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정 고무신의 추억 **
초등학교 시절의 최고 보물은 검정 고무신이 아니었을까요?
가히 국민 신발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검정 고무신은
전 국민의
신발이었습니다.
타이어표, 말표, 기차표, 왕자표,
만월표 등 수많은 상품이 난무 하기도 했고요.
그중 타이어 표가 질기면서도 부드러운 최고의 상품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검정 고무신 계의 신화 같은 존재였습니다.
검정 고무신은 발을 보호하는 역할도 했지만 우리에겐 만능
장난감이었습니다.
고무신 뒤축을 앞축에 구겨 놓고 입으로 효과음까지 넣어가면서 '붕~붕~' 거리면 승용차였다가, 모래성을 쌓을 땐 모래를 퍼 나르는 트럭이 되었고, 송사리를 잡으면 송사리 집이 되기도 했습니다.
웅덩이에 가면 올챙이를 담는
그릇이었고, 개울에 둥실둥실 띄우면 나룻배가 되었습니다.
꽃 속의 벌을 고무신으로 낚아 채 빙빙 돌려 벌을 잡기도 했으니 곤충 채집기 역할도 했네요.
기차놀이, 신발 던지기 등 모든 놀이의 시작과 끝은 검정 고무신 하나로 해결하였으니
우리 어릴 적 고무신은 최고의 장난감 이었습니다.
그 시절엔 삶이 다들 곤궁하니까 고무신을 사는 것도 만만치 않았죠.
그래서 고무신이 찢어지면 실로 꿰매서 신기도 하고, 이도 감당이 안 되면 때워서 신었습니다.
고무신 땜장이가 하나의 직업이었을 정도로 고무신의 땜질은 다반사 였습니다.
고무신은 사람의 무게를 견디며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다 여러 번 찢기고 땜질을 당하는 험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꿰매이고, 땜질을 당하다 닳고, 낡고, 마지막엔 엿장수에게 엿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달콤함을 선사하면서 고무신의 일생은 장렬하게 마감을 합니다.
고무신의 삶은 우리에게 끝없는 희생이고 헌신 이었습니다.
이런 질곡의 과정을 거친 후 어렵게 마련된 새신을 신으면 세상 날듯 기뻤지요.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신기도 아까워 양쪽 손에 들고 다니던 친구도
있었습니다.
검정 고무신은 교실이나 교회 등 실내에 들어갈 때 벗어 놓으면 색깔이나 모양이 모두 같아서 잃어버리기 일쑤였고, 잃고나서 맨발로 오면 제 물건 간수도 못하는 숙맥이라고 부모님께 엄청 꾸중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신발주머니를 갖고 다니기도 했고 불에 달군 못으로 고무신 앞코에 구멍을 뚫거나
실로 X 표시를 하는 등
자기만의 표식을 하면서 소중하게 다루었던 우리 시절의 보물 1호 였습니다.
공을 차다 헛발질을 하면 공보다 고무신이 더 멀리 나가 우리를 웃게 하고, 땀에 찬 고무신을 벗으면
발 냄새가 왜간장 냄새 처럼 묘하게 진동을 했던 추억의 검정 고무신.
삶의 애환을 이보다 더 진하게 공유한 물건이 또 있었을까요?
신발장에 신발이 넘쳐나고 닳아서라기 보다는 싫증 나서 버리는 요즘 세상에 이젠 유물이 되어버린 닳고 헤진 검정 고무신의 숱한 기억들이 시간의 벽을 허물고 보물처럼 소중하게 다가오네요.
"검정 고무신"이란 자작시 한 편 올립니다.
[ 검정 고무신 ]
뒷산 도토리 줍던
나무껍질 같은
어머니 손과 바꾼
검정 고무신.
고무신 코에 묻어 있는
어머니 숨결에
고무신 뒤축에 고인
어머니 정에
후아- 후아- 덩달아
정겹고 내 몸 같던
검정 고무신.
모래 밑에 잠재우고 두꺼비 찾던, 젖은 모습 안타까워 양손에 한 짝 쥐고 “빼빼 말라라
장작같이 말라라"하며
동심을 키우고,
멱 감은 뒤 젖은 귀
햇빛 담아 말리던,
개울가 송사리 잡아
담던 그릇,어릴 적 내 모든 것.
세월이 흘러 좋은 것
다 가져도 어릴 적 고무신만큼 값있고 내 마음 채울 게 없네^^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