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답답한 사람 이야기
저는 여태까지 삶을 지켜보면서 어쩌면 답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비록 느리지만 오히려 삶을 보람되고 충실하게 산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이야기는 어느 답답한 이씨 아저씨 이야기입니다.
이 답답한 이씨 아저씨는 대구상고를 나와 경리일을 보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는 양조장에서 일했고 그의 성품은 정말 답답할 정도로 1원 한장 틀림없는 계산과 품행으로 항상 정도를 걸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 답답한 그의 성격에 그 양조장 사장님은 그에게 모든 경비를 맡겨 그가 알아서 처리해도 절대 사장을 속이거나 장부를 속이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 양조장이 경영난 보다는 수익성때문에 다른 사장님한테 인수되었고 그 인연이 되어 새로운 사장님과 같이 양조장 운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사장님은 이 답답한 아저씨한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맡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당시 다른 양조회사의 경리부 소속 직원들은 횡령과 장부 누락등으로 은밀하게 금전을 챙기는 것이 마치 관행처럼 여겨졌던 시절이지만 이 답답한 이씨 아저씨는 절대 챙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지식한 성품에 새로운 양조장 사장님은 또 다른 양조장과 과수원도 맡기고 본인은 서울로 무역업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무역업으로 양조장 사장님은 정말 대단히 성공을 거두어 더 많은 돈을 벌어 양조장이나 과수원의 경영에 대해서는 잊고 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 답답한 이씨 아저씨는 절대 돈을 탐내거나 장부를 누락시켜 횡령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저 정도를 걸으면서 주위에서도 답답하다라는 욕을 얻어 먹으면서까지 답답한 경영관을 가지고 계속 양조장 두곳과 과수원을 조금씩 일구어 나갔습니다.
그리곤 얼마후 6 25전쟁이 터져 피난을 미쳐 떠나지 못한 양조장사장님은 가족들과 같이 혜화동에서 숨어지내다가 서울이 수복되고 어느정도 정리가 된후에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지방에 있는 양조장으로 내려갑니다. 당시 내려갔을때 양조장 사장님의 재산은 정말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중일전쟁때도 파산하고 한국동란때도 다시 파산한 상태였습니다. 그런 파산한 상태의 양조장에 도착하니 보통 사람이라면 대부분 전쟁통에
피신을 하던가 아니면 금전 앞에서 자금을 횡령하는 일이 많았지만, 역시 답답한 이씨 아저씨는 그 자리에 계속 있었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양조장 사장님은 이 답답한 이씨 아저씨한테 "어떻게 지내고 있었냐 ?"등의 양조장과 과수원의 현황을 묻자 우리의 답답한 이씨 아저씨는 자신의 사장님한테 돈 3억원을 전달해 주면서 "군납등으로 매상이 많았습니다." 라고 말하자
양조장 사장님은 울먹이면서 "야 ! 이 친구야 자네가 어떻게 3억원을...." 그리곤 양조장 사장님은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길 이 답답한 이씨 아저씨에게 우리 집안은 항상 고마워해야 한다고 강조 하셨습니다.
그 3억원을 종자돈으로 다시 무역업과 제조업을 시작해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답답한 이씨 아저씨의 성함은 "이창업 사장님" 이시고, 그 양조장 사장님의 성함은 "호암 이병철 회장님"이십니다.
이창업 사장님은 삼성의 주요 계열사에 평생 계셨다가 퇴직하셨습니다.
호암 이병철 회장님은 이 답답한 이창업 사장님에게 항상 고마워 하셨습니다.
(출처 호암자전 어느 답답한 사람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