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101장면 - 한국 최초 천일염전 인천 주안에 만든 1정보 천일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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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4.05.18. 12:26조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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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101장면
한국 최초 천일염전
인천 주안에 만든 1정보 천일염전
요약 1907년, 처음으로 염전이 생긴 곳은 인천 주안. 첫 생산의 양은 72톤.
농축된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 만드는 소금 제조법은 국내 소비량을 따라갈 수 없음.
수입 소금이 많아지고 재래염으로 천일염을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 후, 염전을 만듦.
인천 주안을 시작으로 평안남도 광량만·덕동·귀성 등지와 군자 등지에 염전면적을 늘림.
소금장수 이야기가 많은 곳이 우리 나라다. 사람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소금. 옛날 이야기에서도 빠져서는 안되는 것이 소금장수였다.
그러나 그 소금장수가 등에 지고 다녔던 소금은 염전에서 나오는 소금이 아니었다. 염전에서 소금이 나오면서부터 소금장수 이야기는 점점 더 옛날 이야기 속으로 멀어져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 염전이 생긴 곳은 인천 주안이었다. 때는 1907년.
자연증발식에 의해 소금을 얻을 수 있는 천일염전이었던 주안염전의 준공은 당시 제염업계에 일대 혁명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 또한 막대했다. 왜냐하면 생산비를 훨씬 줄이면서도 질 좋은 소금을 대량으로 거둬들일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 생산과 판매를 정부에서 관장했기 때문이다.
주안염전이 생기기 전까지 우리 나라의 소금은 민간의 업자들이 농축된 바닷물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만들었다. 이는 수백 년 동안 전래되어 내려오던 소금 제조법이었다.
농축된 바닷물이란 소금이 붙어 있는 가는 모래를 통과해 나온 바닷물을 말한다. 이 바닷물에는 모래에 있는 소금이 녹아 있기 때문에 보통 바닷물보다 염분 농도가 짙을 수밖에 없다. 이 물을 큰 가마솥에 넣고 장작을 때며 가열한다. 이를테면 수분을 증발시키면서 졸이는 것이다. 전통의 표현으로는 이를 '소금을 굽는다'고했다.
조선시대부터 해왔던 이 소금 제조법에 의해서 생산된 소금은 그러나 국내 소비량의 2/3밖에 충당할 수 없었다. 1/3은 주로 중국·일본 등지에서 수입된 소금으로 충당했다.
그런데 1900년대로 접어들면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국내 소비량의 대부분을 나라 안에서 생산한 소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을 때는 수급면에나 가격면에 있어서 큰 문제가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차츰 수입 소금이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현격하게 싼 가격으로 팔리기 시작했다. 국내 소금값이 높다는 사실을 알고 밀수 소금도 급증했다. 전매청에서 발간한 「한국 전매사」에 의하면 당시 소금 한 가마 값은 쌀 두 가마 값과 맞먹었다.
이는 수입 소금 중에 천일염의 비중이 높음을 의미했다. 수입 소금은 주로 중국 산동성의 염전에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한국은 아직 재래의 방법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는데, 서구 열강의 영향을 받은 중국에서는 대단위 천일염전을 통한 생산이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천일염과 재래염은 우선 생산비에서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비교가 될 수 없었다. 재래염은 100근을 만들기 위해 장작을 구하는 데만도 1원 30전이 필요했다. 그러나 천일염은 100근당 생산비가 20전에 불과했다.
생산비 한 가지만으로도 재래염은 도저히 천일염과 대항할 수가 없었다. 당시 전국의 제염업자는 3천 명 정도였다. 그들은 생업에 위협을 느끼면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천일염전을 만들어 소금 생산을 주관하려 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비록 막대한 투자와 시일이 필요한 일이지만 직접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적격지를 물색하다가 시험적인 곳으로 정해진 곳이 바로 인천시 주안이었다. 1907년 9월에 준공을 본 주안의 염전 면적은 1정보였다. 그리고 1년 후에 첫 생산을 했는데, 그 양은 72톤 정도로 좋은 성적이었다. 질 또한 중국산이나 일본산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이로써 최초의 염전은 성공적인 성과를 올렸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정부에서는 평안남도 광량만·덕동·귀성 등지와 인천 주안·군자 등지에 염전의 면적을 늘려갔다. 그와 함께 기존의 제염업자들은 차츰 폐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금을 굽는다는 말도 곧 옛말이 돼버리고 말았다. 재래염을 만들던 곳은 영호남 지역의 도서지방에 많았는데, 광복 후까지 끈질기게 버틴 몇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최초 천일염전 - 인천 주안에 만든 1정보 천일염전 (한국 최초 101장면, 1998. 9. 10., 김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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