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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liberating ourselves and counseling others 자신을 자유롭게 하고 다른 사람을 돕기
Humanity has been sleeping-and still sleeps lulled within the narrowly confining joys of its closed loves. 인류는 자고 있다. 그리고 아직 자고 있다. 배타적이고 작은 기쁨에 빠져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고 아직도 자고 있다. -Pierre Teilhard de Chardin, theologian and scientist 신학자 이자 과학자
Freeing ourselves from old programming 낡은 규범에서 자신을 해방시키기
We've all learned things that limit us as human beings, whether from well-intentioned parents, teachers, clergy, or others. Passed down through generations, even centuries, much of this destructive cultural learning is so ingrained in our lives than we are no longer conscious of it. In one of his routines, comedian Buddy Hackett, raised on this mother's rich cooking, claimed that he never realize it was possible to leave the table without feeling heartburn until he was in the army. 우리 모두는 좋은 의도를 가진 부모, 교사, 성직자, 그 밖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인간적으로 제약하는 것들을 배워왔다. 이렇게 해로운 문화적 학습이 대를 이어 수백 년 동안 우리 삶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어, 이제 우리는 그것이 있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면 살고 있다. 코미디언 버디 해켓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는 어머니가 해주는 매우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식후에 신물이 넘어오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고 말하곤 했다.
In the same way, pain engendered by damaging cultural conditioning is such an integral part of our lives that we can no longer distinguish its presence. It takes tremendous energy and awareness to recognize this destructive learning and to transform it into thoughts and behaviors that are of value and of service to life. This transformation requires a literacy of needs and the ability to get in touch with ourselves, both of which are difficult for people in our culture. Not only have we never been educated about our needs, we are often exposed to cultural training that actively blocks our consciousness of them. As mentioned earlier, we have inherited a language that served kings and powerful elites in domination societies. The masses, discouraged from developing awareness of their own needs, have instead been educated to be docile and subservient to authority. 이와 마찬가지로 해로운 문화적 조건에서 오는 고통도 완전히 우리 삶의 일부가 돼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존재조차도 깨닫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런 대물림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가치 있고 삶에 도움이 되는 생각과 행동을 전환하는 데에는 많은 에너지와 자각이 필요하다. 그렇기 하기 위해서는 욕구에 대한 이해와 자신의 내면과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문화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두 가지 능력을 갖는다는 것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욕구를 이해하고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런 의식을 적극적으로 막아버리는 문화적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전제적 지배 체제 속에서 군주와 힘 있는 소수가 다수의 사람들을 다스리는 데 편리하게 만들어진 언어를 물려받았다. 일반 대중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인식하는 일을 억제당하고, 대신 권위에 온순하게 복종 하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았다.
We can literate ourselves from cultural conditioning. 우리는 문화적 조건화에서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Our culture implies that needs are negative and destructive; the word needy applied to a person suggests inadequacy or immaturity. When people express their needs, they are often labeled selfish, and the use of the personal pronoun I is at times equated with selfishness or neediness. By encouraging us to separate observation and evaluation, to acknowledge the thoughts and needs shaping our feelings, and to express our requests in clear action language, NVC heightens our awareness of the cultural conditioning influencing us at any given moment. And drawing this conditioning into the light of consciousness is a key step in breaking its hold on us. 우리 사회는 일반적으로 욕구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서 욕구를 표현하는 사람을 의존적이고 미숙한 사람이라고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그들의 욕구를 표현하면 ‘이기적’이라 보고 특히 ‘나’라는 대명사를 자주 쓰면 이기적이거나 뭔가 결핍된 사람으로 생각한다. NVC를 통해서 우리는 관찰과 평가를 구분하고, 느낌을 일으키는 생각이나 욕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우리의 부탁을 구체적인 행동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인 조건화를 의식의 빛으로 밝혀보는 것은 그 같은 조건화로부터 벗어나는 중요한 첫 걸음이다.
Resolving internal conflicts 내적 갈등을 해결하기
We can apply NVC to resolve the internal conflicts that often result in depression. In his book ‘The revolution in Psychiatry’, Ernest Becker attributes depression to "cognitively arrested alternatives." This means that when we have a judgmental dialogue going on within, we become alienated from what we are needing and cannot then act to meet those needs. Depression is indicative of a state of alienation from our own needs. 우리는 NVC를 적용하여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갈등의 결과로 자주 생기는 우울증을 해결할 수 있다. 정신의학자 어니스트 베커는 그의 저서 <정신의학의 혁명>에서, 우울증을 ‘자신의 인식 안에서는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없는 상태’로 해석한다. 우리가 내면에서 자신을 비판하는 데 빠져 있을 때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없게 된다. 우울증은 우리가 자신의 욕구와 단절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A woman studying NVC was suffering a profound bout of depression. She was asked to identify the voices within her when she felt the most depressed and to write them down in dialogue form as though they were speaking to each other. These were the first two lines of her dialogue: Voice 1("career woman"): I should do something more with my life. I'm wasting my education and talents. Voice 2("responsible mother"): You're being unrealistic. You're a mother of two children and can't handle that responsibility, so how can you handle anything else? Notice how these inner messages are infested with judgmental terms and phrases such as should, wasting my education and talents, and can't handle. Variations of this dialogue had been running in this woman's head for months. 때때로 심한 우울증으로 고통 받고 있던 한 여성이 NVC교육에 참가했다. 나는 그녀에게 가장 우울하게 느낄 때 내면의 소리를 찾아서 그 소리들이 서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대화의 형태로 써보라고 했다. 그 대화의 첫 두 줄은 다음과 같다. 목소리 1(직장 여성) :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더 해야만 해. 나는 내가 받은 교육과 재능을 썩히고 있어. 목소리 2(책임감 있는 엄마) 그런 생각은 비현실적이야. 너는 두 아이 엄마로서 할 일도 다 못하고 있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다른 일을 하겠다는 거야. 이들 내면의 소리가 ‘해야만 한다’ ‘교육과 재능을 썩히고 있다’ 그리고 ‘할 일도 다 못하고 있다’ 와 같은 판단하고 평가하는 말들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The ability to hear our own feelings and needs and empathize with them can free us from depression. She was asked to imagine the "career woman" voice taking an "NVC pill" in order to restate its message in the following form: "When a, I feel b, because I am needing c, Therefore I now would like d." She subsequently translated "I should do something with my life. I'm wasting my education and talents" into: "When I spend as much time at home with the children as I do without practicing my profession I feel depressed, and discouraged because I am needing the fulfillment I once had in my profession. Therefore, I now would like to find part-time work in my profession."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귀를 기울여 공감할 수 있으면, 우리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녀는 요청받았다. NVC 약을 복용한 커리어 우먼을 상상하는. 그리고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메시지를 재진술하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a’를 할 때, 나는 ‘b’를 느낀다. 왜냐하면 ‘c’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래서 난 ‘d’를 하기를 원한다. 그러자 그녀는 ‘내 인생에서 무엇인가를 더 해야만 해. 나는 내가 받은 교육과 재능을 썩히고 있어. 를 다음과 같은 말로 바꾸어서 말했다. 전공을 살리고 못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때면 나는 우울하고 실망스럽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예전에 일하면서 느꼈던 성취와 보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는 시간제로라도 예전에 하던 일을 다시 했으면 한다.
Then it was the turn of her "responsible mother" voice to undergo the same process of translation. These lines, "You're being unrealistic, so how can you handle anything else?" were transformed into: "When I imagine going to work, I feel scared because I'm needing reassurance that the children will be well taken care of. Therefor, I now would like to plan to how to provide high quality child care while I work and how to find sufficient time to be with the children when I am not tired." This woman felt great relief as soon as she translated her inner messages into NVC. She was able to get beneath the alienation messages she was repeating to herself and offer herself empathy. Although she still faced practical challenges, such as securing quality child care and her husbands' support, she was no longer subject to the judgmental internal dialogue that kept her from being aware of her own needs. ‘책임감 있는 엄마’의 목소리도 같은 과정을 거쳐보았다. 그러자 ‘그런 생각은 비현실적이야. 너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할 일도 다 못하고 있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또 다른 일을 하겠다는 거야? 라는 말은 다음과 같이 바뀌었다. ’내가 다시 일하러 나간다고 생각할 때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이 충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좋은 시설을 찾아보는 계획을 세우고, 또 내가 피곤하지 않을 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이 여성은 내면의 소리들을 NVC 대화로 바꾸자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계속 되풀이되던 소리들 이면에 숨은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아이들을 보살필 방안을 마련하고 남편의 지지를 얻어야 하는 현실적 과제가 남아 있지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비판적인 내면의 소리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었다.
Caring for our inner environment 우리의 내면 돌보기
When we are entangled in critical, blaming, or angry thoughts, it is difficult to establish a healthy internal environment for ourselves. NVC helps us create a more peaceful state of mind my encouraging us to focus on what we are truly wanting rather than on what is wrong with others or ourselves. Focus on what we want to do rather than what went wrong. 우리가 자신의 머릿속에 비판하고, 비난하고, 분노를 일으키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우리 자신을 위한 건강한 내면 환경을 만들 수 없다. NVC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잘못보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좀 더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만들 수 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보다 무엇을 원하는가에 집중하기.
A participant once reported a profound personal breakthrough during a three-day training. One of her goals for the workshop was to take better care of herself, but she woke at dawn the second morning with the worst headache in recent memory. "Normally, the first thing I'd do would be to analyze what I had done wrong. did I eat the wrong food? Did I let myself get stressed-out? Did I do this; did I not do that? But, since I had been working on using NVC to take better care of myself, I asked instead, 'What do I need to do for myself right now with this headache?' I sat up and did a lot of really slow neck rolls, then got up and walked around, and did other things to take care of myself right then instead of beating up on myself. My headache relaxed to the point where I was able to go through the day's workshop. This was a major, major breakthrough for me. What I understood, when I empathized with the headache, was that I hadn't given myself enough attention the day before, and the headache was a way to say to myself, 'I need more attention.' 한 참가자가 사흘간 진행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얻게 된 놀라운 개인적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녀가 워크숍에 참가한 목적 중에는 자기 자신을 좀 더 잘 보살피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둘째 날 새벽에 근래 들어 가장 심한 두통으로 잠에서 깼다. ‘보통 때 같았으면 저는 제일 먼저 내가 무엇을 잘못했나 생각했을 거예요. 내가 음식을 잘못 먹었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나? 내가 이것을 했나? 그것을 하지 않았나?. 하지만 나 자신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 NVC를 배우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 새벽에는 대신 이렇게 물었어요. 이렇듯 머리가 아픈 나 자신을 위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일어나 앉아서 한동안 천천히 목운동을 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엔 일어서서 천천히 걸었어요. 그리고 자신을 질책하는 대신 그 순간 나를 보살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했어요. 그랬더니 두통이 덜해져서 그날 교육을 마칠 수 있었어요. 이것은 저한테 참으로 획기적인 발전이었어요. 제가 두통에 공감했을 때, 저는 전날 자신에게 충분한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사실과 두통은 자신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신호였음을 이해하게 되었어요.
I ended up giving up myself the attention I needed and was then able to make through the workshop. I've had headaches all my life, and this was a very remarkable turning point for me." At another workshop a participant asked how NVC might be used to free us from anger-provoking messages when we are driving on the freeway. This was a familiar topic for me! For years my work involved traveling by car across the country, and I was worn and frazzled by the violence-provoking messages racing through my brain. 저는 마침내 자신에게 필요한 관심을 줄 수 있었고 워크숍 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어요. 평생 두통에 시달렸기 때문에 이것은 제 삶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어요. 또 다른 워크숍에서 있었던 일이다. 도로에서 연수하는 동안 우리를 화나게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NVC를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는가 하고 한 참가자가 물었다. 이것은 내가 잘 아는 주제였다. 예전에 한동안 나는 일 때문에 차를 타고 전국을 다녀야 했다. 그런데 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는 폭력적인 말 때문에 나는 매우 지치고 힘이 들었다.
Everybody who wasn't driving by my standards was an archenemy, a villain. Thoughts spewed through my head: "What the hell is the matter with that guy!? Doesn't he even watch where he's driving?" In that state of mind, all I wanted was to punish the other drivers, and since I couldn't do that, the anger lodged in my body and exacted its toll. Eventually I learned to translate my judgments into feelings and needs and to give myself empathy: "Boy, I am petrified when people drive like that: I really wish they would see the danger in what they are doing!" Defuse stress by hearing our own feelings and needs. Defuse stress by empathizing with others. Whew! I was amazed how I could create a less stressful situation for myself by simply becoming aware of what I was feeling and needing rather than blaming others. Later I decided to practice empathy toward other drivers and was rewarded with a gratifying first experience. I was stuck behind a car going far below the speed limit and slowing down at very intersection. 나는 내 기준에 맞지 않게 운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적이고 악당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저 인간은 도대체 어떻게 되었길래 저런 식으로 운전을 하지? 눈은 두었다 뭐에 쓰려는지 모르겠군. 이런 마음 상태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상대 운전자를 혼내 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분노가 내 몸 안에 쌓였고 내 몸은 대가를 치렀다. 그러다가 나는 이렇게 남을 판단하는 말들을 느낌과 욕구로 바꾸면서 자신에게 공감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어휴 사람들이 저렇게 운전하는 것을 보면 정말 아찔해!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저 사람들이 알았으면 정말 좋겠다> 라고 말함으로써 나 자신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 자신의 느낌과 욕구에 귀 기울임으로써 스트레스를 줄인다. 다른 사람과 공감함으로서 스트레스를 줄인다. 그러다가 나는 이렇게 남을 판단하는 말들을 느낌과 욕구로 바꾸면서 자신에게 공감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다른 운전자들을 공감하기로 결심했고,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보답을 받았다. 나는 제한 속도보다 더 느리게 가고 있는 자동차 뒤에서 오도 가도 못했던 적이 있다.
Fuming and Grumbling, "That's no way to drive, I noticed the stress I was causing myself and shifted my thinking instead to what the other driver might be feeling and needing. I sensed that the person was lost, feeling confused, and wishing for some patience from those of us following. When the road widened enough for me to pass, I saw that the driver was a woman who looked to be in her eighties with an expression of terror on her face. I was pleased that my attempt at empathy had kept me from honking the horn or engaging in my customary tactics of displaying displeasure toward people whose driving bothered me. 그 차는 교차로마다 속도를 늦추곤 했다. 나는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왜 저런 식으로 운전을 하지? 그러다 내가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앞차의 운전자가 무엇을 느끼고, 필요로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그 사람이 길을 잃고 당황해하고 있다는 것과, 뒤차들이 조금 인내심을 가져주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차로가 넓어져 그 차를 지나가게 되었을 때 나는 8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두려운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다른 운전자와 공감하려는 노력을 함으로써 내 마음에 들지 않게 운전하는 사람들을 향해 경적을 울리거나 다른 식으로 좌절감을 표현하지 않게 된 것을 나는 무척 다행으로 생각했다.
Replacing diagnosis with NVC 분석과 진단을 NVC로 바꾸기
Many years ago, after having just invested nine years of my life in the training and diplomas necessary to qualify as a psychotherapist, I came across a dialogue between the Israeli philosopher Martin Buber and the American psychologist Carl Rogers in which Buber questions whether anyone can do psychotherapy in the role of a psychotherapist. Buber was visiting the United States at the time and had been invited, along with Carl Rogers, to a discussion at a mental hospital in front of a group of mental health professionals. 오래 전 내 인생의 9년을 보내고 있을 때,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한 자격에 필요한 학위와 훈련에 필요한 과정을 9년간 하고 있을 때, 나는 우연히 토론을 접하게 되었다. 그 토론은 이스라엘 철학자인 마르틴 부버와 미국 심리학자인 칼 로저스 사이의 토론이었다. 이 토론에서 부버는 의문을 제기했다. 어떤 사람이 심리 치료를 할 수 있을지. 심리치료사 역할을 하는 사람이. 당시 미국을 방문하고 있던 부버는 한 정신병원의 초청으로 여러 정신보건 전문가들 앞에서 칼 로저스와 함께 토론했다.
In this dialogue Buber posits that human growth occurs through a meeting between two individuals who express themselves vulnerably and authentically in what he termed an "I-Thou" relationship. He did not believe that this type of authenticity was likely two exist when people meet in the roles of psychotherapist and client. Rogers agreed that authenticity was a prerequisite to growth. He maintained, however, that enlightened psychotherapists could choose to transcend their own role and encounter their clients authentically. Buber was skeptical. He was of the opinion that even if psychotherapists were committed and able to relate to their clients in an authentic fashion, such encounters would be impossible as long as clients continued to view themselves as clients and their psychotherapists as psychotherapists. He observed how the very process of making appointments to see someone at their office, and paying frees to be "fixed," dimmed the likelihood of an authentic relationship developing between two persons. 이 토론에서 인간의 성장은 자신을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두 사람의 만남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만남을 ‘나와 너’ 관계라는 용어를 사용해 표현했다. 부버는 사람들이 심리치료사와 내담자라는 관계로 만나게 된다면, 두 사람 사이에 이러한 진정성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로저스도 이런 진정한 관계로 만나는 것이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사실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그는 심리치료사라면 자신의 역할을 추월해 내담자를 진실하게 대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버는 이에 회의적이었다. 그는 심리치료사 쪽에서는 내담자를 진정한 태도로 대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만약 내담자가 자신은 내담자이고, 상대는 심리치료사라고 본다면 로저스가 주장한 관계는 불가능해진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내담자가 치료를 받기 위해 진료예약을 하고, ‘치료된 것’에 대해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는 그 과정 자체가 두 사람 사이에 진정성 있는 관계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희박하게 한다고 말했다.
This dialogue clarified my own long-standing ambivalence toward clinical detachment-a sacrosanct rule in the psychoanalytic psychotherapy I was taught. To bring one's own feelings and needs into the psychotherapy was typically viewed as a sign of pathology on the part of the therapist. Competent psychotherapists were to stay out of the therapy process and to function as a mirror onto which clients projected their transferences, which were then worked through with the psychotherapist's help. I understood the theory behind keeping the psychotherapist's inner process out of psychotherapy and guarding against the danger of addressing internal conflicts at the client's expense. However, I had always been uncomfortable maintaining the requisite emotional distance, and furthermore believed in the advantages of bringing myself into the process. 이 대화는 나에게 오랫동안 모호했던 것을 분명하게 했다. 직업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신성불가침이었다. 내가 배웠던 치료사와 내담자사이에 심리치료과정에서 직업적인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동안 치료사가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개입시키는 것은 치료사가 문제가 있는 것을 간주되었다. 유능한 심리치료사라면 치료 과정 자체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내담자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투사하는 거울이 되어 그를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같은 주장 뒤에는 내담자를 보호하려는 듯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 치료에 방해되는 심리치료사의 감정적인 갈등을 표현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담자와 정서적인 거리를 꼭 유지해야 한다는 전제에 항상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개입될 때의 장점을 믿었기 때문이다.
I thus began to experiments by replacing clinical language with the language of NVC. Instead of interpreting what my clients were saying in line with the personality theories empathically. Instead of diagnosing them, I revealed what was going on within myself. At first, this was frighting. I worried about how colleagues would react to the authenticity with which I was entering into dialogue with clients. However, the results were so gratifying to both my clients and myself that I soon overcame any hesitation. Today, thirty-five years later, the concept of bringing oneself fully into the client-therapist relationship is no longer heretical, but when I began practicing this way, I was often invited to speak to groups of psychotherapists who would challenge me to demonstrate this new role. Once I was asked, by a large gathering of mental health professionals at a state mental hospital, to show how NVC might serve in counseling distressed people. After my one-hour presentation, I was requested to interview a patient in order to produce an evaluation and recommendation for treatment. 그래서 나는 임상 언어를 NVC로 바꾸어 쓰는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내담자가 말할 때 내가 배운 이론을 적용하며 분석하는 대신, 내 관심의 초점을 상대방에게 두면서 공감하면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를 진단하기보다 나 자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드러냈다. 처음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상당히 두려웠다. 내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며 내담자와 대화하는 것에 동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그 결과가 내담자와 나 모두에게 너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그런 망설임을 극복할 수 있었다. 35년 후인 오늘날, 심리 치료사가 내담자를 만나면서 자신의 느낌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을 더 이상 이단시하지는 않지만 내가 처음 그렇게 하기 시작했을 때는 심리치료사들로부터 이 새로운 방법을 보여 달라는 도전을 받곤 했다. 시립병원의 정신보건 전문가들로부터 신경불안 증세를 가진 사람들을 상담하는 데 NVC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설명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한 시간의 발표가 끝난 후 그들은 내게 한 환자의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그 환자와 면담해달라고 부탁했다.
I talked with the twenty-nine-year-old mother of three children for about half an hour. After she left the room the staff responsible for her care posed their questions. "Dr.Rosenberg," her psychiatrist began, "please make a differential diagnosis. In your opinion, is this woman manifesting a schizophrenic reaction or is this a case of drug-induced psychosis?" I said that I was uncomfortable with such questions. Even when I worked in a mental hospital during my training, I was never sure how to fit people into the diagnostic classifications. Since then I had read research indication a lack of agreement among psychiatrists and psychologists regarding these terms. The reports concluded that diagnoses of patients in mental hospitals depended more upon the school the psychiatrist had attended than the characteristics of the patient themselves. 나는 세 아이를 둔 29세의 여성과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환자가 방을 나간 후 담당의가 내게 물었다. 로젠버그 박사님, 감별진단을 말씀해주세요. 박사님 생각에는 이 환자가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고 있는 가요? 아니면 약물로 인한 정신장애 케이스인가요? 나는 이러한 질문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할 때도, 나는 사람들을 어떤 진단분류에 맞추어 넣어야 할지 뚜렷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이 같은 진단명에 대해 정신과 의사들과 심리학자들 간에 깊은 견해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보고서를 읽었다. 이 보고서들은 정신병원에서 내려지는 진단은 환자가 보이는 증상 자체 보다는 그 정신과 의사가 어는 학교를 다녔느냐에 따라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I would be reluctant, I continued, to apply these terms even if consistent usage did exist, because I failed to seen how they benefited patients. In physical medicine, pinpointing the disease process that has created the illness often gives clear direction to its treatment, but I did not perceive this relationship in the field we call mental illness. In my experience of case conferences at hospitals, the staff would spend most of its time deliberating over a diagnosis. As the allotted hour threatened to run out, the psychiatrist in charge of the case might appeal to the others for help in setting up a treatment plan. Often this request would be ignored in favor of continued wrangling over the diagnosis. I explained to the psychiatrist that NVC urges me to ask myself the following questions rather than think in terms of what is wrong with a patient: 혹시 일관성 있는 진단 용어가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런 말을 쓰고 싶지 않다. 그것이 내 환자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신체 의학 분야에서는 질병을 초래하는 질병과정을 명확히 규명하면 치료의 방향이 정해진다. 하지만 나는 정신의학이라고 불리는 분양에서 이같은 상관관계를 보지 못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병원의 임상 사례 보고 시간에 의사들은 진단 자체에 대해 토론하는 데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 정해진 회의 시간이 끝날 즈음 환자의 담당의가 다른 의사들에게 치료계획에 관한 조언을 요청해도, 계속되는 진단 논쟁 때문에 그같은 요청은 종종 무시되곤 했다. 나는 환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 생각하는 대신 NVC로 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고 정신과 의사들에게 설명했다.
"What is this person feeling? What is she or he needing? How am I feeling in response to this person, and what needs of mine are behind my feelings? What action or decision would I request this person to take in the belief that it would enable them to live more happily?" Because our responses to these questions would reveal a lot about ourselves and our values, we would feel far more vulnerable than if we were to simply diagnose the other person. On another occasion, I was called to demonstrate how NVC could be taught to people diagnosed as chronic schizophrenics. With about eighty psychologists, psychiatrists, social workers, and nurses watching, fifteen patients who had been thus diagnosed were assembled on the state for me. As I introduced myself and explained the purpose of NVC, one of the patients expressed a reaction that seemed irrelevant to what I was saying.Aware that he'd been diagnosed as a chronic schizophrenic, I succumbed to clinical thinking by assuming that my failure to understand him was due to his confusion. "You seem to have trouble following what I'm saying," I remarked. 이 사람은 지금 어떤 느낌인가?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나는 어떻게 느끼는가? 그 느낌 뒤에 있는 나의 욕구는 무엇인가? 이 사람이 더 행복하게 사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어 그에게 제안하고 싶은 행동이나 결정은 무엇인가? 나는 환자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하는 점에서 생각하는 대신 NVC로 내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고 정신과 의사들에게 설명했다. 한 번은 만성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NVC를 가르칠 수 있는지 시범을 보여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심리학자·정신과 의사·사회복지사·간호사 등 약 8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진단받은 환자 15명이 무대에 올라 있었다. 내가 소개받은 뒤 NVC의 목적에 대해 설명했을 때 환자 중의 한 명이 반응을 보였다. 관련없어 보이는 것 같은 반응. 내가 말한 것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것에 대한 반응. 인식하면서 그는 만성 정신분열증으로 진단받아 왔던 것을 인식하면서, 나는 굴복했다. 임상적인 사고에. 가정하는 임상적인 사고에 굴복했다. 그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 것은 그의 혼란 때문이라고. 당신은 어려움을 겪는 듯하군요. 내가 말한 것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듯 하군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At this, another patient interjected, "I understand what he's saying," and proceeded to explain the relevance of the first patient's words in the context of my introduction. Recognizing that the man was not confused, but that I had simply not grasped the connection between our thoughts, I was dismayed by the ease with which I had attributed responsibility for the breakdown in communication to him. I would have liked to have owned my own feelings by saying, for example, "I'm confused. I'd like to see the connection between what I said and your response, but I don't. Would you be willing to explain how your words relate to what I said?" With the exception of this brief departure into clinical thinking, the session with the patients went successfully. The staff, impressed with the patients' responses, wondered whether I considered them to be an unusually cooperative group of patients. I answered that when I avoided diagnosing people and instead stayed connected to the life going on in them and in myself, people usually responded positively. 내가 이렇게 말하자 다른 환자가 끼어들었다. ‘나는 저 사람이 하는 말을 이해해요’ 그러고는 앞 사람의 말이 내가 한 말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었음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깨닫고서, 그 사람이 헷갈렸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와 나 사이의 생각들의 연결을 파악 못했던 것을 깨닫고, 나는 실망했다. 쉽게 책임을 넘긴 것에 대해. 그와의 대화가 끊어진 책임을 그에게 쉽게 넘긴 것에 대해 실망했다. 나는 내 자신의 느낌에 책임을 지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제가 좀 헷갈리는데, 제 말과 당신의 응답이 어떻게 관련성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설명해 주실 수 있겠어요?> 잠깐 임상적 사고에 빠진 것을 제외하고는 이 날 환자들과의 시연은 성공적이었다. 무대 위 환자들의 반응을 인상 깊게 본 참석자들은 이 환자들이 특별히 협조적인 편에 속했는지 궁금해 하며 내게 질문했다. 분석하고 진단하는 대신 나와 그들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동감에 귀를 기울인다면 사람들은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응한다고 나는 대답했다.
A staff member then requested a similar session be conducted, as a learning experience, with some of the psychologists(심리학자) and psychiatrists(정신과 의사) as participants. At this, the patients who had been on stage exchanged seats with several volunteers in the audience. In working with the staff, I had a difficult time clarifying to one psychiatrist the difference between intellectual understanding and the empathy of NVC. Whenever someone in the group expressed feelings, he would offer his understanding of the psychological dynamics behind their feelings rather than empathize with the feelings. When this happened for the third time, one of the patients in the audience burst out, "Can't you see you're doing it again? You're interpreting what she's saying rather than empathizing with her feelings. By adopting the skills and consciousness of NVC, we can counsel others in encounters that are genuine, open, and mutual, rather than resort to professional relationships characterized by emotional distance, diagnosis, and hierarchy. 참석자들도 실제 체험할 수 있도록 진행자가 내게 심리학자아 정신과 의사 몇 명을 대상으로 같은 실습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무대 위에 있던 환자들이 관객석에 있던 지원자 몇 명과 자리를 바꿔 앉았다. 나는 무대에 올라온 참석자들과 상담하면서 나는 한 정신과 의사에게 머리로 하는 이해와 NVC로 공감하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는 데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다른 사람이 느낌을 표현할 때마다 그는 느낌에 공감하기보다 그 느낌에 대해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심리학적 이론을 설명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자 관객석에 앉아 있던 한 환자가 소리쳤다. <또 그렇게 하네요. 모르시겠어요? 당신의 저 사람의 느낌에 공감하지 않고 저 사람이 하는 말을 분석하고 있잖아요> NVC의 기술들과 의식을 적용해서, 우리는 사람 사람들을 상담할 수 있다. NVC 기술과 의식을 적용해서, 우리는 상담할 수 있다. 진정으로 열린 마음으로 만나면서, ~하기 보다는 직업적인 관계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직업적인 관계는 특징 지워진다. 정서적인 거리를 두고, 진단하고, 의료계 내의 권위체계에 매인다.
Summary 요약
NVC enhances inner communication by helping us translate negative internal messages into feelings and needs. Our ability to distinguish our own feelings and needs and to empathize with them can free us from depression. By showing us how to focus on what we truly want rather than on what is wrong with others or ourselves, NVC gives us the tools and understanding to create a more peaceful state of mind. Professionals in counseling and psychotherapy may also use NVC to engender mutual and authentic relationships with their clients. 우리는 NVC로 마음속의 부정적 메시지를 느낌과 욕구로 바꿈으로써 자신과의 소통을 더 잘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인식하고, 그 느낌과 욕구에 공감함으로써 우리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에는 선택의 여지가 있음을 인식하게 된다.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잘못을 찾으려 하는 대신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관심을 집중함으로써 NVC는 좀 더 평화로운 내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이해력과 방법을 보여준다. 상담·심리치료 전문가들도 NVC를 활용하여 내담자들과 진정성 있는 상호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NVC in action NVC적용 사례
Dealing with resentment and self-judgment 자기비판과 분노 다루기
A student of nonviolent communication shares the following story. I had just returned from my first residential training in NVC. A friend whom I hadn't seen for two years was waiting for me at home. After she listened to my enthusiastic description of NVC, Iris revealed that she was still hurting from what one of the wildnerness leaders in Colorado had said to her six years before. NVC를 배우는 교육생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NVC 교육 프로그램을 마치고 막 집으로 돌아왔는데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집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NVC에 대해 열정에 넘쳐 설명하는 것을 듣더니, 아이리스는 6년 전 콜로라도 수련에서 한 지도자가 했던 말이 아직도 자기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I had a clear memory of that person: wild-woman Leav, her palms, gouged with rope cuts, holding steady a belayed body dangling, howled in the dark, danced her joy, cried her truth, and mooned our bus as we waved good-bye for the last time. 나도 그 사람을 잘 기억했다. 야생녀 리브는 수련생들이 암벽에 매달려 올라갈 때 밧줄을 잡아주느라 손바닥이 갈라져 있었다. 그녀는 동물들의 배설물을 읽고 길 안내를 했고, 어둠 속에서 소리를 질렀으며, 기쁨으로 춤을 췄고, 자신의 진실을 큰소리로 솔직하게 말하는 여자였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버스에 타고 손을 흔드는 우리에게 엉덩이를 내보이기도 했다.
What Iris had heard Leav say during one of the personal feedback sessions was this: “Iris, I can't stand people like you, always and everywhere being so samn nice an sweet, constantly the meek littel librarian that you are. Why don't you just drop it and get on with it? 수련을 마치면서 개인적인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리브는 아이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리스, 난 당신같은 사람은 견딜 수 없어요. 언제 어디서나 착하고 상냥한 사람 말이야. 온순하기 만한 도서관 사서 노릇은 이제 좀 집어치우지 그래요?
For six years Iris had been listening to Leav's voice in her head, and for six years she'd been answering Leav in her head. We were both eager to explore how a consciousness of NVC could have affected the siutaion. I role-played Leav and repeated her statement to Iris. 지난 6년간 아이리스는 머릿속에서 리브의 목소리를 수없이 듣고 또 머릿속에서 그 목소리에 수없이 대답해왔다. 우리 둘은 이 상황이 NVC로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탐구해보고 싶었다. 내가 리브 역할을 하면서 그녀가 6년 전에 아이리스에게 한 말을 되풀이해주었다.
Iris: (forgetting about NVC and hearing criticism and put-down) You have no right to say that to me. You don't know who I am, or what kind of librarian I am! I take my profession seriously, and for your information, I consider myself to be an educator, just like teacher. . . (NVC를 잊어 버리고 리브의 말을 비난과 모욕으로 듣는다.) 당신이 뭔데 내개 그런 말을 해요.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어떤 도서관 사서인지도 모르잖아요. 사서가 어때서요? 그리고 한 가지 알려 주겠는데 나는 자신을 어떤 선생님과도 같은 교육자로 생각하고 있어요.
Me: (with NVC consciousness, listening empathically, as if I were Leav) It sound tom me you're angry because you want me to know and recognize who you really are before criticizing you. Is that so? (NVC 의식을 가진 리브로 공감한다.) 화가 난 것 같군요. 내가 당신을 비판하기 전에 당신이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고 인정했으면 하기 때문에 화가 난 것 같은데, 맞나요?
Iris: That's right! You have simply no idea how much it took for me to even sign up for this trek. Look! Here I am: I finished, didn't I? I took on all the challenges these fourteen days and overcame them all! 네 맞아요. 이 수련에 등록하는 것만도 내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당신은 알지도 못해요. 그런데 봐요. 나는 이 수련 과정을 모두 마쳤잖아요. 안 그래요? 이번 14일 동안 별별 힘든 것들을 다 해냈단 말이에요.
Me(리브의 역할을 하는 나): Am I hearing that you feel hurt and would have liked some recognition and appreciation for all your courage and hard work? 그래서 마음에 상터를 입었다는 말로 들리는데요. 얼마나 당신이 용기를 냈고 노력을 했는지 인정해주었으면 하세요?
A few more exchanges followed, whereupon Iris showed a shift; these shifts, when a person feels "heard" to his or her satisfaction, can often be observed bodily. 이렇게 몇 번 더 대화가 오갔을 때 아이리스에게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변화는 누군가가 자신을 충분히 만족할 만큼 ‘들어 주었다’고 느꼈을 때 몸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For instance, a person may relax and take a deeper breath. This often indicates that the person has received adequate empathy and is now able to shift attention to something other than the pain they have been expressing. 한 예로, 그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깊은 숨을 쉬게 된다. 이것은 충분한 공감을 받았고, 이제 다른 것으로 관심을 돌릴 수 있다는 신호인 경우가 많다.
Sometimes they are ready to hear another person's feelings and needs. Or sometimes another round of empathy is needed to attend to another area of pain. In this situation with Iris, I could see that another piece needed attention before she would be able to hear Leav. This is because Iris had had six years of opportunities to put herself down for not having produced an honorable comeback on the spot. After the subtle shift, she immediately went on: 때로는 상대방의 느낌과 욕구를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는 표시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고통에 대해 공감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표시일 수도 있다. 아이리스의 경우, 리브의 말을 편한 마음으로 들을 수 있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요한 한 가지가 더 있었다. 그것은 아이리스가 당시 그 자리에서 리브에게 근사하게 맞받아치지 못한 것에 대해 지난 6년 동안 자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해 왔다는 사실이다. 표정이 바뀌면서 아이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Iris: Darn, I should have said all this stuff to her six years ago! 제길 6년 전에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Me:(as myself, an empathic friend) You're frustrated because you wish you could have articulated yourself better at the time. (공감해주는 친구로서의 나) 그 때 네 마음을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해서 아직도 억울하니?
Iris: I feel like such an idiot! I knew I wasn't a "meet little librarian," but why didn't I say that to her? 그 때 왜 그렇게 바보 같았는지 몰라. 내가 그저 ‘온순한 도서관 사서’가 아니라는 걸 왜 그 때 말하지 못했지?
Me: So you wish you had been enough in touch with yourself to say that?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만큼 그 때 너 자신의 마음을 잘 이해했더라면 좋았겠니?
Iris: Yes, And I'm also mad at myself! I wish I hadn't let her push me around. 그래, 나한테 화가 나! 리브가 그런 식으로 나를 취급하지 못하게 해야 했어.
Me: You'd like to have been more assertive than you were? 그 때 좀 더 단호하게 말했으면 좋았겠니?
Iris: Exactly, I need to remember I have a right to stand up for who I am. 그래 바로 그거야. 나는 내가 누구인지 당당히 말할 권리가 있다는 걸 기억하는 것이 필요해.
Iris was quiet for a few seconds. She expressed readiness to practice NVC and hear what Leav said to her in a different way. 아이리스는 잠시 조용해졌다. 리브가 자신에게 한 말을 다르게 들을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Me: (as Leav) Iris, I can't stand people like you, always so nice and sweet, being forever the meek little librarian. Why don't you just drop it and get on with it? 아이리스 난 당신같은 사람은 견딜 수 없어요. 언제 어디서나 그저 착하고 상냥한 사람 말이야. 온순하기 만한 도서관 사서 노릇은 이제 좀 집어치우지 그래요?
Iris: (listening for Leav's feelings, needs, and requests) Oh, Leav, it sounds to me like you're really frustrated. . . frustrated because. . . because I. . .(리브의 느낌, 욕구, 부탁에 귀 기울이면서) 리브, 뭔가 좌절스럽다는 소리 같군요. 왜냐하면 내가. . . 내가. . .
Here Iris catches herself at a common mistake. By using the word I, she attributes Leav's feeling to Iris herself, rather than to some desire on Leav's own art that generates the feeling. That is, not "You're frustrated because I am a certain way," but "You're frustrated because you wanted something different from me." (trying again) Okay, Leav, it sounds like you're really frustrated because you are wanting. . . um. . . you're wanting. . . As I tried in my role-play to earnestly identify with Leav, I felt a sudden flash of awareness of what I (as Leav) was yearning for: 아이리스는 자신의 실수를 눈치채고 하려던 말을 멈춘다. 이런 실수는 많은 사람들이 보통 하는 실수인데 아이리스는 리브의 느낌을 가져오는 리브의 욕구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라는 말을 함으로써 리브의 느낌에 대한 책임을 아리리스 자신에게 돌린 것이다. 즉, 당신은 뭔가 좌절스러워 보이는 군요. 왜냐하면 당신이 원하는 것이. . . 음. . . 당신은. . . 무언가 다른 것을 원했기 때문에 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브 역할을 하면서 나는 내가(리브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문득 깨달았다.
Me: (as Leav) Connection!. . . That's what I am wanting! I want feel connected. . . with you, Iris! and I am so frustrated with all the sweetness and niceness that stand in the way that I just want to tear it all down so I can truly touch you! (리브 로서) 아! 서로 연결되는 것...바로 그걸 원하는 거야! 나는 당신과 연결하고 싶어요. 아이리스! 그래서 우리가 친해지는 데 장벽이 되는 그 착하고 예의 바른 태도를 무너뜨리고 싶어요. 우리가 가까워질 수 있게 말이예요!
We both sat a bit stunned after this outburst, and then Iris said, "If I had known that's what she had wanted, if she could have told me that it was genuine connection with me she was after. . . Gosh, I mean, that feels almost loving." While she never did find the real Leav to verify the insight, after this practice session in NVC, Iris achieved an internal resolution about this nagging conflict and found it easier to hear with a new awareness when people around her said things to her that she might previously have interpreted as "put-downs.". . . the more you become a connoisseur of gratitude, the less you are a victim of resentment, depression, and despair. Gratitude will act as an elixir that will gradually dissolve the hard sell of your ego-your need to possess and control-and transform you into a generous being. The sense of gratutude produces true spiritual alchemy, makes us magnanimous-large souled. 우리는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온 이 말에 약간 얼떨떨해서 앉아 있었다. 잠시후 아이리스가 말했다. 그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나와의 연결이었다는 것을. . . 이런, 정말 가슴이 찡한데. 그녀가 실제로 리브를 만나서 이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NVC로 역할극을 하고 나서, 아이리스는 마음속에 내내 남아 있던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예전에는 ‘얕잡아 보는 말’로 들리던 주위 사람들의 말을 새로운 의식으로 훨씬 편하게 들 수 있게 되었다. 감사를 잘 이해하고 자주하는 전문가가 될수록 분노와 우울, 절망에 덜 빠지게 된다. 가사는 에고(소유하고 지배하기를 원하는)의 굳은 껍데기를 서서히 녹이는 특효약이 되어 우리를 관대한 존재로 바꾸어 준다. 감사하는 마음은 우리를 고결하고 넓은 영혼으로 자라게 해주는 진정한 영적 연금술이다.
Sam Keen, philosopher 샘킨,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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