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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25.1.3(금)10;30-14;50
◆코스;안국역-창덕궁 매표소-창덕궁 금호문-인정전-창덕궁 후원 출입구-부용지-애련지-옥류천 궁중정원-연경당-
낙선재-인정전-궐내각사(수령 700년 향나무)-재동순두부집-안국역
◆참가;11명
-부용지 어수문을 배경으로-
2025년 새해가 밝아왔다. 푸른 뱀의 해 을사년(乙巳年)이다. 그러나 마음은 밝지않다.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어수선하고 나라의 운명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뿐더러 설상가상으로 지난 12월 29일에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온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 사고로 탑승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정부에서는 1월4일까지 추모하기로 하였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신성한 생명이 이렇게 한순간에 날아가다니 하느님도 너무 무심하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가운데 여의도 포럼이 새해 첫 포문을 열었다.
여의도 포럼 장소는 창덕궁 후원과 낙선재이다. 창덕궁 후원은 봄과 가을에 관람하였지만 겨울철은 난생 처음이다. 안국역 집결해서 창덕궁 돈화문으로 향한다. 참가인원은 11명이다. 창덕궁은 태종이 개경에서 한양으로 6년 8개월만에 재천도하면서 경복궁 다음으로 지은 궁궐(태종 5년,)로 경복궁과 불과 10년 시차를 두고 있다. 경복궁은 법궁(法宮), 창덕궁은 이궁(離宮)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이궁은 법궁에 화재가 발생하거나 전염병이 생길 경우 등 특별한 상황하에서는 임금이 필요에 따라 머물며 정사를 돌 볼 수 있는 궁궐이다.
창덕궁은 임진왜란과 이괄의난(1624.1)으로 잿더미로 변했다. 그리고 20년이 더 지나 인조 말기에 복구했다. 경복궁은 폐허로 남긴 채 창덕궁이 법궁이 되고 창경궁이 이궁이 된 셈이다. 창덕궁은 조선의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함께한 유일한 궁궐이자 조선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궁궐이다. 창덕궁의 돈화문은 임진왜란때 불탄 후 광해군 때 다시 지어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니 400년이 넘은 건물로 궁궐의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이다. 돈화문(敦化門)은 임금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돈독하게 한다는 뜻이다.
창덕궁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 한 후 돈화문(보수중) 대신 금호문을 통과하면 모진 풍상을 겪어온 회화나무가 눈에 먼저 들어온다. 고목처럼 철제 밑바침에 의지한 채 나무 기둥은 부러지고 가지들이 솟아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학자나무라는 별칭이 붙어있는 이 유서 깊은 나무는 1800년대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에도 표시되어 있다. 그리고 곧바로 돌다리를 만나게 된다. 태종 11년(1411)에 만든 금천교(錦川橋)이다. 현존하는 돌다리 중 가장 오래 된 다리로 지금까지 그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금천교 밑을 흐르던 금천은 북악산에서 발원한 북영천(北營川)이다.
지금은 대부분 물이 없어 말라있지만 예전에는 물이 흘렀다. 금천교는 임금이 있는 신성한 내부와 세속의 영역인 외부를 나누는 경계선의 역할이다. 불교로 말하면 일주문인 셈이다. 금천교를 건너가면 창덕궁의 중문인 진선문(進善門)이 나타난다. 이 진선문에 제 3대왕 태종이 백성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신문고(申聞鼓)를 설치했다고 한다. 진선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져 있고 왼편에 인정전으로 들어가는 인정문이 나타난다. 인정전(仁政殿)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창덕궁 내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인정전은 각종 의식(세자 책봉, 왕의 혼례식, 하례식 등)이나 외국사신 접견 등 주요 행사를 치렀다. 인정문 밖 이 넓은 마당에서는 왕의 즉위식(卽依式)을 개최하였다. 선왕이 세상을 떠나고 6일 후 상중에 즉위식이 열리기 때문에 축하의 자리가 아니라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문 밖 즉위식을 한 후 인정문을 지나 인정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연산군, 효종, 현종, 숙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등 조선 후기의 여러 임금들이 여기에서 즉위식을 가졌다. 숙장문을 통과하면 후원 출입구가 나온다. 오전 11시 정각 후원 출입구에서 문화 해설사의 안내로 후원으로 향한다.
후원은 금원, 북원, 비원이라고도 불린다. 창덕궁 후원 면적은 약 10만평으로 창덕궁 전체 약 16만평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최대의 궁중 정원이다. 돌담 사잇길을 지나 고개 한복판에 이르면 숲이 나타나고 부용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자연의 조화가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마치 별세계처럼 느껴진다. 조선의 3대왕 태종 때 조성하기 시작해 세조, 인조, 정조, 순조 등으로 거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부용지(芙蓉池)는 화강암으로 둘레를 막고 연못 가운데에 둥그런 섬을 조성했으며,남쪽에 부용정을 배치하였다.
섬은 둥근 하늘을, 연못은 네모난 땅을 표현한다. 정조 임금이 부용정에서 연회를 열며 신하들에게 시를 짓게 하여 주어진 시간에 시를 짓지 못하면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가 금방 풀어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부용지는 국왕과 왕실 가족, 신하들이 연회를 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왕실 전용 연못이었다. 연못 북쪽에 2층 건물이 우뚝 서있다. 1층은 규장각, 2층은 주합루(宙合樓)이다. 정조 임금 때 지은 건물이다. 규장각은 도서관이자 정책연구소 국왕 친위관료 양성소로 개혁정책의 산실이었다. 정조는 젊고 유능한 서얼 출신 인재들을 발굴해 규장각에 배속 시켰다.
박제가, 이득무, 유득공 등이 그들이다. 우주와 합일한다는 뜻의 주합루 편액은 정조가 직접 쓴 것이다. 주합루로 올라가는 길은 어수문을 통과해야 한다. 어수문(魚水門)은 양 옆의 출입구와 가운데 문으로 되어 있다. 가운데 문은 임금이, 양 옆의 문은 신하들이 드나들었다. 어수 즉 물고기와 물인데 여기서 물고기는 신하, 물은 임금을 말한다.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듯이 신하도 임금 없이 살수 없으니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규장각에 있던 방대한 도서와 고문서 등은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 보존되어 있다.
부용지 동쪽에 있는 건물은 영화당(映花堂)이다. 영조가 직접 쓴 편액이 걸려있다. 영화당 앞마당을 춘당대라고 불렀다. 과거시험이 종종 이곳에서 치러졌다. 고종 때인 1894년 조선의 마지막 과거시험이 치러졌던 곳이기도 하다. 부용지를 벗어나 조금 걸어가면 돌로된 불로문이 나온다. 이 문을 지나는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전해진다. 불로문(不老門)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의 애련지(愛戀池)이다. 연못 북쪽에 아담한 정자 애련정(愛戀亭)이 있다. 연꽃을 좋아했던 숙종이 지은 이름이다.
불로문으로 다시 나와 돌담길을 따라가면 수령 400년된 거대한 뽕나무가 반긴다. 이 뽕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7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라에서는 백성들에게 양잠을 권장하기 위해 후원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친히 누에를 치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창덕궁 뽕나무는 보기드문 노거수일 뿐 아니라 뽕나무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수형이 단정하고 아름답다. 뽕나무를 지나면 옥류천 깊은 골짜기에 존덕정(尊德亭), 관람정(觀纜亭), 승재정(勝在亭), 펌우사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서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치 신선이 사는 선계에 들어온 느낌이다.
겹지붕으로 화려하게 꾸민 존덕정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존덕정은 제16대 왕 인조가 지었지만 존덕정 내부에는 정조 임금이 지은 글이 현판에 빽빽하게 새겨져 있다.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 라는 제목의 글인데 세상의 모든 냇물은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있는 달은 오직 하나이니 그 달은 임금이라는 내용이다. 정조가 죽기 2년 전에 지은 이글은 왕권강화에 노력했던 정조의 군신관계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고종의 대한제국 시기에 지어진 부채를 펼친 모양의 관람정은 독특하고 아름답다. 고종의 51세 생일잔치를 열기 위해
존덕정 일대에 연못을 개조하는 공사를 하면서 정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관람정 앞 연못이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고 하여 반도지라고도 불린다. 이 연못에서 왕들이 유유자적 뱃놀이를 했다고 전해진다. 관람정 건너편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승재정은 경치가 빼어나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에게 돌침을 놓아 깨우치다', '어리석음을 경계하라'는 뜻을 갖고 있는 펌우사 등이 있다. 이곳을 지나 언덕길를 따라 올라가면 연경당이 나온다. 연경당(演慶堂)은 사대부가 형식의 건물이다. 효명세자가 아버지 순조와 어머니 순원왕후의 존호를 올리는 의식을 치르면서
잔치를 하기 위해 후원내 진장각 옛터에 세운 연회장이다. 사대부가 형식으로 개조한 것은 고종 때인 듯 하다. 효명세자는 이곳에서 어머니 순원왕후의 생일잔치 등 부모를 위해서 세차례의 큰 잔치를 열었다. 고종 이후 외국공사를 접견하고 연회를 베푸는 등 정치 외교 공간으로도 쓰였다. 12시경 문화 해설사와 연경당에서 마침표를 찍고 인사한 후 헤어졌다. 문화해설사는 1시간 동안 시종일관 재치와 유머로 흥미진진하게 전해주는 구수한 입담이 돋보였다. 새로운 역사적 사실도 알게 되었다. 좋은 경험이었다. 애련지를 지나 왔던 길로 다시 뒤짚어 나와 낙선재로 향한다.
낙선재(樂善齋)는 제24대 왕 헌종이 사대부가의 사랑채를 궁궐에 구현한 집이다. 헌종은 이곳에서 약 2년 동안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후궁과 할머니를 위해서 석복헌과 수강재를 지었다. 이 건물군을 통칭해 낙선재로 불린다. 낙선재는 단순히 옛 건물이 아니라 조선의 마지막 왕족들이 대한민국 체제 아래 실제 살았던 살림집이기도 하다. 마지막 왕 순종의 부인 순정왕후는 이곳에서 살다가 1966년에 사망했다.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과 부인 이방자 여사도 1963년 일본에서 돌아와 낙선재에서 살다가 영친왕은 1970년, 이방자 여사는 1989년에 사망했다.
1962년 일본에서 귀국한 고종의 딸 덕혜옹주도 낙선재에서 1989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불과 35년전 까지 살았던 집이었다고 생각하니 궁궐에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마지막 목적지인 궐내각사로 향한다. 궐내각사는 궁궐 안에 설치된 관청을 말한다. 홍문관, 내의원, 규장각, 예문관 등이 들어서 있다. 궐내각사의 보각과 봉모당 사이의 뜰에 수령 700년 된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향나무는 6m 높이로 동서남북으로 가지를 뻗었으나 남쪽 가지는 잘라버렸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2010년 태풍 피해로 크게 손상을 입은 천연기념물이다. 향나무는 담벽으로 가로막혀 손을 높이 들고 사진촬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마지막 휘날레는 오찬시간이다.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라 배에서 연신 고동소리가 들린다. 미리 예약한 재동순두부집으로 향한다. 좁은 먹자골목으로 들어서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오찬 메뉴는 두부전골과 녹두전이다. 두부는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하게 함유된 고단백 식품이다. 막걸리에 권커니 잣거니하면서 수다가 붙기 시작한다. 끊임없이 웃으며 먹고 수다를 떠는게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다.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언거언래하면서 웃음꽃들을 피웠다. 전인구 회장은 가족과 함께 3년째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를 극장 대형화면을 통해서 경청한다고 한다. 감미로운 음악소리에 요동치는 마음에 평온을 얻고,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희열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이게 품위있는 삶이라고 강조한다.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오후 3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안국역에서 각산진비하였다. 삶은 단 한 번 뿐이다.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감사한 일이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호우시절이라는 사실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70이 넘으면 마치 지뢰밭을 밟는기분이다. 동기생들과 자주 만나서 웃고 즐기면서 사는 것이 건강과 행복의 지름길이다. 나를 기다려주고 반갑게 맞이해주는 동기생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동기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너무 행복하다. 다가오는 2월 여의도포럼이 기대된다. 여의도 포럼 브라보!
창덕궁 매표소로 향하는 중
창덕궁 표사는 곳
돌담길을 따라
금호문으로 창덕궁 입장
고목처럼 보이는 천연기념물 회화나무
금천교를 지나 진선문으로
인정전 밖 넓은 뜰
인정문
창덕궁내 유일한 국보 인정전
숙장문
빈청(임금을 뵙기전 고위관료들의 회의장소)을 지나
후원 출입구
후원 출입구에서 대기
오전 11시 문화 해설사와의 만남과 후원 답사계획에 대한 설명 중
창덕궁과 창경궁의 경계 돌담길을 따라
숲 사이 언덕을 넘으면 부용지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부용지에서 설명하는 해설사
부용정에서 바라본 주합루와 어수정, 영화당의 풍경
영화당에서 설명하는 해설사
불로문에서
애련지와 애련정
천연기념물 400년 된 뽕나무
옥류천 골짜기에 조성된 자연친화적인 궁중 정원
존덕정 앞에서 설명하는 해설사
펌우사
연못을 굽어보는 승재정
언덕길을 올라서면 연경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연경당 출입 후문
연경당 내부
장락문을 나와서
연경당 앞 뜰 느티나무 아래서 커피타임을 즐기는 회원들
애련지를 지나 왔던 길로 뒤돌아 나와 후원 출입구로 향하는 중
사진 우측에 보이는 인정전
낙선재로 향하는 중
낙선재 앞마당에서 설명하는 전인구 회장
낙선재를 배경으로 단체사진 촬영
궐내각사 정문 '내각'
창덕궁 향나무에 대하여 설명하는 전인구 회장
수령 700년 된 천연기념물 향나무의 모습
창덕궁을 빠져나와 재동맷돌순두부집으로 향하여
현대건설 본사를 지나는 중
재동 먹자골목
재동순두부집
식사 나오기 전
첫댓글 차성근 ,정말 대단하십니다, 글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