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는 '티슈'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와는 성질이 좀 다른 사물이다. 젖으면 티슈는 사용가치가 제로가 되지만, 물티슈는 젖어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의 속성이다. 그런데 늘 젖어 있는 이 사물은 티슈와 달리 잘 찢어지지도 않는다. 일반 펄프티슈와는 달리.종이가 아니라 부직포로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물티슈는 티슈가 아니라 '물수건'에 훨씬 가깝다.
이 사물이 언제부터인가 여자들의 가방 속 필수품이 되었다. 젊은 엄마들이 아기를 데리고 외출할 때 물티슈는 편리하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물티슈가 없으면 갓난아기를 데리고 외출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야외에서 기저귀를 갈 때, 입에서 먹던 걸 쉽게 흘리는 아기에게 물티슈가 매우 유용하다는 것이다. 지하철에서 입술 화장을 고치며 물티슈를 이용하는 여성을 자주 본다. 물티슈의 주된 소비층은 젊은 여성들이다. 하지만 소비층이 거기에만 한정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무언가를 쏟거나 피부가 더럽혀졌을 때 이 사물은 '오염 제거'에 놀라운 효율성을 보여준다.
아주 간단하게 끈적끈적한 피부 상태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식당에서도 물티슈는 필수품이 되었다. 입으로 들어가야 할 음식을 손으로 만지는 게 찜찜하니 식당에 가면 으레 물티슈를 달라고 주문하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사은품으로 휴대용 티슈를 주던 주유소에서도 이제는 휴지가 아니라 물티슈를 주는 곳이 많다.
"내가 어릴 때는 본 적이 없던 이 사물이 모든 곳에서 다양하게 만능상품처럼 쓰이는 상황은 흥미롭다. 오래된 일상용품이라고 할 수 없는 한 사물이 짧은 시간에 이렇게 생활 전반에 광범위하게 사용된 데는 기능적 편리성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다소 의심스러워 하는 것은 '청결'이라는 '위생관념'이다. 표면적으로 청결로 불리는 위생 관념은 실은 현대가 지닌 중요한 특성, 현대라고 불리는 이 시대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증상 같은 것은 아닐까.
물티슈로 '오염된 피부가 간단하게 제거될 때의 기분은 직접적으로는 '깔끔하다'는 감각으로 경험된다. 그런데 감각이란 것은 보편적이기도 하지만, 시대나 문화적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고 의미화되기도 한다.
현대인의 감각은 끈적한 것, 씹씹한 것, 투명하지 않은 얼룩과 모호한 흔적을 잘 견디지 못한다. 오염에 대한 불신과 불안은 현대인의 큰 특징이다. 작은 얼룩과 더러움을 실제 몸에 생리적으로 미치
는 영향보다 매우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는 그런 오염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 같으면 별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정도의 위생이나 오염에 관한 상황도 지금은 점점 더 크부각된다. 시골사람과 도시인의 위생관념이나 청결에 관한 감각 사이에 상대적으로 큰 차이가 있는 것과도 비슷하다. 화장품 광고 모델의 피부는 현대인의 감각이 '백색신화' 속에 자리 잡고 있음
을 이미지 차원에서 분명히 보여준다. 흔히 뽀샵으로나 가능한 피부, '물광'이라고 불리는 피부를 현대인은 욕망한다. 그건 사실 자연 상태에서는 예외적인 형태의 피부이며, 심지어는 불가능하기까지 하다. 의사가 흰 가운을 입을 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의 표상인 반도체 산업 종사자가 굳이 하얀색 가운을 입는 것 역시 현대성의 무의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증상이다.
그래서 '현대 너머' 흔히 탈근대 시대의 철학이라고 불리는 사색에서는 한결같이 '순수', '순혈', '투명', '선명', '백색 같은 단어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낸다. 반대로 '오염', '흔적', '얼룩', '잡종', '모호함 같은 '찝찝한 단어들을 오히려 선호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이러한 현대 너머의 철학들은 앞 계열 단어에 강박적으로 열광했던 현대인의 가장 나쁜 역사적 사례를 20세기 초 유럽에서 보았다. 나치는
당시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을 끔찍하게 핍박하면서 되풀이해서 말했다. '순수한 피를 위해서는 '오염된 인종을 인류로부터 영원히 제거해야 한다고. 영화 「해리포터」의 마법사 전쟁의 핵심원인도 마법
사의 순수한 피를 가진 종족이 오염된 종족, 잡종에 대해 갖는 혐오와 패권주의다.
이 문제를 나치나 볼드모트 같은 순혈주의 마법사에 한정할 필요도 없다. 오늘날의 세계, 즉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현대 사회를 주도한 서양 사람들은 유색인종을 끔찍하게 혐오했고, 백색인종이
주도하는 시대야말로 가장 진보한 역사시대라는 신념으로 순수성의 신화를 퍼뜨려왔으니 말이다. 이게 실은 17세기 이후 서구가 주도하여 오늘날에 이르는 현대 문명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반성이 20세기 중반 이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서구만의 문제라고 볼 수도 없다. 이미 신라나 고려시대 때부터 아랍인, 한족,'변방' 이민족들 등 다양한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던 나라임에도 불
구하고, 단일민족이라는 관념에 사실 이상으로 집착해 살아왔던 게 우리나라이니 말이다.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집안 자체가 '여진족'으로 불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한 토호세력이었으나, 그가
'순수 고려인(한국인)'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의심해 본 일 없는 상식'이 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지닌 학자들은 '국사(國史)'가 아니라 "한국사(韓國史)'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국사라는 용어에는 한국의 역사를 세계사의 일부가 아니라 특
별한 기억으로 자리매김시키려는 반보편주의가 은연중 스며 있다고 한다.
인구의 구성이 매우 복잡해지고 국제화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이것이 우리의 현재이며, 세계의 현재이다. 물티슈를 통해 '순수성의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