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달레이로 돌아왔다.
일주일 만에 다시 온 만달레이는 전혀 낮설지 않았다.
낮 최고 기온이 37도라고 하지만 견딜만하다.
지난 번 이틀간 머물면서, 44도의 열기 속에 만달레이 힐까지 올라갔다 오고는 체력이 고갈되는 느낌이 들어 사가잉, 민군, 그리고 우베인 다리를 이번에 둘러 볼 생각으로 핀우린으로 떠났다.
핀우린에서 만달레이로 내려오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태익 철교를 지나 온, 하루 한 번 있는 기차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70키로 거리를 약 4시간 이상 내려간다. 두번째는 일반적으로 배낭여행객들이 이용하는 택시이다. door to door로 운영하는 택시는 비용이 일인 6천짯이다. 마지막으로 트럭버스를 타고 오는 방법이다.
트럭버스는 운행시간이 일정하지 않을 뿐더러 주민만 이용하는 관계로 탑승하는 정류장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대신 일인 1500짯으로 저렴하다.
갈 때와 올 때 모두 트럭버스를 이용했다.
올 때는 역시 외국인은 우리 둘 뿐이다. 현지인들은 우리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핀우린에서 만갈레이로 향하는 도시가 끝나는 도로변이 버스 정류장이다.
올 때는 2시간을 기다렸던 버스가 우리가 탑승하니 바로 출발한다.
중간에 두 번 엔진열을 식히기 위해 정차한 것을 제외하고는 제 속도로 2시간 만에 만달레이 도착. 트럭버스는 숙소에 가까운 기차역 근처가 종점이다.
ace backpacker hostel은 도미토리로만 운영하는 숙소이다.
10인실 4.4유로로 3일간 예약.
3일 후 바간 가는 야간기차를 예매했다.
4일 오후 9시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4시에 도착 예정이다.
** ace hostel ,숙소에서 달라가 조금 접혀있다고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찟어진 것도 아니고 접혀 있는 것도 받을 수 없다는 태도이다. 손상된 달라는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이건 아니다. 약간 접힌 자국이 남아 있는 정도이다.
핀우린 호텔에서 받은 돈이니 확인해 보라고 하니 , 전화로 확인 후에 받는다.
거리 음식점.
화덕 위 작은 후라이판에 쌀가루 반죽을 놓고, 그 위에 야체와 계란을 얹은 후 뚜껑을 닫고 익힌 음식. 바싹바싹한 식감의 간식으로 즐겨 먹는 거리음식 300짯과 200짯 두 종류가 있다. 맛은 그냥..
익숙한 거리에 다시 왔다.
ace backpacker hostel 로비.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낮에는 절전되는 시간이 많아 무척 덥다.
만달레이 2일차.
ace star backpacker hostel의 10인실 도미토리에 빈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손님이 많은 것이 아니다. 숙소 정책으로 예약 손님이 한 방에 모이도록 한 셈이다.
1층을 리셉션과 공용공간으로 사용하는 4층 건물 전체가 도미토리 룸인 숙소이다.
남자전용,여자전용 그리고 혼용으로 되어 있는 다인실 중 유일하게 혼용룸만 4.4달라로 1달라 가격을 낮추었다. 조건이 같으니 대부분 혼용룸으로 예약한다.
숙소 입장에서는 손님을 여러 방에 분산시켜 관리하기보다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한 방만 가격을 인하하는 정책을 사용한 셈이다. 미얀마는 전력사정이 좋지 않아 낮 시간에는 정전이 되는 경우가 많다.오후 6시부터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다.
오늘 태국으로 떠나는 이태리 아가씨 2명. 프랑스 일행 4명, 나중에 들어 온 남자아이 2명까지 모두 10명이 같은 방을 사용했다.
looftop에서 숙소가 제공하는 조식은 볶음밥과 바나나 하나가 전부이다.
토스트와 쨈은 원하는 사람이 직접 구워 먹도록 재료를 준비해 두었다.
만달레이는 1800년도 미얀마의 마지막 왕조의 수도이다.
무슨 이유로 수도를 자주 옮겼다. 전략 상 필요에 의해 먼 곳으로 천도한 것 같지는 않다.
거리가 10키로 정도 떨어진 밍군, 사가잉으로 옮겼으니 국력만 축낸셈이다.
결국 영국의 식민지가 된 미얀마의 마지막 수도가 만달래이다.
유적지가 여러 곳으로 산재해 있는 관계로 여행객들은 대부분 택시를 대절하거나 일일투어를 이용한다.
우리는 하루에 다녀 올 수 있는 곳들을 몇 일간 트럭버스를 이용해 주민들과 같이 다닐 생각이다,
숙소 loof top에서 아침식사.
마라가나용 기도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위해 34번로로 가는 도로변에 있는 극장.
아침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들어가 보았다.
두 영화관이 같이 있는 복합영화관이다. 하루 5회 상영하는 예매표가 모두 팔렸다고 한다.
내일표를 사기위해 서 있는 사람들.
영화관 앞 도로에는 수십대, 거의 100대가 넘을 듯한 오토바이가 정차해 있다.
10시표를 구입하고 입장을 기다리는 아가씨들. 상영하는 영화는 멜로물이라고 한다.
거리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동자승.
탁발은 아닌 모양이다 . 식사가 끝나고 돈을 지불하고 일어난다.
우리 숙소에서는 기차역을 건너가야 34번로가 있다.
기차역을 지나 다섯 불록을 걸어가야 34번 도로이다.
버스 정류장은 특별한 표식없이 도로변에 트럭을 세워놓고 조수가 큰소리로 호객을 한다. 우리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로 목적지를 소리 높여 부르고 있다.
용지에 적어간 미안마어로 마하가나용 기도원을 승객에게 보여주는 방법으로 버스를 찾았다. 버스는 34번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첫번째 호수를 지나 두번째 호수가 있는 도로변에 내렸다. 재래시장을 관통하고, 철길을 지나 20분 정도 걸어가면 호숫가에 기도원이 나온다.
마하가나용 기도원.
세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인지 아니면 미얀마에서 가장 큰 수도원인지 거주하는 수도승이 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식당으로 들어가는 스님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지나가는 스님의 식기통 위에 중국 관광객들이 중국 인민돈을 올려놓는다.
일부러 작은 단위화폐를 많이 준비해 온 모양이다.
배식을 마친 밥통이 보인다.
우베인 다리.
나무다리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다리라고 한다.
호수 중간을 가로지르는 약 1.2키로의 나무로 된 다리이다.
호수 양편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호수를 돌아 왕래해야하는 불편함을 줄이기위해 약 150년전에 스님이 건설한 다리이다.
나무 다리라고해서 흔들거리는 허름란 징검다리를 생각했는데 전 구간이 오토바이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건고하게 만든 다리이다.
해질무렵 일몰이 아름다운 다리라고 하지만 우리는 더위를 피해 다리 중간 정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시간에 맞추어 숙소로 돌아왔다.
수학여행 온 아이들과 인솔교사인 스님 3분.
다리 중간에 있는 정자에서 쉬고 있는 수학여행 온 아이들.
우베인 다리 건너에 있는 사당.
안으로 들어가니 노스님이 젊은 스님에게 우리를 안내하라고 한다.
절 안내를 지시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를 안내해 준 곳이 화장실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필요한 것을 미리 알고 안내해 준다, 착한 사람들이다.
만달레이 3일차.
어제 저녁 비가 억수같이 내리더니 아침까지 비가 내린다.
10시 30분경 비가 끝이기를 기다렸다 숙소를 나섰다.
어제같이 34번 도로에서 트럭버스를 이용해 마하무니 사원 앞에 하차했다.
도로변에는 대리석으로 불상을 만드는 가게들이 연이어 있다.
긴 회랑을 지나면 사원이 나온다.
회랑은 네 방향으로 길게 나 있고, 회랑 안에는 불교에 관한 소품 가게들이 성업 중이다.
모자 쓴 아이는 22살의 호주에서 온 아이로 5일 전 , 씨포 모닝마켓에서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아이. dana 뒤 아이는 중국에서 온 아이, 앉아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일어서니 키가 190미터가 넘는 장신, 카메라 중장비를 갖고 다닌다.
영화관 앞 도로변에 정차해 놓은 고객이 타고 온 오토바이.
Mahamuni buddha temple 앞 사자상.
사자상 뒤로 긴 회랑이 시작된다. 회랑 안 벽화.
중앙탑은 온통 금으로 되어 있다.
중앙 사원 옆에는 작은 사당이 따로 모셔저 있다.
부처상이 아니다. 마치 힌두교 링가같은 돌을 중앙에 모셔 놓고 있다.
무하마니 사원을 애워싸고 있는 휴식 공간.
중앙탑 내부는 사면이 같은 양식의 부다상과 통로로 되어 있다.
중앙탑 삼면에는 금붙이를 파는 곳이 있다.
금붙이는 종이장처럼 얇은 작은 정사각형이다.
금붙이를 구압한 사람들은 중앙 불상이 있는 내실로 가지고 들어가 필요한 곳에 붙인다.
불상의 처음 모양이 금붙이로 인해 두리뭉실하게 변해있다.
중앙 불상이 있는 안실은 남자만 출입할 수 있다.
중앙 금붙이 불상에 기도하는 사람들.
더위와 안파에 지쳐, 피곤한 몸을 사원 기둥에 기대어 한참 휴식을 취했다.
마하무니 기도원 옆, 높은 탑이 있는 기도원.
신자들은 거의 없고 개들만 졸고 있다. 네 방향으로 같은 형식의 서 있는 붓다상이 있다.
salary monastery.
규모에 비해 거주하는 스님이 많지 않고 , 관리도 잘되어 있지 않다.
빈 수도원같던 이층, 어디선가 한명씩 할머니들이 나온다.
선방에는 누워 있는 몇몇 스님만 보인다.
한 마디도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동작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노력한다.
쉬었다 가라고 하는지, 밥을 먹고 가라고 하는지 알 수 없어 웃고 있으니 커다란 망고 3개를 가지고 나온다. 필요해서 구입한 것이라 생각되서 선듯 받지 못하고 있으니 비닐에 담아 준다,
트럭버스를 미안마어로 하이럭스라고 한다.
뒷좌석과 매달려가는 사람까지 차면 지붕 위에 앉아서 간다.
만달레이 4일차.
오늘 저녁 9시 밤기차로 바간으로 간다.
무리하지 않게 하루를 버낼 생각으로 리샙션 임창정에서 다녀 올 곳을 물어보니 제이디붓다 사원jade buddha temple 을 찾아가 보라고 한다.
최근에 보석으로 만든 탑이 있는 사원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 곳으로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고 한다.
임창정은 미얀마 청년이다. 외모가 우리나라 가수 임창정을 닮아 우리가 부르는 아름이다.
창정이 알아 본 바로는 만달레이 대학 근처에 제이디 붓다 사원 근처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종이에 미얀마어로 제이디 붓다를 적어 주었다.
대학까지 걸어갔다. 구글로 알아본 거리보다 멀다.
더욱이 대도시라고 하지만 도로는 보행자가 다니기에는 불편한 구조이다.
오늘은 분노하고 감동으로 보낸 하루였다.
대학정문 도로변에서 탄 트럭버스는 분명 우리가 보여 준 제이디 사원으로 가는 버스라고 했다. 물론 간단한 단어 정도 구사할 수 있는 운전수 청년의 말을 믿는 것이 잘못이었다.
차에 타고난 후 구글맵으로 차가 가는 방향을 예의 주시했다.
한참을 달린 우리버스는 도시를 벗어나는 곳에서 사원이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도로에 접어든다.
삼거리에서 차를 세웠다.
알아보니 다른 도시로 가는 시외버스인셈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내려야 겠다고 하니, 요금으로 1만짯을 요구한다.
험상굳게 생긴 젊은 놈이 목소리를 높이고 위협하듯이 돈을 요구한다.
미친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얀마에서 처음 경험하는 황당한 상황이다.
핀우린까지 1500짝에 온 우리에게 통할리 없는 수작이다.
한푼도 줄 수없고, 우리를 사원앞까지 대려다 달라고 요구했다.
언성이 높아지니 지나가는 행인이 통역을 자청했다. 그러니 2천짯을 내라고 한다.
우리는 알 수없는 곳에 왔으니 한푼도 줄 수 없다고 하니, 한참을 서성이다가 그냥 떠나간다.
구글맵에 나와 있는, 우리가 가려고 한 사원이 너무 멀다.
삼거리에서 사원까지는 4차선 직선도로인 고속도로이다.
택시와 툭툭이 뿐이다. 지나가는 짐차를 타고 제이디 사원 앞에 하차했다.
잘못 탄 트럭버스 안.
아이가 연신과자를 먹으며 혼자 잘 놀고 있다.
jade budda stupa. 보수 중인지 아니면 아직 짓고 있는 중인지 지지대를 받쳐 놓았다.
탑은 온통 보석으로 되어 있고 주변 통로는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다.
탑른 사방으로 같은 형식의 석가상이 있는 예배공간이 있다.
이 붓다 역시 보석으로 만들었다. 실내는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어 오래 동안 쉴수있는 공간이다.
지킴이 아가씨는 우리가 한국 사람인줄 알고는 좋아한다.
한국 문화를 사랑하는 젊은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원 주변에는 임시로 운영하는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많다.
음식점 집 아이, 우리가 식사하는 동안 파리를 부채로 쫓고 있던 아이다.
귀여움을 받게 행동하는 아이다, 같이 식사하도록 밥을 가지고 오개해서 식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