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
2009년 오늘, 어떤 단체의 초청을 받아 봉하마을 집을 설계한 건축가 고 정기용 선생과 함께 강연을 했습니다. 아침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들은 뒤라 강연장에서도 늘 우울한 표정을 지었던 그는 끝내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발을 벗었다 신었다 하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우리 가옥문화의 전통이라서 일부러 불편하고 소박하게 설계했는데, 그런 집을 아방궁이라고 매도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이예요.” 노무현은 ‘불편하고 소박한’ 노후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젊어서부터 그의 삶이 그랬기 때문일 겁니다.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은 뒤 인권변호사가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87년 8월 파업시위 도중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의 장례준비위원을 맡았다가 구속됐습니다. 당대 민중운동의 동지이자 옹호자 역할을 하다가 ‘전과자’가 된 거죠. ‘노무현 정신’이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 저는 사람들이 무슨 뜻으로 그 말을 쓰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노무현은 1988년 국회의원이 된 뒤 어렵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재벌 회장에게 호통을 쳤다가 일약 ‘청문회 스타’가 됐습니다. 저는 ‘노무현 정신’이란 ‘자기 일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표하려는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시대가 퇴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시위하다 죽은 노동자 장례위원을 맡았다가 감옥에 갈 정도는 아닙니다. 유권자들을 향해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국회의원보다, 우리 사회의 진짜 특권세력에 맞서 ‘노무현 정신’을 실천하는 국회의원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2024.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