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성애
유금란
사라진다는 말이 멀어진다는 말보다
더 슬픈 이유를 찾다가
창문 안쪽으로 자라나는 손톱을 본다
안과 밖이 다를수록 화려해지는 꽃은
얼지 않으면 필 수 없어
해가 들기 전까지만 끌어안기로 한다
날카로움은 꼬리가 쉽게 잘려 나가는 비밀
입맞춤 한 번에 내일이 한 개씩 사라지는 감각
흰 장막 긁어 안을 들추면
손톱이 지나간 입술은
끊임없이 녹아내리는 말의 흉터에 골몰한다
입안으로 서서히 스미는 따듯한 통증과
시든다는 말이 갖는 단정한 매무새에 대해
입김으로 녹여버린 마거리트 동공이
아직 다정하다면
입술에 난 상처는 그대로 두어도 좋겠다
볼록한 숨소리가 애초에
유리창의 것이 아니었다면
꽃잎이 물방울 되어 흘러내리기 전
나는 다시
성스러운 이야기를 지어야겠다
바람의 뒤꿈치가 봄을 밟기까지는
그냥 이대로 살얼음
----애지 여름호에서
유금란
2021년『시산맥』 등단. 동주해외신인상 수상. 산문집『시드니에 바람을 걸다』. 5인 작품집『바다 건너 당신』. 『문학과 시드니』 편집주간.
카페 게시글
애지의시인들
유금란의 성에, 성애
애지사랑
추천 0
조회 25
23.07.01 10:41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