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필라움 / 정수아
책꽂이에는 수많은 고래가 살지만 읽을 수가 없어요 우리는
고전이라고 하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그림자는 유령처럼 튀어 올라와요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지죠
세계가 무심해지면 오렌지 냄새가 나는 쪽으로 고양이가 하품을
하듯이 고개를 들어요
풀어진 얼굴에 분을 두드리고 긴 머리를 반쯤 넘기면 푸른
수초가 귀에서 피어나지요
그것은 아주 견고하거나 혹은 우직한 일이에요
이 방주인은 어둠을 싫어해요 그래서 태양이 들어오게 창문을
심어두어요
태양과 눈 마주칠 때마다 수초가 되는 기도를 해요
이 방에 있는 풀들은 창 쪽으로 어깨가 기울어져 있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소음은 나를 지나가고 텔레비전에서는 웃음이
흘러나와요
당신은 늘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고 했어요 그럴 때마다 매트리스
위에 푸른 바다가 물방울무늬를 그리고 고래가 춤을 추어요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파란색으로 바뀌어요
고래는 미지근한 물에 손을 담그면 손은 무거워지고 주머니 안에
자갈들이 쏟아져요 바닥으로 뒹굴며 뒤꿈치가 닿았어요
손에 머물렀던 고래가 사라지고 뉴스 앵커는 폭우가 쏟아질거라고 해요
오르골 태엽시계가 시간을 차근차근 밟으며 걸어가요
반쯤 열린 창문에 아라베스크 무늬를 포개어 넣고 여름이라고 썼어요
고래가 사라질 때마다 부서지거나 까칠해지는
내 입술, 닫힌 방
첫댓글 살아 있는것 다 희망을 바라보며. 살지요 그 희망을
향한 염원들 욕심도 무조건 미워할수는. 없어요 괘짝처럼 쌓인방 아파트를
스며드는 하루의삶 숨소리들. 다 나를 사랑하며
충실 합니다 산다는것만치
아름다운 명화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