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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여행] 남고사, 남고산성......21 . . 17.남고사와 남고산성 . 남고사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기울고 절집 종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남고사에서 바라보는 전주8 경의 하나인 남고모종(南高暮鐘),석양이 내리고 남고사 종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울려 퍼지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승용차로 절까지 오르는 길을 생각보다는 좁고 가팔랐다. . 자칫잘못하면 낭 떠러지로 구를것만 같아 조바심 때문에 4륜그동으로 편안하게 올랐다. 남고산성을 지나 도착한 남고사, 사천왕문 앞에 주차를 하고 오늘 여행은 남고사가끝이다. 떨어지는 해를 뒤로하 고 유랑자는 사천왕문을 들어섰다. 유랑자는 깜짝 놀랐다.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 응당 있어야할 사 천왕들이 없다. . 사천왕문 . 사천왕은 남고산성으로 마실가고 그곳엔 탱화만 있다. . 그렇다 남고사가 다른 점은 사천왕문이 매우 독특하다는 것이다. 사천왕문에 서서 입구를 살피거나 외관을 빙 둘러 보기만 하면 일반적인 사천왕문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다만 사천왕문에 한 발 들어 서 사천왕상에게 합장을 하려는 순간, ‘아!’하는 뭐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사천왕들이 남고산성 으로 마실을 가버렸다. . 대신 그 자리에는 규모가 꽤 큰 사천왕상을 각각 1폭씩 그린 4점의 탱화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천왕문의 주인공인 천왕상들은 불거져 나온 부릅뜬 눈, 잔뜩 치켜올린 검은 눈썹, 크게 벌어진 빨간 입 등 두려움을 주는 얼굴에 손에는 큼직한 칼 등을 들고, 발로는 마귀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다. 이 때 발 밑에 깔린 마귀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신음하는 상을 하고 있다. . . 남고사 대웅전 . 원래 사천왕은 고대 인도 종교에서 숭상했던 귀신들의 왕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하여 부처님과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들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서 각각 그들의 권속들과 살면서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며 불법 수호와 사부대중의 보호를 맡게 되었다. . 또, 사천왕과 그 부하 권속들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면서 세간의 선악을 늘 살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매월 8일에는 사천왕의 사자(使者)들이, 14일 태자(太子)가, 15일 사천왕 자신이 제석천(帝 釋天)에게 보고하는 것이 중대한 임무의 하나가 되고 있다. . 종무소 . 대웅전 . 사천왕 중 동쪽을 수호하는 이는 지국천왕(持國天王)이다. 그는 안민(安民)의 신으로서 수미산 동쪽 중턱의 황금타(黃金埵)에 있는 천궁(天宮)에서 살고 있다. 16선신(善神)의 하나이기도 한 지국천왕은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어 항상 인간을 고루 보살피며 국토를 수호하겠다는 서 원을 세웠다고 한다. . 얼굴은 푸른빛을 띠고 있으며, 왼손에는 칼을 쥐었고 오른손은 허리를 잡고 있거나 또는 보석을 손바 닥 위에 올려 놓고 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는 휘하에 팔부신중의 하나로서 술과 고기를 먹지 않 고 향기만 맡는 음악의 신 건달바(乾達婆)를 거느리고 있다. . 대웅전 주련:~고려말의 고승 나옹화상이 지은 行禪祝願文(행선축원문)에서 따온 글귀다. 주련 우로부터.... . 願我世世生生處(원아세세생생처): 원컨대 저희로 하여금 세세생생 나는 곳마다. 常於般若不退轉(상어반야불퇴전): 언제나 반야의 큰 지혜에서 물러나지 않게 하시고 聞我名者免三途(문아명자면삼도): 나의 이름 듣는 이는 삼악도의 괴로움 여의고 見我形者得解脫(견아형자득해탈): 나의 형상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하소서 如是敎化恒沙劫(여시교화항사겁): 이와 같이 무량겁토록 교화하게 하사 畢竟無佛及衆生(필경무불급중생): 필경 부처도 보살도 없는 세계 이뤄질 것입니다. . 남고모종(南高暮鐘):~ 전주 8경중의 하나인 남고모종, 남고사의 석양,, 구름때문에 패스... . 서쪽을 방어하는 신은 수미산 중턱 백은타(白銀埵)에 살고 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이다. 그는 흔히 잡어(雜語)·비호보(非好報)·악안(惡眼)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남다른 모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 즉, 그의 몸은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되어 있고 입을 크게 벌린 형상을 함으로써 웅변으로 온갖 나쁜 이야기를 물리친다고 한다. 또 눈을 크게 부릅뜸으로써 그 위엄으로 나쁜 것들을 몰아낸다고 하여 악안·광목이라고 하는 것이다. . . . 광목천왕의 근본 서원은 죄인에게 벌을 내려 매우 심한 고통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도심(道心)을 일 으키도록 하는 것이다. 그의 모습은 붉은 관을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오른손은 팔꿈치를 세워 끝이 셋으로 갈라진 삼차극(三叉戟)을 들고 있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어 쥐고 있다. 그의 권속으로는 용 (龍)과 비사사(毘舍闍) 등이 있다. . 남방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수미산 남쪽의 유리타(瑠璃埵)에 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위덕 을 증가하여 만물이 태어날 수 있는 덕을 베풀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구반다 등 무수한 귀신 을 거느린 증장천왕은 온몸이 적육색이며 노한 눈을 특징으로 삼고 있다. . 그의 모습은 대개 갑옷으로 무장하고 오른손은 용을 잡아 가슴 바로 아래에 대고 있고, 왼손에는 용 의 여의주를 쥐고 있는 경우가 많다. . . .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달리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이라고도 하는데, 항상 부처님의 도량을 지키면서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다 하여 다문이라고 한다. 그가 맡은 역할은 암흑계의 사물을 관리하는 것인데 한때 불법에 귀의하여 광명신(光明神)이 되었으나, 본래 자신의 원을 지킨다 하여 금비라신(金毘羅神)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 다문천왕은 왼손에 늘 비파를 들고 있다. 그는 수미산의 북쪽 수정타(水精埵)에 살며, 그의 권속으로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있다.현재 이 사천왕은 천왕문에 많이 봉안되지만, 달리 불보살의 후불탱화 에도 외호신으로 묘사되고 있다. . . . 유랑자는 사천왕문을 지나 절집 마당으로 들선다. 넓은터에 달랑 올라앉은 대웅전이 왼지 외롭게만 보인다. 유랑자는 먼저 더는 해가 떨어지기 전에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부 붉게 물들어 있지만 구름이 하늘을 가려버렸다. . 절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전주 시가지가 한 눈에 바라다 보이고, 시선을 위로 하면 멀리 완산칠봉 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 마디로 남고사는 시내에서 그닥 떨어져 있지 않고 가볍게 산책하면서 들를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망이 아주 근사하다. . . . 더욱이 절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냥 즐기기 싫어서 절 주위의 절벽마다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 등 의 이름이 붙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남고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은 ‘해질녘 남고사의 종 치는 광경’즉 남고모종(南高暮鐘)이다. . 이 광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전주8경]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는데, 정말 그런지 확인하려면 아무 래도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지려고 할 때 산에 올라 종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제 격일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오늘은 틀렸다. . . 남고산성 서문지 . 완산구 고덕산(高德山)에 있는 사찰. 남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 고구 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보덕(普德)의 제자 명덕(明德)이 668년(신라 문무왕 8)에 창건했다고 알려져 있다. . 창건 당시에는 남고연국사(南高燕國寺)라고 불렀는데, 연국이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말로 산성에 있는 사찰 이름에 많이 나타난다. 이 절 역시 사적 제294호로 지정된 남고산성(南高山城)에 자리하고 있다. . . . 고려 때까지는 교종(敎宗) 계통의 사찰이었으나, 조선 세종 때 선교(禪敎) 양종을 통합하여 정한 48 개 사찰에 들지 못하면서 사세가 크게 위축되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선종(禪宗) 사찰이 되었다. 고 덕산을 남고산(南高山)이라고도 불렀으므로 창건 당시 남고연국사라 하였으나 언제부터인지 남고사 (南固寺)로 표기되었다. . 이러한 변화는 18세기 중엽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처음 나타난다. 이는 견훤이 산성을 쌓 고 사고(四固) 사찰을 지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1680년(숙종 6)에 관음전이 들어서고, 1881 년(고종 18)에 중건. 이후 1970년 사천왕문, 1981년 대웅전, 1984년 삼성각, 1985년 관음전을 각각 중 건. 1992년 관음전과 요사가 불에 탔으며, 1995년 관음전을 인법당으로 복원하고 이듬해 목조관음보 살상을 모셨다. . . .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관음전·삼성각·사천왕문 등. 이 중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 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고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협시로 한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불상 뒤에 걸린 영산회상도는 1907년(융희 1) 현수(賢殊)·선정(善正) 등이 그린 것. 관음전은 16 80년 창건되어 1992년 10월 7일 불에 탄 것을 1995년에 복원. 사천왕문에는 다른 절에서처럼 사천왕 상을 모시지 않고 사천왕을 그린 탱화만 모셔 둔 점이 특이하다. . 옛 절터 남고사지는 현재의 대웅전 오른쪽 앞 건물 자리로, 1985년 8월 16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 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왼쪽 뒤에는 부도 1기가 있으나 누구의 부도인지는 알 수 없다. 주변에 천경대 ·만경대·억경대의 삼봉(三峰)이 있어 경치가 빼어나고, 이런 까닭에 예로부터 해질녁에 들리는 남고 사의 저녁 종소리를 전주팔경의 하나로 쳤다. 고려 말 정몽주는 몰락해가는 왕조의 아픔을 노래한 시 를 만경대 바위에 남겼다고 한다. . 서문지 . . 남고산성 남고산성은 고덕산(高德山) 서북쪽 골짜기를 에워싼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901년에 후백제 견훤 (甄萱)이 도성인 전주의 방어를 위하여 쌓았다고 전한다. 이러한 이유로 견훤산성, 고덕산성이라고도 불린다. .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임진왜란 때 전주부윤 이정란(李廷鸞)이 왜군을 막을 때 고쳐 쌓았다. 숙종 때 에는 주변에 위치한 위봉산성(威鳳山城)에 이어서 진(鎭)이 설치되었고, 성 안에는 진장(鎭將)이 머 무르는 관아와 창고, 화약고 등을 두었다. . 그 뒤 1811년(순조 11)에 전라도관찰사 이상황(李相璜)이 증축하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전라도관찰사 박윤수(朴崙壽)가 완공하였다. . 남고진 사적비 . . 성벽은 천경대(千景臺)·만경대(萬景臺) 등의 절벽이 있는 자연적 요새를 둘러 약 5.3㎞정도로 축조되 었다. 남쪽과 북쪽에는 장대(將臺)를 세웠고, 동쪽과 서쪽에는 성문을 두었다. 서쪽에는 암문(暗門) 도 하나 있었고, 사방에 각각 하나의 포루(砲樓)를 두었다. . 영조 때 기록에 의하면, 성벽의 둘레는 2,693보(步)이고, 성벽 위에 올린 여장(女墻)이 1,946척이며, 성 안에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북문(北門)터는 석축만 남은 상태인데, 크기는 너비 3. 4m, 높이 1.2m 정도이다. . 그 외에 성 안에는 연못 4곳이 있었고, 우물이 25곳이나 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현재 성 안에는 남 고사(南固寺)·관성묘(關聖廟)를 비롯하여 남고진의 내력을 기록한 남고진사적비(南固鎭事蹟碑)만 남 아 있다. 시간이 있으면 남고산성을 거닐어 보고 싶었지만 시간 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기로 그만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 남고산성 터 . . . 전북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