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0명 가량의 선원들을 데리고 다니다 보면 이들의 복지를 신경쓰고 챙기는 것도 선장의 중요 업무이다.
술, 담배등 면세품도 싸게 구입해 사용하게 해 주고, 도서, 비디오 테입, 운동 기구도 잘 챙겨 주어야 한다.
다들 가족을 위해 돈 벌러 나왔기 때문에 항구에 입항해도 헛되이 낭비하려 하지 않고 열심히들 생활한다.
여러 항구에서 교회 선교 활동으로 찾아 오는데 선원 쉼터 같은 걸 운영하는데는 교통 등의 편의를 제공
받거나 공원등 휴식 장소에 갈 수 있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하는데, 그 방면에는 영연방 국가들이가장 잘
하고 있다.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과거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히여 영연방(Britsh Commonwealth)을 결성하여
상호 협력하고 있는데, 대항해 시대 상선으로 경영했던 탓으로 선원들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각별하고
영국 국교 성공회(England Church)에서 거의 모든 항구에 Seamen'e Club이라는 복지회관을 운영해서
당구 탁구등 놀이 시설에 간단한 다과도 제공하기도 해서 자주 이용토록 해 주기도 했다.
호주 멜버런 항에서는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 선원들과의 축구 시합을 주선해 주어 경기를 하기도 했다.
한국 교민이 가장 많이 모여사는 로스엔젤리스와 인근 롱비치 항에도 자주 기항하였는데 LA 영락교회와
연이 닿아 당시만 해도 엘에이에서 가장 부자교회이기도 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내가 선장으로 입항하면 배가 바뀌어도 영락교회 선교부에서 나와 주어 반겼고 시간이 되면 선원들을
버스에 태워 왕복 다섯 시간가량 걸리던 디즈니랜드 관광을 세차례나 다녀 오기도 했다. 물론 티켓이랑
식사등 모두 교회에서 제공해 주었고...
버스를 운전해 주던 김모씨는 사적으로 자택에도 나를 초대해 주었는데 수영장이 두개나 되는 대 저택에
예일대학을 나와 중동 갑부들의 부동산 컨설팅으로 부를 축적했다는데,
"미국에 살면서 돈은 달라면 주겠는데, 시간을 내 달라는게 참 힘든데 교회 사업이라 기꺼이 나섭니다."
거제 동향이라며 나와 개인적 친교를 가졌던 원모씨는 디즈니 관광 가이드를 맡아 주셨는데 이민 오기전
중앙 정보부 과장 출신이었다 하였고 언젠가는 나를 데리고 왕복 8시간 가량 걸리던 라스베가스에 가서
한판 땡기고 왔던게 추억에 남는다.
대신에 나는 주일을 만나게 되면은 최소한 당직자를 제외하고 전선원들과 보내준 버스로 영락교회 예배에
참석하였는데 예배를 마치고 나면 교회에서 마련해 준 중국 식당에 가서 요리를 대접해 주어 안그래도 무료한
선원들이 아주 좋아 했었다.
그때 들었던 목사님의 설교기 가끔 생각이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입장 곤란하게 할 그런 기도는 하지 맙시다, 두 팀이 경기를 하는데 서로 우리팀 이기게 해
달라고 한다면 입장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선수들 최선을 다하게 해 주십사 그런 기도를 하는게 맞습니다."
호주 시드니항에도 자주 갔었는데 안타까운 것은 당시 교민이 5천명 남짓이었는데 교회가 무려 26개가 되어
주민들간 분쟁이야 불화가 생기면 교회가 나서서 화합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되려 교회가 사사건건 분란을
부추기고 있다해서 아예 접촉을 하지 않았다.
많은 편의를 주셨던 영락교회 여러분들이 지금 안온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