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자매'를 보고
영화 세자매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자매는
착하기는 하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주관이 없어서
본의 아니게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것을 보면
착하고 여린 것이
결코 착한 거나
좋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착하게 살면
좋은 결과가 있으며
하늘에서도 복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녀는 남편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기 말을 못하고
딸 앞에서 엄마 역할을 못하며
남편의 요구 때문에
가족들의 돈을 빌리고도
갚지 못하는 신세다.
거기에 암환자가 되어
앞날이 불투명한 삶을 산다.
둘째는 신앙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행한다.
성가대 지휘자 역할을 맡았고
교회 일에 앞장선다.
자기 뜻대 맞지 않으면
인내력을 발휘하면서도
끝내는 곱지 못한
인간 내면의 본성을 드러낸다.
이를 통해 행위를 중시하는
종교생활은
결코 사람을 본질로부터
바꿀 수 없으며
오히려 가식을 내세운 거짓된
삶을 조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을 위해 사는 것처럼 보이나
상식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행위는
오늘날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보는 듯 하다.
결국 그의 가식적인 행위를
참지 못한 나머지
남편은 같은 교회 내의
다른 여 교인과의 관계에 빠져
이혼을 하게 됩니다.
물론 꼭 아내 때문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종교생활이
남에게는 순종적으로 혹은
신실하게 보여도
집안에서는 엄격하고 자비나
사랑이 없는 아내와 어머니 역할은
남편으로 하여금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 것도
이혼의 큰 요인이 된다.
인간 내면의 이기적인
본성을 바꿀 수 없는
일반적인 기독교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저려오는 장면들이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 진리를 알기 전엔
다 그런 모습들이었을 것이다.
서로 싸움과 미움을 갖고도
성가대에서는
성가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고,
교인들은 무슨 이유로
울면서 성가를 부르는지도
모르고 은혜가 되었는지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정말 소름끼치는 장면입니다.
그런 찬양을 하나님이 받으시고
기뻐하실리는 없다.
사실 성가나 찬양이라 볼 수 없다.
셋째는
연극 시나리오를 쓰는
예능인이다.
그러나 알콜중독자인 그녀는
삶이 엉망이다.
그럼에도 재력이 있는 재혼남을 만나
물질적인 어려움은 없지만
제멋대로 살면서도
오히려 대접받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걸맞지 않게 말이다.
세 자매 모두
부조화된 삶을 산다.
성품좋고 착한 첫째는
복받기는 커녕 상식에도
못미치는 삶을 살고,
가장 복이 없을 것 같은
셋째는 경제적인 여유와 함께
휘두르며 살아도 되는 삶을 산다.
믿음과 교회생활에 충실한
둘째는 온통 가식으로 뒤덮인 채
삶의 질은 엉망이나
남을 위해 산다고 자부하면서
자기 문제도 해결 못하는
문제 투성이의 삶을 보인다.
세 자매의 어린 시절은 불행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자식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첫째와 남동생은
다른 데서 나아 온 자식이었다.
불행중 다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런 아버지는 후에
교회의 장로가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도 뉘우치지
못한 채
그도 가식 덩어리인채로
교회 생활을 하게 된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무시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의
민낯을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믿지만 믿음이 무언지도 모르는
그리스도인,
마땅히 참된 믿음을 제시하거나
가르치지도 못하는
기독교 목회자들,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 교회들...
복음을 전하지만
복음을 모르는 교회들과
목회자들...
어쩌면 가장 큰 불행한 사람들을
양산하는 곳이
교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며
수 많은 기독교인들은
복음의 핵심조차 모른채
평생을 거짓된 진리 안에서
헛된 믿음을 좇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에
하나님으로부터 추방당한
아담의 생명으로 탄생한
본질적인 죄인이다.
자기에게서 난 것을 부인하거나
자기를 죽은 자로 여기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믿음이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생각에 옳은대로 살았다가는
이 영화와 같은 불행한 결과를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다행히 서로 마음이 잘 맞아
별 문제없는 가정을
꾸려간다 하더라도
거짓된 믿음을 피해갈 수는 없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없는
믿음은 허상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믿음일 수 없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다.
아무리 교회 생활에 힘쓰고
열심으로 예배와 기도,
선교와 말씀생활에 힘쓴다 해도
길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자기가 아무 것도 아닌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서
믿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니 기독교일 수 없다.
잘 믿으려고 힘쓰는 한,
그는 기독교인일 수 없다.
우리 믿음은 오직 주께 있다.
그에게 자신을 드리고
스스로 살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한,
참된 믿음은
영영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진리의 삶은
자기가 살기를 내려놓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여러 시험과 어려움에도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다.
자기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믿음의 삶이다.
그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구원이란,
자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그리스도의 영이
자기 안에 임하는 실재이다.
그럴 때만이
거룩한 삶이 가능하다.
그같은 진리와
믿음의 삶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그런 삶이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미 시작한 자는
자기를 돌아보아
스스로 살기를 내려놓았는지를 살피라.
그 의미가 뭔지도 모른채
여전히 자기와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지는 않는지,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옳게 여기는지
살피라.
우리의 모든 불행은
죄인으로 탄생함에 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 해도
자기라는 이기와 탐욕과 교만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삶은 불가하다.
결코 스스로는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그런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로부터 해방케 하시는
그리스도를 따르라.
어떻게 살면 된다는
허무맹랑한 거짓된 진리에 속지 말라.
자기 안에는 희망이 없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일반 목회자들이 아닌,
바울과 같이 복음의 진수를 아는
자에게서 배우고 그의 말을 받고
그가 사는 것을 보고 행하라.
또한 스스로 살기를 거부하셨던
예수를 보고 배우라.
제발 예배 중심의 행위에 빠져
자신을 믿는 자로 착각하고
스스로 의롭게 사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
그것은 잠시 잠간의 거룩한 감정을
심어 주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행위로는 바뀌는 것이 없고
가식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살든지
인생의 민낯을 보여주는
슬픈 영화다.
세 자매의 엔딩은
바닷가에서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자유를 택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종교적 삶으로부터 벗어나
자기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다.
그의 가르침을 좇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되지 말자.
2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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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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