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백화산 – 상당산 – 것대산 – 낙가산 산행을 취소합니다.
광주 산들애★힐링산악회의
2025. 2. 7(금) 충북 청주 백화산 – 상당산 – 것대산 – 낙가산 산행은
우리나라 북동쪽 베링해에 자리한 기압능(저기압을 둘러싸 골짜기를 이룬 고기압 구역)
영향으로 강력한 한파가 한반도를 덮쳐
산행지인 상당산성과 상당산에도 영하 13도, 체감온도 영하 20도에
바람도 초속 7~8m로 불겠다고 예보하고 하고 있고,
질병관리청에서도 요즘 유행하면서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심뇌혈관 질환과 독감, 코로나19, 감기 등 호흡기 질환에 감염되거나 또는 악화될 수 있으니 야외활동을 자제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운동과 힐링을 위해 나선 산행이 오히려 횟님들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할 수 있어
충북 청주 백화산 – 상당산 – 것대산 – 낙가산 산행을 취소합니다.
다음 2025. 2. 21(금) 전라북도 부안군 우금산 - 울금바위 산행 때 뵙겠습니다.
1. 가는 날 : 2025. 2. 7(금)
2. 가는 곳 : 청주 백화산 - 상당산 - 것대산 - 낙가산
3. 산행코스
Ⓐ 백화산 주차장 - 백화산 - 산성 서문 - 상당산 - 동장대 - 남문 - 저수지 - 남암문 - 산성고개출렁다리
- 상봉재 - 봉화대(것대산) - 낙가산 - 김수녕양궁장 (12.3km, 5시간)
Ⓑ 산성주차장 - 산성 서문 - 상당산 - 동장대 - 산성자연마당 - 남문 - 남암문 - 산성고개출렁다리 - 상봉재
- 봉화대(것대산) - 낙가산 - 김수녕양궁장 (9km, 5시간)
Ⓒ 산성주차장 - 산성 서문 - 상당산 - 동장대 - 산성자연마당 - 남문
4. 회비 : 45,000원 (아침, 하산주 석식 - 매식)
☆입금계좌 : 농협 302-5680-7900-61, 김효숙
5. 버스 경로
[월드컵경기장] 버스승강장(07:20) - 화정역(07:30) - 광주역(07:50) - 문예회관 후문(08:00)
- [동광주진입로](현대물류) 버스승강장(08:15)
6. 준비물 : 물, 점심, 스틱, 장갑, 아이젠, 스패츠, 무릎보호대, 보온자켓, 핫팩 등 개인 등산장비
7. 산행신청 : 전화 또는 카페 좌석표에 댓글
총무 010 5680 7900
8. 산행안내 : 몽산 010 9911 3694
9. 다음산행지 : 2024. 2. 21(금)은 전라북도 부안군 우금산 - 울금바위 입니다.
☆ 백화산(242.6m)
백화산(242.6m)은 상당산성의 서문에서 약간 남하하여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끝에 있는 나즈막한 산으로 청주시민들의 산책코스로 이용되는 산이다. 정상부에는 지하에서 끌어올린 음수대가 있고, 운동시설과 정자가 있으며, 가까이에 간이 화장실도 마련되어 있다.
☆ 상당산(491m)
상당산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에 있다. 이름은 삼국시대에 청주가 백제의 상당현에 해당했던 것에서 비롯하였다. 산의 서쪽과 남쪽 사면은 급사면을 이루고 동쪽 사면은 완만한 지형을 이룬다. 남서쪽 사면에서 흐르는 물이 무심천(無心川)을 거쳐 금강으로 흘러 들어고, 동쪽 사면에서 흐르는 물은 미원천을 거쳐 남한강에 합류한다. 주요 유적으로는 사적 제212호로 지정된 상당산성이 있다.
☆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3개의 성문(동문, 서문, 남문)이 있고, 2개의 비밀문(동암문, 남암문), 2개의 장대(서장대, 동장대), 동남방에 수구(현재 저수지)가 있다. 사적 제212호. 지정면적 180,826㎡. 원래 그 자리에 백제시대부터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상당산성은 1716년(숙종 42)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백제시대에 청주목(淸州牧)이 상당현(上黨縣)이라 불렸고, 숙종 때 축성기록에 ‘上黨基址 改石築(상당기지 개석축)’이라는 기록이 이를 뒷받침한다.
8부 능선에서 시작하여 성안의 골짜기를 포함하고 있는 동서의 등성이를 타고 사행(蛇行)하는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4.2㎞의 유구가 잘 남아 있는 서벽과 동벽의 높이는 약 3∼4m에 이른다.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으나 성벽 위에 설치하였던 성가퀴[城堞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성벽의 안쪽은 돌을 깨뜨려 틈을 메운 뒤 흙을 채우고 다지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여 서쪽을 방어하기 위하여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시설로는 남문을 비롯하여 동문과 서문, 3개의 치성(雉城 :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 2개의 암문(暗門 : 누각이 없이 적에게 보이지 않게 숨겨 만든 성문), 2곳의 장대(將臺), 15개의 포루(砲樓)터 외에 성안 주둔병력의 식수를 대기 위한 대소 2곳의 연못이 있다. 정문인 남문 주변에는 3개의 치성과 장대, 4곳의 포루가 설치되어 있다.
숙종 때의 개축 이후에도 1731년(영조 7) 남문 문루를 세우는 등 대대적인 보수를 했으며, 1802년(순조 2) 1,176개의 첩(堞)을 시설하여 산성으로서의 완벽한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그 뒤 성벽이 퇴락하고 문루가 모두 없어져 버렸는데, 1971년 석축 부분을 개축하였고, 1977년부터 1980년까지 남문·서문·동문의 누문을 모두 복원하였다.
일부에서는 이 산성을 삼국시대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전적지인 낭비성(娘臂城)으로 비정하기도 하나 확실하지 않다.
☆ 상봉재에 얽힌 이야기
청주 영기로 적을 두고 있던 김해월은 영장 남정년의 주선으로 비장 흥림의 애첩이 되었다. 그 당시 청주 병영 군관으로 있던 흥림은 팔십노모를 모시고 있었으나 슬하에 혈육이 없어 손을 보기 위해 해월이를 첩으로 맞아들여 남문 밖에서 살림을 하고 있던 중 마침내 잉태를 하여 해월이가 해산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조4년(1728) 이인좌 등이 모반하여 청주성을 기습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 흥림이 장검을 꺼내들고 나가려하자 후일을 도모하라고 만류하였으나 흥림은 팔십노모와 유복자를 부탁하고 나가 전사한다. 해월은 다음날 남편 흥림의 시체를 거두어 우암산 기슭에 묻고 장례를 치뤘다. 해월의 아이가 자라 세 살이 되던 해, “동자가 열 살을 넘기고 수액에 의해 요절하리라”는 시주스님의 말을 전해 들었다. 당황한 해월이 시주스님에게 해결 방법을 종용하자 스님은 “저 아이를 보국사 주지스님 해원에게 위탁하여 열흘에 한 번씩 성황당 고개에서 기다렸다가 만나야 하며 절대 성황당을 한 발짝이라도 넘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금기를 일러 주었다. 아이가 7세가 되던 해 해월은 ‘절대 성황당 고개를 넘지 말라’는 스님의 말을 잠시 잊고 아이를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성황당 고개를 넘고 말았다. 아이 역시 해월의 모습이 보이자 쉴새 없이 달리다가 그만 연못에 빠져 숨을 거두었다. 결국 해월이 남편의 유지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으로 자결하고 말았다는 모자상봉의 애틋한 전설이 있다.
☆ 것대산(484m)
것대산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과 낭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국립지리원 발행 지도에는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지리지나 옛 지도에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봉수가 있었던 곳이다. 경상남도 남해의 금산봉수(錦山烽燧)에서 출발하여 서울의 남산에 이르는 중간 경유지 이다. 남쪽으로는 문의(文義) 소이산(所伊山)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진천 소을산(所乙山) 봉수에 연결된다.『세종실록지리지』에는 '거차대(居次大)' 봉수라 기록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이후의 지리지에는 '거질대산(巨叱大山)' 봉수라 표기되어 있다. 봉수터는 동서로 긴 타원형으로 되어 있고, 둘레에는 방호벽(防護壁)을 둘렀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지도』에는 '거질대령(巨叱大岺)'으로 수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는 '거대산(巨大山)'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곳의 줄기가 서쪽의 상당산성으로 이어져, 청주 읍치로 이어진다. 옛문헌에서 나오는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 낙가산(475m)
낙가산은 충청북도 청주시의 상당구 용정동과 용암동에 걸쳐 있는 산이다. 고도 475m로 알려져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상당산에서 상봉재를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리는 일명 상당산맥의 한 줄기에 속하는 봉우리이다. 인근의 보살사에서 낙가산에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나 용정동이나 용암동 쪽에서는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정상 부근은 평평하여 평정봉을 연상하게 한다. 청주시의 동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낙가산이라는 지명은 관음보살이 머문 인도 남쪽 보타 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유래되었다. 옛 지리지에 '낙가산'에 대한 기록이 있어 오래된 지명임을 보여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명이 처음 나오며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동쪽 7리에 있다. 것대산에서 뻗어 나와 보살사(菩薩寺)의 으뜸이 되는 줄기가 된다."라는 기록이 있다.
☆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금북정맥은 백두대간의 속리산(俗離山) 청황봉에서 갈라져 나와 충청북도 북부를 동서로 가르며 안성의 칠장산(七長山, 492m)까지 이어져 한강과 금강의 분수산맥을 이루며,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까지의 한남정맥과 서남쪽으로 태안반도 안흥까지의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다.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종착지의 칠장산에서는 다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까지의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泰安半島)에 있는 안흥(安興)까지의 금북정맥(錦北正脈)으로 이어진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천황봉에서 갈라져 말태재·구치(九峙)·시루산·구봉산(九峰山)·국사봉(國師峰)·선두산(先頭山)·선도산(先到山)·상봉재·상당산성(上黨山城)·좌구산(坐龜山)·칠보산·보광산(普光山)·행태고개·보현산(普賢山)·소속리산·마이산·차현(車峴)·황색골산·걸미고개·칠장산 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