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 달러 상승이 진행되어, 34년만에 1달러=160엔이 되었다. 4월 29일의 아시아 환율 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이 오전에 한때, 1달러=160엔 17전을 기록했다. 1990년 4월 이래의 엔저 달러 상승이다. 그 후, 일본 은행(일본 은행)의 개입 등도 있어, 1달러=155엔대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슈퍼 엔저 시대가 열렸다고 분석한다. 슈퍼엔저 현상은 미국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조절하기 위해 현재 연 5.25~5.5%인 정책금리 인하 시기를 늦추는 반면 일본은 제로에 가까운 금리정책(0~0·1%)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행의 이 같은 정책은 30년간의 저물가와 장기불황을 해소하기 위해 수출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미국의 고금리 지속에 따른 달러 강세 속에서 엔화 약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원화 가치가 대일 엔화로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2011~12년 100엔=1400원대였던 원·엔 환율은 2013년부터 2022년 3월까지 100엔=평균 1038원 안팎에서 등락했다. 2022년 4월부터 2023년 10월까지는 100엔=평균 953원 수준에서 등락하다 초엔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는 100엔=평균 893원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장기간 이어진 100엔=1038원 안팎에 비해 14%나 하락했다.
슈퍼 엔저 현상은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다. 엔화 약세로 일본 상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떨어지면서 해외 시장에서 경쟁하는 한국 상품이 가격 경쟁에서 열세에 놓이게 된다. 한국 수출품의 글로벌 경쟁력이 높아졌다고 하지만 아직 철강이나 석유화학, 자동차·부품, 선박, 기계류 등 일본 수출품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제품이 많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과 일본의 수출경합도는 69.2로 미국(68.5) 독일(60.3) 중국(56.0) 등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달러 대비 엔화가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수출가격은 0.41%포인트, 수출물량은 0.20%포인트 하락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올 하반기 미국이 한두 차례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일본은 경기 회복 부진으로 저금리 정책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분간은 슈퍼 엔저가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은 외국자본 유출 우려와 물가 안정을 위한 수입물가 안정 때문에 환율 상승을 방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132억 6000만 달러로 3월 말(4192억 5000만 달러)에 비해 59억 9000만 달러 감소했다. 환율 상승을 막기 위한 시장 개입의 결과로 추정된다.
원-엔 환율 하락이 계속돼 수출이 타격을 받게 되면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여기에 정쟁이 격화돼 정치 및 사회불안이 가중되고 국정공백 사태로까지 가는 정치위기가 닥치면 경제위기도 따른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런 경우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1994년 1월부터 1995년 4월까지 정책금리를 3.0%에서 6.0%로 인상했다. '역플라자 합의'로 엔·달러 환율은 1995년 4월의 1달러=83.59엔을 정점으로 엔-달러 환율이 올랐지만, 한국은 고금리 원화 강세 정책을 추진한 결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해 수출이 악화됐다. 원-엔 환율은 1995년 4월 100엔=918.5원에서 1997년 2월 704.7원, 97년 3월 716.8원, 1997년 4월 711.4원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1994년 16.8%, 95년 30.3%였던 수출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1996년(3.7%)과 97년(5.0%)에 크게 떨어졌고 98년(2.8%)에는 마이너스까지 악화됐다. 수출 급감으로 1996년부터 경기 침체가 시작되면서 기업들은 심각한 자금 부족을 겪었고,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건설·철강 등 주요 산업 분야 대기업들도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 원화고-엔저 환율로 한국 수출 급감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7년 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과 국정개입 사태가 불거지면서 정국은 혼란을 겪었다. 그해 5월 김현철 씨가 한보그룹 개입 문제가 아닌 정치자금 관련 증여세 문제로 구속 수감되면서 집권 5년 차에 접어든 김영삼 정부의 국정 동력은 급격히 약해졌다. 한보 삼미 진로 등 대기업들이 부도를 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파업이 이어지면서 노동개혁은 불발됐고, 기업 구조개혁도 못한 채 기업의 부진이 가속화되면서 금융 문제도 커졌다.
결국 외국 금융 기관의 대출금을 중심으로 외국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외환 보유액은 고갈되어 1997년 11월 외환 보유액은 24억 4000만 달러까지 감소하였다. 국내 은행 해외지점의 예금을 제외한 가용 외환보유액은 7억 3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외화결제 불능 사태가 우려되자 한국 정부는 1997년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엔화 약세와 환율 상승, 정치적 혼란이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닷컴 버블로 추락한 미국 경제를 회복하기 위해 미국이 달러 약세 정책을 추진하면서 원화 가치가 오르자 원·엔 환율은 2004년 100엔=1058원에서 2007년 100엔=789원까지 떨어졌다. 그 영향으로 수출 증가율은 2004년 31.0%에서 2005년 12.0%로 급락했다. 2006년(14.4%)과 2007년(14.1%)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졌다. 국정 동력도 약해졌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권이 그해 4월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발표한 뒤 MBC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보도로 연인원 100만 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3개월째 이어지면서 새 정부의 국정 동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더욱이 2008년 9월 리먼브 쇼크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경제는 충격을 받았다. 2009년 수출 증가율은 -13.9%로 급락했다. 외국인 주식투자금과 은행 차입금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빠져나가면서 2642억달러였던 외환보유액은 2008년 11월에는 2005억달러로 감소했다. 원-엔 환율 하락과 정치적 혼란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