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오디세우스, 최규창 시인의 빛으로의 귀향 / 주경림

영산강 오디세우스, 최규창 시인의 빛으로의 귀향주경림  # 들어가며 ‘영산강 시인’ 최규창의 시집 『아이야 영산강 가자』(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시선사 2019, 10쇄 발행,2020)를 펼치니 문득, 몇 년 전 나주 답사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근초고왕 (재위 346~375년)때 백제로 편입된 마한 사람들이 함께 잠들고 있는 복암리 고분전시관을 가는 길이었다. 먼 길에 깜빡 졸았다가 눈을 뜨니 차창 밖에는 청보리밭 가운데로 폭 넓은 영산강이 굽이쳐 흐르는 풍경이 펼쳐졌다. 청보리 이삭은 마파람에 남실거리고 강물은 유장했다. 나주평야를 가로지르는 당당한 흐름이 놀라워 필자는 강을 처음 본 사람처럼 “아, 영산강!” 하고 소리 질렀다. 그날, 영산강 수면 위에 반짝이는 윤슬과 보리 이삭 한 가닥씩 펼쳐지는 빛부심이 하루 종일 어룽거려 복암리 고분 답사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 그 흐름의 중심에 위치한 나주는 바로 최규창 시인의 고향이다.최규창 시인은 1982년 『현대문학』에 시 추천 완료로 등단한 이후 40년 가깝게 2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흐르는 자연과 인간의 운명공동체인 영산강을 시적 소재로 삼고 노래했다. 삼국시대부터 5·18광주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침략 받은 상처와 불화를 영산강물로 씻김굿을 베풀어 맺힌 한을 풀고 치유와 회복으로 화해를 도모하는 긴 여정이다. 최규창 시인의 시의 미덕은 격정의 시간과 시정詩情을 갈무리하여 단문의 싯귀로 음률적인 효과까지 거두었다는 점에 있다. 또한 일상의 생활 속에서 발견한 하나님의 섭리인 체험론적인 기독교의 신앙을 문학의 공간에 수용하는 작품세계를 보여주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평한 오세영 교수의 글을 인용해본다.“최규창의 시는 자연과 서정과 신의 문제가 제시되어 있다. 여기서 자연이란 소재에 관련되며, 서정이란 형상화의 방법에 관련되며, 신이란 그의 내면세계에 관련된다. 최규창은 자연을 소재로 택하여 쓴 서정시로서 어떤 종교적 세계를 탐구하는 시인이라 말할 수 있다.”(『월간문학』, 1987, 2)융숭 깊은 역사적인 안목과 독실한 믿음으로 삶의 곡진함이 묻어나는 그의 시세계에 매혹되어 코로나블루를 떨쳐내며 연말을 그의 언어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다. 시집으로 『어둠 이후』, 『행방불명』, 『영산강 비가』, 『강물』, 『환상변주곡』, 시선집 『아이야 영산강 가자』, 시론집 『한국기독교시인론』, 『사랑의 넓이와 깊이』, 『사랑의 시학』 등이 있다.최규창 시인은 그동안 작품의 수월성을 인정받아 노산문학상, 한국기독교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문학부문), 시선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기독교문인협회 명예이사장, 월간 『창조문예』 주간으로 활발한 문학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기독교신문 편집국장 겸 상무이사이다. 시인의 대표시와 신작시를 읽기에 앞서 2019년 시선작품상 시부문 수상자 작품집인 『백두산의 눈물』부터 읽어 시인의 최근의 시세계의 동향을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 『백두산의 눈물』, 우리 민족의 정신 찾기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이후 40여 년 동안 시작詩作보다는 직장과 가정에 전념한 세월이었다.”(「시인의 말」)는 시인의 고백에 숙연해졌다. 어떤 시보다도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이어 모두의 시로 승화, 모두의 곁에서 숨쉬는 시가 되도록 고뇌하며 지금까지의 시작詩作 형태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했다며 새로운 시의 항해를 위해 돛을 올렸다. 천혜의 뱃길, 영산강에 부활한 황포돛배가 떠올랐다. 먼 바다 건너 백두산, 두만강까지 항해하는 황포돛배에 탑승해 보았다. “이 땅에 집을 지은 이후부터 어쩌자고 너희들의 싸움은/끝이 없는가 이제는 남쪽과 북쪽이 싸우고 남쪽과 동쪽과/서쪽이 싸우느냐----/저 하늘의 끝에 반짝이는 크나큰 별을 보라 모두/가 별을 캐러 달려가고 있으니 손에 손을 잡고 달려 가거라/갈 길이 멀고멀어 핏발선 손과 발로 싸울 겨를도 없지 않/느냐”- 「백두산의 눈물」 부분 발췌 시인은 영매가 되어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의 신탁神託을 전하고 있다. 진심이 담긴 눈물 어린 간절한 호소이며 기도문이다. 정공량 시인은 작품 해설에서 “우리 인간에게 갖은 고난과 역경을 파헤쳐오는 과정에서 눈물은 우리에게 슬픔이기도 하지만, 슬픔을 해체하고 슬픔을 잊게 하는 존재의 한 환원의 상징이다. 눈물은 눈물 그 자체로 그치지 않고 새로운 태동의 빛줄기로 탄생의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이다.”(「사랑의 눈물, 눈물의 진실」)라며 희망을 보아낸다. 시인은 고구려와 발해의 옛 영토인 백두산, 비암산, 연변으로 시야를 넓혀 외세의 침략에 저항했던 조상들의 발자취를 더듬는다. 「비암산琵岩山에 오르면」 “황금 들녘에 출렁이는 영산강도 보인다”며 한라에서 백두, 두만강의 지류인 해란강海蘭江까지 시적 소재의 외연을 확대한다. “영산강에서 보았던 일출을/해란강에서 맞는다/영산강을 붉게 물들인 일몰도/해란강에서 맞는다/영산강 갈대밭에 숨었던 얼굴은/해란강 갈대밭에서 슬며시 내민다”- 「연변延邊에 와서」 후반부 그의 시에는 모든 풍경의 중심에 영산강이 있어 아무리 멀어져도 심정적으로 영산강으로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뫼비우스띠의 구조를 이룬다. 시로 분단의 현실을 바꾸거나 만주 땅을 회복 할 수는 없어도 우리 모두의 염원을 대변함으로써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세상의 파도와 바람에 두들겨 맞아” 상처투성이 몸을 빛의 문을 열고 치료를 받는다는 「가출일기家出日記 1」은 일종의 신앙시로 신작시 「빛」 1~5에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구체성을 드러낸다. 최규창 시인의 신앙시는 성聖의 세계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속俗의세계 속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믿기에 속俗을 통해 성聖으로 나아가고자 하고, 또 성聖을 통해 속을 살아가고자 하는 성속일치聖俗一致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성속聖俗 일치一致와 부활의 정신精神-최규창 시인론」-한성우)이 밖에도 『백두산의 눈물』에는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대에게 가는 길」, 「동행」과 종교적인 행사, 인물, 출판, 기념식에 관련된 찬양시가 다수 수록되어 있어 시인의 애절한 사랑과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의 면모를 엿 볼 수 있다. 내 영혼의 하늘에 그대는초롱초롱한 별로 뜨나니햇빛 쨍쨍한 대낮이나달빛 하나 없는 컴컴한 밤에도잠든 내 영혼을 깨우나니세상의 잠 속에서 깨우나니하늘나라 강마을 가는 길가로등 없는 골목길까지훤히 훤히 비추고 있네- 「동행」 전문  #『어둠 이후』 어머니와 영산강 최규창 시인의 산문, 체험적 시론을 바탕으로 등단 시기의 작품세계부터 시를 통한 구원의 길에 이르기 까지를 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어둠’에서 ‘빛’의 길을 향한 여정은 문득, 고대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의 시의 여정, 역시 돛대에 자신의 몸을 묶고 죽음에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 생명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오디세우스의 치열한 귀향과 닮아있다.시인의 20대인 70년대의 나라 사정은 반공위주, 민주화를 위한 몸부림으로 사회적 갈등이 심했고 개인적으로는 가난에 시달리던 대학시절이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책을 사서 읽으며 문학공부에 몰두했던 때라고 회상한다.“고웁던 얼굴들이 구겨져 나온다/세월은 성내어 모여들다가 어시렁거린다/누군가 그 안에서 고함을 지른다”로 첫 연을 시작하는 그의 대표작인 「강물」은 ‘어둠’으로 점철된 1970년대 중반에 쓰여졌다. 박이도 시인은 「강물」에서 비극적인 고통의 모성성을 읽어내고 흘러가는 강물은 시인의 개인사적인 질곡의 경험을 대상화시킨 비유적인 상징이라 평했다. “실이 안 보이는 어린 시절의 까마득한 연鳶이 그러했듯이 작자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 박고 있는 ‘웃음이듯 울음이듯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정한情恨의 강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박이도)필자는 종결부, “그 속에서 모래알들이 새루룩 잠이 든다”, “꽃잎을 자늑자늑 씹는 꿈결의 숨소리”에서 질곡의 경험들이 강물의 여과를 거쳐 순하게 정화되어 평화로워지는 정경을 엿볼 수 있었다. 1979년 이 작품으로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았으나 황금찬, 원형갑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현대문학』 신인추천에 응모하여 1982년 1월호에 「새벽의 언덕길」, 「가을의 노래」, 「해당화의 환상」 등으로 추천완료 되었다. 도심의 건물에 몸담고 일하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도 늘 고향의 영산강 주위를 맴돌고 있는 시인의 심적 상태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가을의 노래」를 소개한다. “고추 익는 바람”과 “진홍의 노을”이 겹쳐지면서 고향과 서울이 하나가 되는 절묘한 구성으로 문학적 성과를 거둔 작품이다. “온종일 심부“름 가고 있는 나”라는 표현에서 향수鄕愁가 물큰 느껴진다. 가을인가보다한 마리 파리가이십二十 몇층의 창가에서조을다가고향의 고추 익는 바람에얼굴을 부빈다 이맘 때면한마리 붕어도영산강榮山江의 수심水深 깊이타고 올라가물 위에 주둥이를내밀었지 않은가 하늘은절규絶叫가 끝난빈 항아리 가을인가보다집에 돌아와서야온종일심부름 가고 있는나를 알았다 고층건물高層建物의 창가에스치고 간고추 익는 바람이진홍眞紅의 노을을부르고 있다- 「가을의 노래」 전문 등단 후 5년 만에 출간한 첫 시집 『어둠이후以後』(1986, 영언문화사) 「시인의 말」에 시인의 시세계가 잘 드러나 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시작詩作”으로 구원의 길에 이르고 있음을 깨달았고 “시작詩作은 내 삶의 전부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내일의 삶을 향한 행위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라고 밝힌다. “1986년 최규창 시인의 첫 시집 「어둠 이후以後」가 발간되자 우리 시단에 큰 파장이 일었다”는 허형만 시인의 해설 그대로, 평자들의 상찬常餐이 쏟아졌다. 문단에 데뷔한지 5년밖에 안되는 기독교시인의 시적 언어의 원숙경과 기독교시의 상주성常住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시(원형갑), 자연을 택하여 쓴 서정시로 종교적 세계를 탐구하는 시인(오세영), 고향의식으로서의 어머니의 영산강에 대한 집착과 기독교 신앙인으로서의 시적 발상법과 시인으로서의 에스프리가 일치함으로써 시적 성과를 얻고 있는 뿌리와 신앙에의 자화상(박이도) ----등이다.표제시 「어둠이후以後」의 첫 연은 “처마밑에/한포기의 이름 모를/풀잎파리가/소나기를 맞고 있다”로 시작한다. 마지막 연에 이르면, 처마 밑에는 작은 도랑이 생기고 물방울을 튕기며 흘러내려 “고함을 지르듯/쓰러지며/그래도/푸른 목숨이다”로 끝맺는다.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의지와 군사정권의 총칼로 무너뜨려도 다시 일어선다는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생각하며 쓴 시라고 한다. 팔레스타인 민족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1941~2008)는 “작가는 어둠에서 빛을 캐내는 존재”로 “아무리 삶이 칠흑같이 어둡더라도 그 안에서 빛을 찾고 희망을 만드는 게 시인의 사명”이라고 했다. ‘어둠’ 이후에는 ‘빛’의 세계가 도래하리라는 최규창 시인의 믿음의 반영이다.대표시 「일몰日沒」과 「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가 첫 시집에 실려 있다. 일몰日沒의 영산강榮山江은산자락에 물들면서 흐느적거리더라산천山川은 피를 토하고어느덧 세월은 땅거미섣달 그믐밤에 문풍지를 울리던 기침소리가눈두렁에서 들리지 않던가살빛을 머금고물곬에 몰려드는 여울소리기슭에서는 나목裸木처럼신음하는 백제百濟역사는 또 하나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쓰고 있다- 「일몰日沒」 전문 장엄한 해넘이는 비단 산천의 풍경 뿐만 아니라 “세월은 땅거미”라고 묘사된 역사적 풍경이기도 하다. 박이도 시인은 시집해설에서 “일몰日沒의 영산강榮山江”과 “세월은 땅거미”의 세월에 대한 동음반복적同音反復的인 침울한 이미지의 상승화는 바로 넓은 공간의식을 통한 집단의식의 표출이라고 평했다. 오랜 침략으로부터 동학군에 이르기까지의 수난의 역사 현장을 “신음하는 백제”로 대변하고 있다. “역사는 또 하나/삼국유사三國遺事를 쓰고 있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기에 암울함을 씻고 새롭게 전개되어야하는 현실과 미래의 희망이라고 읽고 싶다. 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잎새에 맺혔다 떨어지는빗방울처럼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거기에 가면너의 눈꼽낀 얼굴을 씻으리라어디 눈물 고일 겨를이나 있는가강가에 무지개 피고사금파리 놀던 눈망울이보고 싶지 않는가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 「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 전문 최규창 시인의 작품 중에 대표시 한 수를 고르라면 선뜻 「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를 꼽겠다. 한국대표 서정시 100인선 중 9번째 발간된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전체가 11행의 짧은 시에 “아이야 영산강榮山江 가자”가 전주나 후렴처럼 3번이나 반복된다. “내 시가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시가 되기를 기원할 뿐이라고”한 시인의 바람대로 누구나 절로 흥얼거려지는 가락이다. 힘든 세상살이로 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산강은 치유의 공간이다. 영산강은 최규창 시인에게는 지리적 장소이지만 일반 독자에게는 각자의 마음 안에 존재하는 안식처일 수 있다. 전반부에서 신화적 공간인 영산강으로 가는 일이 “잎새에 맺혔다 떨어지는/ 빗방울처럼”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독자를 영산강으로 이끌고 있다. 거기는 “눈꼽낀 얼굴”을 씻을 수 있는 정화의 장소이며 이제는 눈물 고일 겨를 없이 “강가에 무지개” 피는 이상향이다. 그곳은 다름 아닌 “사금파리 놀던 눈망울이”보이는 유년의 고향이다. 시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성우 문학평론가의 글을 인용한다.“시인은 신화를 상실한 도시문명 속에서 실존적인 삶을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의 신화적 공간으로 상승된 영산강에서만 시인의 온갖 문명의 때와 얼룩진 죄를 씻어내고 마침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시선』 2014년 가을호)고향에 대한 유일한 시적 대상이며 고향의 모든 것으로 집약되는 ‘영산강’에는 (『영산강 비가』「시인의 말」) 늘 어머니에 대한 추억이 함께 자리한다. 2/영산강 상류에 가서/우리 엄니 빨랫터에/앉아 보아라/물 속에는/송사리떼 몰려가고/그 사이사이/미소 띤 우리 엄니가/세상살이 그을은/귀신같은 네 얼굴을/ 맞이하더라 3/영산강 상류에 가 보아라/천년에 한 번//백마 타고 오시는 님/님의 모습가 보아라/천년에 한 번/백마 타고 오시는 님 5/아베의 말씀은/두만강에 서성이고/엄니의 말씀은/영산강에 떠돌고/노기 띤 아베의 말씀은/문 밖에 서성이고/오늘도 슬프게/영산강은 흐르더라- 「영산강」 2,3,5 부분 발췌 「영산강」에는 엄니, 귀신같은 네 얼굴, 천 년에 한 번 백마 타고 오시는 님, 아베 등이 시적 소재로 등장하고 두만강까지 지리적 영역이 확대된다. 개인사적으로 영산강은 “세상살이 그을은/귀신같은 네 얼굴”을 “미소 띤 우리 엄니”가 따듯하게 맞아주어 도시적 삶에 피폐해진 육신을 재충전 할 수 있는 정신적인 안식처로서 고향이다. 역사적으로는 고대부터, 그 이전 신화 속에서부터 영웅의 출몰과 민초들의 삶의 애환을 그대로 껴안고 흐르는 강이다. 지금도 세상을 바꾸어 줄 “천년에 한 번/백마 타고 오시는 님”에 대한 기다림은 유효한 희망 사항이다. 「영산강」 5에서는 아베의 말씀과 두만강, 엄니의 말씀과 영산강이 짝 지워져 있지만 “서성이고”, “떠돌고”있는 불화의 모습이다. 회복할 수 없는 만주 땅과 분단 현실의 아픔을 껴안고 영산강은 흐른다.  #기독교 신앙의 시화詩化  “성서의 생경한 언어를 배제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육화肉化된 정신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자세였음을 고백한다.”기독교적인 내용의 빛깔이 짙은 시만을 모은 시집 『행방불명行方不明』(종로서적출판사 1989)의 머리말이다. 최규창 시인의 기독교 신앙의 시화의 성격을 잘 대변해준다. “그가 신앙적으로 갈구하는 생명의 말씀을 주변의 일상사나 자연물의 역동적인 힘 속에서 발견하는 지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신규호, 「인간구원의 시적 가능성」『韓國詩』 1990.1). 최규창 시인이 실생활 언제 어디서나 전해듣는 생명의 말씀은 「오늘의 창세기創世記」 연작시 4편, 「당신의 순간」, 「송사리」, 「나팔꽃」, 「바람」 등의 시로 태어났다. 꼬리치며 솟구치는 송사리가 아니었다면우리 아기 눈망울처럼맑디맑게 꾸고 싶은 꿈이 아니었다면어찌 겹겹이 쌓인 시간의 쓰레기 속에서오늘 하루를 견뎌날 것인가태초의 말씀같은 송사리떼가 아니었다면- 「송사리」-오늘의 창세기創世記 2 일부 거리의 인파 속에 밀려 가면서 나는하나님께 빌었다그때 어디선가 싱그러운 바람이얼굴에 가득마음에 가득 불어왔다태초太初의 말씀이었다- 「바람」-오늘의 창세기創世記4 일부 최규창 시인은 지상에서 늘 만나는 하느님 말씀과 구체적인 신앙체험에 대해 감사의 찬양과 기도를 올린다. 이렇게 태어난 신앙시는 종교 여부와 상관없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그의 구원의 절대 존재가 주主라 해도 그것을 시로 찾아가는 길을 그의 주변에 있는 자연물과 일상사로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기독교시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시인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유한근, 시집해설) 게딱지같은 집들이 헐리고 길목마다 빌딩이 들어서면서 저녁상에는 된장국이 오르지 않는다//사무실에는 여인의 핸드백에서 피어나는 화장품의 향기가 자욱하고//그대의 입술에서도 GNP는 TV아나운서의 뉴스보도처럼/흘러 나온다//그러나 사무실에서 K가 ‘최규창 씨’라고 불렀을 때 내가 아찔한 것은 어인 일일까//돌아오는 주일 아침에는 창가에 핀 동백을 바라보며 물어보리라 K가 부른 ‘최규창씨’와 가뭇하게 사라지는 ‘최규창’의 그림자를 물어 보리라- 「행방불명行方不明」 전문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도시화의 변화 속에 “여인의 핸드백에서 피어나는 화장품의 향기”는 순수를 가리는 가식적인 삶을 은유한다. “GNP는 TV아나운서의 뉴스보도처럼”에서는 숫자와 통계가 실상보다 우선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시적 화자는 정체성을 잃은 자신의 존재를 “‘최규창’의 그림자”라고 부른다. 유한근 문학평론가는 시집해설에서 자신의 존재, 참 나를 찾기 위해 동백에게 묻겠다는 끝 연에 주목한다.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진정한 자신과 만나기 위해 다소 엉뚱하게 “돌아오는 주일 아침에는 창가에 핀 동백을 바라보며 물어”본다니 달관의 지혜와 유머에 절로 웃음이 나오는 대목이기도 하다.다음에는 세상의 참화가 “우리집 아침식탁”까지 영향을 미치어 가정 파괴에 이른다는 상상 속의 체험인 「환상변주곡幻想變奏曲」을 읽어본다. 새벽 잠결에는세계전쟁학회世界戰爭學會에서 발표한 승리의 비결이달덩이 같은 부용芙蓉꽃이 되어우리집 아침식탁을 폭파시켰다꽃잎파리 하나는스산한 초겨울 낙엽처럼집안을 떠다니다가부엌으로 도망간 아내를 덮치고화장실에 숨은 나의 목을 졸랐다어찌 반공일半空日은 무사히 넘겼다고 할 것인가설령 신神이 주신 주일主日이라도월요일은 다시 오고무수한 요일曜日들은 원죄原罪처럼 노려본다- 「환상변주곡幻想變奏曲」 전문 변주곡變奏曲은 음악 용어로 한 번 나타난 소재가 반복할 때 어떤 변화를 가하여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시에서는 승리의 비결이 부용꽃으로 폭발력을 발휘하고 꽃잎파리 하나가 아내를 덮치고 다시 시적 화자의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의 변주로 가장 안락해야할 가정조차 안전한 곳이 못됨을 보여주고 있다. 달덩이 부용꽃이 폭력의 원흉이 되다니 꿈에서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환상이며, 그러기에 더욱 비극적이다. 허형만 시인의 평을 인용해본다.“시인의 생각은 한 마디로 이 세상은 실낙원失樂園이라는 의미다. “반공일半空日”도 무사하지 못하고 더욱이 “신神이 주신 주일主日”도 불안한 이 지상에서의 나날의 삶, 즉 “무수한 요일曜日들은” 곧 인간이 저질러놓은 “원죄原罪”에 다름 아니라는 두려움을 한사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그의 시에서 주제가 되는 것은 끊임없는 복락원復樂園에의 꿈과 갈망이 고향으로서 영산강과 모성회복에 대한 지향으로 나타난다.”시인은 「오늘도 세수를 하면서」에서 “주여 오늘도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늘 속고 넘어갔지만 오늘은 새로 시작하겠습니다 주는 우리에게 새로 보는 눈을 주셨으니까요 똥거름에 묻힌 보리싹이 새파랗게 솟아나는 것처럼 새로 보는 눈을 주셨습니다”라며 사랑과 축복에 감사하며 결의를 다진다. 시작詩作이 구원의 길이며 시를 통해 존재성을 확인하고 ‘살고 있다’는 삶의 가치성을 깨닫는다.  #어둠에서 빛의 길을 향한 여정旅程 신작시 「빛·1」 외 4편은 첫 시집 『어둠 이후以後』에 시인이 줄곧 추구해온 ‘빛’의 세계에 대한 신앙적 고백의 문학적 성과물이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종교적 신앙심이라는 주춧돌 위에 언어의 기둥과 대들보로 ‘시’의 집을 완성한 것이다. 필자의 입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았겠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먼저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말씀을 옮겨본다.“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세기 1장 3절~5절)”이제, 시인의 말도 들어보자.“지금까지의 시작詩作은 ‘어둠’과 ‘빛’을 추구해 왔다. ‘어둠’에서 ‘빛’의 길을 향한 여정旅程이었다. 어둠은 삶의 현장이고, 빛은 신앙의 세계이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신(하나님)의 친화와 교감으로 형성시키고 전개했다. 시의 주제가 되는 것은, 빛의 세계를 향한 꿈이며 갈망이었다.”(시인의 산문 「‘어둠’과 ‘빛’ 그리고 ‘어머니’와 ‘영산강’」)신작시 「빛 •1」 외 4편은 하나님, 예수님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신앙시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 시인이 빠지기 쉬운 관념의 함정이 아니라 이미지 형상화의 언어예술”(한강희 문학평론가)로 독자와 교감이 자연스럽게 이루워진다. 빛은 쉴새 없이 일을 한다/이 세상에서/가장 크막한 손과 발은/낮과 밤을 가르지 않고/지구의 체온이 식지 않도록/날마다 쉴새 없이 일을 한다- 「빛·1」 부분 막다른 길의 끄트머리에 서서/오가지도 못할 때에/몇 번이고 창문을 꼭꼭 잠그고/냉정하게 거부한 빛이 다가와/크막한 손으로/어둠속의 길 위에서 건져 올린다- 「빛·2」 부분 빛은/크막한 손으로/365일 동안 쉴틈없이/날마다 꽃밭을 가꾸듯이온 우주를 가꾸고/나의 생명/너의 생명을 가꾼다- 「빛·5」 부분 위의 시에서 빛은 각각 크막한 손, 구원의 손, 생명의 손으로 구체적인 형상화가 이루워진다. 동백꽃을 피우고 낮과 밤, 물과 불을 주며 우주를 깨우고 우주를 잠재우는 (「빛의 손」) 섭리攝理라고 읽어본다. 「빛·5」에서 어둠에서 태어난 빛은 모든 생명체의 씨앗이다. 일상의 길 위에서/만난 빛은/말이 아니라 말씀이고/청청한 글자이다어둠의 길 위를 비추는/지팡이의 말씀이고/회초리의 말씀이다- 「빛·3」 부분 오늘은 세상의 길 위에서/넘어지고 지쳐 돌아와/빛 앞에 서면/이유도 묻지 않고아버지의 사랑으로/어머니의 사랑으로/씻기고 안아주는 사랑이다- 「빛·4」 부분 「빛·3」 과 「빛·4」에서 빛은 세상의 길 위에서 넘어지고 지친 우리를 씻기고 안아주는 치유와 사랑의 말씀이다. 빛을 추구하는 최규창의 시중에서 필자가 가장 사랑하는 시 「신앙」을 소개한다. 누구나가문門을 두드리면활짝 열리는 곳에는길이 열리고또 다른 세상에서꽃처럼 태어나는빛의 길이다- 「신앙」 “꽃처럼 태어나는/빛의 길”, 그 아름다운 길을 시와 함께 가고 있는 최규창은 축복받은 행복한 시인임에 틀림없다. 마무리하며 최규창 시인의 시력 40년을 『백두산의 눈물』 우리 민족의 정신 찾기, 『어둠 이후』 어머니와 영산강, 기독교 신앙의 시화, 어둠에서 빛의 길을 향한 여정旅程, 등으로 나누어 대표시, 신작시를 아우르며 살펴보았다. 시인은 세상살이에서 겪는 불화와 상처를 시를 통해 치유하고 화해하며 회복하는 시작詩作 생활이 곧 구원의 길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소통과 사랑과 자유를 추구하는 도정이라 할 수 있다.시인은 가장 최근에 발간된 2019년 시선작품상 시부문 수상자 작품집, 『백두산의 눈물』에서 “지금까지의 시작詩作형태에서 탈출하려고 노력했다. 모두의 시로 승화시키려는 시작詩作이었다. 모두의 곁에서 숨쉬는 시가 되도록 고뇌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야기한다.(「시인의 말」)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인 시인의 행보에 기대가 커진다.시인의 시세계를 자연(영산강)과 서정(어머니)과 신(하나님)의 문제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 세가지 한 자리에 조화를 이루고 있는 시 「이른 봄에는·2-사랑의 노래·13」을 읽어보며 이른 봄날 한강으로 나가보아야겠다. 이른 봄에는한강이라도 나가야 하네봄바람이울 엄니 젖향기를 품고파아기의 눈망울이 보고파날아 오신다네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유일한 속삭임이네자연의 속삭임이네- 「이른 봄에는·2-사랑의 노래·13」 부분 최규창 시인의 시 세계를 높이 평가한 이탄 시인과 정공량 시인의 글로 마무리한다.“‘영산강’의 시인, 최규창! 그를 그렇게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영산강에서 시작하였고 영산강 냄새가 배어나는 시들, 그의 일반적인 시가 영산강 냄새가 나는 것은 공간형성 때부터 지금까지 영산강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이탄)“최규창 시인은 기독교인으로 종교적 실천의 사랑을 시에 담고 있다.” (정공량)한국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최규창의 시력 40년을 돌아보기에는 필자의 식견이 턱없이 얕았음을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한다. 부디 혜량惠諒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