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
어느 친구에게 우리 집은 해와 달이 된 부부라 했다. 나는 저녁 뉴스도 끝나기 전 일찍 잠들고 집사람은 자정을 훌쩍 넘겨 한두 시 잠들기 예사다. 그래서 우리 집 거실은 밤새도록 불이 켜진 채 아침을 맞는다. 나는 집사람이 잠들 무렵 잠에서 깨어 새날을 맞는다. 세 시 무렵 종이신문이 현관 앞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면 신문을 집어와 펼쳐 읽는 것으로 하루가 시작된다.
이후 인터넷 서핑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몇 줄 쓰기도 한다. 새벽 네 시가 지날 무렵이면 집사람이 잠들기 전 씻어둔 쌀을 전기밥솥에 끼워 전원을 넣는다. 잠을 쉬 들지 못하는 집사람은 그제야 잠에 드는 시간이지 싶다. 공중파 뉴스는 시작되기 전이라 YTN뉴스로 아침소식과 일기예보를 먼저 접한다. 그새 전기밥솥에선 증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밥이 지어졌다.
아침밥은 언제나 혼자 챙겨 먹는다. 식탁에다 밥을 차릴 것까지 없었다. 거실에서 서안으로 쓰는 자그마한 상 위에 신문지를 펼쳐 수저를 놓는다. 그리고 밥을 한 공기 푸고 냉장고를 열어 찌개와 김치를 꺼낸다. 방송에서 나오는 아침 뉴스와 일기예보를 시청하면서 아침밥을 먹는다. 이후 양치와 세면을 해도 여섯 시가 채 안 된다. 이른 새벽 일어난 나에게는 아침시간이 무척 길다.
아침 일곱 시 전후 현관을 나서 아파트 뜰로 내려선다. 밤새 이슬을 맞은 차량들은 가지런히 줄지어 주인을 기다리는 때다. 나는 창원천변을 걸어 학교까지 가면 반 시간 남짓 걸린다. 봉곡동 주택가를 지날 때면 등교하는 학생들과 같이 교문을 들어선다. 교무실에 닿아 컴퓨터를 켜고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수능 이후 3학년은 오전 일과가 잡혀 있어도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나는 교실에 들면 교탁 언저리 기대어 도서실에서 빌려간 책을 읽는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잡담을 하거나 노닥거린다. 일부는 나처럼 책을 보는 학생이 있다. 어느 남학생은 운전면허 필기시험 책을 보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교실바닥에 퍼질러 앉아 퍼즐을 맞추거나 뭔가를 쌓아올리는 놀이도 했다. 곧 수능 점수 발표가 있을 예정이고 정시 전형에 이어 졸업까지 마음이 뒤숭숭한 때다.
4교시가 끝나면 3학년은 하교하고 12시 10분부터 급식이 시작된다. 그런데 교직원들은 11시 40분부터 자율배식으로 이루어진다. 행정실 직원과 4교시 수업 없는 교사들은 그 시간 급식소로 가면 학생들이 없는 때라 조용하다. 각자 제 먹을 양만큼 식판에 담아 식탁으로 가서 느긋하게 식사를 한다. 나는 새벽녘에 아침을 때웠는지라 다른 동료들보다 밥이나 반찬을 넉넉하게 담는 편이다.
집에서 부실하게 아침밥을 먹은 나는 학생들만큼이나 학교 급식소 점심시간이 기다려진다. 교직원들이 먹는 밥값은 학생들보다 조금 더 내는 것으로 안다. 내가 좋아하는 식단은 생선구이나 채소 나물들이다. 닭고기나 돈가스 같은 것은 건너뛴다. 오리고기나 돼지고기는 몇 점 먹는다. 공교롭게 내가 좋아하는 식단은 학생들이 싫어하고 내가 싫어하는 식단은 학생들은 좋아하는 듯했다.
어제는 고3들은 성산 아트홀로 공연을 감상한 창의적 체험활동이었다. 학생들과 담임들은 학교로 오지 않고 공연장으로 바로 갔다. 나는 출근 후 교지 편집부원이 제출한 교지 원고를 몇 줄 교정하였다. 이어 도서실로 가 이승수의 ‘거문고 줄 꽃아 놓고’와 홍인숙의 ‘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를 빌려와 짧은 시간 독파했다. 독서 감상으로 기생 매창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평을 남겼다.
기다린 점심시간이었다. 수요일은 ‘수다날’로 잔반 없이 다 먹는 날이다. 급식소로 가니 참치김치볶음밥에 짬뽕국물이었다. 나에겐 아주 훌륭한 식단이었다. 나는 수요일뿐만 아니라 다른 날도 절간 발우공양처럼 반찬은 물론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는다. 가끔 나오는 디저트가 눈길을 끌었다. 블루베리가 섞인 요구르트였다. 항산화식품으로 알려진 거라 한 개 더 챙겨 집으로 가져갔다. 201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