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가 힘을 잃고 사라져 간다.
여전히 천식기운은 힘차게 몸을 흔들며 기침을 하게 하고 가래를 만든다.
토요일 점심을 먹고 설짐을 가득 챙겨 광주로 온다.
겨울올림픽을 되풀이 보내주는 걸 지켜보며 하루를 보낸다.
일요일 아침에 산에 가고 싶은 욕심에 같이 가자고 말을 꺼낸다.
학교 근무할 때 음식 준비도 해야하고 감기도 심한데, 혼자 두고 가느냐고 원망을 하면서도
뜨거운 물과 간식을 챙겨 준다.
11시에 집을 나서 45번을 탄다.
버스 정류장마다 새배돈을 받았는지 중고등학생들이 소위 '시내'에 나가는 버스를 탄다.
겨울 올림픽이 열려서인지 모두 운동선수들이 입는 긴 패딩 점퍼를 입고 있다.
풋풋한 아이들이 개성이라고는 보이지 않은 채 검은 빛깔의 긴 점퍼를 입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다.
그들은 시내에 나가 어떻게 돌아다닐까? 구도심의 상가들은 매출을 더 올릴까?
옛도청 앞에 내려 원효사로 갈까 하다가 남광주 시장에 가 국밥을 먹고 가기로 한다.
전대병원남광주 정류장에 내린다.
시장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큰 길가의 작은 국밥집으로 들어간다.
나보다 위인 듯한 세 남자가 국밥을 먹고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사나이가 들어 와 건너편에 앉더니 소주 한병씩을 두고
자기가 따뤄 마시며 국밥을 시킨다.
난 소머리국밥을 뜨겁게 먹는다. 명절 뒷끝의 국밥은 맛있다.
소주를 부를까말까 하다가 참는다. 뜨거운 국밥을 먹고 다시 내렸던 정류장으로 가
카드를 찍으니 환승이라고 한다. 중머리재 식당보다 천원이 비싸지만
이쯤에서 밥 먹고 무등에 가는 것도 좋겠다.
12시 반에 도착한 증심사 주차장엔 사람이 가득하다.
산악회에서 번개팅을 하는 듯하고 설명절스트레스를 풀려는 아줌마들도 많이 보인다.
도로를 걷지 않고 광륵사 1수원지 쪽으로 바로 산길로 들어선다.
저수지 갓길 지나 키 큰 삼나무 숲의 작은 개울을 따라 올라간다.
장군봉 1,0km이정표를 지난다.
각시톱지네고사리 서식지라는 푯말이 여럿 걸려있는 숲을 지난다.
각시와 톱과 지네의 특성을 갖는 고사리는 어떻게 생겼을까?
모양은 자세히 보지도 않고 이름에서 상상만 한다.
숲을 빠져나와 오르막 소나무길을 오른다. 능선까지는 금방이다.
능선에서 오르막을 또 오르니 장군봉이다. 지나친다.
한시간이 다 되어 바람재에 닿는다. 스틱을 편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 떼지어 내려가고 또 토끼등 쪽으로 걸어간다.
난 동화사터 쪽 계단을 오른다. 중터리길 사거리에서 바로 오르자 오른쪽에
검은 바위에 하얀 얼음폭포가 있어 갔다 온다.
전망대를 두고 오른쪽으로 돌아 동화사터쪽으로 올라간다.
길 위에 눈이 남아 있다. 한 사나이가 무릎을 굽히며 내려오면서
아이젠 해야하지 않아도 되느냐고 묻는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고 답한다. 동화사터 위 벤치에는 남자들이 하난씩 앉아 있다.
난 더 지나서 무등의 원효산록이 보이는 바위 위에 앉는다.
하얀 산 위에 잎없는 나무들이 서 있는 산록을 바라보며 뜨거운 차를 마신다.
길을 지나가는 이들은 나를 못 본채 지나간다.
나도 일어나 사양능선을 서서히 걷는다.
길은 녹아 질척인다. 방송사의 송신탑 앞에서 건너편을 바라보며 셀카를 찍는다.
중봉 아래서 흐린 광주 시내를 내려다 본다. 서인봉에서 갈라지는 능선들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복원지 내림길로 들어서지 않고 중봉의 바위 끝까지 걷다가 풀밭을 밟고 돌아온다.
양산동의 김선배가 5시 반에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서석대 쪽은 포기하고 구비에서 옛길 구간으로 들어간다.
경사진 돌계단에 눈이 가득 쌓였다. 아이젠 자국이 있어 몸을 앞으로 굽히고 스틱에 의지해 내려온다.
이 정도의 길이야 가볍게 훌쩍 뛰어다니면 안되나?
그도 만용이다. 긴장하며 양팔에 힘을 주며 평길로 들어선다.
목교를 건너 원효골짜기 내림길도 눈이다. 치마바위까지 질척이는 눈을 밟으며 내려온다.
더러 올라가는 이들도 있다.
4시가 다 되어 정류장에 닿는다. 화장실에 들러 오니 차가 문을 닫고 출발한다.
뛰어가니 멈춰준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스틱을 접는다.
법원 앞에서 27번을 타고 빙빙 돌아 운암시장 앞에 내려 95번을 타고 양산동에 내린다.
후배 인원이와 화가 나 안기자를 소개해 달라던 김선배와 셋이서 술을 많이 마신다.
인원이가 택시비를 주고 둘은 맥주하러 간다한다.
술에 가득 취한 산객을 씻어주느라 아픈 바보는 고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