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공휴일로 지정되어 설연휴의 마지막 날이 된 어제, 입산회 9인이 남한산성에 갔다. 미세먼지 나쁨의 날씨였지만, 바람이 별로 없고 포근하여 야외활동을 하기에는 좋았다.오전 10시(至和門)10분 에 시작된 우리의 산행은 오후 3시 40분에 끝났다. 간식과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 순수 산행 시간은 대략 4시간 30분, 이 동안 약 11km를 오르내렸다. 산행을 마친 후에는 남한산성 내의 음식점에서 이른 저녁을 함께했다.
8호선 산성역 1번 출구에서 출발하여 한 시간 정도 능선길을 완만하게 또는 가파르게 오르다 보니 북쪽으로 전망이 확 트인 장소, 한눈에 보아도 명당인 곳에 설치 되어있는 쉼터 데스크가 있다. 주변엔 새들 먹이로 좁쌀을 뿌려놓아 그런지 작은 새들 (특히 박새)이 여러 마리 눈에 띄는 장소였다. 그곳 에서 가져온 간식과 음료를 나누며 몸집은 작으나 귀엽다는 느낌이 드는 박새들을 감상했다. 새들이 손바닥에 올려놓은 견과류를 먹는데 그 동작이 하도 빨라 사진에 담을 수가 없었다.
가져온 얇은 비닐 커버를 데스크 위에 깔아놓으니 그 위에 석회장 며누리표 똥그랑땡, 성진이 가져온 신선한 홍어회, 부경이 보온통 안의 따끈한 포도주, 김영이 부인표 은박지 포장의 샌드위치, 등등 그득.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배부를 지경인데, 마당바위가 참가자 전원을 위하여 마련한 선물 셑트로 우리들을 감동시킨다. 등산양말에 서너 봉의 다양한 베트남 인스턴트 커피 봉다리.. 게다가 회장과 총무를 위한 특별 선물로 암벽용 장갑(손바닥과 손등을 보호하는/물론 이 장갑은 스틱을 사용할 때 끼어도 좋음). 석회장 농담 왈, 차기회장 선거운동이냐고….ㅎㅎ
일차 목적지인 산성의 남쪽문인 지화문(至和門)까지 4km 정도의 길이다. 산성으로 가는 자동차 길을 저 아래로 보기도 하고, 내려와 만나기도 하다가, 마지막 산성터널 직전에는 도로 아래로 떨어진다. 산성行 자가용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다서다한다.
지화문을 통하여 산성의 군 지휘소인 수어장대(守御將臺)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장대에서 내려와 가까운 곳에 있는 쉼터 데스크에서 남은 음식물을 먹으며 2차 휴식 타임을 가졌다.
왼쪽에 성곽길을 두고 걷는 길이다. 북문을 지나 남한산성에서 제일 높은 벌봉(515m) 방향으로 진행했다. 응달진 곳은 아직 눈이 제법 남아있었지만, 아이젠 없이도 조금 조심하면 통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마지막 가파른 오름 길 직전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랫쪽에 있는 현절사(顯節祠)로 내려갔다. 현절사는 절이 아니다.
“병자호란(1636) 때 3학사 윤집·홍익한·오달제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이다. 3학사는 적에게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청나라에 끌려가 갖은 곤욕을 치르고 참형을 당하였다. 조선 숙종 14년(1688)에 그들이 끝까지 척화의 의리를 내세우던 곳인 남한산성 기슭에 지었으며, 숙종 19년(1693)에는 나라에서 ‘현절사’라 이름을 지어 현판을 내렸다. 숙종 37년(1711)에 김상헌과 정온을 함께 모시게 되면서 현 장소로 옮겨 지었다”.
현절사에서 조금 내려오니 산성으로 들어오는 자동차 길이다. 거기서 오른 쪽으로 100여 미터 가니 석회장이 강추한 “산성민속촌” 식당이다. 여기서 두부전골, 더덕구이, 도토리묵으로 푸짐한 뒷풀이를 즐기면서, 건배사로 “앞으로(석회장), 십년만더(모두 같이 )”를 외쳤다.
註) 남한산성:(네이버 지식백과)
흔히 북한산성(北漢山城)과 함께 조선의 도성인 한양의 방어를 위하여 쌓은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발굴조사 결과, 8세기 중반에 조성된 성벽과 건물터 등이 확인되어, 신라 주장성(晝長城)의 옛터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시대 남한산성은 주봉인 해발 497.9m의 청량산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주봉(467.6m), 동쪽으로는 망월봉(502m)과 벌봉(515m), 남쪽으로도 여러 봉우리를 연결하여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바깥쪽은 경사가 급한데 비해 안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방어에 유리하면서도 적의 접근은 어려운 편이다. 봉암성(蜂巖城), 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 등 3개의 외성과 5개의 옹성도 함께 연결되어 견고한 방어망을 구축하였다. 성벽과 성 안에는 많은 시설물과 건물이 있었지만, 지금은 동·서·남문루와 장대(將臺)·돈대(墩臺)·보(堡)·누(壘)·암문·우물 등의 방어 시설과 관청, 군사훈련 시설 등이 남아 있다.
원성에는 동·서·남·북 모두 4곳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은 좌익문(左翼門), 북문은 전승문(全勝門), 서문은 우익문(右翼門), 남문은 지화문(至和門)이라고 불렸다. 암문도 원성 11곳, 봉암성 4곳, 한봉성 1곳 등 16곳이 설치되어,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남한산성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게 인정되어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된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신규 등재되었다.
첫댓글 당일 식비 15만6천원 전액을 석회장이 부담하여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참가자 9인: 김부경. 김성민. 김성진. 김종국. 김준호. 김영. 박승훈. 유태식. 석해호.
만총의 남한산성 산행기를 읽고:
먼저 내 건강과 나의 방탕한 생활에 수시로 충고해주는 만총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만총이 산행기를 읽고 나서 댓글을 올리라고 했는데 댓글접속에 실패해서 이렇게나마 글을 올리니 산우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소감 1,
글을 잘 쓴다 정제된 표현이지만 맛갈나게 할 소리는 다한다.
소감 2,
유식하다 평소 독서를 믾이했다 은근히 지기 지식도 뽑낼 줄안다.
소감 3,
유혹한다
누가 뭐 가져오고 누구 마누라는 뭐 싸서보내고
특히 마당바위는 참가자 전원에게 선물도 돌렸다하면서
나로하여금 물질적인 아쉬움을 줬다.
소감 4,
김씨들 자랑한다
9명중 6이 김씨임을 강조한다
김씨들에게 영광있으라~
나도 김씨라 이점은 동감한다.
결론,
공자님 말씀이 생각난다
어질고 덕이 많은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고 천수를 누린다~~~♡♡♡
(by 윤개미: 카톡에서 cop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