌면으로 이속되었다.
1981년 11월광양만에 제2제철소의 건립이 시작됨에 따라 1986년골약면과 태금면 및 옥곡면 광영리 일대를 관할하는 광양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광양출장소를 동광양시로 승격, 광양군에서 분리되었다. 1995년 시·군 통합에 따라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통합해 광양시로 되었다. 1998년광양시 과소동 통폐합으로 황금동·성황동을 골약동으로, 금호동·금당동을 금호동으로 통폐합하였다.구석기시대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인근지역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존재 가능성이 많다고 보인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진월면 오사리진정리 증산의 패총에서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다. 오사리 패총은 100×200m 범위에 최대 1.5m의 패각층을 나타내는 대규모 패총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고인돌만 알려져 있다. 36곳에 284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는데, 봉강면 지곡리와 옥룡면 산남리 남정 고인돌군은 약 40여 기씩 군집되어 있다. 발굴된 옥곡면 원월리 고인돌에서는 석곽형 석실 5기가 확인되었고, 석검·석부·석촉·어망추·지석 등 다양한 석기류와 공렬토기·붉은토기·민무늬토기 등 토기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광양읍 덕례리 회암에서 미완성 석검이 발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조개더미와 집터 추정지가 있다. 봉강면 석사리 옥현 조개더미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슴뿔을 이용한 도자병과 경질무문토기·우각형파수·시루 등 다량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주거지로는 광양읍 용강리·덕례리·인서리 등 강변 퇴적평지와 구릉사면에서 원삼국시대 토기편들이 발견되고 있다.
성지로는 임진왜란 이전에 축조한 중흥산성과 임진왜란 때 축조한 마로산성(馬老山城)·불암산성(佛巖山城) 이외에 광양읍성지·내천현지(奈川縣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옥룡면 운평리에 중흥산성삼층석탑(보물 제112호)·중흥사석조지장보살반가상(中興寺石造地藏菩薩半跏像,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42호)·광양성황리삼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5호), 옥룡면 동곡리에 송천사지회은장로비(松川寺址悔隱長老碑,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82호)가 있으며, 이 외에 옥룡사지석탑재·보운사지석등재·송천사지(松川寺址)의 부도군과 석조(石槽), 그리고 백운사목조삼존불감이 있다.
옥룡사지(사적 제407호)에서는 도선국사비편·동진대사(洞眞大師)비편과 비각 건물지가 발굴되었다. 현존하는 사찰로는 옥룡면 추산리에 도선이 『도선비기(道詵秘記)』를 지었다는 옥룡사지가 있고, 운평리에 중흥사, 동곡리에 백운사(白雲寺)·상백운암(上白雲庵), 봉강면 조령리에 성불사(成佛寺)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1443년(세종 25)에 창건했다는 광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1호)가 광양읍 우산리에 있으며, 최산두(崔山斗) 등을 모신 봉양사(鳳陽祠)와 유학을 교육시킨 흥학재(興學齋)가 있다. 정자로는 유당공원 안의 유림정(柳林亭)과 봉강면의 거연정(居然亭)이 있고, 최산두가 수학했던 학사대(學士臺)가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광양읍 인동리에 광양유당공원이팝나무(천연기념물 제235호)가 있다.
기타 문화재로는, 광양궁시장(弓矢匠, 金起,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2호)이 있고, 옥룡면 추산리에 광양백계산동백림(전라남도 기념물 제12호)이 있으며, 수령이 500년 된 광양향교은행나무와 옥곡면 장동리의 팽나무, 광양읍 인서리의 느티나무숲이 있다. 태인동에는 김시식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13호)가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광양향교가 있다. 1443년(세종 25)에 창건했는데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765년(영조 41)과 1817년(순조 17)에 풍화루·대성전 등이 중건되었으며, 현존하는 향약안(鄕約案) 등에서 향촌 여론기구로서 향강(鄕綱)을 수립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사림의 서원 설립 추세에 따라 1578년(선조 11)에 설립한 봉양서원(鳳陽書院)은 최산두(崔山斗)·박세후(朴世煦) 등을 배향했는데,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7년 조산(朝山)에 옮겨 복원되었다. 1785년(정조 9)에는 향교 가까운 남쪽에 양반층의 독서와 집회 장소로서 양사재인 흥학재(興學齋)를 건립하였다.
근대교육기관의 효시는 1907년 3월 정인표(鄭寅杓)·유치룡(柳致龍)·강주순(姜周淳) 등이 다압면 금천리에 설립한 사립 광동학교(光東學校)이다. 1913년에 폐교된 뒤 금천사숙(錦川私塾)으로 다시 개교해 1943년에 다압북국민학교가 되었다.
1907년 9월에는 군수 서상붕(徐相鵬)이 세운 사립 희양학교(曦陽學校)가 개교했으며 1910년 인가 후 공립 광양보통학교로 되었다. 이후 1919년에 공립 진상보통학교가 있는 정도였으나, 1면 1개 교 설립 계획으로 1938년 당시에 8개 교의 공립 보통학교가 있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8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8개교가 있고, 광양보건대학교와 한려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 도서관 5개, 일반 공연장 2개, 시민회관 1개, 복지회관 1개, 문화원 1개가 있으며, 경기장 시설로는 실내체육관 1개, 공설운동장 1개, 축구전용구장 1개, 마동구장 1개, 마동풋살구장 1개, 수영장 1개가 있다.이 지방 특유의 놀이로 약수제가 있다. 백운산의 고로쇠나무에서 나오는 고리수는 신경통에 특히 효험이 있다고 해, 매년 경칩이 되면 인근 사람들이 모여 약수를 받아 놓고 하루를 즐기며 마시는 행사가 백운산약수제이다. 이 행사 기간 동안 궁도대회·국악공연·농악놀이가 계속되는데, 이를 위해 백운사가 건립되었다.
광양농악이 다른 지방과 다른 점은, 버꾸놀이에서 북놀이가 더 있다는 것과 김매기농악을 할 때 마을간에 접전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김매기농악놀이는 양편이 기를 꽂아 각각 진지를 만들고 나팔을 불어 접전을 한다.
태인동 용지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 뒤 3일 내에는 줄다리기가 실시된다. 이 놀이를 옛날에는 현청 앞에서 했는데, 용줄을 그 곳까지 운반하면서 치는 농악놀이가 장관이었다고 한다. 고를 걸고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온 군민이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끌기 때문에 줄의 길이가 아득할 정도였고, 승리한 편에게는 술과 안주로 대접하며 상금도 주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농촌에서 즐기는 민속놀이인 마당밟기·다리밟기·더위팔기·초군놀이 등과 광양만 일대의 전어잡이 등이 있다.
이 지방의 동제는 정기적으로 지내는 사직제·서낭제·여제(?祭) 등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지내는 기우제가 있다. 기우제를 지낼 때는 지방 유지를 제관으로 선정하며, 선정된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심신을 청결하게 한 다음 제에 임한다. 이 동안 마을 주민은 문전에 황토를 깔아 비 내리기를 기원한다.
정기적인 동제로서 사직제는 사직단에서 토지신과 곡신에게 제를 지내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고, 서낭제는 서낭신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재난을 없애고 복을 빌며 여행의 피로를 풀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여제단(?祭壇)은 한 해의 액과 질병을 막기 위해 여신(돌림병의 신)에게 제를 지내던 곳이다. 마을사람들은 정월대보름에 이곳에 모여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이 지방의 설화로는 「최산두의 전설」·「옥룡사의 연기설화」·「살구나무귀신이야기」 등이 전한다. 「최산두의 전설」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이다. 백운산의 세 정기 중 하나인 봉황의 정기를 타고난 한림학사 최산두는 어린시절 재를 넘어 공부하러 다녔다.
그 재는 낮에도 무서운 곳이었는데, 어느 날 비바람이 몰아쳐 최산두가 바위굴로 몸을 피했다가 그 곳에서 귀신들이 한림학사가 오셔서 나갈 수가 없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최산두는 그 뒤에도 계속 그 고개를 넘어 다녔는데, 하루는 예쁜 처녀가 유혹하였다.
서당 훈장에게 그 말을 했더니 훈장이 처녀의 입에 있는 구슬을 빼앗아 삼키라고 하였다. 훈장의 말대로 했더니 처녀는 여우가 되어 울며 달아나고, 최산두는 여우구슬 덕으로 유명한 학자가 되었다고 한다.
또 「옥룡사의 연기설화」는 다음과 같다. 신라 말에 도선이 상백운암에서 종이로 학을 접어 날렸더니 백계산의 큰 못에 떨어졌다. 그 못에는 청룡과 백룡이 살고 있었다. 도선이 이번에는 활을 쏘자 청룡은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백룡만 남아 버티다가 거듭 쏜 화살에 눈을 맞고서야 승천하였다.
도선은 그 곳에 옥룡사를 세우고는 백씨 성을 가진 중은 절대로 들이지 말라고 일렀다. 뒤에 성명부지의 한 중이 들어왔는데 절에 불이 나서 타버렸다. 그 중은 성이 백씨였고, 그 재난은 백룡이 꾸민 보복이었다고 한다.
「살구나무귀신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도월리 월평마을의 백씨 집에 살구나무가 있었는데 어찌나 큰지 무서워서 베어 버렸다. 얼마 뒤 백씨네 출가한 딸이 자식을 얻고자 산제를 지내려고 메를 짓고 있는데, 더벅머리 총각 하나가 와서 피가 흐르는 다리에 솥에서 넘치는 밥물을 찍어 바르면서 자기는 베어진 살구나무의 귀신이라고 하였다.
귀신은 백씨의 딸에게 이르기를 장차 아들 셋을 낳을 것이나 10년 뒤에는 자기의 보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과연 그녀는 아들 셋을 두었으나 모두 서른이 못 되어 죽고, 그 뒤로 이 마을의 백씨네 집에는 손이 끊기고 말았다고 한다.
또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우리 군사들이 쫓기다가 두치강에 이르자 난데없이 두꺼비 수백 마리가 떠올라 다리를 놓아 주어 무사히 건너게 하고는, 왜군이 건너는 도중에는 두꺼비가 모두 강속으로 들어가 빠져 죽게 하였다. 그로부터 두치강을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외로운 할머니의 말동무가 되어 주었더니, 그 할머니가 죽어 호암리의 범바위가 되어 마을의 재앙을 막아 주었다는 이야기 등이 있다.
광양 지방에는 예로부터 농악이 발달해 현재까지도 잘 전해오고 있으며, 김매기 농악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벼농사와 관련된 노동요가 있었을 듯하나 지금까지 조사된 농요는 없다. 전승되고 있는 민요로는 장례를 치를 때 상여를 운반하며 부르는 「상여소리」와 집을 지을 때 땅을 다지며 부르는 「지경닺는소리」가 있다.
「상여소리」는 「오체소리」라고도 하는데 3분박 4박자로 늦은 자진모리장단에 맞으며, 4장단 정도를 선소리꾼이 “거진 장판은 어디를 가고 맨 솔밭으로 돌아를 가시냐” 하고 메기면 상여꾼들이 같은 장단에, “어이가라 어허 에헤이 어허 에헤 에헤어 어이가라 어허 에헤이 어허 에헤요” 하며 일정하게 받는다.
그러나 가사에 따라 박이 드나들어 불규칙 장단으로 변하기도 한다. 「상여소리」의 선율은 육자배기토리가 주이지만 가끔 다른 선율 진행을 보여 색다른 맛을 주기도 한다.
「지경닺는소리」는 3분박 4박자로 자진중중모리장단에 맞는데, 선소리꾼이 “잘도찐다 방아로구나” 하며 한 장단에 메기면 일꾼들이 같은 장단에 “얼럴럴 상사뒤야” 하며 받는다. 이 지방의 「지경닺는소리」는 메기는 소리가 메나리토리의 선율로 되어 있고 받는 소리는 경토리로 되어 있다.
이 외에도 부녀자들이 주로 부르는 「신세한탄가」, 물레를 돌리며 부르는 「물레소리」 등이 있다. 「신세한탄가」는 월령체 형식으로 시집 간 딸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부르는 것인데, “가고 없네 가고 없네/병자년 동짓달에/울어머니 가고 없네/한달잡고 설흔날에/삼백하고 육십날에/어느날에 어느밤에/어매품을 잊을쏜가……” 하며 시작된다.
그 밖에 「육자배기」·「흥타령」·「진도아리랑」·「노랫가락」 등도 많이 불리는데, 경상남도와 인접해 있어서 메나리토리의 선율도 보이지만, 주로 전라도의 육자배기토리로 된 선율이 많이 불리는 점이 이 지방 민요의 특징이다.
산업·교통
산지가 많아 총 농경지가 차지하는 비율은 17.9%로 경지율이 낮으며 논이 74.5%, 밭이 25.4%를 차지한다. 크고 작은 하천유역에는 좁고 긴 평야가 있어 주요 경작지와 주거지를 이룬다. 이들 농경지에 백운저수지·복곡저수지·인덕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조·수수·옥수수·콩·팥·감자·고구마 등이 소량 생산된다. 일찍부터 원예작물 재배를 시작해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배추·무·오이 등의 채소류도 많이 생산된다.
1968년 이후 밤나무단지가 조성되어 전국 제일의 밤 산지가 되었으며, 백운산 자락에서는 매실의 생산량도 많다. 사과·배·복숭아·포도·감·단감 등의 재배로 농가소득이 높아지고, 양축 농가가 증가해 야산의 산지 사면을 이용한 비육우 사육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농한기에 부업에 종사하여 얻는 수입이 전체의 50%를 넘고 있다.
수산업을 전업으로 하는 어가나 인구는 거의 없고 겸업의 형태를 보인다. 어가가 보유한 어선은 동력선이 무동력선에 비해 척수(75%: 25%)와 톤수(84%: 16%) 면에서 절대적으로 많으나, 5톤 미만이 절대 다수여서 영세 규모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양만에서는 김·백합·고막 등의 양식업이 이루어졌으나 광양제철공단 조성 이후 어장이 황폐화되어 김·고막 등의 생산이 중단됨에 따라 김의 원산지로서의 명성을 잃고 있다. 특히 농업과 어업활동으로 생활하던 사람들이 공장 근로자가 된 경우가 많았다. 섬진강에서는 재첩이 채취되어 특산물로 알려져 있으며, 그 하구에서는 장어양식이 이루어진다.
광공업으로는 광양읍 사곡리와 초남리에 광양광산이 있어 금·은·동 등을 생산했으나 지금은 휴광 중이다. 광양만에는 588만 평의 인공 섬에 광양제철소와, 그와 연관된 공장들이 들어서 대규모의 철강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2008년 현재 광양제철수의 조강량은 3360만 톤이다. 2004년 광양항 2차 컨테이너 부두가 준공되고 자유무역지구로 지정되면서 관련 시설 및 배후 단지가 계속 들어서고 있다.
상업활동은 5일 정기장과 구(舊)동광양시의 상업시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광양주민들의 상업활동은 지형의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섬진강에 인접한 지역, 즉 옥곡면·진상면·진월면·다압면 등은 나룻배를 타거나 섬진교를 건너 하동장을 주로 이용하는 반면, 광양읍·옥룡면·봉강면·진월면은 주로 버스로 25분 정도 거리의 순천장을 이용한다.
특히 광양읍을 비롯한 인근 주민들은 지리적으로 순천시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교통이 편리해 생활용품을 구하러 가까운 순천시의 상가를 주로 이용한다. 현재 읍내장이 1일·6일, 옥곡장이 4일·9일, 섬거장이 3일·8일에 각각 열린다.
1977년 남해고속도로가 완성된 뒤, 도로가 지나가는 진월면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장이 섬거장에서 옥곡장으로 바뀌었다. 한편, 광양제철공장의 건설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동광양시는 신흥공업단지로 변모하면서 새로운 상가가 조성되어 예전의 정기시장과 규모가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도로는 남해고속도로가 군을 동서로 관통하며 원거리인 광주, 경상남도의 진주, 부산 등지에서 접근이 쉽다. 또 광양읍을 중심으로 순천과 경상남도 하동을 잇는 국도가 연결되어 있고, 경전선이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다.
최근 광양제철공단의 화물을 수송할 수 있는 철도와 산업도로가 개설되었으며 컨테이너를 수송할 국제항구가 건설되어 운영되고 있다.
관광
지리산과 연봉을 이루는 백운산, 푸른 섬진강, 그리고 광양만의 해안경관이 잠재적 관광자원을 이루며, 광양제철소 및 연관공업단지 또한 산업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시의 북부에 우뚝 솟은 백운산은 동쪽으로 억불봉(億佛峰), 서쪽으로는 도솔봉과 읍봉, 형제봉을 거느리고 남쪽으로 4개의 지맥을 뻗고 있어 그 위용이 장엄한 전라남도의 명산이다. 이 산기슭에 있는 옥룡사지 인근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다.
성불계곡·동곡계곡·어치계곡 등 깊은 계곡이 있어 수량이 풍부하고 산기슭 일대에 희귀한 식물이 자생해 식물의 보고이며, 다양한 동물과 곤충이 서식해 수려한 자연경관과 자연의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산의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방의 경관은 장관이다. 북쪽의 장엄한 지리산의 절경을 비롯해 백운산을 굽이굽이 휘감고 도는 푸른 섬진강의 물결과 강을 따라 전개되는 은모래밭, 남쪽의 크고 작은 섬들이 쪽빛 바다에 떠 있는 다도해가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들어온다. 백운산에서 채취한 ‘고로쇠약수’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져, 이른봄 경칩을 전후해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마시기 위해 찾아온다.
백운산 기슭에 도선이 창건한 중흥사, 백계산의 지세에 반해 역시 도선이 창건한 옥룡사지가 있으며, 용문사·성불사 등의 고찰이 있다. 광양읍에는 아담한 유당공원이 있고, 진월면 망덕리에는 모래질이 좋은 망덕리해수욕장이 있었는데, 태인도간의 농로가 생기고부터 진흙으로 모래사장이 훼손되어 지금은 폐장상태에 있다.
강과 바다가 합류되는 자연경관이 좋은 곳이고 섬진강휴게소도 있어 관광개발의 여지가 많다. 옥룡면 동곡리에는 기암괴석과 노송이 어우러진 자연암굴인 학사대(學士臺)가 있다. 광양의 특산명물로는 사대부와 부녀자들이 호신용으로 몸에 지니고 다녔던 패도(佩刀)와 궁시(弓矢)가 있다. 외지에서 관광 온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광양의 토속음식으로는 재첩국·약오리탕·광양숯불고기 등이 있다.
광양제철과 연관공단의 조성으로 외지인들의 왕래가 빈번해 호텔·여관을 비롯한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잘 갖추어져 관광에 편리하다. 명승관광지가 많지 않기 때문에 관광객의 수효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나, 백운산은 동백림군락지도 있으며, 산업시찰을 하기 위해 광양제철을 견학하는 사람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지역축제로는 백운산고로쇠약수축제·전어축제·광양숯불구이축제 등이 열리고 있다.
2022.2.12(토)(06;11)가양역에서 9호선 급행으로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3호선 환승 (06;50)신사역에 도착합니다. 역 안에서 잠시 시간 보낸후 4번출구로 나가 (07;10)안내산악회 엠티산악회 관광버스에 탑승합니다. 중간 죽전 휴게소에서 나머지 대원들 탑승 고속도로 달려 중간 여산휴게소에서 약[18분](08;12~08;30) 휴게시간 갖고 (11;05)산행들머리 장동리에 도착합니다. 대형버스는 이곳까지만 진입할 수 있고, 승용차는 불광사까지 올라 갈 수 있습니다.
산악회 코스 시루봉과 가야산 외에 증산(397m)왕복과 작은가야산(436m)을 계획하기에 조금 서둘러 진행합니다.
0km 0분[장동망을 표지석](11;05)
(11;07)장동마을 표지석에서 직진으로 도로를 따르니 (11;10)전봇대에 ‘불광사’ 안내판이 붙어 있고. 마을 수호신 같은 400년 된 커다란 푸조나무도 만난다. 10분 정도 오르면 가정집처럼 보이는 백련사에 닿는다. 곧이어 (11;24)‘불광사’ 표지석이다. (11;25)가야산 숲길 안내도 이정표(군재 삼거리0.44km/장동마을 0.5km)서있다. 불광사’ 표지석에서 (cf 우측은 불광사 향이고 ) 직진으로 도로 따라 이정표(군재3거리0.44km)방향 오르다가 임도길 버리고 좌측 돌계단으로 올라서면서 본격적인 산행길이다. 말라버린 약수터가 있고 (11;09)약초재배. 사유지출입금지 어설픈 표지판을 지나 오름길 올라 군재삼거리(군장이재)에 도착한다.[1.6km][35분]
1.6km 35분 [군장이재](11;40)
이정표(큰골재0.94km/군재마을/불광사0.44km)서있습니다. 군장이재 직전 우측으로 희미한 길이 보여 능선에 오르고 우측으로 비교적 양호한 등로 따라 왕복1.6km/30분 거리에 있는 증산(397m)을 왕복한다. 300봉에 올랐다가 안부로 내려서 우측으로 오른후 주능선에 붙어 좌측으로 능선길 이어가면 증산(397m)정상이다.[0.8km][15분]
2.4km 50분 [증산](397m)(11;55~11;57)[2분]
정상은 특별한 것이 없다. 故백계남님의 증산 표지기가 걸려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른 표지기 한장이 보인다. 故백계남님 표지기 옆에 표지기걸고 인증사진 남기고 Back하여 군장치3거리로 되돌아온다.[0.8km][13분]
3.2km 65분 [군장치3거리](12;10)
이정표(큰골재0.94km/군재마을/불광사0.44km)서있습니다. 군장치부터는 임도처럼 길이 넓다. 완만한 오름길 이어가니 (11;18) 송전탑을 지나고 조금 오른다. 우측으로 큰골재 가는 좋은 등로 버리고 바로 직진으로 급경사길 치고 오른다. (12;28)시루봉 송전탑과 장의자 놓인 봉에 오르고 (12;29)능선 우측에 시루봉 작은 돌탑을 지나면 (12;30) 이정표 표시목에 시루봉(404m) 정상표지판 부착된 시루봉 정상이다.[1.0km][20분]
4.2km 85분 [시루봉](404m)(12;30~12;33)[3분]
이정표(가야산정상0.8km/광영동 0.8km)표시목에 시루봉(430m) 정상표지판 부착되어 있다. 옥곡면 일대와 멀리 백운산까지 보인다는데 날씨 탓 조망은 없다.
표지기 걸고 인증사진 남긴후 물 한모금 한후 (12;33)한전소전 철탑 옆 장의자로 Back 올라온 3거리에서 직진으로 능선 내림길 내려선다. (12;38) 목책계단을 밟고 내려서니 큰골재다.[0.3km][5분]
4.6km 93분[큰골재](12;38)
오목한 분지 형태의 큰골재는 4거리 쉼터다. (12;38)이정표(가야산 정상0.48km/장수쉼터1.34km/군재3거리0.94km/시루봉 0.3km)에서 가야산 정상 방향으로 오르면 (12;40) 급경사 목책 계단을 만난다. 계단이 끝난곳에서 부터 돌맹이들이 박힌 가파른 경사길을 극복하여 능선에 오르니 (12;50)남매바위 갈림 이정표(가야산정상0.15km/남매바위/큰골재0.31km)를 만난다. 남매바위를 가볼 의미를 못느끼고 좌향 완만하게 오르니 (12;51)시설물 감전주의 경고판을 지나고 조금 오르니 (13;03) 정상석 2개 서있는 가야산 정상이다.[0.5km][14분]
5.1km 107분 [가야산](12;52~12;54)[2분]
넓은 헬기장 정도 크기의 정상에는 정상석 2개와 삼각점(광양305)이 있다. 정상조금 아래는 송신탑과 송신탑 건물이 있다.
가야산 정상에서 조망은 양호하다. 정면으로 계획도시의 면모가 보인다. 1995년 광양군과 동광양시가 합병되면서 광양시가 탄생했다. 광양시청과 고급 아파트 단지, 이순신대교와 여수 영취산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광양항 컨테이너 부두와 구봉산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광양제철소 등 역동적인 산업도시의 모습이 보인다. 적벽 산악회 코스를 버리고 "작은가야산(436m)"으로 가기위해 좌측으로 억불지맥을 진행한다. 완만하게 내려선후 (12;59)동백이쉼터 갈림이정표(가야산2봉0.25km/동백쉼터0.31km/가야산0.24km)지나고 오름길 완만하게 올라 (13;02)이정표(망바위0.37km/장수쉼터0.52km/가야산정상0.49km)를 지나니 436봉 작은 가야산이다[0.5km][9분]
5.6km 118분 [작은가야산](436m)(13;03~13;04)[1분]
퇴색된 스텐표지판에 (현위치) 작은 가야산 (제2주차장1.931m/가야터널1,130m/정상400m) 서있고 작은 가야산 표지판 기둥에 "가야산 2봉" 정상표지판 부착되어있다.
목표한 산을 다하였기에 인증사진 남기고 90도 우향 제2주차장 방향 급경사 조금은 거친 길을 내려선다. 3거리에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니 (13;12) 조망터 망바위(?)다. 조망바위에서 조망(13;12~13;14)[2분] 즐긴후 급경사 내림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13;23)푸른 동백숲을 빠져 내려오니 (13;24) 이정표(큰바위쉼터0.41km/가야샘0.25km/동백쉼터0.21km/망바위0.20km)서있는 가야산 둘레길이정표를 만나 우향 좋은 허리길 이어가 (13;27) 시민쉼터표지판 있고 (13;27)이정표(동백쉼터0.32km/망바위0.21km/적벽0.44km)있는 4거리에서 좌향 내림길 하산길에 든다.
(13;29)좌측 돌탑 2기와 우측 돌탑1기를 지난다. 가야산둘레길 너덜지대에는 어김없이 돌탑이 있다. 석공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광양 토박이 유용재(63)씨의 솜씨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17년 동안 쌓았다고 한다. 진안 마이산 돌탑을 연상시킬 만큼 조형미도 상당하다. 지금까지 110개 넘게 쌓았다고 한다. 가야산의 또 다른 보물이다.
(13;24)목책다리를 건너고 (13;24) 체육시설을 지나 평탄하고 돌이 덜 박힌 길을 내려오니 (13;36) 가야산 숲길 안내도 서있고 (13;36) (cf 직진길은 육교향이다.) 육교를 거처갈 필요없이 샛길인 좌측 임도 따라 서둘러 간다. (13;40)마로정 주차장에서 산행종료한다.[2.9km][36분]
8.5km 155분 [마로정](13;40)
다행히 몇분만 도착 된 듯싶습니다. 산악회 허용시간 (14;30)까지는 약 50분의 여유가 있습니다. 차안에 베낭 두고 옷보따리 챙겨 마침 광양시 "명예환경감시원 강정훈 회장님(길호어촌계장)"의 자가용 얻어 타고 가까운 상가지역 "소담칼국수밀면" 식당에서 들깨 칼국수와 밀면국수 그리고 맥주 2병 시켜두고 정갈한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새옷 갈아입습니다.
상차림 된 식탁에서 맥주로 석봉님과 건배 목마름 달래고 밀면과 칼국수로 식사후 (13;45~14;15/30분> 서들러 (14;15) "소담칼국수밀면" 식당을 나와 택시 잡는 것이 더 시간이 걸릴듯 싶어 빠른 걸음으로 걸어 (14;25) 마로정 (국궁장) 주차장으로 돌아 옵니다.
(14;30) 마로마 주차장에서 구봉화산(구봉산) 전망대 주차장으로 이동(14;30~14;50/20분)
전망대 주차장에서 조망이 좋은 "광양 구봉화산(구봉산437m) 정상"을 왕복 (14;50~15;35)/1.0km/ 약45분) 하고
(15;35) 구봉화산(구봉산) 전망대 주차장 출발 상경길에 듭니다.
중간 이인휴게소에서 휴게시간(17;45~18;00) 약[15분]갖고 (19;40) 신사역 도착 (19;45)신사역 출발 3/9호선으로 (20;15) 가양역 도착 (20;25) 귀가 합니다.
11;07 장동마을 표지석입니다.
11;10 불광사 안내판입니다.
11;24 불광사 표지석입니다.
11;25 "가야산 숲길 안내도" 표시판입니다.
(11;25)이정표(군재 삼거리0.44km/장동마을 0.5km)입니다.
(11;09)약초재배.사유지출입금지 어설픈 표지판입니다.
(11;40)군장이재 직전 우측으로 희미한 길이 보여 능선에 오르고 우측으로 비교적 양호한 등로 따라 왕복1.6km/30분 거리에 있는 증산(397m)을 왕복합니다.
(11;55~11;57)[2분]증산(397m)정상은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故백계남님의 증산 표지기가 걸려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다른 표지기 한장이 보일뿐입니다. 故백계남님 표지기 옆에 표지기걸고 인증사진 남기고 Back하여 군장치3거리로 되돌아옵니다.
(11;55~11;57)[2분]증산(397m)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2;09 군장이재 조금전 능선에 붙이고 왕복한 표지기입니다
12;10 군장이재 이정표(큰골재0.94km/군재마을/불광사0.44km)입니다
12;18한전 송전 철탑입니다.
12;28 시루봉 정상 근처의 한전 철탑입니다.
12;29 시루봉 정상 부근의 작은 돌탑입니다.
(12;30~12;33)[3분]시루봉 정상 이정표(가야산정상0.8km/광영동 0.8km)표시목에 시루봉(430m) 정상표지판 입니다.
(12;30~12;33)[3분]시루봉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2;33 시루봉 정상의 장의자 입니다.
12;38 목책 계단을 내려섭니다.
(12;38)오목한 분지 형태의 큰골재 4거리 쉼터 이정표(가야산 정상0.48km/장수쉼터1.34km/군재3거리0.94km/시루봉 0.3km)입니다.
(12;38)오목한 분지 형태의 큰골재 4거리 쉼터 이정표(가야산 정상0.48km/장수쉼터1.34km/군재3거리0.94km/시루봉 0.3km)입니다.
(12;38)오목한 분지 형태의 큰골재 4거리 쉼터 이정표(가야산 정상0.48km/장수쉼터1.34km/군재3거리0.94km/시루봉 0.3km)입니다.
(12;40) 급경사 목책 계단 입니다.
(12;50)남매바위 갈림 이정표(가야산정상0.15km/남매바위/큰골재0.31km)입니다
(12;51)시설물 감전주의 경고판입니다.
(12;52~12;54)[2분]가야산 정상에는 정상석 2개와 삼각점(광양305)이있습니다.
(12;52~12;54)[2분]가야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2;52~12;54)[2분]가야산 정상 조금 아래 송신탑과 송신탑 건물입니다.
(12;52~12;54)[2분]가야산 정상에서 조망입니다.
(12;52~12;54)[2분]가야산 정상 조금 아래 송신탑입니다.
(12;52~12;54)[2분]가야산 정상에서 조망입니다
(12;59)동백이쉼터 갈림이정표(가야산2봉0.25km/동백쉼터0.31km/가야산0.24km)입니다.
(13;02)이정표(망바위0.37km/장수쉼터0.52km/가야산정상0.49km)입니다.
(13;03~13;04)[1분]퇴색된 스텐표지판에 (현위치) 작은 가야산 (제2주차장1.931m/가야터널1,130m/정상400m) 서있고 작은 가야산 표지판 기둥에 "가야산 2봉" 정상표지판 부착되어있습니다.
(13;03~13;04)[1분]작은가야산(가야산제2봉) 인증사진입니다.
(13;12) 조망터 망바위(?) 입니다. 조망바위에서 조망(13;12~13;14)[2분] 즐깁니다.
(13;12) 조망터 망바위(?) 입니다. 조망바위에서 조망(13;12~13;14)[2분] 즐깁니다.
(13;12) 조망터 망바위(?) 입니다. 조망바위에서 조망(13;12~13;14)[2분] 즐깁니다.
(13;12) 조망터 망바위(?) 입니다. 조망바위에서 조망(13;12~13;14)[2분] 입니다.
(13;12) 조망터 망바위(?) 입니다. 조망바위에서 조망(13;12~13;14)[2분] 입니다.
(13;24) 이정표(큰바위쉼터0.41km/가야샘0.25km/동백쉼터0.21km/망바위0.20km)입니다.
(13;27) 시민쉼터 표지판입니다.
(13;27)이정표(동백쉼터0.32km/망바위0.21km/적벽0.44km)있는 4거리에서 좌향 내림길 하산길에 듭니다.
(13;29)좌측 돌탑 2기와 우측 돌탑1기를 지납니다.
(13;24)목책다리를 건너고 (13;24) 체육시설을 지납니다.
(13;36) 가야산 숲길 안내도 입니다.
(13;36) 돌탑에서 (cf 직진길은 육교향이다.) 육교를 거쳐 갈 필요없이 샛길인 좌측 임도 따라 서둘러 갑니다.
(13;40)마로정 주차장에서 산행종료합니다.
14;50 구봉산 전망대 주차장에서 바라본 구봉산 정상입니다.
14;50 광양시 관광안내도 입니다.
14;50 구봉산 안내도 입니다.
14;50 골약동 관광안내도입니다.
14;55 조망1
14;55 구봉산 오름길 입니다.
14;57 조망1
14;58 조망2
14;59 조망3
14;59 조망4
14;59 구봉산 정상 조형물입니다.
15;00 조망1
15;01 조망2
15;02 구봉산(473m) 정상석입니다.
15;02구봉산 정상 인증사진입니다.
15;04 조망
15;04 조망2
15;04 조망3
산행지도
산행지도2
오록스맵트랙지도
e-동아트랙지도
구봉산 트랙지도
산행기록표
트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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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0년도 훨씬 전, 광양 시절 평일 저녁 퇴근 후 중마동 숙소에서 휭~하니 오르내리던 작은가야산-가야산이군요.
한밤중, 오가는 이들이 없어 고마운 이가 만들어 놓은 계류 물통의 물을 뒤집어쓰기도 했었지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아희님
광양에 직장이 있으셨군요. 좋은 추억을 갖고계시어 고맙습니다.
광양시 세풍리가 제 고향입니다.성황동은 외가집 동네구요.
감사합니다 ^^
수고 많으셨습니다.
일화님
감사합니다 ~^^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나들이님
감사합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산다라님
감사합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매직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