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즐기면 돼 / 임정자
창문을 열어 놓고 청소를 한다. 파리가 들어왔다. "어디든 앉아봐라, 너를 잡고야 말겠어" 말과 동시에 내 눈은 파리를 내리칠 무기를 찾고 있다. 가까이에 작은 달력이 있다. 파리는 티브이 모퉁이에 앉았다. 부러 날려버렸다. 이리저리 날더니 식탁에 앉았다. 잽싸게 달력으로 후려쳤다. 날아가 버렸다. 예전에는 양말 한 짝으로도 한 방에 보내버렸는데 짜증이 났다. 파리채를 찾았다. 웬걸, 한 방이다. "나 원 참, 장비가 문제였던 거야?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데 경기도 일산에 사는 언니가 전화했다. 뭐 하고 있느냐 묻길래. 파리와 실랑이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운동 부족이야 춤을 배우라니까"라고 말해 "아니요, 장비 빨 이거든요."
언니는 오래전부터 드럼과 라인댄스를 하고 있었다. 매일 음악학원을 다녔다. 배운지 2년 차에 꽤 비싼 드럼을 샀다. 회원들과 길거리 연주를 하러 다녔다. 이순이 넘는 나이에도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옷을 입고 공연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언니는 드럼만 한 게 아니었다. 집 가까이에 주민복합 문화센터에서 라인댄스를 배웠다. 일주일에 3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춤 복 입는 모습을 꽤 만족스러워했다. 언니의 일상은 춤과 드럼으로 건강한 하루를 산다.
언니는 통화할 때마다 내게 잔소리를 했다. 취미생활을 하게 되면 함께 하는 사람들과 공통되는 이야기가 오가기 때문에 사회성도 좋아진다. 잘하려고 연습하다 보면 실력이 는다. "오, 내가 이걸 해냈다고!" 자신감이 생겨 춤을 추게 된다는 등 여러 좋은 점을 말해주었다. 더불어 건강에도 좋다며 노래든 춤이든 악기든 취미를 가져 보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했다. 내게도 취미가 있다고 말하면 언니는 인정하지 않았다. 등산은 운동이다 했다. 주말에 낮은 산을 남편과 걷는다. 전문 산악인이 등반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다. 가볍게 둘레길 정도를 걷는 것이다. 간편한 차림에 등산화만으로도 무난하다. 언니 말이 맞았다. 취미라기보다는 체력 단련을 위한 운동에 가깝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즐기는 수준이다.
나도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처음엔 운동복 차림으로 맨 뒷줄에 섰다. 회원들이 입고 온 화려한 줌바 옷이 눈에 띈다. 어디서 샀냐 물어 그 쇼핑몰에 가입했다. 겨울에는 추워 긴 바지만 샀는데 이제 여름옷으로 바꿨다. 몸이 드러나는 착 달라붙는 노란 춤 복을 입고 거울을 본다. 조금 노출된 몸이 쑥스럽지만 흡족하다. 신발도 그렇다. 검은 무늬 없는 것만 사다가 알록달록 색깔도 요란하다. 예뻐서 질렀다. 돈이 제법 든다. 적당한 장비 병은 취미에 몰입하게 한 듯하다. 그렇다고 춤 실력이 느는 건 아니다. 여전히 몸은 뻣뻣하고 한 박자 늦다. 제법 그럴싸한 춤을 추려면 장비보다는 몸이 기억하도록 연습이 답이다.
또 다른 삶의 작은 변화가 활력을 준다. 호흡과 근육, 온몸의 신경들이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그중 눈이 제일 바쁘다. 안무 따라 해야지, 매일 춤 복이 달라지는 강사의 섹시한 모습에 손과 발은 엇박자를 이룬다. 자유롭게 리듬을 타는 게 아니라 흉내를 내고 있다. 그것도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그녀는 잔잔한 물결처럼 몸을 흔들다가 거친 파도가 밀려오듯 격하게 움직인다. 늘 웃는 얼굴이지만 음악의 강약에 따라 미간을 찡그렸다가 작은 눈을 치켜세웠다 입을 크게 벌려 함성을 지른다. 그녀에게 눈을 뗄 수가 없다. 드러나 보이는 몸동작이 곧 언어 표현이기 때문이다. 한 시간 내내 음악에 맞춰 안무를 따라 하다 보면 60분이 10분처럼 지나간다. 그냥 즐기면 된다.
첫댓글 춤에 입문하신 것을 축하합니다. 좀 시간이 가면 잘 하실 것 같아요.
위로, 고맙습니다.
가무에 재능이 없어요. 잘 할 때까지 그냥 할랍니다.
잘 추실 것 같아요. 재밌게 읽었습니다.
아니요. 잘 못 춰요.
하하하. 하다보면 기본은 하겠지요?
와, 60분이 10분이 되는 순삭을 경험하시는군요.
잘 추실 것 같아요.
이쁜 옷, 화려한 장비가 만족감을 준다면 한 번씩은 크게 지르는 게 정답입니다.
제 모습이 보기엔 뭐든 잘 하게 보이나 봅니다. 알고 보면 허당인데요.
선생님은 비범해 보이세요.
선생님 글을 읽으니 기대가 됩니다. 저는 저번 주에 한 번 갔거든요. 오늘 두 번째 갑니다. 아직 흥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좀 더 해 보면 답이 나오겠지요?
줌바춤 입문에 축하드립니다. 결석하지 말아야해요. 3월에 아파서 3주 빠졌더니 다시 처음으로 갔어요. 선생님 잘 하실거에요. 몸이 유연해 보여요.
멋지세요. 춤에 빠진 모습 좋아 보여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