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감자꽃 / 서상영
심상숙 추천
감자꽃
- 영월 동강 가에서
서상영
어린애도 채간다는 부엉이 소리
멧새 모두 숨죽이는 밤
할아비는 평생 쌀 한 말 못 먹고 죽었다고
뗏목꾼인 아빈 곰 같은 어깰 들척이며
술주정으로 잠들었다
쿨쿨 코 고는 소리는 도적처럼 울리고
감자 싫어 내뺐다는 어매는
원래 동강 뗏목군들이 우러렀다던
들병장수*
방문열고 사립문 밖 뛰쳐나오면
웬 놈에
감자꽃은 저리도 하얗나
굽어봐도 산 첩첩 산 넘으면 물 첩첩
아비는 잠에서도 드센 물결 소리 듣는가
꿈을 설치고 부엉이 소리 울고
아아 재째거리는 풀벌레처럼
난 사는구나
해지는 남쪽 길을 오도커니 쳐다보면
눈에 누구처럼 화냥기가 백혔구나
이년아
저 강물 건너면 못 돌아온다
칡뿌리가 늙어 구렝이 될 때까지
감자꽃처럼 살그라
아비는 내 맘을 후려치며 더운 숨을
몰아쉬었다
소낙비 내리면 기운이 더 난다며
떼돈 벌러 뜀박질쳐 간 아비
된꼬까리**서 돌아왔더라
평생 못 타본 가마 타고 사뿐사뿐 돌아왔더라
산맥 같은 어깬
소금토리가 물에 빠진 듯
싱겁게 풀어지고
감자꽃 진 자리 열매가 없다
갈라진 흙바람 벽에 부엉이 소리 스미고
강 안개 걷혀 해 들면 머릴 감았다
타향이 없으니 고향도 없고
감자꽃은 피고
지고
울음보다 외롬이 더 싫은 날엔
감자를 캔다
뭐라 내 보이기도 수줍은 한 생을 캔다
꽃 진 자리 쭈그렁 열매도 없던 아비가
땅 아래서 살뜰히도
영글었다
하늘을 뿌리 삼아 가지 벌려 열렸다
*들병장수:동강 가의 뗏꾼들을 상대로 술을 팔던 여자들.뗏목 위까지 술상을 날라오고 춤을 추었다.
**된꼬까리:영월 거운리에 있는 여울목 이름. 평창의 황새여울과 더불어 수많은 뗏군을 데려갔다.
(서상영 시집,『꽃과 숨기장난』14쪽, 문학과지성사, 2006)
[작가소개]
서상영 문학박사, 1967년 홍천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 『꽃과 숨기장난』 『눈과 오이디프스』 등,
사진을 곁들인 시와 산문집 『시인의 섬 기행』이 있다. 중앙대, 백석대, 추계예술대를 출강했다.
[시향]
세상을 떠돌던 철새/ 가지런히 발을 모으다
(서상영시집『눈과 오이디푸스』92쪽,문학동네(2012),「묘비명」전문)
이처럼 서상영 시인은 소박하고 청량하다.
필자가 만난 그는 수수하고 그윽한 보기 드문 수재이다.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는 작금의 세태와는 타협할 줄 모른다.
『꽃과 숨기장난』 속, 있는 그대로의 심연을 퍼 올리는 시인의 정화수 같은 시편들, 포장하고 덧칠하지 않아서 더욱 맑고 초롱한 한 모금의 시,
『시인의 섬 기행』 속 사진처럼, 시처럼, 산문처럼 멀리 물 맑은 풍경 하나, 바로 서상영 시인이다.
늘 기다린다. 서상영 시인의 기쁜 소식을, 시편을 통해서건, 출간을 통해서건, 삶을 통해서건 고대한다.
모쪼록 건강하여 벅차고 아름다운 날이길, 시인의 뜻을 드높이는 그날 위에 두 손을 모은다.
글: 심상숙(시인)
(김포미래신문 24112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