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초잎고추장 장아찌>
재료 : 산초잎200g, 고추장 200g
초피잎을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뺀 후에 같은 양의 고추장을 넣어서 잘 섞어 두었다가 한달정도 뒤에 드시면 됩니다.
매실고추장을 담근 경우에는 고추장만 버무리면 됩니다.
일반 고추장인 경우에는 고추장에 매실, 설탕이나 물엿 등을 첨가하여 초피잎과 같이 버무려 두었다가
바로 드셔도 좋고 한달정도 뒤에 드시면 됩니다.
산초잎 장아찌 / 손숙희
한참이나 마음이 울적했다. 아침마다 종종걸음을 치며 출근하던 생활의 긴장감이 무너진 탓인지
처진 기분이 꽤 오래 가고 있었다.
저녁 무렵에 친구네가 이사해서 살고 있는 농가주택으로 나섰다.
봄이 너무 깊어서 재래시장에서도 자취를 감춘 산초나무의 새순이 그들의 텃밭 가장자리에 우후죽순으로
올라와 있다기에 가창의 상원리로 따라나섰다.
이사하고 일 년, 친구 내외가 그동안 가꾸어 놓은 텃밭은 풍성했다.
달래, 아욱, 시금치, 상추, 쑥갓 등 채소들을 맘껏 가꾸면서 여유로운 풍경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복숭아, 감, 사과, 매실 등 유실수는 전 주인이 가꾸던 것이고, 진달래와 철쭉 같은 꽃나무는 화원에서
구입했다고 한다.
머귀와 가죽, 산초나무의 잎들이 저마다의 향기를 날리며 밭의 가장자리를 경계 짓고 있었다.
밀짚모자를 쓰고 밭을 돌보는 주인의 모습은 농부가 따로 없었다.
퇴임 교수가 꿈꾸던 노후의 출발이었다.
손질하지 않은 주택은 반세기를 농사만 짓고 살아온 촌부의 흙때가 묻어 있었다.
좁은 마루, 서너 명이 들어가면 꽉 차버릴 방이며, 나직한 천장은 6.25 후에 짓고 손대지 않은
시골집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토벽과 나무 냄새를 맡으니 어릴 적 고향집 생각이 났다. 가마솥과 아궁이 그리고 연기 피어나는
굴뚝만 있으면 좋으련만, 옛날 것으로 바꾸어 놓고 싶은 욕심이 하나 둘 더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집의 불편함은 아랑곳없이 너른 텃밭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친구 내외의 모습이
이 시대의 사람 같지가 않았다.
우리는 텃밭 둘레에 무수히 올라와 있는 산초나무의 잎을 땄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그늘 드리워지는 것도 모른 채 한참을 땄더니 한 소쿠리도 넘었다.
꼭꼭 눌러 가방에 챙겨 넣고, 널브러진 가지를 잘라 신문지에 둘둘 말았다.
그리고 큰 화분에 심을 세 그루는 뿌리째 뽑아 차에 얹었다. 생명력이 강해서 아파트에서도 살아날 거라 믿고.
그날 저녁, 따 온 산초잎으로 고추장 장아찌를 담그기 위해 손질하였다.
가시 때문에 손에서 피가 났고 상처가 따끔거렸으나, 기왕에 시작한 일이라 늦은 밤. 눈꺼풀이 내려앉는
피로를 무릅쓰고 그들을 씻어 소금물에 절여 놓고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여간 놀라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많던 산초잎들이 납작하게 엎드린 채 누가 덜어간 듯 푹 줄어 있었다.
놀란 나머지 얼른 행구고, 소쿠리에 건져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매실액과 진간장 약간, 황설탕,
찧은 마늘을 고추장에 넣어 버무렸다. 장맛에 침이 돌아 한 잎을 입에 넣었더니
독한 맛에 입 안이 아프도록 아렸다. 조금 있으니 식도와 뱃속이 얼얼해지고 갈수록 불기운이 더해갔다.
물, 우유, 야쿠르트를 차례차례 꺼내 마시고 진정되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산초잎은 몸속의 세균과 독소를 살균해 주는 식물로 알려져 지금은 미국에서도 환자의 치료를 위해
이 잎의 성분을 약물에 이용한다고 한다. 강력한 살균작용으로 인해 온몸이 불기운이었다면
그리 나쁘진 않으리라 믿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먹을거리로 쓰이는 경우 잎을 말려서 만든 가루는 추어탕에 곁들이고,
영남 해변 마을에는 김장을 할 때에 양념재료로 사용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초 향을 즐기는 식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지역의 환경에 따라 자생하는 독특한 식물들이 먹을거리가 될 때
이방인에게는 맛에 적응하는 데 세월이 필요하리라.
이렇게 양념 버무린 장아찌를 시원한 곳에서 일주일 두었다가 김치냉장고에 넣어
한 달을 보관하여 숙성시켰다.
궁금하여 꺼냈을 때 여간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독하고 매운 맛은 이디로 갔는지,
입맛을 돋우는 산초잎 독특한 향과 적당하게 간이 밴 산초잎들이 고추장에 삭혀져
윤기를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따끈한 밥공기에 한두 잎을 얹었더니
어느 새 공기밥이 다 없어지고 말았다.
다른 반찬에는 손이 가지 않을 정도로 그 알싸한 맛의 매력에 빠졌다.
매실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는 데다 고추장의 매콤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어우러져 밥맛을 감친다.
봄 산자락에 지천으로 돋아나는 산초나무의 잎을 따서 숙성시키는 조리법을 발견한
조상들의 지혜가 참으로 놀랍다.
우리는 이 멋을 두 가족이 공유하자고 나누며 환호했다.
지금도 베란다에는 산초나무 세 그루가 큰 화분에 한데 어울려 싱그럽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이라 물만 주어도 초록빛 그대로이다.
잎을 손으로 만질 때에만 알싸하고 매운 그 특유의 향이 번질 뿐이다.
노란 꽃이 피어나면 내년 봄 어딘가에 또 새순이 땅 위로 돋아나리라.
그 강인한 생명력을 뽐내면서.
자연은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큰 선문이며, 누리는 자에게는 축복임을 되뇌어 본다.
반가운 사람이 오면 산초잎 장아찌를 꺼내 식탁에 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