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틋하고 절실한 만남
생각해보니
팔십구세까지가
틀렸더라
며칠 사이
여러 곳에서 부고를
들었다.
저 멀리
조계산과 가야산에서
평생 수행하셨던 분들의
부음이 연이어
전해졌다.
송광사의
노스님과 해인사의
어른스님까지 기상이 넘칠 때
모시고 살았던 스승같은
분들이다.
후배에겐
사표가 될 만한
인자한 수행자
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법장
스님이다.
전남 화순
산골에 시적암을
창건하여 시를 짓고,
농사 짓고, 미소 짓던
선배이다.
시적암을
상량할 때 누수 없는 단단한
지붕을 만들라는 뜻에서 기와불사에
동참만 했을 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생전에
발걸음하지
못했던 거기를 장례
마친 뒤에 동료스님
들과 방문했다.
앞을 봐도
산이며, 뒤를 봐도 산이며,
옆을 봐도 산이었던 그 암자에서
사람들을 많이 그리워
했을 것이다.
유난히
정이 많았던
수행자라서 손님
드나드는 것을 귀찮게
여기지 않는 성품
이었다.
어쩌다
하룻밤 지내고
방문객이 떠날 즈음엔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는
사람...
암자의
주인은 떠났지만
그가 가꾸던 채마밭과 된장독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앞들에
막 피기 시작한 청매가
우리에게 ‘왜 이제야 왔는가?’
하고 되묻는 것 같다.
전화나
서신이 올 때마다 한번
방문하겠노라 말해놓고 떠난
지금에야 그곳을 찾아간
셈이다.
나와 같이
말빚을 지고 살았던
스님들이 그날 그 암자에 모여
고인을 추억하며 그의
삶을 추모했다.
사람이
잘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따져 보면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살아
있을 때 친교의
시간을 자주 만들어
정을 더하고 음식을 나누는
일일 것이다.
삶의
여정에서 약속을
여러 번 해놓고 지키지 못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돌아봐진다.
그래서
그리운 사람은 일부러
보아야 하고, 보고 싶은 사람은
즉시 안부라도 전해야
후회하지 않는다.
자칫
머뭇거리다가는
늦어지고 시기를
놓친다.
일본이
저명한 불교학자
스즈끼 다이세츠(1870-1966)
박사에게 강의를 듣던 어느
청중이 물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무엇
입니까?”
“사람이
사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
인간의
삶은 죽음과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는 존재
라는 것이다..
삶이란
생에서 사에 이르는
역사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다른 상황이
아니란 뜻이다.
이렇게 며칠
동안 문상 다니면서
새삼 죽음의 문제를 떠
올려보았다.
지금 숨
쉬고 있으므로 살아
있는 것이고 눈 감으면
아득한 작별이다.
결국
흐르는 시간 속에
살고 있고, 그 시간 속에
우리는 사라져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흐름 속에
동참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연속성 위에
우리 인생은 존재하는
것이다.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
이라는 법문이 있다.
시점이라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규정할 수 없고, 다만
존재하는 지금만 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우리 삶은 매일매일
다른 날이다.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났다
하더라도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인사해야
한다.
늘 같은
시간이 아니듯
오늘의
이 사람이 어제의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나
처음 뵙는 인연이기
때문이다.
강물이
어제의 그 강물
이던가?
그렇다면
사람 또한 늘 새로운
만남속에 놓여있다.
이러므로
무엇이든
언제나 애틋하고
절실한 만남이 아닐
수 없다.
굴곡의
정치 인생을
보여주었던 김종필
전 총리가 생전에 자찬
묘비명을 남겼다.
그 중에
“연구십이지,
팔십구비” 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다양한
뜻이 함축된 문장이
겠지만
“나이
구십에 생각해보니,
팔십구세까지가 틀렸더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혼기에
인생을 돌아보면
잘한 일보다는 실수한 일이
더 많이 떠오를 게다.
인생
행로에서
완벽한 선택과 옳은
결정이라는 것은
없다.
어제의
결정이오늘은
불행일 수
있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은
행복이 될 수 있는 게
세상일이다.
그러므로
눈 감는 순간까지
배우고,고치고, 도전하며
사는 거다.
법장
스님의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순천 선암사 매화
향기를 감상하고 왔다.
600년
나이의 고매에서
전해지는 암향은 나그네의 발길을
한참이나 머물게 하였다.
고인
덕분에 예정에
없던 눈 호강을
한 셈이다.
그는
봄소식을 전하며
떠났고, 나는 봄소식을
맞이하며 살고 있다.
-현진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