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만 년 전에 벼 농사를 짓기 시작한 동북 아시아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중의 하나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 줄 안다는점이다.
이에 고고학자들은 도구의 종류에 의거하여 인류역사를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구분한다. 석기 시대는 다시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로 나누어
지는데.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한 때부터 수백만 년 동안이 모두 구석기 시대
이다.
신석기 시대는 5만 년 전 현생 인류가 출현한 이후로도 계속 남아 있던 얼음 층이
약1만1천 년 전에 북쪽으로 완전히 물러가고 따뜻한 기후가 찾아옴으로써 비롯되었
다.온화한 기후가 형성되자 추운 기운 때문에 한동안 잘 보이지 않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구의 곳곳에 널려 번성하였다. 새롭게 대거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 사
피엔스는 지혜가 더욱 발달하여그 전 인가들이 쓰던 타 제석기(뗀석기)보다 한결 월등
한 마재석기(간석기)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새로운「新」'석기시대'가 시작된 것이다.이들은 또한 음식을 저장하거나
끊여 먹고 물을 떠먹을 수 있는 토기를 처음으로 제작하였다.이로써 이곳저곳을 방랑
하며먹이를 찾아 다니던 획득경제에서 한 곳에 정착하여 농사와 목축을 하는 생산 경
제로 바뀌었다.농경생활을 함으로써 주거 양식도 바뀌어 동굴에서 나와 평지에 움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농사에 필요한 공동작업을 하고 수확한 곡식을 지키기 위해 예전과 달리 촌락을 이루어
살게 되었다.농경생활의 시작으로인류의 생활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 것이다.이를 신석기
혁명이라고 한다.그렇다면 1만년 전 신석기 혁명을 실현시킨 인류의 농경생활은 어디에
서 시작되었을까?1990년대 후반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고대의 볍씨가 출토 되었다.몇년
에 걸친 조사 끝에 볍씨가 포함된 토탄청 연대는 BCE12670~BCE10550년으로 측정되었고
출토된 볍씨18톨은 장립長粒벼1톨, 단립短粒 15톨, 유사類似2톨로 분류 되었다.
소로리 볍씨는 현존하는 볍씨 유물 중 가장 연대가 높다. 이 연구 결과는 한동안 볍씨 자체의
연대를 측정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미국 아리조나대학교에서 토탄과 볍씨를
분리 측정하여 볍씨의 연대를 BCE10550년경으로 밝힌 이후. 소로리 볍씨는 1만 년 전 벼농사
의 명확한 증거 자료가 되었다.
소로리의 단립벼는 현대 단립벼와 같은 것으로 관찰되었으며 소로리 볍씨가 출토된 이후의 한
반도 고대미로는 단립벼만 출토되고 장립벼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신용화 교수의 주장과 같
이 한반도에서는 신석기가 막 시작되던 BCE10000년경부터 야생벼 가운데 단립벼를 선택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였고 전기 신석기 (BCE 10000~BCE6000)에 이미 농경생활리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게한다.
신석기 초기의 농경생할이 만주와 요동 등에서 발굴된 시례는 아직 없지만 한반도에서 1만 년전
볍시가 발견된 것은 당시 동북아 전역에 벼농사가 행해졌을 가능성을 당하게 시사한다.
흔히 농경 문화는 'BCE7000년경 서남아시아의 오리엔트 지역.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맨 먼저
발생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소로씨 볍씨가 발견된후. 신석기 시대를 연 농경 문화의 발원지
로 동북아시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1만 년 전에 농경 문화를 가장 먼저
일군 동북아시아인은 과연 누구인가? 그 답은 바로 『환단고기』에 들어 있다.
환단고기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