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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층 1전시길과 지하 1층 2전시실에서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
MMCA, 《올해의 작가상 2024》 후원작가 공개…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
김연신 기자
서울문화투데이 기사 승인 : 2024.04.09.
2024.10.25~2025.3.23,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내년 2월 발표될 ‘올해의 작가상 2024’ 후보이자 후원작가 4인이 공개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SBS문화재단과 공동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 2024》 후원작가로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 4인을 선정했다.
《올해의 작가상 2024》는 2022년 10주년을 맞이해 추진됐던 심사제도 개선 이후 두 번째로 선보이는 전시다. 후원작가들의 신작과 구작을 통합전시하고, 공개 좌담회로 진행되는‘작가 & 심사위원 대화’를 통해 비평적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의 작가상 2024》 후원작가로 선정된 4인은 조각, 설치, 영상, VR 등의 매체로 활동 중이다. 권하윤은 3D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VR 등 첨단 기술 매체에 대한 실험을 바탕으로 가상현실을 통해 기억의 공간을 경험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현실의 제약을 뛰어넘어 구현되는 개인의 기억 속 공간들은 역사를 재구성하는 동시에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시험한다.
양정욱은 아파트 경비원, 사무원, 어느 가족의 가장 등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관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키네틱 조각으로 구현한다. 목재, 실, 전등과 같은 요소들이 모여 만들어 내는 아날로그적인 움직임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전달한다.
윤지영은 조각 매체의 문법을 이용하여 사회 근저에 작동하는 ‘희생 또는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물이 가진 물리적이고 구조적인 속성과 그 의미론을 섬세하게 조율해 만드는 조각적 상황은 하나의 알레고리로서 우리 사회의 심리적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제주에서 출생, 덴마크로 입양되어 한국과 덴마크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은 제주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바탕으로 기억, 이주, 경계, 번역 등의 쟁점을 다루어왔다. 시적 언어와 퍼포먼스,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결합한 영상 작품은 사적 기억과 공적 기억 사이를 횡단하며 사회문화적, 지정학적 상황에 대한 대화를 촉발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4》의 1차 심사위원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샤를 란드브뢰흐트(Charl Landvreugd), 제24회 시드니비엔날레 예술감독 코스민 코스티나스(Cosmin Costinas), 뉴욕현대미술관 PS1 큐레이터이자 학예업무총괄인 루바 카트립(Ruba Katrib), 전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김성은, 싱가포르아트뮤지엄 선임 큐레이터 김해주,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성희(당연직), 담당 학예연구사 이주연(당연직) 등 총 7명이다. 최종 심사위원단은 담당 학예연구사를 제외한 6인으로 전시 개최 후 작가 & 심사위원 대화 등을 통해 수상 작가 1명을 선정할 예정이다.
올해 전시는 오는 10월 25일부터 내년 3월 2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1, 2 전시실에서 진행되며, 작가들이 새롭게 구상, 제안한 신작 및 신작과 연관된 구작을 함께 선보인다. 공개로 이루어지는 작가 & 심사위원 대화는 누리집 신청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세부 일정 추후 공지) 최종 수상자는 2025년 2월에 발표된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올해는 특히 각기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 4인의 작가를 선정해, 매체별 심도 깊은 연구와 고유한 주제의식을 담은 전시를 선보인다”라며, “향후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미리 만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VR로 경험하는 타인의 사적인 이야기 [미술/전시]
아트인사이트 글 입력 : 2024.07.22. 09:12
전다희 에디터
권하윤(1981~)은 프랑스 낭트 보자르에서 조형예술 학사 및 시각예술 석사를 졸업하고 주로 한국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 <489년>(2015), <새여인>(2017), <모델 빌리지>(2014) 등이 있으며, 3D 애니메이션과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같은 영상매체를 사용한다. 권하윤은 타인의 기억을 재구성해 이미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과 가상, 실제와 허구 사이의 관계를 탐구한다.
그의 대표작 <489년>와 <새여인>은 개인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현한 애니메이션 VR 작업이다.
<489년>은 DMZ에 매설된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내는데, 그곳에서 근무했던 병사의 인터뷰를 토대로 공간을 가상현실로 재구성한 것이다.
<새여인>은 작가의 스승인 다니엘의 기억을 재구성한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사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권하윤은 "시공간을 가장 완벽하게 그려내고, 환상적인 요소를 가장 강력하게 받아들이게 해주는 매체가 가상현실(VR)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작업에서 보이는 가상현실은 모호한 공간의 성격을 지니며 관람자는 시공간의 배경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이곳을 생생하게 실감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인 박덕선은 부유하는 듯한 공간과 이미지는 실질적 경계를 더욱 모호하게 하고, 오히려 허상의 것이 현실의 본질을 담게 한다고 분석한다. 현실과 허상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그의 작업은 초기작인 <모델 빌리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모델 빌리지>는 북한의 프로파간다 마을인 기정동을 상상에 의존해 재구성한 모형을 제작해 촬영한 작업으로, 영화 세트장 같은 마을인 기정동의 본질인 허구성을 담고 있어 오히려 마을의 본질에 가까워 보인다.
그의 작업은 VR이라는 뉴미디어를 사용하기에 이를 중점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권하윤이 "이 매체를 주제 표현에 적합한 수단이기에 선택했다"고 말한 것을 토대로 작업의 주제 의식에 더 초점을 맞추어 바라보고자 한다.
위에서 살펴본 <489년>과 <모델 빌리지>는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없는 공간들 속에서 끝나지 않는 이 전쟁을 다시 경험하도 록 만들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분단선과 경계, 집단적 정체성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불분명한 경계와 불완전한 기억을 소환한다.
이에 대해 상명대 조형예술학과 교수인 이인범은 역사적 현실에 대해 진실과 거짓이 불분명한 지점을 지적하며, 역사적 현실을 재현하고자 하는 역사적 증거물(신문 등)과 기억에 의해 재구성된 예술품(권하윤의 VR작업)의 차이를 묻는다. 이 질문의 의미가 예술의 구분, 정의를 묻는 것이 아닌 급 변하는 미디어 현실에서 우리는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과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 능력을 소유했는지 묻는 것이라 생각한다.
다음으로 <새여인>, <증거부족>(2011)을 비롯한 권하윤의 작업 전반에서 주목할 지점은 그가 개인의 서사에 주목하는 태도를 일관적으로 보여주며 일상의 계기에서 시작한 의문을 작업으로 풀어내고, 대화의 방식으로 전쟁이라는 거대 서사와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이다. 이인범은 이에 대해 "순환적 시간관에 의해 기존에 은폐되었던 일상적 삶의 이야기를 중심으 로 한 새로운 역사 쓰기가 가능해졌다."라고 말한다.
이를 토대로 기억을 재구성하는 권하윤의 작업이 기존의 사고와 시각을 되돌아보게 만들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지점은 주체와 타자의 구분이 모호한 우리의 본질을 말한다고 보이기에 그의 작업이 현시대에 필요한 이야기라 생각한다.
권하윤 작가, VR 가상현실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다
CNB저널 기사 등록 : 2018.10.05. 09:56:45
김금영 기자
두산갤러리 서울서 현실과 가상 오가는 개인전 ‘레비테이션’
두산갤러리 서울은 권하윤 작가의 개인전 ‘레비테이션(LEVITATION)’을 10월 10일~11월 7일 연다. 권하윤은 지난해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작가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영상 작업을 통해 프랑스의 팔레 드 도쿄, 오스트리아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및 다양한 필름, 비디오 페스티벌에서 수상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 작가는 현실과 가상, 실제와 허구 사이의 경계를 다룬 영상작업을 선보인다. 전시제목 ‘레비테이션’은 물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현상으로,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가의 작업세계를 드러낸다.
작가의 영상작업들은 대부분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기억과 이야기, 다양한 리서치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이야기다. 작가는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해, 이야기를 전달해줬던 사람과 보는 사람들 사이에 공동의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이 공간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게끔 이야기를 이어나가며 미지의 공간 속에서 생경한 감각들을 느끼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VR을 사용하는 두 작품 ‘새 여인’, ‘489년’과 3D 에니메이션, 실사촬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작업들을 선보인다. 권하윤은 2015년 제작한 ‘489년’부터 VR 매체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비무장지대 DMZ에서 군생활을 했던 한 사람의 이야기를 따라,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현실 속 가상공간인 DMZ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고 이 가상의 공간을 VR로 생생하게 경험하게 한다.
‘새 여인’은 다니엘이라는 한 사람의 기억 속 공간을 가상현실로 재현하고 관람객들이 이 공간을 직접 걸어 다니면서 그의 기억 안으로 지금 방문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와 함께 DMZ 안의 북한 마을이나 판문점 등을 다룬 영상작업을 통해, 실제로 거기에 있지만 다가갈 수 없는 곳으로 들어가거나 과거의 기억을 현재로 다시 현재로 이끌어 내어 새롭고 낯선 시공간 경험을 제시하며 생경한 감각들 마주하게 한다.
양정욱 작가 - (재)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입주기간 : 2018-03 ~ 2019-01
이메일contact@studiochicoo.com
1982년 출생, 안산 거주
양정욱은 주변의 사람들과 일상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읽고 수집하여 얻은 감정과 생각들이 연결돼 만들어진 하나의 문장이나 작은 이야기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야간 경비원, 주차 안내원, 아버지, 친구들 등 한 개인에 대한 관심을 작가의 감성을 통과하면서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이야기로 변화한다. 이 이야기들은 나무와 실, 모터를 이용해 유기적 구조물의 움직임 속에 투영된다. 작가가 만드는 움직임과 소리는 어떤 프로그래밍된 첨단 기술의 결과가 아니라, 단순하고 아날로그적인 움직임과 소리이다. 하나의 움직임과 다른 하나의 움직임이 서로 연결되고 반복되면서 전체를 형상화한다. 서로 다른 주기의 움직임들은 구조적인(의도적인) 불완전성으로 매번 조금씩 다른 움직임과 소리를 만들어낸다. 움직임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인 나무와 모터만을 남겨두고, 외형의 모든 것들이 배제된 듯한 작품의 모습은 수많은 비어있는 공간을 보여준다. 반복적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움직임과 비어있는 공간이 쌓여진 층 사이사이에는 작가의 이야기들이 깊숙이 담겨, 우리를 그 앞에 잠시 멈추게 하고 일상의 작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입주하는 동안에는 작품 제작을 위한 모델링과 자료 수집을 진행할 것이다.
프로필
학력
- 경원대학교 조소과, 성남시, 2011
개인전
- <홀롱, 나는 그것이 필요해요>, 게르게닉미술관, 브르타뉴, 프랑스, 2017
- <은퇴한 맹인안마사 A씨는 이제 안마기기를 판다>, OCI미술관, 서울, 2015
- <말이 없는 사람>, 두산갤러리, 뉴욕, 미국, 2015
- <인사만 하던 가게에서>, 갤러리소소, 파주, 2013
주요 그룹전
- <HENOSIS>, 백아트 갤러리, 서울, 2018
- <그 집>, OCI미술관, 서울, 2017
- <빈 페이지>, 금호미술관, 서울, 2017
- <리듬풍경>, 주일한국문화원, 도쿄, 일본, 2017
-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 갤러리 현대, 서울, 2016
- <아티스트파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15
- <S.O.S.>, 경기창작센터, 경기, 2015
- <리듬풍경>, 경기도미술관, 경기, 2015
- <아티스트 파일>, 도쿄국립신미술관, 도쿄, 일본, 2015
- <All (is) Vanity>, 서울미술관, 서울, 2015
- <랜덤 액세스>, 백남준아트센터, 경기, 2015
- <로우테크놀로지 : 미래로 돌아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2014
- <더 브레인>, 카이스트, 대전, 2014
- <숨을 참는 법>, 두산아트센터, 서울, 2014
- <누구나 사연은 있다>, 경기도미술관, 경기, 2014
- <일상의 생각>, 닻미술관, 경기, 2014
- <제35회 중앙미술대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서울, 2013
- <공중시간>, 성곡미술관, 서울, 2013
- <사이의 변칙>(양정욱+이해민선), 사루비아다방, 서울, 2012
- <Class of 2011>, 갤러리 현대, 서울, 2011
- <Boiling point>, 쿤스트독갤러리, 서울, 2011
- <나는 미래다>, 김종영미술관, 서울, 2011
레지던시
-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2018
- 케르게닉 미술관 레지던시, 2017
- 경기창작센터, 안산, 2014
-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고양, 2013
수상
- 63아트작가지원프로그램, 2018
- 신도SINAP 작가선정, 2017
- OCI Young Creatives 선정, 2015
- 중앙미술대전 우수상수상, 2013
양정욱 작가
우리 이웃과 일상의 관찰자
나무와 실, 다양한 오브제로 이루어진 구조물이 움직인다. 기이한 소리를 내기도, 빛을 깜빡 거리기도 하면서 운동을 반복하는 양정욱 작가의 작품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중세 시대 괴짜 과학자의 발명품을 연상시키며 구조와 움직임에 관한 호기심을 유발한다. 당연하게도, 첫 번째 궁금증은 눈에 띄는 형태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양정욱 작가는 작업에 있어서 그것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키네틱 아트(Kinetic Art)’라는 접근에 대해서도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움직임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작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손으로 만드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짧은 시와 같은 특이한 제목에 대해서도 큰 의미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제 작업에서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관객의 시선을 끌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결과물이에요. 공을 들여 만들고 움직이게 하고 작품 제목에 특정한 숫자를 넣거나 하는 것들이요. 영화로 치면 ‘맥거핀(Macguffin)’ 같은 거라고 할 수 있죠.”
맥거핀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해 극에 몰입하도록 만드는 장치다. 작품에서 맥거핀과 같은 요소가 필요했던 이유는 양정욱 작가가 반드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돋보이는 작품과 달리, 그것은 너무나 평범하고 소소해서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우리 이웃에 관한 이야기다.
일상의 감각으로 직조한 가상의 이야기
그는 언제부터인가 졸고 있었다.
학생이 되고, 회사원이 되고, 가장이 되어서도
그는 졸고 있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 꿈을 꾸었다.
일등이 되는 꿈, 승진이 되는 꿈
넓은 집에서 가족과 웃는 꿈같은 것을 말이다.
그는 이제 졸면서도 같은 꿈을 꾼다.
아마도 그 꿈은 아침에 꾸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는 고개를 아슬아슬하게 끄덕거린다.
어느 순간 고개를 떨구고 다시 꿈을 꾼다.
그는 언젠가부터 꿈을 꾸고 있었다.
[언제나 피곤은 꿈과 함께], 작가 코멘터리 중
경비실의 작은 창문 너머 졸고 있던 아파트 경비원을 본 작가가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는 가상이지만 현실적이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대학 졸업을 한참 미뤄야 했고, 새벽의 편의점 가판대 자리를 지켜야 했던 그 역시 소시민의 삶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편의점에 묶여 있었지만 머릿속은 한없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글을 썼다. 과거의 일을 반추하며 불완전한 스스로에 대해 깊이 성찰하였고, 그 시간은 결국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전시를 위해 머물렀던 뉴욕과 도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건물의 관리인이나 도어맨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매일 눈인사하던 도어맨이 사실은 아마추어 복서였고, 자신의 체육관을 짓는 꿈을 가지고 있다는 사연은 [서서 일하는 사람들(Standing Workers)] 연작의 계기가 된다.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지만 꼭 필요한,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들이 실은 영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그들을 함부로 대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어요.”
주차 안내원, 식당 종업원, 인터넷 설치기사, 택시 운전기사 등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그 직업을 가지게 된 과정과 직업 이상의 무엇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주차 안내원이 실은 전직 군인이라면’이라고 설정하자 두 직업 사이의 화학작용이 활발히 일어나며 더욱 풍성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하는 과정은 저를 조금씩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제가 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입니다.”
이야기를 시각화한 구조물
관찰하고 사색하고 구상하고 글로 쓰고 다듬은 이야기는 작가의 머릿속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로 그려진다. 수차례의 드로잉을 통해 입체적인 구조물로 점차 구체화되지만, 그의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인 ‘움직임’이 작업 과정에서 차지하는 분량은 의외로 크지 않다.
“이러한 구조물을 작업할 때 보통은 움직임을 먼저 생각하고 그에 적합한 구조나 형태, 운동 방식을 선택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보여주고자 하는 형태가 우선이에요. 예를 들어 ‘아버지’라는 소재가 있다면 추상적인 형태로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고, 그에 어울리는 움직임을 생각하고 소리나 여러 오브제를 선택하여 추가하는 식입니다.”
구조물의 설계도랄 것도 없다. 수없이 많은 드로잉도 오롯이 형태에 관한 고민의 흔적이다. 심지어 어떤 것은 실제 고정은 다른 방법으로 하고 겉으로 보기에 실로 묶어서 지지한 것처럼 의도한 작품도 있다. 도저히 기술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형태나 구조는 과감히 생략한다. 그것이 작품의 주가 아니기 때문이다. 식탁에 비싼 송로버섯을 올리고 싶어도 돈이 없으면 빼거나 송이버섯으로 대체하면 그만이라고 작가는 비유한다. 본질은 식사에 있는 까닭이다.
적정선을 찾는 일에 능한 양정욱 작가지만 유독 포기하지 못하는 재료가 있다. 세월이 켜켜이 쌓인 오래된 목재다. 이러한 목재는 가공을 하면 본연의 멋과 질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작품에 맞춰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작품에 어울리는 목재를 찾아 다니기도 하고, 간혹 목재를 고려해 드로잉을 수정해야 할 경우도 생긴다. 그러한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오래된 목재를 고집하는 이유는 작품을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오래된 목재가 가진 세월의 멋과 아우라는 그의 작품에서 가장 뚜렷한 조형 요소로 작동한다.
감성과 이성의 접점
2013년부터 양정욱 작가의 작품에 한 가지 변화가 생기는데, 바로 작품의 규모가 커졌다는 점이다. 예술기금 등을 통해 예산과 공간이 어느 정도 확보되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시도하게 된 결과다. 그 절정은 2015년 도쿄 신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전시된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The minds of yours and mine are the thought of someone)]이다. 그간의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로, 가로 5m x 세로 5m에 높이는 4m에 이른다. 그런데 설치 작품은 전시 이후 늘 두 가지의 갈림길에 놓인다. 보관이냐 폐기냐. 열심히 작업하고 작품을 완성할수록 작업장에서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아이러니는 설치 작품을 하는 예술가로서 꼭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었을 [너와 나의 마음은 누군가의 생각(The minds of yours and mine are the thought of someone)]이 뜻밖에 한 카페에 판매가 되면서 새로운 길이 열렸다.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같은 전시시설이 아닌 상업시설에서 소장한 첫 번째 사례인 동시에, 양정욱 작가가 작품의 전시 이후를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작품인 [서서 일하는 사람들(Standing Workers)] 연작은 처음부터 판매를 목적으로 치밀하게 기획되었다. 작품의 규모를 조율하고 움직임의 구현을 위한 부품도 달리 사용했다. 개인 작가가 아닌 스튜디오 시스템을 도입하려는 것도 이러한 시도와 일맥상통한다.
“당대의 작업환경과 현실을 이해하는 것도 이 시대의 예술가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입니다.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감성적인 측면이라면, 전시용이냐 판매용이냐 하는 부분은 지극히 이성적인 부분일 거예요. 감성을 끝까지 지키면서 이성을 고려할 때 가장 완성도 있는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글 이정선 / 문화예술기자
추천의 변
양정욱은 주변의 사람들과 일상을 관찰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읽고 수집하여 얻은 감정과 생각들이 연결해 만든 하나의 문장이나 작은 이야기로부터 작업을 시작한다. 야간 경비원, 주차안내원, 아버지, 친구들과 같이 한 개인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감성을 통과하면서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이야기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나무와 실, 모터를 이용해 유기적인 구조물의 움직임 속에 투영된다. 양정욱이 만드는 움직임과 소리는 어떤 프로그래밍된 첨단 기술의 결과가 아닌, 단순하고 아날로그적 움직임과 소리이다. 하나의 움직임과 다른 하나의 움직임이 서로 연결되고 반복되면서 전체를 형상화한다. 서로 다른 주기의 움직임들은 구조적인(의도적인) 불완전성으로 인해 완전히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고, 매번 조금씩 다른 움직임과 소리를 만든다. 이러한 움직임의 형식은 작품의 모습에도 투영되어 있다. 움직임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인 나무와 모터만을 남겨두고, 외형의 모든 것들이 배제된 듯한 작품의 모습은 수많은 비어있는 공간을 보여준다. 반복적이지만 완벽하지 않은 움직임과 비어있는 공간이 쌓여진 층 사이사이는 양정욱의 이야기들이 깊숙이 담겨, 우리를 그 앞에 잠시 멈추게 하고 일상의 작은 것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추천인 정진우 / 헬로!아티스트 작가선정위원
작가소개
양정욱
경원대학교 조소과를 졸업하고 첫 개인전인 [인사만 하던 가게에서]을 비롯한 [은퇴한 맹인 안마사 A 씨는 이제 안마기기를 판다], [말이 없는 사람]을 통해 우리 이웃의 사연을 담은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경기창작센터 입주 작가를 거쳐 2017년 프랑스의 케르게넥 미술관(Domaine de Kerguehennec)의 입주 작가로 선정되었다.
윤지영 작가 - (재)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
입주기간2020-03 ~ 2021-01
이메일jiyoungyoon2017@gmail.com
윤지영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의 조각과를 졸업했다. 작가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환경으로서 개인에게 주어질 때 더 '잘'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감춰져 있는 '희생의 구조'나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최근에는 한국 민담, 신화, 전설, 전래 동화 속 여성에 관해 공부하고 있고, 인천아트플랫폼 입주 기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프로필
학력
-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 조각과 졸업(MFA Sculpture), 2013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2010
개인전
- <적당한선에서>, 빙앤띵아카이브, 서울, 2015
- <Glorious Magnificent>, 마나컨템포러리(4층),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4
단체전
- <밤이 낮으로 변할 때>, 아트선재센터, 서울, 2019
- <막간극>, 인사미술공간, 서울, 2019
- <에이징 월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서울, 2019
- <생태감각>, 백남준아트센터, 용인, 2019
- <We Don’t Really Die>, 원앤제이갤러리, 서울, 2019
- <멀티-액세스 4913>,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서울, 2019
- <비오오케이>, 챕터투 갤러리CHAPTER II, 서울, 2018
- <장르알레고리-조각적>, 토탈미술관, 서울, 2018
- <가공할 헛소리>,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시, 네이버 파트너 스퀘어, 광주, 2018
- <관객행동요령>, SeMA 벙커, 서울, 2018
- <아크로바틱 코스모스> 원앤제이 갤러리, 서울, 2018
- <도면함>, 시청각, 서울, 2017
- <NEW NORMAL, THE Hangar>, UMAM D&R, 베이루트, 레바논, 2017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No longer objects>,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2016
- <뿔의 자리>, 인사미술공간, 서울, 2016
- <After Dinner Before Dancing >,Chicago Filmmakers,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6
- <현실활용가> , 두산갤러리, 서울, 2016
- <Physical Information>, Defibrillator Gallery,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5
- <Future Proof>, LODGE갤러리,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5
- <Surrealism and War>, National Veterans Art Museum,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4
- <Forced Air>, ACRE 갤러리,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4
- <Symport>, Current Space 갤러리, 볼티모어, 메릴랜드, 미국, 2014
- <Upon The Skin>, 49B갤러리, 브루클린, 뉴욕, 미국, 2014
- <In Plain Cloak>, The Bike Room갤러리, 시카고, 일리노이, 미국, 2013
- <NEAR DWELLERS>, Russell Industrial Center, 디트로이트, 미시건, 미국, 2012
- <2010 뉴아티스트>, 김종영 미술관, 서울, 2010
레지던시
-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2019
- 관두미술관 레지던시,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국제 교환, 대만, 2018
-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2017
- 바우하우스Bauhaus Dessau,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국제교환입주 프로그램, 독일, 2016
-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2016
- 맥도웰 공동체 레지던스MacDowell Colony, 미국, 2014
- ACRE Artist Residency, 미국, 2013
소장
- 서울시립미술관, 2018
윤지영
윤지영은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의 조각과를 졸업했다. 작가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환경으로서 개인에게 주어질 때 더 ‘잘’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감춰져 있는 ‘희생의 구조’나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작업한다.
# Q&A
Q. 전반적인 작품 설명 및 제작과정에 관해 설명해 달라.
A. 나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환경으로 개인에게 주어질 때 더 ‘잘’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감춰져 있는 ‘희생의 구조나 ‘믿음의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도 관심을 두고 작업해오고 있다. 주로 입체와 영상으로 결과물을 내는 편이긴 하나, 하고 싶은 이야기에 맞춰 매체를 정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 한다.
Q.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 작업(또는 전시)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나의 입체 작업은 ‘작품을 전시 단위로 나누지 않는 것’ 이 중요한 특징이다. 결과물이 추상적인 형태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구체적인 역할을 가진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장면을 이루도록 만들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이 때문에 하나의 작품이나 전시를 고르는 것이 나에겐 크게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소개하는 글을 적을 때도 이제는 ‘주요 전시’ 가 아닌 ‘최근 전시’를 소개하곤 한다. 물론, 매 전시에 완결된 모습의 작품을 보여주지만, 각기 다른 전시마다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작품을 관객이 발견하면, 그 순간 눈앞에 놓인 작품 전체를 이해하는 데에 작은 단서로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된다.
Q. 작업의 영감, 계기, 에피소드에 관하여
A. 현재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요즘 내가 어떤 것을 주로 생각하거나, 찾아보며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 질문해본다. 그리고 이 생각을 이어나가며, 리서치로 작업을 시작한다.
Q. 예술, 그리고 관객과의 소통에 대하여
A. 나는 한 명의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나 사건, 문제 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늘 염두하며 작업한다. 그 때문에 추상적인 형태의 작품이 결과물로 나오더라도 이를 바탕으로 분명,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전시기간 : 2021. 7. 29. – 9. 26.
전시장소 : 아트선재센터 3층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이별의 공동체»는 역사, 기억, 번역과 이주를 주제로 한국과 덴마크를 오가며 작업하는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의 개인전이다. 전시에는 3채널 영상 설치 ‹이별의 공동체›(2019), 여섯 점의 라이트 박스 설치 ‹달의 당김›(2020) 그리고 2채널 영상 설치 ‹땋기와 고치기›(2020) 세 개의 최근 작업들이 소개된다. 모두 작가의 고향인 제주의 자연과 다년간의 제주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억압받거나 소외된 공동체의 목소리 및 그들에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이미지와 자료를 병치하여 사건에 대한 다각적인 시점과 복수의 말하기라는 미학적 형식을 탐구한다.
72분 길이의 영상 설치 작업 ‹이별의 공동체›(2019)는 시인 김혜순의 책 『여성, 시하다』의 한 구절에서 그 제목을 가져온 것으로 이 작업을 구성하는 세 개의 스크린은 겹겹이 등장하는 구조로 전시장에 설치된다. 첫 번째 화면에서는 제주 오름에서 하얀 한복을 입고 회전하는 작가의 모습과 원심력에 의해 그의 손을 떠난 드론 카메라가 겨울의 제주의 땅 위에 한 점으로 서있는 작가를 상공으로부터 찍은 장면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영상은 검은 용암석과 짙푸른 물의 제주 바다의 풍경을 부감으로 찍은 장면과 영상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내레이션이 등장하며, 마지막 영상은 제주의 무당 고순안이 굿을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해 작품의 서사를 이끄는 다성의 이야기를 펼쳐낸다. 프로젝션 스크린의 분할과 설치의 구성은 하늘로부터 땅과 바다, 사람으로의 연결 그리고 원경으로부터 근경의 서사로 진입해 가는 여정을 반영한다.
거스톤 손딘-퀑과 협업해 제작한 ‹달의 당김›은 밀물에 드러나고 썰물에 가려지는 바닷가 조수 웅덩이에 각종 사물들을 올려 촬영한 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수의 경계에서 용암석 위에 올려진 것들은 앞서 ‹이별의 공동체›에서도 등장한 황동 그릇, 과일, 쌀 등 제주의 해녀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바다로 던진 제물과 하얀 명실 가닥이다. 바위 위에 실금처럼 얹힌 흰 명실은 ‹땋기와 고치기›에서 하나의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의 매듭으로 연결된다. 장수의 기원과 수명을 상징하는 흰 실타래는 동그랗게 앉아 서로의 머리를 땋아주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서로를 연결하고 봉합하는 위로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일련의 작업을 통해 전시는 소외된 장소, 사람, 사건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발견하고 이를 전복하여 대안적 공동체와 경로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미학적 비전을 소개한다.
작가 소개
제인 진 카이젠(b.1980)
제인 진 카이젠은 코펜하겐에 거주하며 작업한다. 영상 설치, 실험 영화, 사진, 퍼포먼스, 텍스트를 다루는 카이젠의 작업은 광범위한 다학제적 연구와 공동체의 참여에 기반하며, 다층적이고 수행적이며 시적인 다성의 페미니스트 작업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카이젠은 기억과 이주, 경계, 번역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갖고 주관적 경험과 체화된 지식이 광범위한 정치사와 교차하는 영역을 불러낸다. 카이젠은 제 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2019)에 참여했으며, 쿤스트할샤를로텐부르크에서 가진 개인전 «이별의 공동체»(2020)가 AICA 덴마크 미술비평국제협회가 선정한 ‘2020 올해의 전시’로 선정된 바 있다.
전시 연계 온라인 세미나
일시: 2021. 7. 30. (금) 17:00
장소: 아트선재센터 유튜브 채널
발표자: 김혜순(시인), 김성례(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제인 진 카이젠(작가), 임지현(서강대 사학과 교수)
낭독: 김혜순(시인)
모더레이터: 임지현(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영 순차 통역 제공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2019, 2채널 비디오 설치, 가변크기
2019년 58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 소개되는 신작, <이별의 공동체>는 버려진 바리 공주에 대한 고대 무속설화로부터 기원하는 한국의 여성 무속을 시공간을 관통하는 기억과 상호 인식의 윤리 및 미학으로서 채택하여, 그로부터 새로운 번역과 예술적 시도를 드러내고, 경계(boarder)에 대한 다른 접근들을 따라가는 작품이다. 구전에 뿌리를 두고 무속인들에 의해 전승되는 바리 신화, 즉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버림받은 바리 이야기는 주로 효도에 관한 설화로 읽힌다. 하지만 <이별의 공동체>에서 작가는 이 신화를 젠더적 금기에 도전하는 이야기, 즉 분열의 논리를 초월하나, 그 중심에는 타자화와 상실의 경험이 있음을 말한다. 신화에 따르면, 바리는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역할을 한 후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여지는데, 그 대가로 왕국의 절반을 하사받는다. 하지만 바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즉 인간이 구상한 경계의 논리를 따르기를 거부한다. 대신, 원형적 무당이자 여신이 되어 산 자와 죽은 자 간의 매개자가 되기로 한다. 바로 이것이 바리 설화가 여성에 대한 여타의 한국 설화들로부터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이별의 공동체>는 작가가 2011년부터 시작한 한국 무속에 대한 장기간의 리서치와, 전쟁과 분열로 인해 고통받은 공통체 문제에 대한 오랜 관찰과 참여로 완성된 것이다. 작품은 제주도, 비무장지대(DMZ), 북한, 남한, 카자흐스탄, 일본, 중국, 미국, 독일 등지에서 촬영한 이미지와 더불어, 바리의 다중적 죽음을 무속 의례, 자연과 도시풍경, 아카이브 자료, 항공 영상, 시, 보이스오버, 사운드 스케이프를 통해 우회적으로 다루며 다규모적, 비선형적, 다층위적 몽타주로 완성해낸다.
작가는 상호주관적임과 동시에 자신에게는 지극히도 개인적인 바리 설화를 버려진 자의 설화에서 다층적 목소리들로부터 이주, 주변화, 극복과 관련된 젠더화된 이야기로 다루어낸다. 무속 제례에서, 무속인은 중재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고, 생사의 결집을 끌어모으며, 여러 영혼의 증인이 된다. 이와 유사하게, <이별의 공동체>는 버려진 자들에 대한 공유된 감정 속에서 형성되었다. 1948년 한국의 제주 4.3 학살의 생존자이기도 한 무속인 고순안의 무속의식과 굿노래는 작품 안에서 순환하는 리듬이 되고, 버려짐이나 죽음을 위로하는 제례 속에서 가장 고조된다. 작품은 또한 스웨덴 시인 마라 리(Mara Lee)와 <이별의 공동체>라는 제목에 영감을 준 김혜순의 “여성, 시하다”라는 시적 작업 안에 반영이 되어있는 설화에 대한 지점 또한 담아내고 있다. 나아가 식민주의, 모더니티, 그리고 전쟁에 따른 성차별이 미완의 역사 속에서 지속되고 머물면서 어떻게 급진적인 단절과 타자화의 기제를 낳았는지 남한과 북한의 여성, 이주민 여성들의 다양한 서사들 속에서 성찰해낸다.
삶과 죽음,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간으로 고취된 <이별의 공동체>는 해소, 소생, 그리고 되기(becoming)라는 과정을 통해 실현된다. 무속적 수행, 영화 매체 본연의 방법에 의해 채워진 이 작업은 지식과 존재의 시공간적 경계들이나 위계를 논쟁하고 이를 확산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며, 이렇게 함으로써 자연과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를 포함하여, 타자에 대한 사유와 그 존재함에 관계하는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제인 진 카이젠
제인 진 카이젠은 1980년 한국의 제주도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현재는 베를린과 코펜하겐을 오가며 거주한다. 기억, 이주, 젠더 등의 주제를 이미지, 사운드, 목소리, 체현의 비선형 몽타주나 스토리텔링의 기법으로 필름,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 등의 매체를 통해 논한다. 최근 참여 전시로는 “2 or 3 Tigers”(세계문화의 집, 베를린, 2017), 제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Decolonizing Appearance”(CAMP, 코펜하겐, 2018), “아시아 디바: 진심을 그대에게”(북서울미술관, 서울, 2017), “아트 스펙트럼 2016”(리움 삼성미술관, 서울, 2016),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국립아시아문화전당, 광주, 2015-2017) 등이 있다. 몬타나 엔터프라이즈(Kunstallen Brandts, 덴마크)를 수상하였으며, 리버풀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 제주 비엔날레 등에 참여하였다. 카이젠은 UCLA에서 MFA를, 덴마크 로열 아카데미 오브 파인 아트(The Royal Danish Academy of Fine Arts)에서 MA를 취득하였고 휘트니 미술관의 인디펜던트 스터디 프로그램(Independent Study Program)에 참여한 바 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그리고 ‘여성’
제인 진 카이젠이라는 사람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제주에서 출생한 카이젠은 생후 3개월 만에 덴마크로 입양되었는데 무의식 속에 버려짐에 대한 상실이 제주를 비롯해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공명하고 페미니즘의 관점과 얽힌 채 작품으로 등장한다. 카이젠은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이에 관한 시선을 확장시켜 집단적인 서사와 결부시켰다. 일제 지배 하의 강제징용, 한국전쟁, 스탈린 치하의 고려인 강제이주 등으로 생겨난 코리안 디아스포라는 여전히 주목받지 못한 채 이별의 공동체로서 비극적 서사를 안고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역사적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젠더 차별과 사회적 소외가 전쟁과 이주 속에서 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태어나자마자 여자라는 이유로 버려진 바리데기 공주 이야기는 그녀의 서사와 너무나 닮아있다. 검은 용암석과 짙푸른 물의 제주 바다를 풍경을 부감으로 찍은 영상은 내레이션과 함께 진행된다. 한국 무속의 기원이 담긴 신화를 차용하여 상실의 상징이자 회복과 치유, 타자성의 초월적 가능성을 반영한다. 바리공주는 나중에 무당이 되어 서로 다른 것과 연결하는 역할과 동시에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사람이 되는데, 바로 카이젠이 자신의 작품들 속에서 바리와 같은 존재로서 자리하기 때문이다.
전시 제목이자 영상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이별의 공동체’는 프로젝션 스크린 분할과 설치로 구성된 채 하늘로부터 땅과 바다, 사람으로의 연결 그리고 원경으로부터 근경의 서사로 진입해 가는 여정을 지난다. DMZ, 제주도, 서울, 북한,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독일, 미국 등에서 만난 디아스포라의 여성들이 겪어온 여러 시공간이 한데 어우러져 소리를 내고 제주 4·3학살의 생존자 무당 고순안의 제의 장면이 후렴에 교차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별의 공동체’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공동체 구성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결합하여 상실과 회복, 치유의 공동체로 소환하는 하나의 제의적 리듬으로 영상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수의 경계에서 용암석 위에 올려진 것들은 황동그릇, 과일, 쌀 등 제주의 해녀들이 두 손 모아 기도하며 바다로 던진 제물과 하얀 명실 가닥이다. <달의 당김>은 밀물에 드러나고 썰물에 가려지는 바닷가 조수 웅덩이에 각종 사물들을 올려 촬영한 이미지로 바위 위에 실금처럼 얹힌 흰 명실은 <땋기와 그치기>에서 하나의 실타래 같은 머리카락의 매듭으로 이어진다.
둥글게 원을 이루며 앉아있는 여성들은 각자 여러 세대를 아우른다. 그녀들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만지고 다듬고 땋아주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로를 연결하고 봉합하는 위로의 공동체는 바로 소외된 것들로 존속되던 그녀들의 혼연일체와 서로의 보살핌 속에서 형성되는 것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작가는 자신의 고향 제주의 자연과 수년간의 제주 샤머니즘에 대한 연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억압받고 소외된 공동체의 목소리와 그들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의 이미지를 병치함으로써 사건에 대한 다각적인 시점과 복수적인 화법을 미학적 형식으로 확보하는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그녀의 시적인 페미니스트 작업을 통해 광범위한 역사의 장을 횡단하며 소외된 장소와 사람, 사건에 대해 똑바로 마주하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는 작가의 대안적 공동체의 가능성과 그 경로를 탐색하는 여정에 동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안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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