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사의 죽음과 이스라엘의 영적인 암흑상태
(열왕기하 13장 14-25절)
14-17.엘리사가 죽을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왕 요아스가 그에게로 내려와 자기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활과 화살들을 가져오소서 하는지라 활과 화살들을 그에게 가져오매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왕의 손으로 활을 잡으소서 하매 그가 손으로 잡으니 엘리사가 자기 손을 왕의 손 위에 얹고 이르되 동쪽 창을 여소서 하여 곧 열매 엘리사가 이르되 쏘소서 하는지라 곧 쏘매 엘리사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를 위한 구원의 화살 곧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니 왕이 아람 사람을 멸절하도록 아벡에서 치리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나이가 들어 죽을 병이 들었을 때 요아스왕이 직접 문병을 가서 슬퍼했던 것을 보게 된다. 선지자 엘리사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죽을 병에 걸린 자신을 문병 온 요아스 왕을 향해 엘리사는 활과 화살을 가져오게 했다.
엘리사의 손을 왕의 손 위에 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의 힘으로 아람 군대를 물리칠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아스의 힘으로 물리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그렇게 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동쪽(케뎀)은 죄를 상징하는 것으로 동쪽의 창을 열어 화살을 쏘는 것은 죄를 떠나가게 하는 것을 상징한다. 죄가 하나님의 은혜로 떠나가므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요아스 왕이 아람의 위험으로 부터 벗어나게 된 것이다.
동쪽은 심판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가 동산으로부터 추방되어 그룹(cherub)이 에덴동산의 동편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말해준다.(창3:24) 출애굽기에서 언급하는 성막은 에덴동산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그런데 성막을 둘러싸는 성막의 뜰에는 동쪽으로 열려있다.(출27:16)
선지자 에스겔도 동쪽을 말하고 있다. “그때에 그룹들이 날개를 드는데, 바퀴도 그 곁에 있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도 그 위에 덮혔더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읍가운데에서부터 올라가 성읍 동쪽 산에 머무르고, 주의 영이 나를 들어 하나님의 영의 환상 중에 데리고 “갈데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이르시되, 내가 본 환상이 나를 떠나 올라간지라, 내가 사로잡힌 자에게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모든 일을 말하니라”(겔11:22-25)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산에서 떠나시려는 것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성막을 보면서 에덴동산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인간에게 내려진 판결은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인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에덴동산에서 쫒아내시고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3:24)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동쪽으로 쫒아내신 것이다. 사람이 에덴으로부터 쫒겨나기 전에는 기쁨의 장소였다. 동쪽은 죄악을 상징하는 것이다. 동쪽에 바벨론성, 소돔과 고모라와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막을 짓게하고 성막의 뜰에는 동쪽으로 들어오도록 열려있게 하셨다. 동산으로부터 추방당한 인간의 모습은 레위기 13장 46절에서 피부병에 걸린 자가 추방당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레위기에서 11장 이후 부정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결국 17장에는 제물을 드리는 곳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먼저 회막 문으로 끌고 가서 성막 앞에서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한 자는 피 흘린 자로 여길 것이니”(레17:4) 회막의 뜰 동쪽에 문이 있었다. “뜰 문을 위하여는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수 놓아 짠 스무 규빗의 휘장이 있게 할지니 그 기둥이 넷이요 받침이 넷이며”(출27:16). 이렇게 동쪽이라는 의미는 죄의 결과이며, 인간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18-19.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하나님의 사람이 노하여 이르되 왕이 대여섯 번을 칠 것이니이다 그리하였더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으리이다 그런즉 이제는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치리이다 하니라
동쪽 창문으로 활을 쏘게 하는 첫번째 표징을 통해 엘리사는 이스라엘이 아람을 물리칠 것을 예언해준다. 하지만 두번째 표징인 화살로 땅을 치는 것에 요아스 왕이 세 번만 땅을 치자 화를 내었다. 엘리사는 왕에게 화살을 집어 땅을 치도록 했는데, 왕은 세번 치고 그만 두었다. 이에 엘리사는 노하여 이르기를 “대여섯 번 쳤으면 왕이 아람 왕국을 진멸하였을 것인데, 왕이 세번 만 칠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요아스왕이 스스로 거두었던 것이다.
화살은 전쟁의 도구이다. 전쟁에서 화살을 쏘며 적을 살상한다. 그런데,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치는 행위는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땅은 하늘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죄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으로 땅은 인간의 육적 마음이다. 육적 마음을 화살로 때리는 것은 회개의 표현이다.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의 사건에서 땅에 글을 쓰신 것도 유대인들의 마음을 회개하도록 움직이셨던 것이다.
선지자가 왕에게 화살을 집어 땅을 치도록 하게한 것은 하나님이 아람 왕을 통하여 징계하시는 것을 거두어 주실 것을 하소연 하는 것이다. 그 하소연은 선지자가 그만 하라는 신호가 떨어질 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인데, 세번만 하고 그만 두었다. 이스라엘이 아람을 공격하여 승리하는 기회로 세번만 주어진 것이다.
20-21.엘리사가 죽으니(무트) 그를 장사하였고(카바르) (힌네) 해가 바뀌매(보 샤나) 모압 도적 떼들이 그 땅(바에레츠:에레츠)에 온지라 마침 사람(이쉬)을 장사하는(카바르) 자들이 그 도적 떼(게두드)를 보고(라아) 그의 시체(이쉬)를 엘리사의 묘실(케베르)에 들이던지매(샬라크) 시체(이쉬)가 엘리사의 뼈(에쩸)에 닿자(나가) 곧 회생하여(하야) 일어섰더라(레갈 알 쿰).
무트는 죽다, 카바르는 장사하다, 매장하다의 의미. 힌네는 감탄사로서, 보라, 만일 등의 의미다. 보 샤나는 한해가 가다 라는 의미. 에레츠(바에레츠)는 그 땅 안으로, 이쉬는 사람, 남편, 힘센 사람 등으로 사용된다. 게두드는 무리, 군대, ~떼 등이다. 라아는 보다, 주의를 기울여 보다. 케베르는 무덤, 돌무덤. 샬라크는 내던지다, 내려놓다. 에쩸은 몸, 뼈, 생명. 나가는 만지다, 손을 대다. 하야는 살다, 재생시키다. 레갈은 발, 한걸음. 쿰은 일어나다.
다시 번역해 보면,
『엘리사가 죽으니 그들이 그를 장사하였는데, 보라 이듬해 모압 군사들이 그 땅 안으로 쳐들어왔는데, 그때 죽은 시체를 묻으려던 자들이 그 떼들을 발견하고 죽은 시체를 엘리사의 무덤 속에 두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뼈에 닿게하자 살아나서 발로 일어섰더라.」
이는 영적인 의미가 있다. 엘리사가 죽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떠나간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 화살을 땅에 세번쳐서 아람 군대를 세번 물리쳤으나, 이번에는 모압 군대가 쳐들어 온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이스라엘에게 군대는 죽은 시체와 다름없는 무능한 존재였을 뿐이다.
무덤은 제물을 둔 성소를 상징한다. 시체는 제물인 것이다. 제물인 시체를 엘리사의 뼈에 대는 행위는 대제사장이 제물을 성소에서 드리고 용서를 비는 행위를 의미한다. 모든 이스라엘의 영적인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다.
죽은 시체를 묻으려던 자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며, 그들은 이미 땅의 군대가 아닌 것이다. 그들은 간절히 하나님을 부르며, 간청하는 것이다. 땅의 군대는 망했지만, 하늘의 군대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다. 엘리사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상징한다. 뼈에서 생명이 나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이다. 부활생명을 얻은 자들은 하늘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북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영적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엘리사의 무덤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하는 심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간절히 기도하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시고, 그들로 하여금 모압의 군대를 물리치게 하셨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대부분은 영적으로 죽어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붙잡지만, 부활생명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없는 것이다. 세상의 돈과 명예와 권력이 신도들에게 벌떼 처럼 공격해도 영적으로 죽어있어 영적 감각이 없는 것이다. 오직 세상과 싸울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생명 뿐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분리될 수 없다. 과거와 장래에 일어났고, 일어날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신도들은 회개하여 부활생명을 얻어서, 자신 속에 있는 악과 싸워 이겨야 함을 말해준다.
13장 22-25절『여호아하스 왕의 시대에 아람 왕 하사엘이 항상 이스라엘을 학대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은혜를 베풀며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돌보사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이 때까지 자기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셨더라 아람의 왕 하사엘이 죽고 그의 아들 벤하닷이 대신하여 왕이 되매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하사엘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서 성읍을 다시 빼앗으니 이 성읍들은 자기 부친 여호아하스가 전쟁 중에 빼앗겼던 것이라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요아스가 이스라엘의 두 성읍을 아람으로부터 탈환한 사건을 말한다.
오래 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 때문에 원수에게 내어주시지 않고 아끼신 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사실이 강조된다.
“요아스가 벤하닷을 세 번 쳐서 무찌르고 이스라엘 성읍들을 회복하였더라” 이것은 요아스가 엘리사의 부탁대로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친 회수와 같이 된 것이다. 전에 엘리사가 요아스더러 "땅을 치라"고 한 것은 일종의 행동 예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