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 증후군 / 봄바다
내가 엄마가 되어 보니 그 중, 만만해서 사소한 부탁을 많이 하게 되는 자식이 있다. 우리 집에서도 서열로 가운데인 큰딸이 그렇다. 생필품 구입이나, 식당 예약 등 소소한 일은 으레껏 그녀 몫이다. 가끔 막내는 아껴서 어디에다 쓸 거냐며 툴툴거리기도지만 큰 불만을 표한 적은 없다. 남편은 그녀가 어린 시절, 차분하지 못하고 용돈을 함부로 쓴다며 나를 닮았다고 싫어했다. 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막내는 커가면서 너무나 똑 부러져서 모든 일에 인과를 따져가며 재곤 해서 그도 요즘은 별로라 여기며 고개를 흔들어 댄다. 거울처럼 남편을 닮아가는 막내가 보기에 어떠냐며 가끔 그에게 물으면 자신은 저 정도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우리 집에서 내 위치도 지금의 큰딸과 같았다. 엄마는 결혼해서 10년 만에 낳은 큰아들에게 거의 질질 끌려다니다시피 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에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발 벗고 나서서 구해다 주고, 그가 벌이는 사고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인생을 소모했다. 그를 낳은 지 4년 만에 생긴 큰딸에게는 어떻겠는가? 아들을 낳고 이어 생긴 큰딸은 예쁜 데다가 하루종일 있어야 말 한 마디 않는, 조용한 아이라 손댈 일이 없었다. 아들도 딸도 생긴 마당에 아들 낳은 기쁨을 한 번 더 누리고 싶은 어머니께 내가 생겼다. 딸이라니 기대도 깨지고, 가만두어도 잘 크는 아이에게 위 두 아이들만큼의 관심을 두었을까?
대 여섯 살 무렵, 학교에서 놀다 지쳐 언니 교실의 문을 열었다가, 당황한 선생님이 언니를 불러 내 손을 잡아주고 집에 일찍 보낸 일이 기억에 선하다. 말이 없는 언니가 소리를 지르며 울었던 것도 같다. 집에서 한참 떨어진 학교까지 간 일이며, 운동장에서 놀다 온 얼굴과 손가락에 흙을 바르고 교실 문을 두드렸으니 언니가 창피해서 발을 구르는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하지만 엄마는 그 오랜 시간 내가 사라졌어도 찾지도 않았다는 게 역시 내게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버지 약이나 엄마 반찬거리 심부름은 전부 내 몫이었다. 약국 아저씨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영진 구론산 사러 왔니?”라며 웃으셨다. 약국 문이 다 열리기도 전에 조금만 몸이 문을 통과하면 “아저씨 영진 구론산 주세요.” 하는 단골손님이었기 때문이다. 나가기를 싫어해서 방에서 뒹굴고 있는 언니가 있어도 엄마는 항상 나만 불렀다. 그렇게 하고서도 꾸중은 내 몫이다. 언니는 약해서 등이라도 한 대 칠라치면 미리 까무러치니 내게 더욱 그랬던 듯 싶다.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그녀의 가슴에 이상 징후가 있어서 어려서 그랬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귀한 큰딸이 조금만 긴장해도 파랗게 질려 쓰러지니 그녀를 그렇게 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듯싶다.
이렇게 아들과 큰딸에 맹목적인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을 적이 많았다. 가세가 기울어졌어도 이런 어머니의 성향은 여전해서 틈만 나면 조용히 책을 읽는 언니를 칭찬하는 일이 많아 그날도 심기가 불편해서 일을 저질렀다. 언니 책을 몽땅 숨겨 버리고 뒷산에 숨어 집안 정경을 살펴 보았다. 내가 없어졌어도 별 관심이 없고 언니와 엄마는 책을 찾느라 등잔을 들고 집안팎을 헤매고 있었다. 드디어 책 뭉치를 찾고 모녀는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이런 아찔함이라니. 점점 해는 지고 무서워지기 시작한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도 아무일 없다는 듯, 밥을 퍼 주었다. 그때 아마 포기했으리라. 어떻게 해도 언니의 위치를 내가 대신할 수 없다는 걸. 그후로 그냥 내 역할에 더욱 충실했다. 그래서 더 강해진 나는 언니가 포기한 대학을 악착같이 다녔다. 아마 둘째라는 위치의 불합리함을 미리 깨달은 덕분 아닐까?
첫댓글 그래서 이렇게 씩씩하고 멋진 교장 선생님이 되셨군요.
부모님이 관심이 적은 것이 훨씬 자유롭고 독립적이고 나은 것 같아요. 지나 보니까. '비교'에 대한 상처만 없으면요.
저도 부모님이 관심은 있었겠지만 간섭할 시간이 없으셔서 그런지 자유롭고, 부모님과 갈등도 없었던 것 같아요.
멋진 교장 샘이라 칭해 주어 고맙습니다. 어린 아이가 느낄 정도로 표나게 나를 대한 엄마 때문에 겉으로는 센 척했지만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지요. 대신 확실하게 내 표현을 해야 살 수 있다는 생존 방식을 터득했네요. 인생은 참 오묘합니다.
얼굴 성격, 선생님 가진 게 부러워요.
저는 꽁하고 있는 성격이라. ㅋㅋ
지나고나면 다 나쁜 게 아니지요?
결국 이겨 내니 승자가 되셨구요.
토닥토닥.
어린 시절의 상처가 부디 씻겼기를 바랍니다.
잘 해내셨습니다. 강의 중에도 톡톡 튀는 선생님의 모습 멋지십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멋진 매력을 가지셨어요.
선생님께 느껴지는 내공이 하루아침에 쌓인 게 아니군요. 단단해 보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