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차나무
11119[한송주 괴나리봇짐] 월출산 백운동 다향산방
우리 토산차 독철신獨啜神으로 역질일랑 물렀거라
근자 차가(茶家)에 반가운 소식이 떴다. 목포대 조기정 교수가 중심된 차연구진에서 우리 전통차인 뇌원차(腦原茶)를 복원해 냈다고 한다. 뇌원차는 고려 때 우리 땅에서 개발돼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친 명차다.
전남 보성군 차산업연구소와 산학협력을 하는 목포대 차문화연구진은 그동안 430년 묵은 보성 득량 다전마을 차나무와 회천 일림산 주변의 자생차를 채취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번에 뇌원차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뇌원차는 네모 모양의 떡차로 일반 떡차와 다른 독특한 제조 공정을 거치는데 차맛은 처음은 구수하면서 부드럽고 끝은 깔끔하면서 향기롭다는 것이 특징이다.
보고회에서는 목포대 조기정 교수의 ‘보성뇌원차 복원 및 제다기술 표준화’와 한국자치경제연구원 유원희 원장의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 신청에 필요한 보전관리 및 등재 추진’ 논문이 발표됐다. 이와 함께 뇌원차 제품과 차 만드는 도구, 제다 과정을 담은 사진, 홍보영상물 등도 전시됐다.
보성 뇌원차는 <세종실록지리지>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등의 기록에 따르면 웅치 약산마을 일대의 가을평 차소(茶所: 차 공납 기관)에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되살아난 뇌원차는 앞으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게 되며 세계중요농업유산 등재도 추진된다.
차에 밝은 여연(如然)스님은 “뇌원차는 <고려사>에 처음 등장하는 걸로 보아 삼국시대부터 존재한 우리 토산차였던 것으로 보인다. 덩이진 각차였는데 세는 단위도 각(角)이었으며 팔관회 공덕제 등 국가행사에 헌공다례로 쓰였다. 조선 말엽까지 전승되다가 일제 때 맥이 끊겼는데 이번에 복원된 것은 차동네의 큰 경사라 하겠다. 뇌원차는 찻잎을 물에 넣고 오래 끓여도 맛이 쓰거나 떫지 않은 발효차다. 우리 토산 명차를 모두가 널리 애음했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자는 20여년 전에 ‘황칠박사’ 정순태씨의 해남 아침재 농장에서 황칠나무 사이에서 자라는 뇌원차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정박사는 뇌원차를 손수 덖어 지음들과 나눠 즐겼는데 그러고 보면 그는 뇌원차 복원의 숨은 선구였던 셈이다.
국내 최초 상표 ‘백운옥판차’ 대중화도 박차
또 하나의 낭보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차 상표(브랜드)인 ‘백운옥판차(白雲玉板茶)’가 복원돼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백운옥판차’는 일제 때 차부(茶父)라 불린 이한영 선생(1868~1956)이 우리나라 최초로 상품화해 시판한 차 이름이다.
월출산 기슭 백운동원림 일대의 옥토에 차밭을 일구고 일품 녹차를 생산해 일제의 서슬 아래서도 당당히 우리 말글로 된 상표를 붙이고 널리 시판에 나선 이한영 선생은 차운동으로 항일전선에 앞장선 민족의 스승이었다.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백운동 원림은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별서로 ‘다신계(茶信契)’로 상징되는 강진 차운동의 본산이었는데 이한영은 바로 이시헌의 후손.
다산과 선조의 얼을 이어 이한영 선생은 옛 터전에 토산 차밭을 일구고 범람하는 일산 차에 벗서서 우리 토산차의 보급에 매진했던 것이다.
이제 그의 현손인 이현정여사의 분발로 ‘신의의 차’ ‘민족의 차’가 망각의 세월을 딛고 자랑스레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강진의 차인들과 자치단체의 아낌없는 지원이 보태져 난망해 보이던 이 차운동이 꽃 피고 열매 맺었다.
백운옥판차는 ‘백운동 옥판봉에서 딴 찻잎으로 만든 차’라는 의미다. 백운동 원림에서 맞바라다 보이는 옥판봉은 다산이 월출산 제1경이라 찬탄한 비경. 월출산 기슭에는 질좋은 우리 차가 자생했는데 이한영선생의 개발 이후 지금까지 차밭이 넓게 조성됐다.
이현정여사는 선조의 공덕이 헛되지 않게 차 공부와 우리 차 복원에 힘써 왔다. 그는 봉직하던 교사직을 버리고 차공부에 전심할 각오로 목포대 국제차문화과에 늦깎이로 진학해 박사를 수료했다. 그리고 현재 동대학 전통문화산업화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이 먼저 등록해 사용하지 못했던 백운옥판차, 금릉월산차, 월산차의 상표권을 되찾아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기어히 뜻을 이루기도 했다.
그 공덕이 헛되지 않아 유서 깊은 백운동에 오늘 풍성한 찻자리가 베풀어져 있다. 10년 전에 ‘이한영 전통차문화원’이란 이름을 내걸고 이한영 생가, 다향산방 등이 들어섰다. 국가명승지 115호인 백운동원림, 무위사, 월남사지 등의 유적지와 함께 강진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빛나고 있다.
모전석탑으로 유명한 월남사지, 수월관음 벽화가 자비로운 무위사를 들러 다산의 차맥이 생생히 느껴지는 이한영생가를 둘러본 다음, 거나한 다향산방에 들어서면 그윽한 차내음이 전신을 감싼다.
이현정 원장은 손수 차를 내면서 저간의 내력을 털어놓았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님으로부터 차 만드는 법, 차 예절 등을 조금씩 배우며 집안 대대로 내려온 차전통을 자연스레 익혔어요. 그러다가 뒤늦게 가문의 차맥을 살려야겠다는 자각이 일어 십수년간 일했던 교사직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차공부를 시작했지요. 힘든 과정이었지만 어머님과 가족들의 이해와 차인들의 격려, 자치단체의 지원 등에 힘입어 나름대로 길을 닦아나갔어요.”
2년전에는 강진차인연합회 주최로 국가 명승지 115호인 백운동원림과 차문화의 관계를 밝히는 학술대회가 열려 백운옥판차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이 제4회 강진차문화학술대회에서는 천득염 전남대 석좌교수의 ‘백운동 원림의 의미’ 이한영전통차문화원 이현정 원장의 ‘백운옥판차의 역사와 미래가치’ 등의 주제발표가 있었다.
발표에서 천교수는 “백운동 5대 주인 이시헌의 글과 서신을 통해 임신년(1812) 이후 다산, 초의, 윤동 등과 교류하면서 다양하고 구체적인 차살림을 했다는 것을 살필 수 있다”며 “백운동원림은 선비들의 강학 풍류 이었을 뿐 아니라 보기드문 차문화 터였다는 점도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고 짚었었다.
이원장은 “백운옥판차에는 스승과 제자가 맺었던 다신계의 약속이 강진의 선비들에 의해 100년 이상 지켜져 온 아름다운 이야기가 담긴 차”라며 “이를 세계 명품 브랜드로 부각시켜 우리 차문화의 융성과 관광상품으로서의 성공을 함께 이루기 위해 모두 노력해 가자”고 호소했다.
이현정 원장은 2년전 광주에서 열린 세계수영대회에 즈음해 광주아시아문화전당에서 백운옥판차의 세계화를 목표한 상설 강좌를 개최하는 등 대외활동에도 발벗고 나서고 있다.
요즈음 몹쓸 돌림병으로 인심이 매우 사납다. 이럴 때 은은한 차살림을 운영하는 것도 한 지혜일 게다. 예로부터 차는 ‘독철신(獨啜神)’이라 했던가.
도륭(屠隆)이라는 중국 차인이 <고반여사(考槃餘事>라는 제 책에서 처음 들먹였다고 한다. 이 이는 혼자 차를 마시면 신선의 경개(獨啜曰神)요, 둘이 마시면 썩 좋고(二客曰勝), 서넛이면 그런대로 멋이 있으며(三四曰趣), 대여섯이면 덤덤할 뿐이고(五六曰泛), 일고 여덟이 되면 이건 그저 퍼주는 수준(七八曰施)이라고 다석(茶席)의 품(品)을 매겼다.
벗님과 어울리는 망우군(忘憂君: 술)도 좋지만 이럴 때는 적요히 더부는 척번자(滌煩子: 차)도 무방할 터다.
끝으로 풍류 그윽한 선객의 차 하나 소개하고 접을까 한다.
자설차(煮雪茶). 자설차는 조계문중 2세 조사인 진각혜심 스님의 효성이 어린 명선(茗禪)이다. 말 그대로 흰 눈을 달여서 만든 차다. 온 사위가 꽁꽁 얼어붙어 물을 길을 수도 없는 엄동에 햐얗게 쌓인 눈을 그대로 손으로 퍼다가 단지에 넣고 끓여 찻잎을 우려낸 차. 이 얼마나 삽상한 경개인가.
혜심스님의 시집인 <무의자집無衣子集>에 보면 8편의 다시가 있는데 그 중 장시로 「陪先師丈室煮雪茶筵」이란 작품이 눈에 띈다. 스승을 모시고 눈을 끓여 베푼 찻자리의 흐뭇한 정경이 펼쳐진다.
간밤에 부슬비가 내리는가 했더니 새벽에 보니 흰 눈이 한 자나 쌓였네
길도 없고 고랑도 없이 온통 눈천지에 나뭇가지는 부러져 인적 끊겼네
멧새도 설한풍에 처마로 모여들고 산사슴도 하릴없이 동굴로 숨어드네
너럭바위는 백옥같은 신선대가 되었으며 흙계단도 옥계로 변했구나
샛바람 달려들어 방장실은 썰렁한데 하얀 눈빛이 경창에 어른댄다
산승이야 대한에 맡겨두어도 될 터 이 아름다운 절기를 차로 즐기자꾸나
동자승 불러 눈 퍼오라 이르니 소반에 가득 담아온 하이얀 눈가루
손으로 다둑다둑 빚어낸 듯 그놈 참 봉우리도 우뚝하니 잘 만들었구나
눈봉우리에 구멍 파니 바로 용천이라 그 물을 떠서 작설차를 끓인다
이 어찌 한갓 재미나 보자고 한 일이랴 맑은 차 마시고 정신을 바룸이라
이 경개는 방외인이나 맛보는 것이니 인간세상에 행여 누설하지 마소
아, 나는 본디 서생이었으나 어찌 출가하여 승려의 대열에 끼인 몸
작은 절방에서 맑은 바람을 맛보며 유생의 더운 열기를 식혔네
그저 단비했던 혜가의 신심으로 안심의 비결을 스승에게 구하오니
저는 묻지 않음으로 묻고 있으니 스승은 설하지 않음으로 설해주소서
아, 옛 분들의 행거는 차살림마저도 이렇듯 아름답고 청량했던 것이니...
글 한송주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