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말을 걸어와요.
향원(강순희)
호박잎
“언니 호박잎 사가세요.”
“오늘 청도서 뜯어 온 겁니다. 한 바구니에 이천 원.”
모녀로 보이는 곱게 생긴 두 사람이 호박잎을 판다. 일요일이라 채소 노점이 문 닫은 날, 노점 한쪽에 좌판을 벌였다. 평소 노점상을 하는 분들이 아니라 어쩌다 오늘 하루 장사하는 사람들 같다. 호박잎 줄기 껍질도 벗겨 놓았고 짙푸른 잎이 보드랍고 싱싱해 보인다. 소나무 아래 자라서 깨끗하다며 자랑을 한다. 지나가며 눈여겨봐 둔 거라 은행 볼일을 마친 후 다시 가서 두 바구니를 샀다.
“빨리 팔고 가셔야 하잖아요.”
“이거 많아서 다 먹겠나? 아하! 국 끓여야겠다.”
“아유, 국 끓이는 것도 아세요?” 국 끓인다 했더니 넓고 억샌 잎을 두어 장 더 넣어주며
“아이고 복 받으실 거예요.”한다.
검은 봉지를 들고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모녀는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을 또 붙잡는다.
“호박잎 사세요.”
아주머니 한 분이 호박잎을 살펴본다. 그 곁에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나는 ‘호박잎이 좋아 보여서 이렇게 많이 샀노라.’는 말 대신 검은 봉지를 흔들어 보였다.
모자
반월당역 지하 2층 H백화점 입구의 옷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말을 건다. 모자가 자꾸 벗겨져 걱정이라며 내가 쓰고 있는 모자를 쳐다보셨다. 그날 나도 햇빛을 가리려고 창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모자를 벗어 보이며 크기를 줄이는 끈이 안에 있어 조여 맨다는 설명을 했다. 끈으로 턱 아래에 묶는 것이 안 벗겨지겠지만 등산 모자 외에는 끈이 잘 달려있지는 않더라는 말도 보탰다. 얘기를 하다 보니 할머니의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어제 산 모자가 맘에 들지 않아 교환하고 싶은 데 그 가게를 찾을 수 없어 헤매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한참을 걸은 후에 어떤 가게에서 모자를 샀다는 것만 기억하고 있었다. 마침 상호가 적힌 명함을 갖고 있어서 가게 주인과 통화하여 위치를 알아내었다. M상가 E열, 주인은 10번 출구 쪽으로 오라고 했다. 할머니는 정 반대쪽에서 헤매고 계셨던 것이다.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걷느라 할머니와 자연스레 손을 잡았다. 할머니께서 나보고 성당에 다니느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하니 “이 공을 어찌 갚을꼬.”하는 말만 되풀이하신다. 가끔 길 모르는 사람을 도와드린다고 했더니 당신께서도 젊으셨을 때 남을 많이 도와주었다며 이제 나이 팔십이 다 되어 간다고 하셨다.
가게에 도착하니 주인이 “어제 사가셨잖아요.” 하며 반가이 맞는다. 나는 더 편하고 좋은 모자로 바꿔 가시라며 그쯤에서 돌아섰다.
질문
하반기 아카데미 개강식에 가는 길이다. 마주 보는 방향에서 걸어오던 아주머니께서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걸어온다. 우산을 들고 있어서 손가방은 목걸이처럼 목에 걸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동사무소가 점심시간이겠지요?”
“일하고 가는 길인데 쌀을 신청하고 가려고요.”
“가 보세요. 점심시간이지만 아마 직원들이 교대로 자리를 지키며 일하고 있을 겁니다.”
“병원처럼 점심시간에 모든 일이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아주머니께서 발걸음을 돌려 동사무소(행정 복지 센터)로 향한다. 헛걸음 안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도 가던 길을 재촉했다.
커피믹스 하나
슈퍼마켓에서 이만 원 정도 되는 물건들을 계산하고 있을 때 그 청년은 커피믹스 낱개 하나를 가져와 내밀다가 주인아저씨께 핀잔을 들었다. 지금 다른 손님이 계산중인데 그렇게 하면 새치기하는 것이 되지 않느냐며 나무랐다. 청년은 그 말에 기가 죽어 겸연쩍어하는 표정을 보였다. 청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말투는 어눌하지만 얼굴은 착하게 보이고 옷차림도 말쑥했다. 150원을 내밀고 커피믹스 한 봉지를 사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커피믹스를 낱개로 사가는 사람이 있으니 팔겠지 하면서도 그 청년이 너무 안 되어 보였다. 내가 산 과자라도 한 봉지 주고 싶었지만 멀어져 가는 모습만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첫댓글 아마도 선생님의 착한 심성이 겉 모습에도 투영되는가 봅니다.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그도 나름의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대다수 이니. 좋은 현상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미담의 글, 작지만 감동적인 이야기를 기다리며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쩗지만 마음이 담겨 있는 아름다운 글입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 읽는이의 가슴까지 따뜻해 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자세히 묘사하셨습니다. 항상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선생님의 품성이 느껴집니다.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도저히 그런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에피소드 마다에서 느껴지는 향원님의 따뜻한 품성이 제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평소에 뵙던 향원님의 모습 그대로가 작은 미담에서도 보입니다. 여러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따뜻하게 하는 선생님의 품성에서 사람에 대한 사랑을 봅니다. 감사합니다.
장면 장면 마다 정겨운 대화에서 사람의 참살이를 보는 듯 합니다. 가슴 따뜻한 글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남에게 잘했다고 말씀했듯이, 작은 공덕도 자꾸 쌓아 올리면 높다란 탑이 되고 언젠가 그 공덕은 되돌아 온다고 생각합니다. 하루에 한가지 착한 일을 훌륭히 잘 실천하고 계시는 향원님께 아낌없는 찬사를 보냅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따뜻함이 베어있는 선생님의 아우라가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손도손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의 모습과 늘 주변을 챙기고 배려하는 선생님의 살아가는 모습이 글에 녹아있습니다.잘 읽었습니다
알을 거는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대화가 잘 그려져 있습니다. 가끔 가다가 길이라도 묻고 싶을 때는
인상이 좀 부더러워 보이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게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선생님 모습이 조용하고 따뜻해
보이는 인상이 상대방은 읽고 있었던 모습입니다. 감명 깊었습니다.
평소보는 따뜻함이 천성인가 봅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이라 했습니다. 적선만이 천명되로 살고 자녀들에게 영향은 준다고 알고있습니다. 3대가 적선을 하여야 정승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복 받으실 것이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