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꾼들이 내 글쓰기 사부… 더 많이 때려주세요”
소설가 김동식(38)의 8월은 이렇게 요약된다. 함평, 강릉, 울산, 안산, 전주…. 모두 강연을 위해 찾은 곳들이다. 비가 쏟아지던 지난 11일, 진주행 기차를 타려는 그를 서울역 인근에서 만났다. 연 300회가량 다니는 강연 중 학교가 절반이 넘는다. 김동식은 “학교랑 친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학교랑 친하게 지낸다. 참 신기하다”라며 웃었다.
그가 “학교 강연은 절대 거절하지 않는다”라며 단언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관뒀다. 부산에서 어머니, 누나와 쪽방을 전전하며 살던 시절을 떠올리면, 손이 알알하다. “마늘 칼로 마늘을 계속 까면 손이 정말 아리거든요. 한 포대 팔아 5000원 정도 받았어요. 학교 갈 시간에 일하자는 걸 핑계 삼아 관뒀죠.” 배달, PC방 아르바이트 등을 거쳐 글을 쓴 건 서른 살 무렵. 성수동 주물 공장에 다닌 지 10년쯤 되자, 반복되는 일상을 버틸 수 없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짧은 소설을 썼는데 “재미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인정받는다는 느낌을 처음 경험했어요. 제 글로 인해 웃었다는 게 신기했고요. 그 맛에 중독된 거죠.”
최근 몇 년 동안 20~30장 분량의 ‘초단편 소설’ 열풍을 일으킨 소설가 김동식이 그렇게 탄생했다. 2017년 12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린 글을 묶은 첫 초단편 소설집 ‘회색 인간’(20만부)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권의 초단편 소설집을 냈다. 일반적 분량의 작품을 엮은 소설집 4권도 별도로 냈다. 모두 합해 약 40만부가 팔렸다. 무인도에 갇히거나 다른 종족의 지배를 받게 되는 등 비일상적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내면을 섬뜩하게 묘사하는 글이 그만의 특징으로 손꼽힌다. 술술 읽히는 짧은 분량과 유머 있는 문체 덕에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엔 저를 ‘인터넷에 글 쓰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학교 강연을 하면, ‘학생들이 작가님 책을 유일하게 본다. 고맙다’고 선생님들이 말하셔요. 비로소 작가가 됐다는 걸 느꼈죠.”
작가의 글쓰기 스승은 ‘인터넷 댓글’이다. 주물 공장에 다니며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으나, 글쓰기를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 ‘글 잘 쓰는 법’을 검색할 정도. “머릿속에 영상으로 떠오르는 걸 글로 무작정 썼는데, 문법이 맞지 않는 게 많았어요. ‘단호하게 문장 끝내주세요’ ‘말이 반복돼요’라는 댓글이 달리면, 그걸 지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남들이) 피드백을 쉽게 해도 되는 작가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글 쓸 때 고집은 필요하지만, 피드백이 안 들어오면 잘못된 길에 들어서도 모릅니다. 혼자 쓸 땐 원석이라면, 남들이 깎아줄 때 보석이 되는 거죠.”
그는 자신의 글을 ‘마카롱’에 비유했다. “제 글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계속 먹기는 어려워요. 마카롱처럼 신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단점은 계속 먹으면 무뎌지는 겁니다.” 초단편 소설집 시리즈를 10권까지 내며 ‘식상하다’는 고민이 컸었다. “학교 강연에서 한 남학생이 ‘작가님 왜 (시리즈) 뒤로 갈수록 재미가 없어져요?’라고 물었어요. 어떤 평론가의 말보다 와 닿았습니다. 시리즈를 10권에서 끝내기로 한 이유입니다.” 최근 그는 다른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린 전작들과 반대로, 최신작 ‘인생 박물관’(요다)에선 희망적인 면만을 담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지만, 그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부산에 계신 어머니에게 처음으로 집을 마련해 드린 정도. 여전히 성수동 주물 공장 인근에 살며, ‘글을 최소 3일에 1편씩은 쓴다’는 원칙을 놓지 않는다. “키보드 앞에서 3시간이면 한 편을 써요. 기차나 버스 안에서, 강연을 대기하며 글을 미리 구상하는 거죠. 이야기를 머리에서 굴릴 땐 눈앞의 모든 일상을 흘려 보냅니다.”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당부했다. “제 글이 처음에 비해 정제된 느낌은 있지만, 날카로운 맛은 무뎌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댓글이든 서평이든, 이번 인터뷰를 통해 저를 좀 많이 때려주시길 바랍니다.”
[김동식이 말하는 내 글쓰기의 ‘비밀’]
글쓰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대피처’
혹자는 개그 콘서트가 끝난 이유로 ‘개그에 자꾸 의미 부여를 해서’를 꼽는다. 관객의 웃음이 아니라 박수를 유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끝났다고 말이다. 그게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글을 쓰다가 막힐 때면 나도 모르게 자꾸 의미 부여로 손이 갈 때가 있다. 재미가 좀 부족하더라도 메시지가 좋으면 용서해주는 걸 경험해봤으니까. 이 달콤한 대피처는 작가에게 몹시 위험하다. 퇴보와 고립의 길이다.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이야기성을 우선 완성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내 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품
장르적 상상력을 발휘하는 작품에 대해 가볍고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며 낮게 보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내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심슨 가족’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든다. 겉보기엔 단지 유머 시리즈지만, 그 안에 숨겨진 풍자와 해학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날카롭다. 단순 PC(정치적 올바름)함을 넘어서, 그것이 극단적으로 변질했을 때의 모습까지 풍자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결국 강압적인 주장보다 온화한 위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심슨 가족을 추천한다.
ㅡ조선일보 이영관기자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3/08/16/HZXG7V4NQRG7DBWBJXXNFLEMQM/#:~:text=0%3A43,%EB%A7%90%ED%96%88%EB%8B%A4./%EA%B9%80%EC%A7%80%ED%98%B8%20%EA%B8%B0%EC%9E%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